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머피의 법칙은 늘 틀리질 않더라
* * *
나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토록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그 시궁창 같던 고아원에서도 사고 안쳤고, 학교에서도 좆같은 따돌림을 열심히 견뎌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혼자서 열심히 챙겨보던 하꼬 소설이 결말을 완전히 조져버리자, 댓글로 여태까지 열심히 봐왔는데 실망입니다. 한줄 썼을 뿐이다.
그런데 왠 소설 세계에 빨려 들어온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벌써 햇수로만 20년? 21년? 그쯤 구르고 있다.
‘아니 뭐, 어제는 행복하긴 했는데...’
물론 현실이라면 내가 저런 미인들과 눈도 마주칠 일은 없었겠지. 하지만 내가 호감도 치트를 받은 금태양 주인공으로 빙의한 것도 아니잖아?
‘내 나름대로 이 세계에서도 열심히 살아서 쌓은 호감도니, 거저먹은 것도 아니잖아.’
그럼 결국 이 세계가 내게 준 것은 끊이질 않는 고구마 100배의 사건사고랑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하게 나타나는 나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들뿐이다.
“왜 당신이 조르바님에게 친한 척 하냐고 묻고 있잖아요, 아르틴 루드비히!”
내가 진지하게 고찰을 하고 있는데, 카버인지 하버인지 성도 헷갈리는 무개성한 영애가 나에게 버럭 소리친다.
아니, 그보다 왜 친한 척이냐니.
“왜냐고 물어도, 나랑 조르바랑 친한 거 못 들었어?”
“하! 그건 조르바님이 당신 같은 머저리랑 어울려 주는 거죠, 왕국의 하급 귀족의 버려진 자식 따위를 불쌍하게 여겨 조금 어울려 준걸 친하다고 착각하는 건가요?”
그 말에 나는 순간 눈앞에서 쨍쨍 대는 이 여자의 머리에 ‘전력 꿀밤’이라도 한 대 먹여주고 싶은 생각이 치솟았다.
이 여자가 뭘 안다고 이 따위로 지껄이는 거지?
‘내가 그때 무례를 끼쳤다고, 이따위로 나오는 게 정말로 될 거라고 생각하나?’
아아, 설마 렉스턴은 남자라서 나에게 쳐 맞았지만 여성인 자신은 때리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나?
안타깝게 됐군, 내 주먹은 유니섹스. 남녀평등한 주먹이라는 것을 알려줘야겠다!
“애쉴리 하버양, 잠시만 괜찮습니까?”
내가 주먹을 내질러 이 선 넘는 년의 죽탱이에 꽂기 바로 직전, 말을 잠시 아끼고 있던 조르바가 나와 여자의 사이에 껴들어 왔다.
“어머, 뭔가요 조르바님? 제게 감사를 표하실 거라면 저는 괜찮은걸요.”
마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이 당당한 태도로 미소 짓는 모습에, 나는 속으로 저 여자를 조질 수많은 방법을 떠올렸다.
‘너는 두고 봐라, 죽탱이로는 부족하다... 적당한 빌런한테 던져줘서 존나 고통 받게 해줘야...“
짜악─!
그때, 나와 저 여자 어느 쪽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제 친구이자 의형제에게 끼친 무례는, 이 정도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일을 크게 벌리는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 조르바가, 여자한테 손찌검을 하다니? 그것도 길 한복판에서??
“...지, 지금 이게 무슨...”
맞은 당사자인 저 하버 가문의 영애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건지 말을 더듬으며 눈앞의 조르바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만으로도 나는 조르바가 무척이나 화가 났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앞으로는 서로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애쉴리 하버양. 제가 하버양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품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 인가요 조르바님! 전부터 제게 호감이 있다고 말씀해 주신 건 조르바님이잖아요!”
“가자 아르틴, 오늘따라 샤오메이도 늦는데 너랑 수다나 떨어야지.”
“어? 어.. 알겠어.”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영애를 무시하고, 나보고 따라오라며 상쾌하게 웃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이거 여성향 소설에서 많이 보던 전개인데?’
아니, 혹시라도 착각은 하지 말자. 조르바는 원래부터 의리가 깊은 편이고 내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에게 대신 화를 내주곤 했다. 뺨을 때린 건 조금 예상 외여서 그렇지.
그것도, 안 그래도 나를 의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의심하고 있는 와중에도 이렇게 의리 챙기는 모습을 보니 역시 사나이의 우정은 사랑과는 다른 끈끈함이 있다.
...사실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 여자 좋아하는 녀석이 사실 동성애자라는 좆박은 전개는 있을 수 없다. 애초에 그랬으면 샤오메이가 나에게 경고 해줬겠지.
“도와줘서 고맙다 조르바, 너 아니었으면 내가 한 대 때렸을 것 같았는데.”
“하하, 그럴 것 같더라고,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말라고 소문까지 내줬는데도 저렇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이 다 있네.”
“그 이상한 소문 때문에 내 평가가 나빠져서 그런 게 아니고?”
“피투성이 광인이라는 소문이 싫었으면, 결투 때 피를 뒤집어 쓴 채로 렉스턴을 두들겨 패는 건 관뒀어야지?”
젠장, 의표를 찌르는 말에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더 이상 소문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아르틴, 샤오메이가 어제부터 안 보이는데, 혹시 어디 갔는지 알고 있어?”
흠칫, 갑자기 찌르고 들어오는 비수 같은 질문에 나는 당황을 겉으로 드러낼 뻔 했다.
어제 샤오메이와 있었던 일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어제라고는 해도 오늘 새벽까지 엄청 해댔으니 그 기억은 선명하다.
“글쎄, 나는 어제 아그네스 황녀님한테 불려가서 잘 모르겠는데?”
나는 일단 날 의심하는 녀석이 알법한 알리바이를 대면서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사실대로 말하는 게 당장에 부끄럽기도 하고, 언젠가는 조르바에게 회귀를 털어놓을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회귀는 아는 사람이 적은 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 샤오메이가 너 없어서 찾다가 나간 것 같던데.”
다행히 녀석도 그런 내 알리바이를 알고 있었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이상해할 뿐이다.
아니,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묻는 게 더 치밀하다고 생각이 든다. 샤오메이가 귀띔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녀석에게 추궁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침 조회시간에는 오겠지, 안 오면 나도 같이 찾아줄게.”
“그래야지,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녀석이니깐 걱정은 잘 안 되지만, 샤오메이도 여자아이잖냐 아르틴.”
그렇게 말하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조르바를 보고 있으니, 왠지 회귀에 대해 숨기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아직 기억을 찾는 조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데, 역시 함부로 떠벌리고 다니는 건 시기상조겠지.
“그나저나, 어제 저녁까지도 안보이던데. 아그네스 황녀님하고 그렇게 오래 대화한 거냐?”
“아아, 뭐..결투에 관해서 훈계 좀 듣고, 어떻게 단시간 내에 강해진 건지, 혹시 위험한 힘에 손 댄 건 아닌지, 뭐 그런거 대화하다 보니깐 길어졌더라고”
무슨 대화 주제가 하나 하나가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인 주제만 나오는지 모르겠다.
“아, 곧 있으면 조회 시작하겠다! 뛰자!”
“응? 아직 시간은 널널하잖아. 서두르지 않아도 충분할 것 같은데?”
“아니야, 나가서 세니아 선생님에게 말씀 드릴 것도 있어서 서둘러야해!”
더 이상 대화주제가 이상한 곳으로 새지 않게, 나는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따라오는 조르바를 뒤로 한 채 황급히 교실로 뛰어올라갔다.
끼이익─!! 콰당!
“으앗!”
조르바를 피해 서둘러 문을 열고 교실 안으로 뛰어 들어가던 나는 누군가와 부딪혀 넘어졌다.
“이런, 괜찮아 아르틴?”
정작 같이 부딪힌 사람은 넘어지기는커녕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멀쩡히 서서는 내게 손을 내민다.
“아, 괜찮아. 혼자 일어날 수 있...어..?”
“다행이네, 안 다쳐서.”
“정말! 앞은 똑바로 보고 다녀야지 두 사람!”
손을 내저으며 혼자 일어나려던 나는, 부딪힌 사람이 카이엔이라는 사실에 조금 어이없게 녀석을 올려다봤다.
‘어제는 그렇게 눈도 안 마주치더니, 오늘은 나랑 부딪혀?’
“미안, 클레어의 이야기에 집중하다가 신경을 못 썼네.”
“내 핑계는~! 카이엔은 맨날 툭하면 정신이 딴데 팔리니깐 조심해야 한다고 내가 매번 말했지!”
카이엔 이 자식, 너스레를 떨면서 사과해오지만 이 치트계 주인공 녀석이 내가 들어오는 걸 못 알아챘을 리가 없다.
‘나랑 밀당이라도 하자는 거야 뭐야?’
뭐, 아무래도 좋다. 이 녀석에게는 확실히 물어볼 게 있으니깐.
“카이엔, 안 그래도 너랑 만나서 대화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조회시간 끝나고 대화 좀 할 수 있을까?”
“어라? 카이엔이랑 아르틴, 아니 루드비히 군이랑 아는 사이야?”
만나자는 내 말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조금 들뜬 표정으로 나와 카이엔을 번갈아보는 클레어의 말에 카이엔은 자연스럽게 내 옆에 서서 어깨동무를 해왔다.
“뭐. 꽤 친하다고 볼 수 있지. 그렇지 아르틴?”
“응? 응...그, 그렇지? 친하지.”
“헤에~ 두 사람이 친한 사이였구나! 전혀 몰랐어! 카이엔은 나한테 아르틴 이야기를 한 번도 안했잖아?”
“하하, 사정이 있어서 그랬지.”
카이엔은 클레어의 말에 능숙하게 받아치며, 이전에도 잘 안 보여줬던 친밀한 태도로 나에게 친근하게 굴고 있다.
‘이 녀석도 4회차 기억을 다 받아서 내적 친밀감이 올라가기라도 한 건가?’
아마 이 가설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무뚝뚝한 고구마 줄기 같은 녀석이 분위기에 맞춰준다는 고급 스킬을 쓸 리가 없으니깐.
“그런데 되게 친해 보인다! 나는 카이엔이 이렇게 편하게 대하는 사람 처음봤어!”
“뭐, 사실 엄청 친한 편이지. 친구를 넘어서 파트너라고 할까. 그렇지 카이엔?”
나도 그런 녀석의 연기에 우선은 어울려 주기로 했다. 조지는 건 다음 회차에 하더라도 이 녀석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는 게 가장 급선무다.
“하하, 그렇지. 파트너...였지. 그런데 잠깐.”
내 말에 나긋하게 웃으며 대답하던 카이엔은 갑자기 무표정한 얼굴로 내 쪽을 바라보며 정색하기 시작한다.
아니, 무표정하다기 보다는 화라도 난 것처럼 보이는데...원체가 표정이 적은 녀석이다 보니 표정을 읽기도 힘들다.
‘갑자기 왜 이래 이 자식?‘
킁. 킁.
날카로운 콧대를 찡긋 거리던 녀석은, 이내 아주 싸늘한 눈빛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여자냄새.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
“?!?”
뭐야 이 자식, 목욕까지 하고 왔는데 어떻게 목욕까지 하고 왔는데 알아차린 거야?
‘그보다 여자 냄새를 어떻게 구분해? 그것도 사람 수 까지?’
원작에도 이런 능력은 보여준 적 없다. 아니, 여태까지 회귀 동안 이런 모습은 처음인지라 엄청 당황해 하고 있는데, 카이엔 녀석이 어깨동무하던 내 어깨를 꽈악 움켜쥐며 나를 강렬히 마주본다.
“아르틴, 너 설마 여자랑 잔거야? 그것도 둘이나?”
“에엑?!? 루드비히씨가 여자랑 잤...동침 했다고?!”
“뭐? 아르틴이 여자랑 뒹굴었다고?!”
카이엔이 서리가 낀 것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나를 추궁하자, 옆에 있던 클레어가 놀라서 교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곧 이어서 나한테 다가오던 조르바가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소리친다.
털썩.
“아, 아르틴? 이게 무슨 소리니?”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조르바의 뒤쪽에는 출석부를 떨어트린 채로 경악한 세니아 선생님이 나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니...이런 시발..’
왜 뭐만 하면 지뢰가 터지는 거지? 이런 전개 지겹지도 않아???
나는 이 좆같은 세계의 거지같은 클리셰에 눈앞이 깜깜해져가는 감각을 만끽해야만 했다.
***
“정말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무례해요, 어떻게. 숙녀의 뺨을 때리다니..! 펠카스 그 남자도 그렇게 안 봤는데..!”
한편, 학교의 앞에서 혼자 남겨져있던 애쉴리 하버는 방금 겪은 일에 대해서 엄청난 모멸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어린 시절, 고급 철의 원산지로 잘 나가던 하버 백작가문은 당주의 유일한 외동딸을 왕국의 굴지의 가문중 하나인 와이즈 백작가의 장남, 렉스턴 와이즈와 약혼을 맺게 하는 데에 성공했다.
비록 가문은 동생 내외가 이어 나가겠지만, 가문의 입장에서 보면 강대한 와이즈 가문과의 혼약은 대대적인 경사였다. 물론 애쉴리 하버 본인은 어린 시절 그런 정치적인 이야기는 잘 몰랐지만, 동화속의 왕자님처럼 아름답게 생긴 렉스턴을 보며 해당 약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몇 년 전 하버 백작가의 철광산이 마르고 나자, 와이즈 가문은 해당 약혼을 거의 일방적으로 파기시켰다. 가문은 세를 잃었고, 몰락한 하버 백작은 편집증에 걸려 오로지 가문을 되살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애쉴리, 네가 렉스턴 와이즈 그 애송이를 꼬셔야한다. 너와 그 녀석은 어린 시절 사이도 괜찮았으니, 가능성은 충분하다...!”
애쉴리 하버는 입학 며칠 전, 아버지에게 몇 번이고 당부 받은 내용을 잊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라면 또래의 남자 아이정도는 얼마든지 꼬실 수 있을 거라고 자신감도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단 꿈은 입학 하루 만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아르틴 루드비히라는 시골 동네의 하급 귀족의 삼남 따위가 렉스턴을 입원 시킨 탓에 애쉴리는 렉스턴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관계자만이 면회가 가능하다는 병동에, 전 약혼녀라는 직함은 먹히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 하급 귀족의 자식은 주제도 모르고 렉스턴을 공개적으로 박살내기까지 했다. 가문의 유일한 부흥 방법이었던 렉스턴 유혹이 수포로 돌아가자, 애쉴리 하버는 사적인 감정을 담아 작전을 변경했다.
바로 공개적으로 아르틴 루드비히를 지속적으로 깎아내려, 와이즈 가문에 호감을 사는 일이었다. 유일한 후계자가 망신을 당한 지금, 와이즈 가문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귀족이 하나라도 아쉬울 상황이 분명했다.
계획은 어느정도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평민 여자아이를 하나 친구라며 꼬셔, 하급 귀족의 자식에게 부딪히게 만들어 학교에 나쁜 소문이 돌게 큰 망신을 주었다. 제국의 황녀가 나서지만 않았더라면 100% 커다란 성공을 거뒀을 터.
“두고 봐요, 제가 너희 두 사람을 박살내버릴 테니까요...!”
바닥을 잘근잘근 짓이겨 밞으며, 애쉴리는 복수를 다짐했다. 특히 조르바 펠카스는 더더욱 참을 수 없었다. 공화연방의 잘나가는 상단의 후계자라 좀 어울려 주려고 했더니, 주제도 모르고 자신에게 손찌검을 했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는 무례였기 때문이다.
“아르틴 루드비히는 협박과 폭행, 조르바 펠카스는 폭행과 모욕죄 까지 얹어서 학생회에 처벌을 요구하면 안 그래도 나쁜 아르틴 루드비히의 평판에 조르바 펠카스까지 엮어 넣을 수 있겠죠!”
자신은 그 모습을 보며, 다음 계획을 여유롭게 준비하면 된다.
그렇게 자만하던 애쉴리는 자신의 등 뒤로 다가온 사람을 눈치 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정말, 어릴 때나 지금이나 뇌만 청순한 건 여전하네, 하버가의 애새끼.”
“하? 지금 누구입니까? 감히 저한테 그런 모욕적인 발언을 한 건?”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모욕적인 언사에, 가뜩이나 날이 서 있던 애쉴리는 버럭─소리를 지르며 뒤를 돌아봤다.
꽈아악!!
“우웁! 웁!”
“정말, 당신같이 건방진 애새끼가 건드릴 사람이 아니라고요. 아르틴 루드비히님은 말이죠..?”
자신의 입을 움켜쥐어 틀어막은 채로 자신을 들어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자, 애쉴리 하버는 놀라서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입이 막힌 탓에 그러지 못했다.
“잘 알아둬, 건방진 애새끼. 두 번 다시 아르틴 루드비히님의 곁에 알짱거리면, 내가 널 죽여버릴 테니깐, 그 잘난 보지 놀려서 다른 애새끼나 꼬셔. 알겠어?”
“읍!읍!....으읍...”
입이 막히고도 네까짓 게 뭔데 감히─라고 외치려던 애쉴리는 자신의 목을 향해 번뜩이는 레이피어의 칼날에 반항을 멈추고 마른 침을 삼켜야만 했다.
“내가 알겠냐고 묻잖아. 보지 팔이 창녀야.”
나지막이 속삭이는 여인의 목소리에는 명백히 거부한다면 자신을 죽여버리겠다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애쉴리는 그런 살기에 대항할 담력을 지니지 못했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좋아, 이제 3초안에 꺼져, 하나, 둘.”
애쉴리는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입을 움켜쥔 손을 놓고 숫자를 세기 시작하는 여인의 경고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네발로 기어서 학교 안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추한 애쉴리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여인은 만족한 듯 레이피어를 검집에 집어넣고는 학교를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후후, 잠시만 기다리세요. 버림받은 제게 손을 내밀어준...유일한 은인. 당신의 곁에 꼭 비집고 들어 갈 테니깐...”
아르틴 루드비히, 그 달콤한 이름을 입안에서 굴리는 것으로 갈색 머리의 여인은 쾌감을 느끼며 전신을 부르르 떨며,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