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첫 등교
* * *
렉스턴 와이즈와 아르틴 루드비히의 결투라는 커다란 끝난 다음날.
아카데미는 어제의 들썩이는 분위기가 가라앉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딱 하나, 1학년의 B반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야, 오늘부터지? 아르틴 루드비히가 등교하는 거?”
“괜찮을까? 소문만 들어서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학생은 눈만 마주쳐도 두들겨 팬다던데?”
각 학급의 다수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기득권, 주로 귀족들이나 공화연방의 호족들은 아르틴의 귀환에 껄끄러워 하는 분위기다.
그들에게 아르틴은 학생회와 선배들이 만들어낸 아카데미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승자의 포상이라며 정확하게 100대를 때려 또 다시 병동에 입원시켰다.
‘사실 좀 시원하긴 했어. 명예도 모르고 나서는 꼴이 귀족의 수치였지.’
‘그런 교양없는 사람이 차기 후계자라니, 와이즈 백작가도 몰락이 머지않았네요.’
물론, 대부분의 속마음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아르틴이 한 행위 자체에는 일종의 통쾌함을 느끼고 있다.
학생간의 결투에서 브론즈 학생을 상대로 자신의 가문의 기사를 내보인 것도 모자라, 패배하고도 추한 모습을 보였으며 제국 기사 출신의 사람을 공공연하게 욕보였다.
애초에 아버지의 권세를 등에 업고 공공연하게 나대고 다니던 녀석의 몰락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소리다.
“역시, 거리를 두고 최대한 접근하지 않도록 하는 게 좋겠어요.”
“저도 동감입니다, 괜시리 가까이 했다가 학생회에 찍히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하지만 통쾌함과는 별개로 아르틴 또한 귀족답지 못한 처리방식과 과격한 성격, 학생회에 반목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아르틴을 꺼려하는 분위기는 1학년 B반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전체에 퍼지고 있는 셈이다.
“어우~또 자기들 마음에 안 든다고 호박씨 까는거 봐! 정말 마음에 안 들어! 그치 카이엔?”
그리고 소수에 속하는, 평민이나 하급 귀족 출신중 하나인 클레어는 그런 같은 반 애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장에 경기장에서 아르틴이 렉스턴을 두들겨 패줄 때는 다 같이 환호해놓고, 왜 이제 와서 점잔을 떠는 건지 알 수 없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같이 나눌 친구는 반에서는 카이엔이 유일했기에, 오늘도 카이엔의 옆자리에 앉아서는 참새처럼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것이다.
“카이엔은 어떻게 생각해? 이번에 오는 아르틴이라는 애.”
그 말에 옆에서 조용히 클레어의 수다를 들어주던 카이엔은 방금 전까지 무표정한 얼굴에서,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글쎄, 재밌을 거 같은데.”
“나는 분명 카이엔하고 친해지기 쉬울 거라고 생각해! 카이엔도 날 괴롭히던 나쁜 귀족을 혼내줬잖아? 아르틴도 나쁜 렉스턴을 혼내줬으니 분명 소문과는 다르게 정의로운 면이 있을 거야!”
“그래, 분명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네.”
“그나저나 어제 단체 빈혈 증상은 결국 뭐였을까? 나도 눈 떠보니 기숙사 가는 길이라서 엄~청 놀랐는데.”
뒤 이어서 멈출 생각도 없는 듯 새로운 주제로 조잘조잘 떠들던 클레어는 교실로 금발 머리의 하프엘프 선생님, 세니아 부담임이 들어와서야 조용해졌다.
“자, 주목. 어제 다들 수업 안 듣고 놀았으니 오늘은 열심히 공부해야지 애들아?”
“선생님! 저는 어제 열심히 공부했는데요!”
“너 항구에서 여자애들이랑 카페에서 노닥거리는 거 선생님이 다 봤거든!”
세니아의 등장에 조금 전까지 긴장된 분위기가 단숨에 풀리기 시작한다.
본래라면 B반의 담임은 맡은 사람은 1학년의 채플을 담당하는 북부 교단의 성기사 세르게이 첼레프스키지만, 늘 바쁜 일정과 교단 업무까지 전부 맡아서 하는 통에 사실상 반을 맡은 세니아에 의해 B반은 그녀가 있을 때면 온건하고 화목한 분위기를 지향하게 되었다.
“자자, 이제 입학한 지 한 달이 되어 가는데, 곧 있으면 중간고사니깐 긴장 풀지 말고. 학기말에 승급 시험에 중간고사 성적도 반영이 30%나 된다? 그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없어?”
네─라며 큰소리로 대답하는 학생들을 보고는 방긋 웃은 세니아는,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 반의 아르틴 학생이 오늘 정학이 끝나고 처음으로 등교하는 날 인거 알지? 조금 불미스러운 소문이 많지만 선생님이 직접 만나봤을 때는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었어. 선생님은 우리 B반 학생들이 아르틴을 잘 받아줬으면 해.”
아르틴의 이름이 언급되자, 반의 분위기가 조금 얼어붙는 것을 보며 세니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르틴의 학창생활 적응을 전력으로 돕겠다고 말 한 이상, 자신이 가르치는 반 아이들 만큼은 아르틴을 받아들이게 하리라고 굳게 다짐했다.
“자! 들어오렴. 아르틴!”
그런 속마음을 상냥한 미소로 숨기며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르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아르틴, 들어오면 애들한테 방긋 웃으면서 인사하는 거야, 알았지?”
“선생님, 저는 어린애가 아닌데요..”
세니아 선생님은 반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내 손을 붙잡고는 별 사소한 것들을 지켜달라며 애걸복걸했다.
‘애초에, 칭호 꼬락서니를 보면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어차피 아카데미의 학생들에게 악명을 사는 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이다.
이 학교 곳곳에 숨어있는 빌런놈들을 처리하고 사건을 해결하려면 나랑 주인공중 한명은 늘 악명을 뒤집어 써야 했으니깐.
원작에서도 주인공 카이엔은 마왕군 간부를 둘이나 처치하고 학생들을 구했는데도 악당들의 비방과 선동, 그리고 작가의 악의가 담긴 전개로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는 녀석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힐끔, 문에 난 창으로 반을 들여다보니 다행히도 익숙한 얼굴들은 그대로 보인다.
같은 반 구성원도 바뀌었다면 곤란한 일이 몇 개 생길 수 있었지만 계획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다.
‘우선, 카이엔 녀석에게 나에 대한 걸 물어봐야 하는데.’
녀석은 학기 초에는 늘 초반부 메인 히로인 중 하나인 클레어하고 만 붙어 다닌다.
이유? 그야 친구가 없거든.
매번 입학식이 끝난 직후 클레어를 괴롭히던 같은 반의 데릭 코냐크를 때려눕힌 카이엔은 같은 반 애들과 강제로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런 카이엔에게 먼저 다가오는 건 원작에서는 조르바 정도, 그렇다고 본인이 스스로 친구를 사귀고 다니는 성격도 아니라서 B반의 외딴섬 같은 느낌이지.
“문제는 내가 처음부터 악명을 전부 뒤집어 썼다는 건데..”
만약 카이엔이 날 기억하고 있다면 먼저 다가올지도 모른다.
반대로 기억하고 있지 않다면? 늘 그랬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지켜보겠지.
‘반에 들어가 첫인사 하면서 반응을 살펴봐야겠어.’
“들어오렴. 아르틴!”
세니아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에 나는 앞문을 열고 당당한 걸음으로 입장했다.
수군수군. 내가 들어오자 술렁이는 반응들이 눈에 띈다.
역시 제1 대련장을 써가면서 크게 한바탕 한 탓에 유명인사는 확정이구만.
뭐, 이번에는 마왕 잡을 것도 아니니깐 상관없을뿐더러, 나는 이 분위기를 직접 선도할 자신이 있다. 아무리 독해봐야 교단의 능구렁이들 보다 독할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세니아 선생님이 자리를 살짝 비켜주자 교탁위에 서서 같은 반 녀석들을 훑어보았다.
“형님~! 멋집니다!”
가장 뒷자리에는 인사도 하기 전부터 손을 흔들고 있는 샤오메이와, 그 옆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조르바가 눈에 띈다.
지금 와서 보니깐, 평상시의 조르바라면 능글거리는 미소로 같이 손을 흔들 텐데 지금의 조르바는 마치 나를 품평하는 것처럼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바라본다.
‘확실히 조르바는 기억이 없는 것 같고.’
반 곳곳에 못마땅해 하거나 혹은 아닌 척 하며 나를 지켜다보는 이번 회차 빌런 후보 놈들도 익숙한 자리에 그대로 있고.
“반갑습니다. 왕국에서 온 아르틴 루드비히라고 합니다.”
그리고 반의 외진 창가에 앉아서 왠지 모르게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는 클레어와,
그 옆자리에 앉아 무뚝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이 소설의 주인공 카이엔이 눈에 들어온다.
“요 근래 렉스턴 와이즈와 개인적인 문제로 시끄러운 사건을 몇 번 일으켰습니다만. 오늘부터 정학이 풀려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입은 반 아이들에게 내 소개를 하면서도, 내 눈은 카이엔을 주시한다.
너는 어떻게 반응 할 거지 카이엔? 계속 그렇게 무뚝뚝하게 나올 거야?
“앞으로 같은 반에 지내게 된 만큼, 모두 잘 부탁드립니다.”
힘 있는 목소리로 내 소개를 끝내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들어 올리자, 반의 분위기는 조용하다.
그때, 샤오메이가 조르바의 옆구리를 찌르며 둘이 박수를 치자. 적당한 박수가 나를 향해 쏟아진다.
여전히 어색한 분위기지만, 웅변을 하듯 힘 있는 목소리와 아르틴의 고운 미성. 당당한 태도로 인해 방금 전까지 술렁이며 나를 꺼려하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 느껴진다.
중요한건, 왠지는 모르겠지만 부담스럽게 샤오메이급으로 힘차게 박수를 치는 클레어의 옆에서, 카이엔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녀석도 내 기억이 없는 건가?’
그럼 여자만 기억이 돌아오는 건가─하고 답을 내던 찰나.
나는 순간 카이엔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자, 인사는 거기까지 하고... 저기, 샤오메이의 옆에 가서 앉을까 아르틴? ...아르틴?”
내가 기억회귀에 대해서 짐작한 가설은 나랑 깊게 엮인 사람 중에서도 ‘긍정적인 관계’를 맺은 ‘여자’가 나를 ‘직접’ 마주 보면서 기억을 찾는다고 답을 내렸다.
실제로 마리안느 스승님도 나를 직접 보고 초면임에도 이상하리 만큼 친하게 굴었던 것을 근거로 생각했고, 조르바나 렉스턴의 반응으로 남자들은 엮이지 않는 다는 것도 반쯤 확신을 내렸다.
그리고 방금 전, 그 가설은 카이엔의 입모양으로 단단히 박살났다.
안 . 녕 . 파 . 트 . 너
나를 향해 뻐끔거리는 입 모양은, 내가 녀석과 친해지기 위해 서로 정했던, 3회차 당시에 서로를 부르던 파트너라는 호칭이었다.
‘너, 기억하고 있는 거냐?’
당황한 내 시선에도, 카이엔은 오히려 보란 듯 눈웃음을 지으며 내게 작게 손을 흔들어 댈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