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성 아카데미의 망나니는 마왕 아들-574화 (574/595)

외전1. 클로에의 우울 (2)

나는 그 익숙한 얼굴에 마음을 놓았다.

클로에는 민망하긴 했는지 얼굴을 조금 붉히긴 했지만.

당당한 표정으로 내게 대답했다.

“저는 율리안님의 부인이에요! 그러니 언제든지 여기 출입할 수 있지요!”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이었다.

부인이 아닌 연인이다.

현재 나의 부인은 정식으로 혼례를 치른 릴리아와 에이린 뿐.

물론 정식 하렘의 멤버들은 모두 언젠가 부인이 될 사람들이다.

나를 위해 헌신한 그녀들을 위한 보상이 그 혼례가 될 테니.

하지만 당장은 누구와도 정식으로 혼례를 치를 여유가 없었다.

‘이미 두 혼례를 치르는 것만으로도 바빠 죽을 뻔 했지.’

제국 황제와의 결혼.

그리고 오래도록 나와 함께 해온 에이린과의 결혼이었으니 허투루 준비할 수 없었다.

두 사람과의 혼례는 상당한 규모로 치러졌으니.

둘 모두 아주 만족했을 거다.

그러니 새로운 결혼의 상대가 클로에라면 두말 할 것도 없었다.

‘일단 결혼식 문제는 둘째 치고... 후처로 들이는 것도 복잡해.’

클로에는 신분이 매우 높은 고위 귀족.

그런 그녀를 릴리아의 뒤를 이어 후처로 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이스랜드 전후 복구의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아이테른 상회.

그 상회와 혈연까지 만들게 된다는 건.

상당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까지 얽혀 있으니.

‘당장 결혼은 무리지.’

내 몸이 세 개가 아닌 이상은 지금 그 결혼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나는 좀처럼 책상 밑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 클로에에게 말했다.

“어떻게 이 밑으로 숨어 들어온 거지?”

“이 곳 율리안궁은 저와 세실리아씨가 건축을 담당한 곳이잖아요. 그러니 언제든 제가 출입할 수 있도록 수를 써두었답니다!”

클로에는 그 아래에서도 부채를 피며 당당히 말했다.

율리안궁. 그 곳은 마왕국의 새로운 수도 리엘에 지어진 황궁. 그 곳에서도 내가 기거하는 장소다.

제국과의 교류를 위해, 이전의 수도 예카레스에서 원시림에 가까운 지금의 신도시, 리엘로 천도했다.

그 새로운 수도의 완성에 클로에와 아이테른 상회의 역할이 상당하니.

지금처럼 그녀가 오만한 태도를 실컷 보여도 이상할 건 없었다.

‘흐흠. 그래도 클로에치고는 건방지긴 한 데...’

사실 당당히 나와 만나겠다고 약속을 잡아도 될 정도의 신분.

하지만 최근 내가 빈번히 그 개인적인 약속을 바쁘다고 거절했으니.

클로에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이렇게 숨어든 것 같다.

“아무튼 클로에. 나는 지금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일대일 회담을 거절한 건 미안하지만 마저 이 서류들을 확인해야...”

“그건... 너무 해요... 제가 이렇게 직접 찾아오기 까지 했는데...”

클로에의 표정이 금방 시무룩해졌다.

늘 오만하기 짝이 없는 그녀가 쉽게 짓는 표정이 아니었다.

굳이 다른 장소를 놔두고 책상 안으로 숨어 든 것도.

어느 정도 그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내가 만나주지 않으니. 그렇게 그리워진 건가.’

클로에에게 있어서는 내가 유일한 연인.

한동안 두 사람은 로맨틱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으니. 내가 고파질만 했다.

‘그러고보니 클로에와 마지막으로 밤을 보낸 게 언제였더라.’

당장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정말 오래되긴 한 것 같았다.

혼돈의 사도가 된 페드로.

그와 최후의 전투를 벌일 때.

그 나흘의 축제 때, 잠깐 연합군 본영에 마련된 연인들의 하렘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곳에 모인 연인들 모두와 황홀한 밤을 보냈으니.

그 것도 대략 1년 전의 이야기였다.

‘흐흠. 1년이나 내버려둔 건가.’

사실 나만 바쁜 게 아니라, 클로에도 몹시 바빴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요즘 들어 클로에가 자꾸 면담을 요청하는 걸보니.

그녀도 이제야 여유가 조금 생긴 모양이었다.

‘사실 더 큰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리고 그 이유가 요즘 연인들과 동침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였다.

워낙 책상에 앉아 격무에 시달리다보니.

이전만큼 성욕이 끓어오르지 않았다.

발기부전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한창 때처럼 야한 일을 상상하기만 해도 발기가 될 정도로 혈기가 왕성하진 않다는 뜻이다.

“어떻게 저를 앞두고도 마저 일을 하겠다는 말을... 정말, 발기부전이라도 온 건가요옷!!!”

아니나 다를까.

클로에가 내 정곡을 찌르고 말았다.

나는 일부러 아닌 척했다.

“발기부전에 걸린 마룡이 있다는 소문은 전혀 들어본 적 없군.”

“그런데 어떻게 저를 찾지 않으시는 거죠? 지금은 그 에이린씨도 율리안궁에 없잖아요!”

클로에의 말처럼.

늘 내 곁에 있던 에이린도 지금은 자리를 비웠다.

신생 세계수 탄생에 함께 큰 활약을 했던 나의 두 아이.

그 두 아이의 육아를 위해 에이린은 원시림의 가장 깊은 곳.

세계수의 심부로 향했다.

‘신격을 함께 나눠가진 아이들이니. 세계수가 아닌 다른 곳에서 유년을 보내면 자칫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그 때문에 에이린은 수도 리엘과 원시림을 오가며 정기적으로 육아에 힘썼다.

늘 자리를 비우는 게 아니니.

일주일 후에 에이린은 이곳 궁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클로에는 지금 아주 필사적인 것 같다.

슬쩍 그녀의 옷차림을 보았다.

평소의 오프 숄더 영애 드레스가 아닌.

뜻밖의 메이드복 차림이었다.

‘흐흠. 에이린이 없으니. 메이드 역할극이라도 해보고 싶은 건가.’

그 색다른 모습에 순간 관심이 생겼지만.

나는 책상에 가득 쌓인 서류를 다시 보고 금방 아찔해졌다.

“일이 끝나는 대로 차나 한잔 하지. 어차피 아그네스교의 포교에 대한 문제로 너와 할 얘기도 있으니. 그 때까지는 여기서 알아서 쉬고 있도록.”

사실 축객령을 내리지 않은 것만 해도.

클로에가 나의 소중한 연인이라는 방증.

그녀에게 특혜를 준 셈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좋은 향수라도 뿌렸는지 그녀로부터 근사한 향이 났다.

그러니 업무에 집중하기 좋은 천연 방향제나 다름없었다.

‘굳이 내쫓을 필요는 없겠지.’

내가 단호히 말하자 클로에가 대답했다.

“히잉... 알았어요.”

의외로 클로에가 금방 꼬리를 내렸다.

‘저런 점은 꽤 귀엽단 말이지.’

나에게는 아주 순종적인 아가씨일 뿐이지만.

아이테른 상회나 귀족들 사이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여인으로 통하는 걸 생각하면.

저런 악역 영애의 애교를 지켜볼 수 있는 나도 나름 복 받은 건지 몰랐다.

그리고 사실 한 번도 표현한 적 없지만.

클로에는 내가 첫 번째로 직접 공략한 여자였다.

‘릴리아나 에이린은... 뭐, 이미 서로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만약 그 독특한 성격만 아니라면.

더욱 그녀를 자주 내 집무실로 불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클로에의 성격 상.

그런 속마음을 대놓고 말하면, 그 기고만장함이 하늘 끝을 찌를테니.

나는 절대, 클로에를 향한 속마음을 솔직히 말할 생각은 없었다.

‘알아서 착각 잘하는 성격이니까.’

하여, 나는 금방 클로에는 잊고 다시 마왕으로서의 일에 집중했다.

***

클로에는 여전히 책상 아래에 앉아 있었다.

비록 그동안 바빠서 못 만났지만.

막상 얼굴을 보면, 당장 그녀에게 푹 빠져 자신을 덮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율리안은 미동도 없었다.

그녀는 내버려둔 채로, 그대로 서류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일에 열중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나처럼 매력 가득한 여자를 앞두고!!’

지금 그녀가 뿌리고 온 향수의 가격만 해도, 황도 노동자들의 1년 치 봉급.

게다가 고명한 연금술사인 그녀가 직접 특별한 배합으로 그 향수를 농축하기 까지 했다.

미약이 통하지 않는 율리안의 체질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

성전이 끝난 후, 마왕국에 존재하는 마룡에 대한 고서를 수소문해서 정보까지 얻었다.

‘마룡이 좋아한다는 온갖 향만을 극도로 농축시켰어.’

그러니 당장이라도 발정이 나야 했지만.

저 절륜한 마룡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그래! 분명... 이것도 플레이일거야! 나를 안달 나게 만들어서... 나를 더 적극적이게 만드려고...’

정말이라면 그 생각이 아주 귀엽게 느껴졌다.

분명 하렘의 모든 연인 중 자신을 가장 사랑할 테지만.

그 부끄러움 때문에.

릴리아와 에이린의 쓸모 때문에 그녀들을 정실로 선택한 율리안답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내가 첫 번째 연인인 게 분명해.’

의기양양한 웃음이 계속 차올라서, 슬쩍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그녀가 이 책상 아래로 숨어든 것도.

자신의 아주 절친한 친구인 세실리아에게 중요한 정보를 하나 얻었기 때문이다.

‘세실리아가 그랬지. 율리안님은 이렇게 책상 아래에 숨어들어서... 깜짝 선물을 주는 걸 아주 좋아한다고.’

세실리아의 말로는, 그 서프라이즈 이벤트가 에이린의 숨겨둔 무기라고 했으니.

역시 그 앙큼한 메이드는 자기만의 비장의 수를 꽁꽁 숨기고 있었다.

‘이번 대규모 토목 공사로 세실리아와 친해져 놓길 다행이었어.’

그 메이드에게는 절대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당연히도 아닌척 했지만.

율리안은 자신이 들어선 순간부터 이미 발정하고 있을 테니.

클로에는 부채를 접고 마침내 움직였다.

‘당연히 이미 발기하고도 남았을 거야!’

클로에의 첫경험때.

율리안은 그 치사량급의 발기부전약을 먹고도 단단히 발기했던 정력가니.

클로에는 확신한 눈빛으로 손을 뻗어 율리안의 아랫도리를 더듬었다.

“?!!!!”

하지만 클로에는 물컹거리는 그 감각에 이내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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