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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25화 (25/266)

〈 25화 〉 해후와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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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보통은 마물을 상대할 때 공격적으로 마나를 다루지만, 시,시,실제로 현장에서는 수비적인 운,운용을 요구받고는 합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말더듬는 소리, 우르반 헬릭 교수가 재미있는 수업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제 3검술 강의실이 수많은 1학년 학생들, 그리고 소수의 선배들과 호위 같은 외부인으로 가득 찬 것은 유익한 수업을 만드는 경험에 있어서는, 아카데미 내부에서 헬릭 교수를 넘을 이가 몇 없기 때문이다.

마족과의 전선에 서며 수많은 마족들을 베어 넘기고, 과거 거인 군단의 간부 ‘기간테스’중 하나인 펠로레오스를 베어죽인 그의 경험은 미래에 마족을 상대해야할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있어서 아무리 작은 경험담이라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유익한 수업이라도 그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들은 있기 마련, 조르바의 옆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샤오메이도 그 중 하나다.

‘벌써 1교시가 시작한지 30분이 넘었는데, 오라버니는 어디에 가신거지?’

카이엔을 뒤쫓아 갈 테니 먼저 조르바와 가있으라는 신호에 산책을 하자며 조르바를 데리고 반대로 돌아서 강의실에 도착했었다.

그런데 강의실에 도착해보니 웬걸, 아르틴의 모습은 없는데 카이엔과 같이 붙어 다니는 갈색머리는 먼저 도착해서 자리에 앉아있다.

덕분에 관심도 없던 수업만 30분째 강제로 앉아 듣느라 샤오메이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만 갔다.

‘애초에 기억을 찾으면 찾은 거지. 저런 남자가 뭐가 중요하다고 오라버니는 난리인지.’

이전 생에도 그렇고 이번 생에도 그렇고, 지나칠 만큼 카이엔이라는 저 남자를 오라버니는 과하게 신경 쓴다. 자기 기억속의 카이엔이 오라버니에게 뭔갈 해주진 않았는데.

‘설마, 오라버니가 남색의 취향이 있으신게...?!’

아니, 그런 건 아닐 거다. 매 회차마다 여자랑 썸을 타고 사귀었으면 사귀었지, 남자랑 어울리는 모습은 별로 많지 않았으니깐.

‘그나저나, 유혹 작전이 실패했으니 이를 어쩌면 좋담...’

부끄러움이 많아 적극적이지 못한 바이올렛만 있을 때 정실자리를 차지하려던 계획은, 오라버니가 자신을 책임지게 만든다는 작전이 실패하고 아그네스 황녀까지 기억을 찾으면서 완전히 망가졌다고 보는 게 맞았다.

특히 그 아그네스 황녀는 이미 바로 전생에서 오라버니와 연을 맺었던 사람.

저 카이엔이 방해하지 않았다면 정실 자리는 분명 아그네스에게 빼앗겼을 것 이다.

‘뭐하면 타협을 하는 게 좋을지도 몰라요. 성녀랑 탕녀가 없는 지금 진도를 빼서 쐐기를 박아놔야..’

이번에는 술이라도 먹이는 게 좋을까, 하고 샤오메이가 사악한 술수를 다시 계획하고 있을 때.

“그러고 보니깐, 너 아까 복도에서 난리 난거 봤어?”

“아, 그 하버가의 영애랑 루드비히가 시비 붙은 거? 나는 듣기만 했는데.”

자신의 옆자리에서 집중 못하고 내내 수다를 떨던 학생들이 꺼낸 새로운 주제에, 샤오메이는 자신도 모르게 두 사람을 향해 홱하고 고개를 돌려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왕국에서도 가까운 파벌 사람이라서 그런가, 수치를 보이게 만들었다고 두고 보자고 이를 갈다가 건수를 잡아서 그렇게 몰아붙인 거라는데?”

“엄청 살벌했다면서? 아그네스 부회장이 진정 시켜서 다행이지. 이번에도 크게 사고 쳤으면 걔는 진짜 퇴학당했을지도 모르겠다.”

아그네스? 황녀님이 왜 나와? 샤오메이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마 주의는 크게 주지 않을까? 일 마무리 하고 아그네스 황녀님이 걔 데리고 갔다 잖아.”

“아그네스 부회장하고 독대라니, 나는 사고 쳐서라도 한번 해보고 싶은데...”

끼리릭

그 말을 듣던 샤오메이가 번쩍 일어나자, 옆에 앉아서 수업을 듣던 조르바는 깜짝 놀라 샤오메이를 바라봤다.

“샤오메이? 갑자기 왜 그래?”

“저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돌아가 볼게요, 도련님! 나머지는 혼자 듣거나 땡땡이치세요!”

벙찐 조르바를 내버려두고 샤오메이는 황급히 강의실의 출구로 향하였다.

믿을 수가 없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다 같이 오라버니를 도와주는 사이에 혼자서 새치기를 하려고 들어?

출구로 빠져나온 샤오메이는 즉시 눈을 감고 자신의 마나를 끌어올려 천천히 넓게 흩뿌리기 시작한다.

공화 연방에서는 무술가의 마나를 기라고 칭한다. 일평생 기를 연마하는 무술가의 마나운용력은, 때로는 마법사의 실력을 초월하기도 한다.

물론 기를 넓게 퍼트린다고 해서 단번에 사람을 찾는 재주는 샤오메이도 아직 배우지 못한 영역이다. 하지만 오라버니 모르게 옷에 붙여둔 신호충의 독특한 마나라면 찾을 수 있을 것 이다.

“제발, 조금만 기다려요 오라버니, 제가 구하러 갈게요...!”

어느새 샤오메이의 머릿속에서 지금 아르틴은 악랄한 황녀에 의해 메챠쿠챠 능욕을 당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물론 샤오메이 자신이 아르틴에게 했던 것이 그 상상에 훨씬 가깝지만, 안타깝게도 샤오메이는 자기객관화가 부족한 상태였다.

“...찾았다!”

아카데미의 안에서 신호충의 마나가 느껴진다. 허나 샤오메이는 아르틴을 찾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얼굴이 급격히 굳기 시작한다.

이내 빠르게 강의실 앞 타일 바닥을 쳐부술 듯이 뛰어오르며, 다급하게 신호충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기숙사라니! 아그네스 황녀의 기숙사라니!’

서둘러야만 했다. 지금은 자신 말고는 오라버니를 구할 수 없었으니깐.

***

나는 혼자 아그네스의 침대에 걸터앉아, 자리를 비운 아그네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의 뒤편에서 좀 더 조용한 곳에서 대화를 하고 싶다던 아그네스는 자신의 방으로 나를 초대해줬다. 얌전히 따라온 나에게 아그네스는 나를 침실로 데려와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옆방으로 들어 간지 10분이 지났다.

다과라도 준비하나 생각한 나는 열띤 감정이 조금 가라앉고 심심함이 밀려와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아그네스의 방을 구경하고 있었다.

골드 클래스에서도 최상위 클래스의 방답게, 아그네스의 숙소는 그 자체로 고급 호텔과 같았다. 기숙사인데 거실이 있고 방은 4개나 된다.

사실 전 회차에 한번 와보기는 했다. 그때 드레스 룸을 처음 보고는 놀란 나를 보고 귀엽게 웃던 아그네스의 얼굴이 새록새록 하다.

‘여전히 취향은 그대로 인 것 같지만.’

은근히 인테리어 사이사이에 들어간 핑크색 디자인의 가구들이나, 책장에 정치와 외교, 역사와 신학에 관한 책 사이에 꽂혀있는 로맨스 소설들.

겉으로는 도도하고 능력 있는 제국의 황녀를 연기하지만, 아그네스는 사실 속옷조차 곰돌이 속옷을 입을 정도로 귀여운 것과 로맨틱 한 것을 좋아하는 그 또래의 여자아이와 다를 게 없다.

‘아니, 곰돌이 속옷은 좀 어린 게 아닌가..’

전 회차에 실수로 내게 속옷을 보였을 땐 사귀기 전이라, 칼을 들고 나를 죽이고 자결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통에 웃음을 참아가며 겨우 달랬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런 부끄럼 많은 로맨티스트인 아그네스니, 조금 기대를 가지고 방을 따라왔지만 반대로 내 기대 속의 야한 전개는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래도, 그 약속을 기억해주니 기분이 좋네.”

내가 저번 회차에서 죽으면서 가장 강렬히 떠오른 건, 멋지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해놓고 아그네스에게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그래서 회귀 하자마자 이 좆같은 세상을 외치며 렉스턴의 뚝배기를 개박살 내버렸지.

“그나저나, 얘는 방에 들어가서 뭘 하는 거야..?”

사람을 초대하고 이렇게 기다리게 하다니, 내가 아는 아그네스답지 않다.

조금 가서 물어볼까?

끼이익.

그때 마침, 방의 문이 열리며 아그네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 아그네스?”

나는 아그네스의 복장에 경악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 어울리나요, 아르틴? 남자들이 이런 복장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방금 전까지 입고 있던 생도복은 온데간데없고, 검정색 란제리에 가터벨트를 찬 채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그 매력적인 몸매를 그대로 과시한다.

핑크색 곰돌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얇은 재질 탓에 살짝 비추는 검정색 망사 속옷만이 남아있다. 하얀 살결과 대비되는 속옷의 배덕감에, 나는 단숨에 샤오메이가 깨웠던 욕망의 아르틴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말이 없는걸 보니 안 어울리나 봐요...?”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속옷이 부끄러웠던 건지, 팔로 가슴을 끌어안듯 가리며 아그네스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아름다운 우윳빛 피부가 루비 같은 눈동자와 같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섹시한 복장의 아그네스라는 것도 충격적으로 매력적인데, 그렇게 입은 채로 나를 보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아니, 정말 아름답고 매혹적인데, 너무 당황스러워서..”

덕분에, 내 작은 아르틴은 흥분을 감추지 않고 바지위로 눈에 띌정도로 팽창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놀라서 황급히 몸을 돌려 가리려고 했는데, 아그네스가 다가와서 그런 나의 손목을 움켜쥔다.

“...만약 새로운 생이라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 없었다면, 저는 더 이상 아르틴을 다시 만날 수 없었겠죠.”

창피함에 손끝이 떨리는 게 내게도 전해지는 데도, 아그네스는 마음을 굳힌 듯 손을 놓지 않고 내 눈을 마주본다.

“그러니 이번에는 솔직해지고 싶어요. 소설 속의 로맨스를 기다리다가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툭, 하고 무언가 끊기는 감각이 느껴졌다.

샤오메이가 나를 유혹했을 때 느꼈던 이성의 끈 끊어지는 느낌.

나는 부끄러움에 떠는 아그네스를 내 품안에 와락 끌어안았다.

“꺄악...!”

“오늘, 전생에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킬게, 아그네스.”

아그네스는 내 품안에 말없이 안겨 나를 잠깐 올려다보곤,

“...조..좋아요 아르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품안에 얼굴을 묻어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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