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결투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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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한지 6일째, 드디어 나는 답답한 병실에서 퇴원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의 지성의 결실인 아카데미 병동답게 늑골이 언제 부러졌냐는 듯 혼자 있는 병실에서 방방 뛰거나 스트레칭해도 고통이 전혀 없었다.
“역시 의사나 연금술사가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게 최고라니깐?”
꼭 이상하게 잡생각 많은 애들이 말하는 거 안 듣다가 손해를 보는 법이다.
3회차 때 그 좋은 영약이랑 포션을 만들어 줬지만, 지들 꼴리는 대로 쓰다가 약효의 절반도 못 보던 무지성 파티원을 떠올리면 아직도 화가 안 풀린다고.
당장에 조르바만 해도 그렇다. 시온과 결투 약속을 잡은 당일에 놀러왔다가 내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기초훈련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닦달하던데.
다 낫지 않은 몸으로 운동하고 치료를 병행하는 건 가장 멍청한 짓이다. 육체의 회복력을 오로지 근육에 퍼부어도 모자랄 판에 굳이 부상을 달고 훈련하다니.
“맨날 똑똑한 척 굴지만 그놈도 현실에서는 5G가 코로나 퍼트린다고 믿을 놈이란 말이야?”
하지만 그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이 가는 팔을 봐라, 당장에 팔굽혀펴기도 정자세로는 5개도 무리일 텐데 검사하고 싸운다?
이 시점의 아르틴은 마법사라고 부르기도 창피한 수준이다. 유일한 직업인 마법사가 레벨 1인건 레벨을 올리기 힘들다 수준이 아니라 재능이 없는 거라고 봐도 좋다.
이 세계에서 강함을 논하는 건 재능, 레벨, 특성 이 3개를 기반으로 한다. 아르틴이 가진 것? 저 3개 중 단 하나도 없다.
당장 상태창만 봐도 특성에 적힌 건 전부 회귀자로서 내가 가진 특성 뿐, 범인이라는 잠재능력은 말이 범인이지 카스트 최하위. 레벨도 사실상 그 분야에 이제 막 발을 들였다가 1레벨이다. 0레벨은 없는 것보다 낫지만 없다고 보는 게 편하다.
“몇 번을 봐도 진짜 심각하다.”
중요한 건, 이 지랄난 상태의 원인 중 4할 이상은 시온이 원흉이다.
어릴 적부터 뭘 하려고 해도 철저하게 박살 내거나 방해해온 시온 탓에 아르틴은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게 자라야 했으니깐. 물론 그 뒷배경에는 렉스턴이 버티고 있는 것도 한몫 한다. 이 새끼가 5할이다.
하지만 성장 가능성 0는 아니다. 구르면 확실하게 늘어난다. 내가 이 녀석 몸으로 이것저것 다해봤으니 할 수 있는 말이다.
이 세계는 불합리하다. 강함을 이루는 삼대 요소의 존재 탓에 범인과 천재의 시간은 동등한 가치를 얻지 못 한다. 호칭이란 시스템도 오로지 시스템을 인지하는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특전과 비슷하다.
“그래도, 범인의 노력의 가치가 제로인건 아니지.”
반대로 이 세계는 게임처럼 보상이 명확하다. 시간을 들이면 들이는 만큼 눈에 보이는 보상이 나타난다.
거기에 더해 나는 한 가지,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는 강점이 있다.
경험과 지식, 지난 회차 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박탈당해도, 시스템은 내 기억만은 온존히 보존시켜준다.
똑똑똑.
“아르틴 루드비히 학생, 나와서 퇴원 수속 마무리해주세요.”
시계를 보니 벌써 퇴원 수속이 5분 남은 걸 이제 봤다.
저 시간 지나면 병원비를 더 내야 하는데, 1인실은 헉 소리가 나오게 비싼 가격이다. 나도 조르바가 내준 덕에 여기서 호강하는 셈이다.
오늘 할 것도 많으니 서두르기 위해 황급히 짐가방을 들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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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절차를 마치고 나는 기숙사로 직행했다.
원래라면 입학 첫날 기숙사를 배정받아야 하지만, 첫날부터 병원 신세진 내게는 해당 없는 이야기.
물론 어디 기숙사에 배정받았는지는 모를 수가 없다. 1학년 브론즈 남자 기숙사.
각 나라별로 영향력 있는 사람은 다 모이는 아카데미는 작위에 따른 계급제 대신 실력에 따른 계급제를 채택했고, 브론즈 기숙사는 각 학년 최하위들이 모인 곳 이다.
참고로 실버가 중간계급, 골드가 상위권 학생을 위한 곳 이다. 아이언이나 플래티넘은 없다.
참고로 샤오메이는 골드 기숙사, 조르바는 실버 기숙사다.
“아이언이 있었으면 아딱이라고 놀림 받았을 테니 브딱이로 만족할까.“
브론즈 기숙사는 2인 1실을 기본으로 한다. 내 룸메이트는 포톤이라는 제국 출신 녀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름 말고 기억나는 건 늘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던 뚱뚱한 넉살 좋은 녀석 정도라는 것.
나는 열쇠를 받기 위해 사감실로 가서 창문을 두들겼다.
안에서 실내 창을 열고 꼬장꼬장한 아저씨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라, 지금 학생들 수업 받을 시간 아닌가? 아파서 조퇴했어?”
이름은 기억 안나는데 일은 대충대충 하면서도 사람은 좋은 1학년 기숙사 사관인 아저씨다.
“아니요, 제가 오늘 퇴원해서 열쇠를 받으러 왔는데요.”
“그래? 퇴원했다고? 몸이 어디 많이 아픈가 봐? 젊을 때도 몸조심 잘해야 하는 거야! 이름이 뭐야 학생?”
내 말을 듣고 서류첩을 꺼내 뒤적이면서도 내 몸을 넉살좋게 걱정해준다. 누군가는 참견이라고 하지만 난 이 참견이 늘 기분 좋았다.
“아르틴 루드비히입니다. 왕국 출신에서 찾아보시면 되요.”
“아르틴... 아르틴이라... 아! 그 입학 첫날부터 된통 싸운 신입생이 학생이었구먼!”
소문이 벌써 이 적당히 시간 떼우는 사감 아저씨한테까지 났다고?
호칭을 얻은 게 시스템 보정인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정말로 아카데미 전체에 퍼졌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거 괜찮아! 어릴 때 치고 받고 하는 거지. 커서 그러면 감옥 가 감옥!”
그래도 말하는 걸 들으니 제대로 들은 건 아닌 거 같다. 하긴 내부에서도 합의해서 서로 정학 처분 받고 말았는데 공문 돌리면서 알리진 않았을 거다.
“자 여기, 308호 열쇠야. 3층 올라가서 복도 끝에 쭉 가면 오른쪽 방이 학생 방이야.”
그렇게 말하며 308호 열쇠를 내밀어 준다. 매 회차 마다 이 방에서 지냈으니 위치는 익숙하다.
“학생은 좋겠어, 다들 2인 1실 쓰는데 혼자서 방 하나를 다 쓰고?”
열쇠를 받아 가려는데 등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내 룸메이트는 분명 그 뚱뚱한 친구 일 텐데?
“독방이라니요?”
“거 학생이 사람 팼다고 같이 쓰는 친구가 한 방 쓰기 무섭데서, 그 친구는 방 옮겼어. 올해는 브론즈 기숙사 생도가 홀수거든!”
그 넉살 좋은 친구가 나를 걸렀다고?
입학 첫날부터 깽판 좀 부렸더니 시작부터 변화가 많다.
하지만 혼자서 방 쓰는 건 꽤 편한 점이 많으니, 바로 잡을 필요성도 안 느껴진다.
사감에게 고개를 꾸벅 인사하고 3층에 올라갔다.
이제 막 점심시간이 끝난 낮 시간이라서 그런지, 기숙사 안은 엄청 조용했다.
308호 앞으로 가서 문을 열어 보자 그제야 아카데미에 입학했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책상 2개와 2층 침대 하나랑 옷장 하나. 작은 욕실 딸린 화장실에 남향으로 뚫린 창문.
조금 감회에 젖을 뻔했지만,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기엔 시간이 아깝다.
오늘 샤오메이의 수업 일정이 끝난 이후부터, 샤오메이와 무술가 특훈을 하기로 약속을 잡아 놨다. 그 탓에 샤오메이는 훈련 일정 짠다고 면회도 잘 안 왔었지.
“우선 세니아 선생님한테 부탁해놓은 걸 받으러 갈까.”
지금 시간이면 아카데미 본관에 있을 거고 본관까지는 걸어서 가면 30분 정도. 생도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운동 겸 가볍게 뛰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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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에 도착한 나는 곧장 교무실로 직행했다.
세니아 선생님은 연금술 강의 외엔 자주 자리를 비우는 B반의 담임을 대신해 두 사람 몫의 일을 하느라 늘 교무실에 상주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것도 아니니, 제대로 준비 해놨겠지.”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엘프 여선생의 약점을 잡았는데 그 커다란 지방 덩어리 좀 주무르게 해달라고 부탁 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방해꾼이 없을 때 야한 짓을 속행해야 한다는 위기감도 조금 있었고.
하지만 주인공을 때려눕힐 것을 목표로 잡은 이상, 세니아 선생님은 죽기 전까진 내 연금술 아이템 자판기되어줘야 한다. 회복력 상승 포션 하나의 존재만 해도 기초 훈련에 엄청난 도움된다.
하물며 조르바에게 부탁해서 영약 재료 좀 몇 개 구해서 세니아 선생님에게 영약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초반에 부족한 육체 능력을 보조하는 것 이상으로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다.
물론 3회차에 연금술사기도 했던 내가 직접 만들어도 되겠지만, 내 시간은 소중하고 학생이 만질 수 있는 시설과 교수가 만질 수 있는 시설은 급이 다른 법이다.
시간이 한정적일 때는 효율적으로 가는 게 최고다.
“그래도, 절대 포기 못하지”
계단을 오르자 교무실 앞에서 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세니아 선생이 보인다.
저 펑퍼짐한 로브 안에 있는 과실은 영약 몇 개 따위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그저 참는 거지.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음욕을 억누르기 위해 쉼호흡을 쉬고는 세니아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곁에서 대화하는 학생은 가볍게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면, 고양이 수염이 포션에 큰 효과는 없는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니야, 여기 보면 달맞이꽃이 들어간 포션들은...”
세니아 선생님의 말에 따라 교과서를 들여다보는 저 익숙한 핑크머리에 마녀 모자는 이 소설을 본 사람이면 절대 잊을 수 없다.
바이올렛 퍼플크로우.
그녀는 특별하다. 동시에 올해의 입학생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기도 하다.
인간중 유일하게 공식적인 악마와의 계약을 인정받은 마녀.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인물이 바로 지옥의 귀족과 계약을 맺었다는 대마녀 발부르가.
바이올렛은 그 대마녀의 유일한 손녀이며, 훗날 지옥의 군주 중 하나와 계약하는데 성공하는 금수저 중의 금수저. 동시에 이 소설의 주인공 카이엔 실버소드의 메인 히로인이다.
허리까지 오는 핑크색 생머리 위에는 트레이드 마크인 마녀모자가 늘 존재하며, 날마다 디자인이 바뀌는 고딕 드레스는 아름다운 몸 윤곽선을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남들 다 생도복 입을 때 혼자서 자기주장이 무척 강한 복장임에도, 거기에 공식적으로 뭐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인공의 히로인이라서 복장 개성이 강해야 하니깐? 아니면 대마녀의 손녀라서?
내가 보기에는 그냥 저 복장이 바이올렛에게 너무 어울려서다. 뭐 물론 마녀에게 원한을 사면 저주를 받는다는 풍조 탓일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내가 아무래도 이번 회차에서 운이 무척이나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을 찍어 누른다는 내 계획에 있어서도, 나라는 개인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게 그녀기 때문이다. 우연이지만 그녀를 일찍 만나는 건 내게 큰 의미를 지닌다.
“세니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졌다.
내가 두 사람에게 끼어들기 위해 말을 걸자, 바이올렛이 나를 경계하기 시작한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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