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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7화 (17/266)

〈 17화 〉 운동 끝나고.avi

* * *

“겨,결투 종료! 스,스,승자는 아르틴 루드비히!”

존나 기분이 째졌다.

물론 내가 앞으로 상대해야 할 진짜배기 괴물들에 비하면 별거 아닌 상대긴 하다.

그래도 단 3주 만에 이뤄낸 쾌거에 엔도르핀이 솟구치는 감각이 밀려온다.

“푸하하! 하하하하! 켈록! 켈로옥! 크억, 죽겠네. 콜록!”

기분 좋아서 웃다 보니, 폐부터 시작해서 전신이 찢어지는 감각이 밀려온다.

이 고통은 마나를 고갈되도록 사용한 부작용, 근육통의 뒤지게 아픈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괘, 괜찮니 아르틴 군...?”

“괜찮아요, 괘, 콜록, 콜록 콜록! 어우씨, 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이 정도는 참을 만하다. 맨정신에 산채로 불타 죽을 때는 빨리 죽지도 못해서 스스로 혀까지 깨물었으니깐.

꿈틀거리는 시온에게서 시선을 떼곤 주변을 둘러보자, 정말 소수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학생들이 결과에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 마음은 이해한다. 피를 뒤집어썼을 때는 정말 미친놈처럼 보였겠지.

‘정산... 은 나중에 하자.’

싸움 중간부터 끝날 때까지 눈앞에 알림창이 아른거렸지만 전부 꺼버렸다.

상태창이 주는 보상보다, 가장 큰 보상이 지금 눈앞에 다가오고 있으니깐.

뚜벅, 뚜벅.

무대 아래에서 경악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렉스턴이 무대 위로 걸어 올라온다.

이걸로 와이즈 가문은 체면이 무너진 데다, 결투의 대가에 따라 나의 요구를 하나 이행해야 한다.

‘그런데 표정이 왜 저래?’

나를 무표정으로 바라보던 녀석의 시선이 시온에게로 돌아가는 순간, 스쳐 지나가는 웃음기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화를 내든가 얼굴이 파랗게 질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표정에다가 웃어?

웃어??

“져버렸군, 저 쓸모도 없는 망할 여자가.”

“...?”

뭐라는 거야 이 자식은?

“감히 내 허락도 없이 결투를 벌여놓고, 이런 머저리한테 지기까지 하다니, 고개를 들 수가 없어.”

말과는 별개로, 렉스턴은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도 동의해서 결투를 해놓고 지금 뭐라는 거냐, 설마 발뺌할 셈이냐?”

“아아, 그런 건 아니라고? 나도 왕국의 귀족이자 아카데미 생도로서 자긍심이 있다. 패배한 대가는 치러야지.”

그렇게 말한 녀석은, 시온의 상태를 살피던 헬릭 교수의 옆으로 걸어갔다.

퍼억─!

그리고는, 시온의 가슴께를 힘껏 걷어차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 벌레 같은 년이 문제야! 가르치는 실력도 별로인 게, 호위로써도 최악에다가 이젠 명예에 먹칠을 해!”

“레,레,렉스턴 군,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옆에서 상태를 살피던 헬릭 교수는 그런 행동에 깜짝 놀라 렉스턴을 만류하려고 했다.

하지만 녀석은 교수의 제지를 거부하곤 시온이 간신히 정신을 차릴 때까지 계속해서 발길질을 이어나갔다.

“너 같은 미친년을 왜 데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성격이 나빠도 강하니깐 내버려 둔 거라고!”

“...쿨럭, 도, 도련님...?”

“이 쓰레기 같은 년, 너는 이제 우리 가문에서 해고야! 약해빠져서 쓸모도 없는 멍청한 년!!”

의식이 돌아왔음에도,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악몽이라고 받아들이는 건지 시온은 불안감과 패닉에 빠진 눈으로 렉스턴을 올려다본다.

관중들조차 그 광경에 술렁거리지만, 렉스턴은 다른 무엇도 신경 쓰지 않으며 무자비하게 폭언을 이어나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어째서인지 머리가 핑 도는 감정을 느꼈다.

“기껏 고급 아티팩트까지 하사했는데, 내 믿음을 이렇게 배신해!

‘뭐라는 거야, 니가 그 저주 팬던트만 주지 않았어도 더 잘 싸웠을 텐데?’

시온을 내 손으로 기절시킬 때만 해도, 10년 묵은 체증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승리의 대가를 요구해, 시온과 렉스턴을 제대로 괴롭힐 생각도 있었다.

퍽─! 퍽─!

그런데, 저 좆같은 새끼가 되도 않는 소리를 하면서 업신여기는 광경은, 사이다랑은 거리가 멀었다.

녀석은 분명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방금 전 나처럼 미친 듯이 웃으면서 울먹이는 시온을 깔보는 것은 숨길 수 없는 명백한 증거다.

“도, 도련님.. 그만.. 왜... 그러시는...”

마나를 싣는 법도 모르는 발길질에 시온이 다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 믿은 사람에게 믿을 수 없는 배신을 당해 상처받은 눈은, 내 안에서 참을 수 없는 무언가를 자극하고 있다.

“나가 죽어! 죽어 죽”

“이 염치도 모르는 호로 새끼가!!!”

그래서 나는 참지 않고 그 감정에 몸을 맡기자, 놀랍게도 내 주먹이 놈의 얼굴에 직격하는 것이 아닌가?

퍽─! 우득.

뭔가 부러지는 손맛과 함께 렉스턴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볼품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때린 위치를 생각하면 아마 녀석의 코뼈가 또 박살 난 것 같다.

“흐에엑, 네, 네놈. 뭘 하는 거야...!”

렉스턴이 고개를 들자 부러진 코에서는 쌍코피가 줄줄 흐르는 게 보였다.

그걸 보니 다시 십 년 묵은 체증이 가시는 기분에, 후련하게 웃어주기로 했다.

“사람이 추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너를 위해 싸우다가 다친 사람을 괴롭혀?”

“네가, 네가 무슨 상관인데! 이건 와이즈 가문의 일이라고!”

존나 억울하다는 렉스턴의 표정은 참으로 사람을 꼴 받게 만들었다.

하지만 맞는 말이다. 당장에 헬릭 교수가 우리 옆에서 제대로 제지하지 못하는 건, 시온이 와이즈 가문의 소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런데 나는 그런 자잘한 이유로 내 내면의 분노를 억누르지 않기로 했다.

“이 망할 녀석이..! 결투에서 이겼다고 기고만장해서는!!”

“당연하지, 나는 승리의 대가를 받으려는 건데.”

“뭐엇...?”

이 세계에서 결투는 서로 간의 목숨을 걸고 하는 중대한 의식과도 같다.

일단 성립이 된다면, 결과가 나온 이상 패배자는 승리자에게 한 가지 요구를 들어줘야만 한다.

“내 승리의 대가는 간단해. 나한테 이 자리에서 100대만 처맞자.”

그렇게 말하며 내가 렉스턴에게 다가가자, 렉스턴은 상황을 파악한 건지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잠, 잠깐! 그만둬! 금화를 줄게, 네 눈앞에 띄지도 않을 테니깐!”

“렉스턴, 사람에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감정이 있는 법이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지금 나는, 너를 진심으로 패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단다.“

내 말에, 관중석의 누군가가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학생들이 정의구현을, 사이다를 원하고 있다.

아아.

‘세계가 사이다 전개를 원하고 있어.’

그렇다면 나는, 이 세계의 요구를 이루어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이번 회차에서 다짐한 각오이고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 악물어, 죽을까 봐 마나는 안 쓸 건데, 내가 아직 힘이 넘치거든.”

네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기에, 나는 네가 무슨 생각으로 이 병신짓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저, 병신 짓에 철퇴를 내릴 뿐.

뻐억─!

불가사리의 피 덕에 우렁찬 발길질 소리가 경기장 가득 울려 퍼졌다.

이제 98대 남았네.

*

나는 그렇게 렉스턴의 전신을 골고루 발로 존나게 까줬다.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땀을 닦아내곤, 중간부터 숫자만 세시던 헬릭 선생님에게 가서 쉬겠다고 말하고는 재빠르게 기숙사로 돌아왔다.

구경하던 다른 애들도 무대에서 내려올 때 엄청 환호성 지르던데, 여태까지 망한 평판이 좀 복구됐으려나? 됐으면 좋겠는데.

“으아악, 온 몸이 삐걱거려서 죽을 거 같네.”

말로 엄살을 떠는 게 아니라, 진짜로 완전군장 40km 행군보다 더 힘들다.

렉스턴을 두들겨 패느라고 불가사리 피와 오우거 피 까지 전부 사용한 나는 침대 위에 드러누워 반쯤 죽어가고 있다.

“그나저나, 결국 왜 깝친걸까?”

렉스턴의 표정으로 봐서는 시온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생각해보니, 매번 시온을 개조하거나 시간 버는 용도로 쓴 것도 싫어해서인가?”

하지만 시온의 본성이 아무리 미친년이라고 해도, 렉스턴 앞에선 열심히 연기하는 걸 알고 있다.

어쩌면 내가 시비 걸어서 그 똘끼에 부채질한 영향인가?

“아니, 그건 그냥 그 새끼 인성이 개 빻아서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렉스턴은 악당 역할의 인물.

이 악의와 살의로 가득 찬 세계관에서 악당을 맡는 사람의 대다수는 싸이코패스도 거를 정도로 정신 나갔거나 인성 나쁜 쓰레기들뿐.

그런 악당에게까지 이유를 하나하나 붙여주다 보면 끝이 없다.

“몰라, 더 이상은 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무대 위에서 신나게 맞은 렉스턴은 결국 오줌까지 지리면서 기절하고 말았다.

수치를 아는 사람 새끼라면 자살하거나 아카데미에서 탈주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겠지.

나중에 흑화해서 돌아오면,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어차피 이번 회차는 마왕 안 보고 접을 거니깐.

“밥은 한숨 자고 나서 먹어야겠다..”

근육통과 마나통에 일어날 엄두가 안 난다.

그냥 눈 감고 잠을 자고 일어나기로 했다.

똑똑똑.

‘내가 아파서 자려고 하면 누가 찾아오는 건 국룰인가?‘

누군가 문을 두드린 덕에, 잠에 취해가던 나는 강제로 정신을 차렸다.

“누구세요!”

문 앞까지 가기 귀찮아서, 침대에 누운 채로 크게 소리쳤다.

엑스트라가 장난 친거면, 자고 일어나서 제대로 조지야지.

“형님! 저 임다! 문좀 열어주십쇼!”

그런데,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예상외로 샤오메이였다.

덕분에 나는 근육이 비틀린 것 같은 괴상망측한 소리를 온몸으로 울리며 간신히 문을 열어줬다.

“무슨 일이야, 샤오메이?”

“형님이 그렇게 무리하셨으니, 밥도 안 먹고 침대에서 골골거릴 것 같아서 도시락을 가져왔슴다!”

그렇게 말하는 샤오메이의 양손에는 훈련 때 먹던 수제 5단 도시락이 한가득이었다.

“정말 나 챙겨주는 건 너밖에 없다. 샤오메이!”

“헤헤, 저야 늘 형님 바라기 아니겠슴까!”

순수하게 웃는 저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진다.

이게 인생이다. 이게 학창 생활이다! 나는 더 이상 아싸가 아니다!

“들어와, 문은 대신 닫아줄래? 근육통 때문에 몸이 말이 아니라서.”

“후후, 알겠슴다!”

샤오메이의 힘찬 대답에 나는 어기적어기적 몸을 돌려 침대에 걸터앉았다.

철컥.

“응?“

시선을 돌리니, 샤오메이가 문을 닫으며 잠금쇠를 돌리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샤오메이?”

내 말에 뒤를 돌아보는 샤오메이는, 어째서인지 방금 전까지 순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샤오메이가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라버니, 제가 저번에 결투에서 이기면 상을 준다고 했죠?”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샤오메이의 모습을 보자, 나의 날카로운 감각에 무언가 섬뜩한 경고를 울리고 있다.

시온에게도 느끼지 못한, 육식동물 앞에 놓인 초식동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몰려온다.

“어떤 상을 주면 좋을까요, 오라버니?”

왜 형님이 아니라 오라버니야 샤오메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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