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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1화 (11/266)

〈 11화 〉 폭풍전야 #03

* * *

“제1 대련실에서 싸우라고 했다고?”

순간 먹던 만두가 체할 뻔 했다. 샤오메이가 준비한 체리에이드를 들이켜 겨우 넘길 수 있었다.

“그래, 학생회에서 나보고 전하라고 하더라고.”

“왜 굳이 너한테... 아니, 뭐 그 양반 생각을 어떻게 알겠어.”

조르바에게 이유를 묻는 것도 우습다. 학생회장은 원래 그런 역할이니깐.

원작에서도 흥미를 끈다는 이유만으로 주인공을 포섭하려고 별의 별 짓을 다하던 사람이 학생회장이다. 이번엔 내가 그 시선을 받고 있는 거고.

“학생회장에 대해 잘 안다는 것처럼 들린다만, 아르틴?”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 소문 좀 주워 들은 거지.”

“... 아하, 소문.”

..? 이 녀석 반응이 왜 이래?

조르바를 의아하게 바라보자, 나를 향해 평상시처럼 허울 좋은 웃음을 짓는다. 애도 사춘기인가?

“뭐, 제1 대련실... 못할 건 없기는 한데, 이거까지 거부하면 진짜로 찍힐 것 같고.”

본래라면 다음 주나 2주 후에 주인공이 선민의식 엄청난 엑스트라 귀족 한 놈하고 시비가 붙어서 일이 커져서 제1 대련실에서 결투하는 내용이 정사라고 볼 수 있다.

주목을 일찍 받는다. 라는 건 조금 부담스럽긴 해도, 그걸로 얻을 기연도 꽤 있을 거고.

“샤오메이, 다 먹었으니깐 다시 대련 준비할까?”

“오우! 준비 됐슴까 형님?”

마지막 만두를 입에 털어 넣는 것으로 샤오메이가 가져온 만두 10판을 전부 클리어했다.

그 광경에 조르바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본다.

“그걸 전부 먹고 바로 훈련이냐? 왕국의 전사들도 그렇게는 안할 거다.”

나도 이런 거 하기 싫어 인마, 이것도 다 수련이니깐 하는 거지.

게다가 저 말은 틀린 말이다. 먹고 훈련하고 영약이랑 마력으로 보충하는 이 무식한 훈련법을 가르쳐 준 게 바로 전 회차의 스승님이었으니깐.

‘이번 일 끝나면 한번 얼굴이나 만나러 가볼까?’

아카데미는 지루하다고 툴툴 거리는 사람이니 학생회에서 늘 상주하고 있을 테니 만나긴 쉬울 거다.

“그럼, 오늘은 어느 정도로 봐드리면 됨까?”

그릇을 치우며 대련을 준비하던 샤오메이가 고개를 들고 물어왔다.

저 똘망똘망한 눈이 참 예쁜데, 훈련만 들어가면 매서워지는 건 좀 무섭다.

“밥 먹고 난 후니깐 가볍게 하자, 무방비로 몸에 닿으면 한판으로 백번 따내기.”

“...몸에 닿으면 한판? 그런게 훈련이 되나?”

조르바 녀석의 질문에 나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잘 생각해봐 조르바, 내가 이번에 상대하는 사람이 누구지?”

“그야, 시온 이드리스지, 제국 기사 출신 검술가.”

거기서 더 말할 것도 없이, 조르바는 내 질문에 대답하다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온 이드리스의 주 무기는 레이피어, 그것도 제국식 검술답게 마력에 의한 출력 보조를 생각하면 한번 맞는 순간 꼬치구이 준비는 시간문제.

애초에 마력이 아니어도, 이전에 데스 나이트인 시온을 생각해본다면 인간인 시온의 스펙은 그보다 못 미치더라도 이쪽에서 견딜 수준은 아니다.

그런 점을 설명하자, 조르바가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결국, 애초에 아르틴 너는 상대가 안 되는 것 아니냐? 상대방은 기술, 스펙, 경험, 모든 면에서 널 압도하는 강자다.”

“뭐, 평범하게 보면 그게 맞긴 한데... 우리한테는 더 강한 무술가가 있잖아?”

그렇게 말하며 스윽스윽 샤오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손에 머리를 부비적거린다. 귀여운 녀석.

“그러니깐, 샤오메이의 속도에 익숙해지는 거야.”

“...속도에 익숙해진다고? 무슨 의미인지 알기 힘든데?”

“말 그대로인데? 동체 시력이 따라갈 수 없으니깐, 공격이 오는 감각과 대응하는 방법을 몸에 때려 박는 거지. 나니깐 가능한 방법이라고.”

...뭐, 당연히 조르바의 표정은 무슨 헛소리냐고 얼굴로 말하고 있다.

이런 건 천재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나 시도할 방법이라고 봐도 좋다. 범인 스타트는 꿈도 못 꾸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부족한 재능을 경험으로 때려 박는거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길지만 결국 보여주면 그만이다. 대화를 그만두고 샤오메이와 가볍게 떨어진 나는 자세를 잡았다.

“더 말하면 입 아프니깐, 눈으로 직접 보고 배우라고 조르바! 시작하자 샤오메이!”

**

눈 앞에 펼쳐지는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조르바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의혹감이 더욱 커져만 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니깐 가능한 방법이라고?’

그 말에 조르바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보여주던, 의기소침한 아르틴에게는 있을 수 없는 언사는 둘째 치더라도.

‘이런 게 가능 할 리가 없다. 내가 아는 아르틴이라면 더더욱.’

대련에 앞서 가볍게 한다고 했지만, 샤오메이가 진심으로 싸우는 것을 몇 번 봐온 조르바는 지금의 샤오메이가 내지르는 연격들이 가벼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샤오메이의 주먹이 아르틴의 몸에 휘둘러지는 순간의 파공음만으로 조르바는 귀가 아파왔다.

자신은 고사하고 골드 클래스의 신입생 중 몇 명이나 저 주먹을 받아칠 수 있을지. 공화 연방이 내린 최고의 무재라는 칭찬은 헛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린 샤오메이가 강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지금 조르바 펠카스의 눈을 의심케 하는 건 이제 무술가를 시작한 지 2주도 채 안 된 아르틴의 대응이다.

파아아앙!!!

몇 번이고 샤오메이의 주먹을 마력을 감싼 손바닥으로 밀치듯이 흘려보낸다. 흐느적거리는 듯한 움직임에 머뭇거림이나 불필요한 동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결이 흐르듯이 휘어지는 아르틴의 팔은 쾌(?)와 강()을 오로지 유(?)로 받아치고 있다. 그런 아르틴의 방어를 무너트리기 위해 샤오메이가 깊숙이 진각을 내뻗으면, 움직임에 맞춰 가볍게 무릎을 건드리는 것으로 도리어 쾌속의 연타를 방해시킨다.

심지어, 아르틴의 시선은 바쁘게 샤오메이의 움직임을 쫓지 않는다. 커다란 자세를 토대로 작은 움직임을 예측하는 듯, 시선은 샤오메이의 눈을 향한 채로 사각에서 오는 기습조차 힘이 실리기 전에 내뻗는 동작에서 차단한다.

차라리 조르바가 상황을 몰랐다면 마치 달인의 경지에 달한 노사가 어린 천재와 대련을 해준다고 착각할 것만 같다. 아니라면 완벽하게 합을 맞춘 무술 도장의 보여주기용 대련이라고 하는 게 좀 더 올바른 비유일지도 모른다.

‘샤오메이, 너는 어떻게 나보고 이걸 보고도 믿으라고 하는 거냐?’

상인으로써 천재라고 불리우는 비범한 두뇌를 지닌 조르바기에, 마치 어린애의 공상을 구현화한 것 같은 이 광경을 받아들일 수 없다.

‘샤오메이, 너는 어떻게 이런 아르틴을 보고도 웃고 있는 거야?’

자신의 공세를 아르틴은 수세라고는 해도 분명히 대등하게 받아치고 있다. 그런 아르틴을 보며 천재 특유의 호기심이나 호승심을 보일 법도 한데.

샤오메이는 그저 이 모든 상황이 즐거운 듯, 미소를 지으며 아르틴이 목표로 해야 할 경지로 묵묵히 인도해주는 길잡이를 자처하고 있다.

조르바의 속에서, 어쩌면 악마나 마족과 거래한 것은 아르틴이 아니라 샤오메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카데미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늘 함께한 샤오메이기에 그런 의심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파앙!

그 순간, 아르틴의 복부에 정통으로 샤오메이의 주먹이 적중했다. 그 찰나 아르틴을 제외한 모두가 힘조절을 잘못했다고 생각했으나.

“어윽... 30번째지? 어떻게 30번 맞을 동안 2판 밖에 못 따낸 거지?”

그 찰나에 힘을 흘려낸 아르틴은 모두의 기대를 무시하고 멀쩡하게 다시 일어났다.

“오..그래도 많이 느셨슴다! 첫날에는 한판도 못 따냈는데, 이제는 저도 무지성으로 내지르면 잘 안 먹히는 게 느껴짐다!”

문뜩, 저 대화를 듣던 조르바는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걱정이나 의혹이 과연 자신의 생각만큼 가치가 있는 걸까?

‘힐링이나 하러 가야겠다.’

두뇌에 과부하가 오는 것을 느낀 조르바는, 자신이 아카데미에서 사귄 수많은 여인중 하나를 만나서 마음을 달래기로 마음먹고, 33번째 대련을 시작한 두 사람을 뒤로하고 훈련실을 나왔다.

**

“야, 사고 친 신입생이 이번에는 경기장에서 백작가 아들이랑 결투한다는데?”

“뭐? 걔는 얌전히 있으라고 정학 먹어놓고 또 사고 치냐?”

반 아이들의 말에, 다음 수업을 위해 예습하던 바이올렛은 귀를 세우고 두 사람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

“학생회에 아는 사람이 말했는데, 심지어 학생회에서 결투 그만 두라고 말했는데 거절 했데! 그래서 본보기로 삼으려고 아예 제1 대련실을 제공했다고 하던데?”

“신입생 걔는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간이 한 3개쯤 되는 거 같은데.”

“게다가, 상대가 제국의 기사 출신인 호위를 내보낼거래, 걔 경기장에서 죽는거 아니야?”

뿌득!

대화를 엿듣고 있던 바이올렛은 움켜쥔 주먹에 펜이 부러진걸 알고는 문뜩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소문 같은 거에 휘둘리는 사람을 가장 혐오했던 자신이 지금은 쥐새끼처럼 남의 말이나 엿듣고 있다니.

‘그 녀석이 뭐라고 자꾸 떠오르는 거야? 왜 자꾸 신경 쓰이는 건지 미치겠네 정말로!’

쿵! 하고 이마를 책상에 박는 소리에 방금 전까지 바이올렛이 엿들었던 두 사람이 놀라서 뒤돌아보자, 이마가 새빨개진 바이올렛이 뭘 보냐는 시선으로 노려본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두 사람에, 바이올렛은 괜히 심술을 부렸다는 생각에 또 다시 한숨만 푹푹 내쉰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람.

“공부에만 집중해도 모자란 데, 신경꺼야지...”

대마녀 발부르가의 손녀라는 이름을 달고 입학한 이상, 필기시험 1위를 해야지 간신히 합격선이라고 주변에서 말할 것 이다. 아무리 신동이라 불렸던 바이올렛이라도 아카데미에서 1위를 확신하려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에 집중해야한다.

“...재미없어.”

교과서에 얼굴을 들이밀어도,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현실에 바이올렛은 상실감마저 느껴질 따름이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만 해도 즐거운 학창 생활을 꿈꿨지만, 당장 1학기가 시작한지 3주가 다되도록 변변찮은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마음은 공부에 두지 못하는 바이올렛은 결국 일주일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아르틴 루드비히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되고 마는 것 이다.

“그런데, 참 이상해.”

기사랑 싸운다는 소리를 듣고, 무슨 멍청한 짓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던 바이올렛이지만 이상하게도 아르틴 루드비히가 질거라는 상상이 되질 않았다.

뭔가, 자신 스스로가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지듯이,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듯이, 아르틴이라는 소년이 승리하는 것이 당연할거라고 확신하는 기분.

‘질게 뻔하잖아, 왜 이긴다고 생각이 드는 거야?‘

문뜩,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교과서를 들여다보지만, 역시 공부가 되지 않음에 절망하며 바이올렛은 결국 다음 수업 시간까지도 집중하지 못하고 망쳐야만 했다.

만약 바이올렛이 정신을 제대로 차린 상태였다면, 저 이야기를 엿듣던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바이올렛의 옆자리에서는 갈색머리 미소녀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면서 아르틴이라는 소년의 이름에 집중하는 검은머리의 미남자가 있었다.

“정말~카이엔, 내 말 듣고 있는거 맞아?”

“응? 으응, 듣고 있지.”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챈 소녀의 불평을 뒤로 한 채로, 카이엔 실버소드는 아르틴 루드비히라는 소년을 떠올렸다. 여느 소년을 마주친 히로인들과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으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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