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학생의 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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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기숙사의 침실 창문은 전부 남향으로 나있다. 과도한 과제와 공부로 인해 방에 틀어박힌 적지 않은 학생들이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한 학교의 배려다.
물론, 남향으로 난 창문에는 늦잠을 잤을 시 얼굴을 비추는 따사로운 햇살로 자신이 지금 얼마나 좆됐는지를 곧바로 알려주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아그네스의 침실에서 푹 자고 있던 두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전생에 몇 번이고 카이엔에게 중요한 순간을 방해당한 기억이 있던 아그네스는, 기억을 되찾고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이 외부에서 꿰뚫어 볼 수 없는 암막커튼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덕분에 샤오메이가 창밖에서 숙소 내부를 들여다보지 못했으니 성능은 이루 말할 것도 없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지만, 밤이 지난 지금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햇빛이 조금도 비추지 않는 방안에 광원이라고는 은은한 촛불하나, 밤새 성행위를 즐긴 두 사람에게는 숙면을 취하기에 딱 좋은 조명인 것이다.
샤오메이가 간신히 숙면의 늪에서 빠져나와 잠에서 깰 수 있던 건 오로지 무술을 훈련하기 위해 몸에 베여있던 생체시계 때문에 강제로 눈이 떠졌기 때문이다.
“하아암...아직 밤 인가아..?”
하지만 아직 잠에 취해있던 샤오메이는 지금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자신의 침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아그네스와 마찬가지로 골드 기숙사를 사용하는 샤오메이에게는 최고급 제국제 가구로 꾸며진 방의 구조는 언뜻 보기엔 자신의 방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으음, 몇 시인지 모르겠네.”
시계를 보려고 했지만 새벽까지의 즐거운 시간 탓에 피로가 누적되어 있던 샤오메이는 그냥 시간을 확인하는 것을 쿨하게 포기하고는 옆에 누워있는 아르틴을 끌어안으며 누웠다.
‘헤헤..나도 참, 어제는 너무 적극적 이었나봐!’
눈을 감으면 어제의 격렬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르틴 오라버니를 찾아 나선 후부터 뭔가 기억이 온전치가 않다. 아마 너무 화가 나서 그랬을 테고, 발정기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수인의 피가 섞인 사람은 누누이 발정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었으니.
하지만 그런 사소한 기억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르틴 오라버니가 자신을 사랑해준다고 말했던 것, 둘이 마주 껴안고 사랑을 나눴던 것, 그런 사실만은 잊지 않고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고 있었으니깐.
“...형니임, 주무시고 계세요?”
문뜩, 옆에 있는 아르틴 오라버니와 꽁냥대고 싶어진 샤오메이는 자고 있는 아르틴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꾸욱, 꾸욱.
마치 여자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운 옆구리, 요즘에야 운동을 하면서 점점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지만 옆에서 보기에 아르틴 오라버니는 아직도 여자처럼 여리여리하고 곱상한 미소년이었다.
“으으응...“
“히히, 안 일어나며 마구 장난칠검다!”
콧소리를 내며 아르틴이 허우적거리자, 장난기가 붙은 샤오메이는 와락 품에 안기며 아르틴의 몇 안 되는 신체의 단단한 부분인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물컹!
‘어라, 물컹?’
그런데, 단단하게 붙기 시작한 가슴근육이 있어야 할 자리에,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부드러운 감각이 느껴지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 샤오메이는 낯선 감각에 얼굴을 부비적거리자, 자신의 볼살을 부드럽게 감싸오는 탄력 있는 출렁임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오...오라버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설마 인생을 반복해서 사는 것도 모자라서 하루아침에 여자라도 된 건가?
화들짝 놀란 샤오메이는 침대 옆에 은은하게 켜져 있던 등불을 들어 아르틴을 향해 가져다 비췄다.
“으응...벌써 아침인가요 아르틴..?”
샤오메이가 옆을 확인하자, 방금 전까지 자신이 껴안고 애교를 부렸던 사람이 누워있는 자리에는 붉은 머리의 미소년이 아니라 은발을 찰랑이며 눈을 부비는 아름다운 미녀가 누워있었다.
“꺄아아악! 오라버니가 여자가 되었다!!”
“으아앗?!? 당신 누구에요?!?”
두 여자가 잠에서 깨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이 늦잠을 잔 것을 알게 된 것은, 5분 가까이 야단법석을 떨고 난 후였다.
***
“그러니깐, 그냥 카이엔이 야단을 떨었다는 소리지?”
고요한 상담실, 나는 오늘도 얇은 로브로 위험한 폭발력을 지녔다고 해도 무방한 몸매를 간신히 숨기고 있는 세니아 선생님과 마주보고 앉아있다.
묘하게 풍기는 하프 엘프 특유의 부드러운 채취는 기분 좋게 방안을 채우는 기분이었다.
‘안 되겠어, 자꾸 눈이 선생님 몸매로 향하게 되잖아.’
이전에도 힐끔힐끔 몰래 쳐다보긴 했으나, 여자의 맛을 알아버렸다고 해야 하나?
그 기분좋은 감각을 알아버린 나는 자꾸 현실에서 봤던 여선생과 제자.AVI 같은 기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듣고있니, 아르틴?”
“아, 네네.. 카이엔이 야단 떤 게 맞아요 선생님.”
나는 최대한 시선을 책상으로 내리깔고 있다가, 세니아 선생님이 내 양쪽 뺨을 잡고 자신과 마주보게 들어 올리자 화들짝 놀라서 대답했다.
아니, 저번에도 그렇고 이 선생님은 스킨쉽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게 없는건가?
‘샤오메이야 친한 사람한테만 그런다지만, 이 선생님은 그냥 천성이 스킨쉽이 편한 건가?’
어쩌면 하프엘프라는 종족이 정말로 사회적 통념처럼 선천적으로 야한 종족일지도 모른다.
저번에 늑골 부러트린 값도 있겠다. 들이대볼까도 생각했지만, 역시 두 사람이 아른거려 그런 나쁜 짓 까지는 안하기로 했다.
“나참, 선생님이 그걸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카이엔도 무슨 그런 오해를 한다니!”
“그러게나 말이에요, 애초에 저는 내내 훈련하느라고 바빠서 어디 놀러가지도 못했는데.”
그 말에 세니아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다.
그야 의심하고 싶어도, 이제 막 1써클 마법사였던 신입생이 3주 만에 제국 기사 출신을 상대할 정도로 강해지려면 훈련에 얼마나 미쳐야할지 교육자의 입장이라면 견적도 나오지 않을 거다.
사실,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여자에 빠진다는 말이 있고, 내 곁에는 늘 샤오메이가 있었지만. 실제로 나는 훈련 중에는 내내 건들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는 떳떳했다.
“그래, 선생님은 아르틴을 믿어줄게, 선생님이 무조건 아르틴 편 들어준다는 약속 지키는거 기억해줘?”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렇게 말하며 윙크를 해오는 선생님은 연심이 없는 내가 봐도 남자를 홀리는 끼라는 것을 타고난 사람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뜩 다른 사춘기의 혈기왕성한 같은 반 남학생들이 불쌍해졌다.
아니, 남학생들의 상상에선 허리가 부러져라 구르고 있을 세니아 선생님이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맞다, 그리고 결투를 직관한 다른 교수님들이 아르틴한테 엄~청 관심 보이고 있거든? 혹시 관심 있는 수업이나 개인 수업 받아보고 싶은 생각은 없니?”
“네? 개인 수업이요?”
“그래! 타고난 마나나 육체에 대한 자질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감각이나 힘을 다루는 기술은 하늘이 내려준 천재라고 다들 얼마나 칭찬하는 줄 아니? 그 소심한 헬릭 교수님도 관심을 보였어!”
갑작스럽게 나를 칭찬하며 개인 수업을 말하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조금 겸연쩍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헬릭 교수님이 2회차 당시에 엄청 잘 가르쳐주긴 해주셨는데.’
아직도 기억난다.
1회차 당시에 낯선 세계에서 진짜 생으로 굴러서 ‘생존’만 죽어라 했다.
덕분에 아직도 집중만 한다면 감각을 날카롭게 키우는 법은 익혔지만, 당장에 2회차를 시착했던 나에게는 별 쓸모도 없는 기능이었다.
날아오는 칼을 알아채면 뭐하나? 피할 방법도 쳐낼 방법도 모르는데.
그래서 당시에는 주인공 옆에 붙어서 기연 따라가려고 온갖 네임드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쳐달라고 빌었다.
‘그러니, 당연히 관심을 가질 만하지.’
처음 보는 뉴비가, 자신의 기술이 일부 섞인 동작으로 몇 배, 아니 몇 십배는 강한 상대를 이긴다? 나라도 못 참고 찾아와서는 대학원생으로 만들어 버릴게 분명했다.
“어때, 개인 수업 받아볼 의향 있어? 아르틴이 관심 있다면 선생님이 최대한 도와줄 수 있는데!”
내게 더 좋은 교육을 받아볼 생각 없냐는 선생님의 권유에는 절절한 진심이 느껴졌다.
‘역시, 낯설단 말이야. 이런 좋은 선생님은.’
내가 알고 있는 선생님들은, 내게 무관심 하거나,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의 편을 들면서 촌지나 받아먹는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뿐 이었다.
그런데 이 세계 선생님들이나 교수들은 대체로 좋은 교육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개중에는 현실의 선생들보다 더하거나, 혹은 완전히 빌런화가 예정된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음, 이번 회차에는 세니아 선생님을 살려볼까?’
파란색의 아름다운 눈을 반짝이며 가슴과 고개를 들이민 채 나를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세니아 선생님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 회차들에서는 마치 운명이 세니아 선생님의 죽음을 원하는 듯, 별의 별 이유로 죽었지만, 내가 곁에 두고 있으면서 케어하면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하나 선생님에게 요구할만한 일이 생각났다.
“그러면, 저 개인 수업을 하나 받고 싶은 게 있는데..”
“어머! 뭘 배우고 싶니? 헬릭 교수님에게 검술? 야마토 교수님에게 고무술은 어떻겠니? 아니면 세르반테스 교수님에게 원소 마법은 어때? 말만 해! 선생님이 교수님들하고 엄청 친하거든~!”
내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세니아 선생님은 기쁜 듯이 웃으면서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두 번 두드린다.
그 탓에 그 커다란 폭유가 로브 위로도 선명히 보일정도로 크게 출렁여, 참으로 즐거운 광경이었다.
“저는 그럼 세니아 선생님한테 연금술을 배우고 싶어요.”
“그래, 세니아 교수님한테 연금술을 말이지! 선생님이 잘 말해 둘게! ...어머, 나?”
아카데미에서도 손꼽히는 교육자들 사이에서 자신이 지목되자, 세니아 선생님은 예상도 못했는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선생님도 물론 대단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긴 했지만, 다른 주교수님들에 비하면 그리 대단하지도 않을 텐데...”
물론 저 말은 사실이었다. 연금술이라는 과목만 한정해도, 세니아 선생님보다 대단할 교수들은 분명히 존재했으니깐.
아니, 그보다 이 아카데미에 있는 교수들 중 누구보다도 내가 연금술이라는 학문에서 뛰어날 거라고 나는 스스로 자부할 수 있다.
“아니에요, 이번에 시온 이드리스에게 이길 수 있던 것도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포션과 영약 덕이 컸는걸요? 게다가 얼굴도 모르는 교수님들 보다, 저는 세니아 선생님에게 배우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하는 계획에는 꼭 세니아 선생님이 필요했다. 그런 만큼 최선을 다해서 선생님을 띄워주자, 세니아 선생의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그러니? 물론 선생님이 부탁받은 물약을 엄청 열심히 만들기는 했지! 응! 물론 아르틴이 알려준 레시피도 대단했지만, 그 레시피는 엄청 정확하고 섬세한 제작과정을 요구하잖니? 선생님도 매일 퇴근하고 3시간씩 투자해서 겨우 만든 거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선생님을 보고 있자니, 거의 다 넘어왔다는 확신이든 나는 선생님의 두손을 마주잡았다.
내가 갑자기 스킨쉽을 해올지 몰랐는지 놀란 선생님에게, 나는 초롱거리는 얼굴을 연기하며 마무리를 시작했다.
“저, 이번에 이기고도 엄청 욕먹고 손가락질 받아서, 사실 등교하기도 싫었거든요. 그래도 세니아 선생님이 곁에서 응원해주신 덕분에 이렇게 학교에 나올 수 있었어요...! 그러니, 꼭 선생님에게 배워서 자신감도 되찾고..학교생활도 잘하고, 친구도 잘 사귀고 싶어요!”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교직에 큰 열정이 없거나 경험이 많아 이런 부탁을 빠져나갈 수 있는 교육자였다면 먹히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제 막 임관한 탓에 열정은 가득한데 경험과 노하우는 적은 세니아 선생님은, 이런 나의 열렬한 어필 자체가 기쁜 건지, 꽃이 만개하듯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우왓?!”
“어쩜 이렇게 기특한 말만하니! 선생님은 완전 감동이야!”
그러더니, 내 강렬한 어필에 호응하듯 나를 있는 힘껏 끌어안으며 방방 뛰며 기뻐하기 시작했다.
출렁출렁. 몰캉몰캉.
샤오메이의 몸이 무술로 탄력을 유지한 폭유, 아그네스의 몸이 매끈한 균형 잡힌 스타일이었다면, 이 부드러움 으로만 이루어졌다고 해도 믿을 압도적인 풍만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크다.. 도대체 얼마나 큰거야..? 샤오메이도 비현실적인 크기인데 이건..’
문뜩, 이 세계가 판타지 세계라는 체감이 확 느껴졌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인스타 1억 팔로우도 노려볼 만한 미인에게 이렇게 안겨있을 수 있다니.
이 거부할 수 없는 행복에, 나는 조용히 순응하여 몸을 맡겼다.
‘절대 바람은 아니니깐 괜찮아. 그렇지 샤오메이, 아그네스?’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두 사람도 분명 이해해 줄 것이라 믿으며, 나는 커지려는 작은 아르틴을 억누르며 이 순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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