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결투 준비 #02
* * *
바이올렛은 이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는 기시감을 느껴야했기 때문이다.
“이상하네, 왜 자꾸 머리가 지끈거리지..”
바이올렛은 자꾸 시끄러운 교실을 벗어나, 복도를 걸으며 조금 아침의 행적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만 해도 멀쩡했다. 분명 상쾌하게 일어나서는 차가운 단호박 스프를 맛있게 먹고 나올 때만 해도 이런 기시감도 두통도 없었다.
골드 기숙사 뒤편의 화단에 가서 약초들을 돌보고 학교로 돌아갈 때도 문제가 없었다.
“...그래, 같은 반 애들이 떠들던걸 들은 직후였어.”
얼굴 정도는 아는 반 친구들이 지나가면서 떠든 이야기가, 묘하게 자꾸 거슬렸다.
“너네 그거 들었어? 저번에 입학식 때 사람 두들겨 팬 애가 오늘 퇴원한대!”
“아~알틴인가 아르틴인가 하던 애? 걔 완전 미친놈이라던데? 세니아 선생님이 그만두라니깐 덤볐다가 제압 당했다잖아!”
아카데미에는 온갖 귀족가 중요 인사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그런 만큼 다들 행동가짐에 조심하는 편이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는 이제 막 사춘기가 끝난 애들한테는 막중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아카데미 안에서 무리에서 툭 튀어나오는 인물들은 젊은 호사가들에 의해 입방아에 오르기 마련이다. 바이올렛 자신만 해도 거리만 걸어도 주위의 시선과 쑥덕거리는 말들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니깐.
때문에 바이올렛은 저런 시시콜콜한 소문 따위를 나누는 말이 정말 거슬렸다. 하지만 그걸 바로 잡아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도 없었다. 괜히 나섰다가 자신의 소문이 추가로 도는건 더더욱 싫었기 때문이다.
“걔 2주 정학하면 복귀한다면서? B반애들은 그런 새끼랑 지내야 하는 게 불쌍하다 불쌍해.”
“반에 와서 난동 피우는 거 아냐? 가문도 남작에다가 재능도 없다는데 왜 그렇게 나댄데?”
“그러니깐,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왕국 출신 친구한테 물어보니깐 펠카스랑 친한 거 말고는 볼 것도 없다던데.”
그런데 지금은 당장 앞에서 재잘거리는 저 3명의 말이 너무도 거슬렸었다. 멈추지 않으면 장이 비틀리는 감각이 느껴질 정도로 분노와 짜증이 솟구쳤다.
문제는 멈추고 싶어도 명분이 없었다. 아르틴 루드비히가 누구라고? 자신은 살면서 그 녀석과 대화는커녕 얼굴을 맞대본 적도 없었다.
그 키 작은 붉은 머리 꼬맹이가 뭘 겪든 자신이 끼어들 이유가 뭐가 있담.
“...응?”
이상함을 느낀 바이올렛은 복도를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되씹었다. 아르틴 루드비히? 키 작은 붉은 머리?
“내가 그 녀석 성이랑 생김새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이상하다. 이름이야 소문이 아카데미 전체에 퍼진 만큼 지나가면서 들을 수 있다지만, 그런 녀석의 가문명을 내가 왜 기억한다는 걸까? 바이올렛은 두통을 넘어 혼란감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더더욱 이상한 건, 한 번도 본적도 없음에도, 아르틴 루드비히라는 남자애를 떠올리면 그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그려진다. 한번도 체험하지 못한 기억속의 그 아이는 자신을 보며 믿음직한 미소로 웃어주고 있다.
“으으...전혀 모르겠네, 입학식에도 참여 안했으니깐 마주칠 일도 없을텐데?”
더 이상은 안 되겠어, 라고 바이올렛은 중얼거리며 양호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다음 수업은 교양 수업인 만큼 한번쯤 빠져도 우수한 그녀가 못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머, 바이올렛! 곧 수업인데 어디 가는거야?”
“아, 세니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런 그녀를 불러선 것은 세니아 리브스 선생님이었다. 짜증나서 고개를 획 돌렸던 바이올렛은 자신을 부른 게 세니아인 것을 알자 눈웃음을 지으며 상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친절한 세니아 선생님은 자신이 주력으로 삼는 연금술 과목의 선생님이자 반의 부담임 선생님이다. 대마녀인 할머니에 꿇리지 않는 성적을 내려면 선생님들과 친해지는 것도 엘리트의 요령이었다.
“제가 머리가 좀 아파서 이번 시간은 조퇴하고 양호실에서 쉬려고요.”
“어머, 괜찮니? 열 있는거 아니야?”
“괜찮아요, 열은 없고 그냥 두통이 있는 거 같아요.”
바이올렛의 말에 세니아는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아이들이면 몰라도 바이올렛은 자신이 맡은 B반에서도 돋보이는 학구열을 지닌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수업을 빼먹는 다는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아, 저번에 제출한 숙제 말인데, 굉장히 잘 썼는데 아쉬운 점이 몇 개 보이더라.”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려던 바이올렛은 그 말에 황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연금술은 마법사만큼이나 마녀들에게도 중요한 분야이다. 예습도 분명 철저히 했을텐데?
“에? 제가 틀리거나 실수한 부분이 있나요 선생님?”
“다른게 아니라, 이 부분을 보면 고양이 수염은 중화제 역할을 한다고 적어놨잖아? 그런데...”
바이올렛이 틀린 곳을 확인하자 불행 중 다행히도 최근에 연구로 개정된 부분이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 가정교사였던 할머니의 제자도 모를만한 부분이니, 스스로도 납득 가능한 영역이었다.
“그러면, 고양이 수염이 포션에 큰 효과는 없는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니야, 여기 보면 달맞이꽃이 들어간 포션들은...”
그래도, 다음에 실수하지 않으려면 집중하고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야한다. 두통의 불쾌함을 이겨내고 교과서를 들여다보던 바이올렛의 귓가에, 처음 들었음에도 왠지 모르게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바이올렛의 머리에 홍수처럼 기억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세니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붉은 머리의 한 소년이 보인다. 그런데 다르다.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나는 이 사람을 알고 있는데, 내가 아는, 익숙해 하는 그 사람과 이 소년은 다른 느낌이다.
그런데 왜 일까, 이 소년이 왜 나도 모르는 기억 속의 믿음직한 붉은 머리랑 겹쳐 보이는 걸까. 바이올렛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
이상하다. 바이올렛이 나를 보는 시선이 무척이나 이상하다.
보통 저런 시선은 사람이 상대방을 경계할 때 보이는 시선이다. 그런데 나는 이번 회차에 바이올렛을 처음 만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시선을 받을 짓을 한 적이 없는데?
아니면 설마,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나? 하지만 단순히 소문만으로 나를 저렇게 의심스럽게 쳐다볼 리가 없다. 바이올렛은 소문만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걸 매우 싫어하니깐. 그럼 뭐지?
“어머, 아르...”
“아르틴 루드비히. 맞아?”
세니아 선생님이 나한테 인사하려는데, 바이올렛이 그 말을 단칼에 자르고 내 이름을 물어본다.
회귀 하면서 이런 일은 하나도 없었던 터라, 존나 당황스럽다.
“어..맞는데, 너는 바이올렛이지? 바이올렛 퍼플크로우.”
내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고, 바이올렛은 입을 꾹 다문채 나를 빤히 바라본다.
부담스러워 세니아 선생님에게 도와달라고 시선을 돌리자, 세니아 선생님도 당황한건지 나와 바이올렛의 눈치를 보다가 나와 덜컥 눈이 마주친다.
“같은 B반이라고 선생님에게...아, 병문안 왔을때 들었어! 잘 부탁해. 바이올렛?”
전혀 예상 못한 반응에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최대한 살갑게 굴며 바이올렛에게 악수를 권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르바와 샤오메이, 그리고 바이올렛만큼은 적으로 돌리거나 척지고 싶지 않으니깐. 첫 회차를 제외한 모든 회차마다, 이 세 사람만큼은 내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지지하고 도와줬던 사람들이다.
현실에서는 고아원 출신이라고 제대로 친구도 못 사귀던 내게, 이 세 사람은 지난 회귀동안 버틸 수 있었던 커다란 원동력이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꼭 받은 우정에 보답할거라고 생각했는데...
...
1분 동안 말도 없이 내민 손과 얼굴을 번갈아 가며 보던 바이올렛은 선생님에게 양호실에게 가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내가...내가 뭔갈 잘못했나?’
세 사람 중에서 가장 사람이 좋은 게 누구냐고 한다면 바이올렛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르바는 호탕한데 사고를 자주치고, 샤오메이는 나랑 조르바 말고는 신경을 안 쓰는 타입이니깐.
그렇지만 바이올렛은 달랐다. 자기 사람한테는 정말 헌신적으로 도와주고, 다른 친한 애들한테도 부담이 안가는 선에서는 거절하는 일이 없었다.
대마녀인 할머니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중압감을 짊어진 것을 제외하고도, 그녀는 사람을 돕고 싶어하는 착한 마녀였는데...
‘시발 진짜 내가 뭘한거지?’
전혀 모르겠다. 와이즈를 두들겨 팬 게 그렇게 문제가 되나? 소문이 상상이상으로 심하게 전달 되서 소문을 싫어하는 바이올렛조차 신경 쓸 정도인가?
생각해보니 가능성은 있다. 칭호까지 얻을 정도로 소문이 퍼졌다면 그건 등장인물 대부분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소리니깐.
즉, 나는 저 착한 바이올렛에게 까지 기피 될 정도로 쓰레기로 세간에 알려진건가?
“선생님...”
“으응?! 왜, 왜 그래 아르틴?”
“저 죽어버리고 싶어요.”
“?!?”
역시 이번 회차는 망했다, 존나게 리스타트가 마렵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