EP. 441
연회장이 단숨에 떠들썩해졌다.
“영주님이 오셨다! 모두 영주님을 환영합시다!”
“라인하르트! 라인하르트! 율리안 폰 라인하르트!”
그렇게 연회 참석자들이 일제히 나의 이름을 불렀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르센의 고위 인사들. 그리고 공방전에서 큰 공을 세운 영지군의 지휘관들이었다.
하르센에서는 가장 높은 신분의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고 있었다.
황도에서 벌어지는 귀족 연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떠들썩함이었다.
‘마치 검사나 병사들의 파티를 보는 것 같군.’
하지만 에센문트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귀족문화가 극도로 발달한 황도와는 달리. 북부 에센문트는 고위 귀족들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검사다.
그래서 귀족 연회의 분위기도, 굳이 귀족의 격식을 차리기보다는 떠들썩한 편이었다.
게다가, 이번 하르센 공방전에서 실제로 가장 큰 공을 세운 자는 바로 나였으니.
이들이 나를 개선장군으로서 환영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연회장의 상석으로 향했다. 그때까지 참석자들이 계속 나의 이름을 불렀다.
‘오늘은 고위직들을 위로하기 위한 연회였는데...’
하지만 이들 모두 멈추지 않고 나를 칭송하고 있었다.
“영주님의 위대한 전공이 하르센에서, 아니 에센문트에서도 길이 빛날 것입니다!”
“검후와 빌헬름 전하에 이은 새로운 영웅 탄생을 이렇게 지켜보다니... 영주님과 함께한 저희들에게도 아주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하르센의 모든 시민들이 영주님의 공덕을 기리고 있습니다!”
“대성녀 아그네스께서도 영주님의 활약에 몹시 기뻐하실 겁니다!”
이렇게 주인공이 되는 기분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칭송할수록 내 지배력의 수준도 올라가는 셈이니까.
‘뭐, 그래도 너무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지. 내 신분을 생각하면.’
이곳 하르센에서 내 가문이 가진 그 무게를 더욱 실감했으니.
나는 일단 저들 앞에서 겸손을 보이기로 했다.
“아직은 전혀 가문의 어른들과 비교될 정도가 아니다. 그저 라인하르트의 후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그러자 참석자들의 눈빛이 단숨에 변했다.
그들끼리 조심스레 속삭이는 소리를 실프가 전했다.
“말도 안 될 정도의 전공을 세웠는데도 저토록 겸손하시다니... 도대체 지난겨울까지의 괴소문은 어떻게 된 일인가?”
“누가 의도적으로 영주님을 모독한 게 틀림없어. 지금 저분의 모습에서는 망나니의 모습을 한치도 찾아볼 수 없으니...”
“망나니는 무슨! 빌헬름 전하를 이어 에센문트의 성군이 되실 분을... 이렇게 하르센에서 영주님은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시지 않았는가!”
“아니, 망나니였다면 뭐 어떤가! 원래 영웅들이란, 범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개를 가지고 있으니! 진작 영주님의 뛰어남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저분을 오해했을 뿐이네.”
“그 말이 맞아. 오히려 저런 미남 영웅이 그런 젊은 날의 과오조차 없다고 하면. 인간미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걸세.”
그런 말까지 들으니 더 머쓱해졌다.
‘역시 여기도 에센문트는 에센문트군.’
내 고향 에센문트에서 라인하르트는 종교나 다름없다.
라인하르트의 백성들은 라인하르트의 핏줄을 가진 자들을 신의 사도라고 불렀다.
실제로 검후 아틀린은 제딘의 성검인 시에르티아를 사용했으니. 모두 틀린 말까진 아니었다.
거기에 인간을 초월한 검사인 내 외조부. 그리고 위대한 대성녀였던 어머니 아그네스까지. 역사에 이름남은 영웅들이 에센문트를 위해 늘 목숨을 던졌으니.
‘생각해보면 신격화되지 않는 일이 더 이상하겠군.’
그래도 나는 더 겸손하기로 했다. 그럴수록 저들이 나를 더 칭송하게 될 테니.
‘지배력도 더 올라갈 테고.’
그 점은 내게 있어서도 중요했다. 바로 마기 때문이다.
유니르가 신격을 완벽히 되찾지 못했으니. 마왕국이나 원시림이 아닌 이상 마기는 늘 부족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흡수할 수 있는 마기의 절대량이 부족하다면.
내가 만들 수 있는 그 마기를 최대한 집속시켜, 그 마기의 질을 높여야 했다.
그 점에서 하르센의 사람들은 나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강제하지 않은 순수한 복종. 그들이 내게 가진 경외감이, 내 지배력을 급속도로 올려주고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마기의 양이 적더라도. 그 마기를 지배력으로 더욱 집속시킬 수 있었다.
거듭 집속된 마기는, 드래곤 하트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마기로 정련된다.
‘정련된 마기는 거대한 폭발력을 가지게 되지.’
거대한 마기의 폭발력. 그 폭발력이 지금의 나에게는 다른 힘보다 절실히 필요했다.
라인하르트로서의 나도 중요하지만.
내가 가진 잠재력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역시 그 나머지의 힘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마왕의 힘.’
내 아버지, 냉혹의 마왕 루시피엘로부터 전해지는 바로 그 힘.
모든 악마대공과의 계약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드래곤을 넘어, 타락왜성을 처치할 때 사용했던 그 고룡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마왕으로 등극할 수 있을 테니.
‘어지간한 폭발력으로는 고룡의 힘을 만들어내기 힘들겠지.’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나 드래곤은 고룡으로 진화하게 된다.
그 거대한 드래곤 하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마기가, 그 안에서 끊임없이 폭발해야 한다.
나는 그 수천 년의 세월을 기다릴 수 없으니.
‘타락왜성을 처치했을 때처럼. 유니르와 신전의 도움도 이제는 더 받을 수 없어.’
그렇다면 당장 그 특별한 마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역시 나를 향한 거대한 지배력을 만드는 것만이 정답이다.
바로 지금의 하르센성처럼.
나는 테이블에 놓인 잔을 들어올렸다.
“오늘 연회의 주인공은 본인이 아니다! 하르센성을 지켜낸 것은 귀관들. 그리고 모든 하르센 시민들이 함께한 덕분이니! 그러니 그대들도 지금의 연회를 즐겨주었으면 좋겠군. 그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마!”
한 번 더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자 참석자들이 감격한 표정으로 잔을 들었다.
“라인하르트의 영광을 위하여!”
“율리안 폰 라인하르트의 영광을 위하여!”
그 첫잔을 시작으로 연회의 분위기가 금방 무르익었다.
‘이대로라면 하르센을 내일 떠난다는 말을 여기서 말하기도 곤란하겠군.’
조금 계획을 수정해야할 것 같았다. 소수의 측근들에게만 그 사실을 얘기하기로 결심하고는.
나는 연회장을 오가며, 하르센의 요인들과 함께 잔을 나누었다.
***
연회장의 분위기가 가득 무르익었다.
영주관의 고위 대신들도. 하르센 영지의 지방 귀족들도. 영지군의 지휘관들도.
모두가 바쁘게 서로의 잔을 채웠다. 북부 에센문트는 제국 전역에서 가장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으니.
간만의 연회로 모두가 신나 있었다.
그리고 그 연회에 함께 참가한 기사들의 얼굴도 상당히 붉어져 있었다.
“이런 연회 분위기는 상당히 독특하군요.”
루시아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색이, 그녀의 분홍머리와 비슷해져있었다. 그녀 곁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에센문트는... 딸꾹... 이렇게... 딸꾹... 화끈하답니다!”
그렇게 말하며 기사, 샬롯이 루시아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그러니 루시아 경도... 헤헤... 한잔 더 하시는 거에요!”
“저도 동의입니다!”
유리엘도 함께 잔을 들었다. 세 사람은 어느새 제법 친해져 있었다. 사람과 어울리는 게 어색한 루시아였지만. 이 둘과는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잔에든 포도주를 한 번에 마셔버린 샬롯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 오늘 영주님은 무척 바쁘시네요.”
샬롯의 말이 맞았다.
오늘 연회의 주인공은 당연히 율리안이었으니. 게다가 율리안은 그가 직접 움직이며 하르센의 고위 인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렇게 영주님께서 하나하나 직접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시니...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군요.”
유리엘이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율리안은 이곳에 모인 고위 인사들을 직접 격려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소한 전공들조차 율리안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영주님은... 그렇게 뛰어난 검사이면서도 아주 세심하시네요. 그렇게 대단한 공적을 세운 영주님이... 그 것도 라인하르트의 후계자가 저렇게 직접 자신을 칭찬해주면... 에센문트의 누가 충성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샬롯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30분 전쯤. 율리안은 이 세 사람에게 직접 다가와, 그들 모두에게 수고했다고 전했다.
‘백야 기사단의 미래가 밝군. 경들의 전공은 내가 미하엘 단장에게 직접 전하겠다.’
그 말을 들은 세 사람 모두 기쁨을 숨길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하르센의 영주로서. 그리고 라인하르트의 후계자로서, 그대들에게 직접 감사하고 싶군.’
그렇게 기사로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해주니. 지금 세 사람은 몹시 들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역시... 영주님은 대단하십니다. 그토록 큰 공을 세웠으면서도... 저렇게 겸손하시기까지 하니...”
유리엘의 말처럼.
율리안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공을 높게 말해주면서도. 정작 자신이 세운 공은 별 것 아니라는 것처럼 말했다.
“영주님이 없었으면... 바이레아군에게 당하는 건 정작 우리였을 텐데 말이죠... 딸꾹...”
잠깐 저 멀리서 얘기하고 있던 율리안을 보며 샬롯의 볼이 붉어졌다.
“정말... 기왕 처녀를 잃는다면... 저런 멋진 영주님과... 하룻밤을 꼭 보내고 싶어요... 딸꾹...”
그 말을 듣고 놀란 유리엘이 검지를 입술에 댔다.
“쉬... 쉿... 누... 누군가 듣겠습니다. 샬롯경! 술을 너무 많이 드신 게...”
유리엘의 말처럼. 샬롯은 제법 술을 많이 마셨다. 하지만 샬롯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세게 저었다.
“취하긴... 딸꾹... 백야의 기사는... 에센문트의 여자는 술에는 절대지지 않는다구요!”
그리 말하며, 샬롯이 두 팔을 벌려 유리엘과 루시아를 끌어안았다.
“샤, 샬롯경?”
“왜, 왜 이러십니까?”
그리고 샬롯이 두 사람의 귀에 동시에 속삭였다.
“두 사람. 영주님과 이미 잤죠?”
그 말에 유리엘과 루시아가 동시에 굳었다.
“그, 그걸 어떻게...”
“샬롯경... 어떻게 그 사실을...”
그리 반응하자 샬롯의 눈이 매우 커졌다.
“뭐, 뭐에요... 딸꾹... 두 사람 모두 영주님을 보는 눈치가 수상해서... 설마하고 찔러본 건데... 정말이었어... 둘 다... 남자에게 관심 없는 척하고는...!!”
샬롯이 불만스럽다는 듯 볼을 부풀렸다. 하지만 이내 시무룩해졌다.
“부러워요... 저도 영주님 곁에 있을 기회가 어떻게든 있었다면...”
유리엘과 루시아. 두 사람 모두 찔리는 게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잠깐 침묵이 감돌던 그 때. 세 사람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영주님이...”
잠깐 율리안이 지쳤는지. 그가 연회장을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한 명의 여자가 따라나서는 모습도 보였다.
“에이린님?”
세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율리안의 메이드. 에이린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샬롯의 표정이 달라졌다.
“수상해요... 딸꾹... 저 두 분. 지금 어디로 가시는 걸까요?”
그 말에 유리엘과 루시아의 볼이 붉어졌다. 그 반응을 살핀 샬롯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주군이 혹시나 있을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늘 경계하는 것이 기사의 도리. 혹시 모르니... 저희들이 영주님을 호위하러 가지 않을래요?”
두 사람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동시에 연회실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조심스레 율리안과 에이린의 뒤를 밟았다.
잠시 뒤. 한 으슥한 정원의 수풀 속에서. 율리안과 에이린이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