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24화 (24/266)

〈 24화 〉 첫 등교 #02

* * *

‘아침조회 진짜 더럽게 기네, 아직도 20분밖에 안 지났다고?’

아카데미는 기본적으로 대학교식 강의체계를 사용하지만, 학생의 관리에 있어서는 학급체계를 사용한다.

이는 정치적, 혹은 종족이나 개인적인 알력다툼에 있어서 최소한의 완충제를 만들기 위해 초기에 만들어진 구조라던데, 내가 보기엔 그냥 작가가 귀찮아서 둘 다 합친 걸로 보인다.

강의는 수강신청 없이 자유롭게 들을 수 있어?

시험은 자신이 제일 자신 있는 과목을 최소 숫자만 넘기면 제약 없이 선택 가능?

아무리 현실에서 대학에 가보지 못한 나라도 대학이 저런 무근본 체계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 망할 작가가 아카데미물이 존나 만만해 보였나 보지.‘

아무튼, 이 거지같은 아카데미에 몇 안되는 학급체계의 부산물 중 하나가 이 아침조회.

기본적으로 빼먹어도 상관없긴 하지만, 선생님들에게 학사일정을 전달받거나 자습, 학교에 대한 건의가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물론 학사일정을 대체로 빠삭하게 외우고 있는 나는 세니아 선생님의 영양가 없는 잡담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문제는 내 앞자리에 앉은 사람 꼴 받게 만드는 주인공 놈.

‘진짜로 사람을 일부러 약올리는 건가?

뒷자리에 있던 샤오메이와 조르바의 옆자리에 앉은 후, 조회 시간 내내 카이엔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녀석은 클레어의 잡담을 들어주며 겉치레 반응으로 웃어주기만 할 뿐.

‘차라리 완전히 모르는 척 하던가, 중간 중간에 힐끔 쳐다보고 웃어?’

저 살짝 입꼬리만 올라가는 미소가 사람을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만든다.

소설 속에서 묘사는 여심을 흔드는 아름다운 미소라는데, 내가 보기엔 그저 기생오라비가 사람을 도발하려고 비웃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진짜, 형님 제대로 듣고 계심까! 1교시는 저희랑 같이 수업 듣는검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내 옆자리다.

샤오메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샤오메이 옆에서 계속 나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아닌 척 하는 조르바 녀석이 진짜 엄청 신경 쓰인다.

“맞아 아르틴, 3주나 수업을 못 들었으니 이 형님이랑 샤오메이가 도와줄 때 감사합니다. 하고 같이 듣는 게 좋다고?”

보통 사람은 눈은 못 속인다는데 이 독한 녀석은 눈웃음까지 지어보이며 평소처럼 친근하게 말을 걸고 있다.

만약 내가 샤오메이에게 미리 듣지 못했다면 정말로 속았을 지도 모르겠다.

“어, 음..너희 뭐 듣는다고 했지?”

“역시 안 듣고 계셨슴다─!! 오늘은 1교시부터 헬릭 교수님의 검술 수업 듣기로 했슴다!”

“아 맞다, 나쁘지 않을 거 같고 나도 같이 들을 게.”

그렇게 말하며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샤오메이를 달래주는 척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연기.

‘카이엔이 헬릭 교수 수업을 듣는 건 확실하지?’

‘물론이죠 오라버니. 아까 자습 시작 전에 클레어가 말하는 걸 몰래 엿 들어놨거든요.’

우리는 전날에 만약 카이엔이 기억을 되찾은 상태라면, 어떻게 카이엔한테 접근할지 이미 기본적으로 계획을 세워둔 상태.

조르바의 의심을 피하고자 샤오메이가 수다쟁이 클레어의 대화를 독순술과 단련한 감각으로 파악한 뒤, 내가 자리에 앉으면 화제를 그쪽으로 끌고 가는 거다.

“네가 검술에도 관심이 있었던가, 아르틴?”

“음, 시온을 상대해보니깐 제국의 검술이 꽤 대단하더라고. 게다가 교수님이 그 헬릭 교수님이잖아? 전대 거인살해자.”

틈을 보이자 바로 나를 떠보기 위해 질문하는 녀석, 하지만 이 정도 임기응변은 내게 무척이나 쉬운 편이다.

교단의 능구렁이들은 조르바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으니깐. 이쪽은 차라리 납득할만한 합리적인 이유를 주면.

“하긴, 나랑 샤오메이도 몇 번 들어봤는데 나쁘지 않더라고. 예쁜 아가씨들도 많이 참석하고 말이야.”

이런 식으로 납득하고는 한걸음 물러나는 자제력이 있으니 다행이다.

“너는 수업 시간에 여자랑 수다만 떨 거 같은데, 성적은 괜찮겠어?”

“물론이지! 3주 만에 시온을 쓰러트린 너보다는 아니겠지만, 나는 몸을 쓰는데도 천부적인 소질이 있거든.”

“안 그래도 도련님이 제대로 트레이닝 받으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텐데, 한번 해보자고 해도 제 말은 전혀 듣지도 않슴다.”

“내 시간은 아름다운 여성분들을 위해 쓰여 지는 게 이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일이거든, 샤오메이.”

재수 없게 자신을 자화자찬하며 나보다 좀 더 밝은 붉은 머리를 찰랑거리는 조르바를 보고 있으니 한 대 때려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저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꾸준히 지켜봤더니 뭘 해도 전부 수재 이상은 할 정도로 재능이 있는 녀석이니깐.

만약 아르틴 루드비히가 아니라 조르바 펠카스한테 빙의했다면, 이 거지 같은 소설의 난이도가 5배 이상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가뜩이나 같은 붉은 머리라서 캐릭터가 겹치는데 재능의 차이를 생각하면, 원래 아르틴은 조르바를 동경하거나 엄청 질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음?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그러고 보니 조르바, 내내 샤오메이 하고 만 수업을 들었던 거야?”

“음? 어쩔 수 없잖나 아르틴, 샤오메이는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인데 네가 없으니 나라도 같이 붙어 다녀야지 안 그래?”

이 새끼 분명 저번에 나 입원했을 때 혼자 수업째고 여자들하고 놀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맨날 절 혼자 두고 놀러 다니기 바쁨다..”

샤오메이의 궁시렁 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놀러다니는 것 자체는 내가 없을 때나 있을 때나 별 차이는 없는 것 같은데.

‘지금쯤 바이올렛이 우리 무리에 합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바이올렛이 우리 세 사람에게 합류하는 것은 보통 첫 주에서 두 번째 주 사이, 이 말빨 좋은 조르바가 혼자 수업에서 곤란해 하는 바이올렛을 도와주는 것을 핑계로 우리들에게 소개시켜주며 같이 다니게 된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바이올렛에게 합류를 안했지?

힐끔 샤오메이를 보자,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듯 샤오메이가 입을 뻐끔거린다.

‘아무래도 오라버니를 신경 쓰느라고 여자랑 노는 건 뒤로 미루는 것 같아요.’

이런, 또 나 때문인가.

하지만 바이올렛을 이 이상으로 혼자 돌아다니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 패거리에 나랑 샤오메이를 도와줄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자리 비우면 샤오메이랑 바이올렛은 둘다 친구도 없이 혼자 밥먹어야 하잖아...’

아직도 매 회차 마다 우리와 같이 식사하고 놀면서 표정이 밝아지던 바이올렛을 잊지 못한다.

이번에는 기억이 있으니 좀 다르겠지만, 그래도 나라도 챙겨야지 않겠어?

‘내가 며칠 후에 바이올렛 데리고 올 테니, 그때 같이 합류하자.’

내가 그렇게 속삭이자, 샤오메이는 조르바에게 보이지 않게 뾰루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설마 아직도 나 덮칠 각 재는 건 아니겠지?

“자, 오늘 아침조회는 여기까지 할게. 다들 첫 강의 잘 듣고, 레니랑 미코토는 연금술 수업에 또 지각하면 안 된다?”

그때, 아침조회를 끝내고 세니아 선생님이 교실 문 밖을 나가자, 나는 황급히 시선을 카이엔 에게로 돌렸다.

“자, 우리는 먼저 가서 준비하자!”

이런 젠장, 뭐라고 말도 걸기 전에 클레어가 카이엔을 끌고 강의실로 나가는게 보인다.

수업 중에도 접근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역시 쉬는 시간에 단 둘이 대화하고 싶은데!

“잠깐, 나 화장실 갔다가 강의실로 따라갈게! 먼저 가있어!”

“어라? 아르틴 너 강의실이 어딘지 알고 있나?”

“제 3검술 강의실 맞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

조르바가 의심스럽게 또 치고 들어왔지만, 나는 이쪽이 더 중요해서 대충 대답하고 짐을 챙겨서 두 사람을 쫓아 복도로 뛰어나갔다.

샤오메이가 알려줬다고 대충 둘러대면 되겠지!

“와, 그 사이에 저기까지 간 거야?”

잠깐 짐 챙기는 사이에 왜 저리 걸음이 빠른 건지는 몰라도 클레어와 카이엔이 복도 끝의 계단을 내려가려는 게 보인다.

복도로 나온 인파 때문에 뛰어서 따라잡기도 힘들자, 나는 카이엔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잠깐만! 거기 서봐 카이엔! 할 말이 있다고!”

조회 시간이 끝난 직후에 시끄러운 복도지만, 저 녀석은 이 소설의 먼치킨 주인공.

이 정도 소음에서도 내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그리고 그 말을 증명하듯 계단을 내려가려다 잠깐 멈춰선 카이엔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서 기다려! 내가 그쪽으로 갈게!”

들리는 건 확실하다. 다급한 마음에 사람들을 밀치니 주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꺅!”

그때, 내가 가볍게 밀친 사람 중 하나가 크게 밀려 넘어졌다.

왜 이렇게 과하게 반응하나 하고 바라보니, 아픈 표정으로 봐서는 연기는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단련으로 강해진 탓에 무의식중에 밀친 다는 게 힘이 크게 들어갔나 보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좀 바빠서!”

“잠깐만요, 사람을 밀쳐 넘어트리고 지금 그냥 가려는 건가요?”

대충 고개 숙여 사과하고 넘어가려는데, 넘어진 여자애의 친구가 내 손목을 잡고는 큰 소리로 화를 낸다.

이런 젠장, 쉬는 시간은 20분, 여기서 붙잡혀 있을 시간은 없는데!

“당신, 아르틴 루드비히 아닌가요? 지금 결투에서 한번 이겼다고 이제 막 나가려는 건가요?”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진짜 급해서!”

“급하면 사람을 그렇게 밀치고 다녀도 되는 건가요! 제 친구에게 무례를 사과하세요!”

아무래도 귀족 아가씨인 듯, 고래고래 크게 소리를 지르며 사과하라고 외치는 통에 주변의 시선이 쏠리며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제가 바쁘다는 핑계로 큰 무례를 끼쳤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는 수 없이 바로 고개를 숙여 사과 박았다. 바쁘긴 해도 내가 잘못한 건 사실이니깐.

“아니요, 저도 크게는 안 다쳤으니...”

“하! 그렇게 대충 넘어가려고 하는 사과에는 진심이 보이지 않아요! 당신은 예의범절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요?”

그런데 이 친구 되는 아가씨는 뭔가 이상하다.

당사자는 귀족의 체면을 무릅쓰고 바로 고개 숙여 사과하는 내 모습에 괜찮다고 하는데, 친구의 말도 잘라먹고 사람들 앞에서 나를 더욱 몰아붙인다.

“왜 그렇게 쳐다보시죠? 설마 이번에는 저한테도 결투를 신청해서 싸움으로 해결할 생각인가요? 와이즈 가문의 장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 이 날 선 반응을 보니 대충 짐작이 간다. 왕국의 귀족파벌 아가씨인가?

와이즈 가문의 영향력은 왕궁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니, 지금 나를 몰아붙이면 와이즈 가문에서도 자신들을 대신해 창피를 준 사람을 대신 벌한 사람으로 점수를 딸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말 무례하고 예의 없는 남자로군요. 저는 당신의 결투를 받아줄 생각도 없고 그 무례함을 용서해줄 생각도 없으니, 학생회에 이 일을 알리겠어요!”

점점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을 보며, 이 사건을 크게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내보인다.

아 씨발 또 뭔 고구마 전개냐! 라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학생회에 알리겠다고 말했나요, 하버 가문의 영애?”

어느 목소리에, 우리로 인해 웅성거리던 복도가 순간 얼어붙었다.

“네, 당연히 이런 무례한 사건은 징계 위원회에 밀어 붙이는 게 맞지 않겠어요?”

당당하게 말을 이어 나가던 영애는, 문뜩 사람들이 말없이 얼어붙어 자신의 등 뒤만을 바라본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낀 건지 천천히 등 뒤를 돌아보았다.

“글쎄요, 학생회는 학생들의 권리를 증진하고 가문과 국가 간의 갈등을 조율하는 곳이지, 이런 사소한 일에 직접 나설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답니다.”

“....아, 아그네스 황녀님!”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이 학생회의 부회장, 제국의 황녀라는 사실을 알고는 실시간으로 얼굴색이 새파랗게 물들어갔다.

“지금의 저는 부학생회장이에요, 거기에. 방금 넘어진 본인은 사과를 받아주려고 한 것 같은데, 일을 굳이 키울 필요가 있을까요?”

“...제, 제 친구는 저 남자의 악명에 겁을 먹은 것이랍니다. 이는 제 친구와 저의 명예가 달린 일이니...”

“그런가요? 가문 간의 명예가 달린 일이라면 학생회에서도 막을 수는 없겠죠.”

그 말에 굳은 표정이 조금 풀리는 영애를 향해 아그네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제가 개인적으로 이 일을 조용히 넘어가달라고 부탁해도 안 되는 걸까요, 하버 가문의 영애 분?”

그런데 목소리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

그리고 그 뒤로 일은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났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나같이 막나가는 녀석이 아니고서야 학생회의 권고를 무시하는 건 힘들다.

하물며 제국의 황녀이자 부회장인 아그네스가 직접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덮자고 한 거다.

아무리 왕국 출신이라도 섣불리 목소리를 내기는 힘든 일.

게다가 넘어진 당사자가 그 말에 울먹이면서 화내던 친구에게 그만하자고 되려 따진 통에, 내게 화내던 아가씨는 친구와 함께 사라지고 모여 있던 인파는 아그네스의 말 한마디에 흩어졌다.

“... 음, 그래서 나를 왜 여기로 데리고 온거야?”

문제는 그 난리가 끝나니 카이엔은 이미 떠난 듯 사라져있었고, 나는 잠깐 대화하자는 아그네스를 따라 어느 인적 드문 건물의 뒤편으로 끌려왔다.

‘당장 나를 구해준건 고마운데...’

계획상, 오늘 오후까지 내내 카이엔과 접촉해보고 나서 저녁에 넷이서 모이기로 했는데 갑작스러운 아그네스의 등장에 나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나를 대화하고 싶다고 데려와 놓고 벌써 3분 째 아무 말도 없이 뒷모습만 보이고 있다.

“...아르틴은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는 건가요? 그 전 회차.. 혹은 전생에 대해서 말이에요”

갑자기 나를 돌아본 아그네스가 뜬금없는 질문을 해왔다.

전생에 대한 기억?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지?

“나는 전부 다 기억하고 있는데... 세세한건 기억 안 나더라도, 큼직한 사건이나 최근에 가까운 건 전부. 뭔가 묻고 싶은 게 있어?”

혹시나 제국의 반란이나, 그에 준하는 사건이 떠오른 건가?

그렇다면 못 말해줄 것도 없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지만, 어차피 날릴 세계인데 잔뜩 꼬여도 런 하면 그만이다.

“...그래요, 아르틴은 전부 다 기억하는 거군요...”

그런데 왠지 아그네스의 반응이 이상하다. 손을 베베 꼬며 얼굴이 빨갛게 물든 게 내가 아는 아그네스라면, 뭔가 로맨틱한 생각을 할 때 저 반응인데..?

“그럼, 저번 생에서 저와 마지막으로 한 약속을 기억하나요?”

“저번 생에...”

아. 그 말에 무슨 약속인지 단번에 기억났다.

마왕성으로 백도어를 가기 전, 아그네스와 헤어지며 나눴던 마지막 약속을.

“만약 살아서 돌아온다면... 저와 약혼의 예식을 치루고 첫날밤을 치루고 싶다는 말...잊지 않은거죠...?”

했다. 분명 했다. 이번에는 100% 성공할거라고 믿은 채로 로맨스 소설에서 보던 멋진 말투로 아그네스에게 약속했다.

마왕 암살이 실패하고 독약 먹고 죽고 난 후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살아서 돌아온 거니깐... 약속을 지켜주세요...”

꾸욱, 아그네스가 뇌정지가 와 멍하니 서있는 내 손을 양손으로 잡고는 애절한 눈으로 올려다 본다.

“이제 제가 당신의 약혼녀가 되어도 될까요..?”

달뜬 목소리와 새빨개진 얼굴로, 아그네스를 나를 마주보며 말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