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유니콘은 살아있다.
* * *
햇빛을 받아 찰랑이는 백색 갈기, 마치 모든 걸 꿰뚫어 보는 지혜로움을 머금은 두 눈동자는 그 자태를 마주하는 이 자리의 모든 학생들을 감동시킬만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게 유니콘...!”
“엘프들 중에는 평생 유니콘과 계약하며 싸우는 기사들도 있다면서?”
“저 영롱한 유니콘의 자태를 봐...! 너무 아름다워..!”
학생들은 유니콘의 고귀한 자태에 웅성거리며 감탄을 터트리고 있다.
하지만 순진한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유니콘의 인성, 아니 마성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긴장에 입이 마르기 시작했다.
“자자 주목! 여기 이 유니콘께서는 아카데미 학생들 중 계약에 적합한 사람이 있나를 살펴보고, 또 신수라는 존재들에 대해 직접 보여주기 위해 아카데미에 오셨어요.”
신비생물학과 카르멘 교수가 학생들을 조용히 하며 유니콘을 소개하자, 유니콘은 그 소개에 호응하듯 여사제들의 손길을 천천히 뿌리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사실 이건 소설에서도 고정된 이벤트긴 했다. 아카데미에 매년 쓸 만한 계약자를 찾기 위해 남부교단에서는 자신들의 사제와 대리인들을 아카데미에 보낸다.
‘기업에서 대학교에 기업설명회 하는 느낌이지 뭐.’
“아아...너무 아름다워!”
그때, 그런 아름다운 자태에 홀리기라도 한 건지, 한 여학생이 뛰쳐나와 유니콘의 몸에 다가간다.
“앗! 교수님 알마가 유니콘를 향해 뛰쳐나갔어요!”
“괜찮아요, 지켜보세요.”
그런 돌발적인 행동에도, 교수도 여사제도 놀라는 반응 없이 웃으며 상황을 지켜본다.
오직 대부분의 학생들만 긴장한 상황, 자신의 앞에 다가온 여학생을 유니콘은 빤히 내려본다.
우웅!
“저길 봐, 유니콘의 뿔이 빛나고 있어!”
유니콘은 뿔에서 새하얀 빛을 여학생을 향해 뿜어내자, 여학생은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다.
“네에..뭐라고요..? 쓰다듬어도 괜찮다고요?”
아마도 정신감응 능력을 이용해 여학생에게 텔레파시를 보낸 거겠지.
여학생이 머뭇거리면서도 천천히 머리를 향해 손을 뻗자, 유니콘은 얌전히 머리를 숙여주며 여학생의 손길을 받아들인다.
마치 동화속의 공주님에게 머리를 숙이는 모습 같은 광경.
짝. 짝짝. 짝짝짝짝짝짝!!
그 아름다운 광경에 어느 학생이 박수를 치자, 주변의 학생들이 다 같이 박수를 쳐준다. 그제서야 얼굴이 빨개진 여학생은 호다닥 친구들이 있던 장소로 돌아간다.
‘진짜 놀고들 있네.’
저 여학생이 홀린 듯 앞으로 나온 건, 아마 유니콘과의 계약에 적합해서일터.
유니콘의 뒤에서 여학생을 탐스럽게 쳐다보는 여사제들의 눈빛으로 봐서는, 아마 며칠 후에 온갖 입 발린 소리 끝에 남부 교단 초원 사제의 신입으로 스카웃 해갈게 분명하다.
“저도! 저도 만져보겠어요!”
그때, 여학생이 유니콘을 쓰다듬는 모습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한 여학생이 자신감 있게 뛰쳐나와 성큼성큼 유니콘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 조졌다 이거는.’
“어라? 형님?”
내가 황급히 마나를 끌어올려 나와 샤오메이를 부드럽게 감싸자, 샤오메이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조르바는 괘씸하니 냅둬야지.
“잠깐, 함부로 다가가면 안...”
[[갈!!!!!!]]
교수가 여학생을 만류하려던 찰나, 나와 샤오메이, 그리고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머리를 붙잡고 휘청거렸다.
그 이유는 정말 알기 쉽다. 유니콘이 말의 얼굴로 낼 수 있는 가장 화난 표정을 지으며, 그 뿔이 검붉게 빛나고 있었으니깐.
[감히 20살도 안되서 처녀막을 뚫린 더러워진 비처녀 계집이 본좌를 손대려 하는가!!]
“엣...아악...그마안..죄송해요..!!”
역시나, 방금 튀어나온 여학생은 심기체가 처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확실하게 처녀를 잃은 비처녀라면 유니콘의 반응은 예상가능하다.
강렬한 정신적 연결로 인해 유니콘의 순수한 분노에 대면한 여학생은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엉거주춤 뒤로 기어가며 물러나기 시작한다.
“자자, 유니콘님! 애가 몰라서 그런 거니깐 너무 화내지 말아주세요!”
카르멘 교수님이 나와서 유니콘을 쓰다듬자, 유니콘은 강하게 콧바람을 내뱉으며 검붉게 빛나던 뿔을 잠재운다.
‘저저 시발, 처녀에 미친 말 새끼. 또 심술보가 지랄났구만.’
저 미친 말새끼는 내 예상을 한 치도 빗나가지 않는다. 처녀에 미치고 처녀에 환장하고 처녀를 위해 살아가는 그 부분은 내가 아주 지긋지긋 하게 알고 있다.
아니, 나보다 더 잘 아는 존재는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2회차 때 존나게 당했으니깐’
경험도 적었고 아카데미 생활에 익숙치 않았던 2회차 당시.
나는 카이엔을 뒤 따라가기 위해 힘을 필요로 했고, 교수님들의 교육을 최대한 주워 담으며 죽어라 굴렀지만, 아직 극한의 훈련법에 익숙치 않았던 나는 도저히 카이엔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때, 카이엔 이 망할 새끼가 추천해 준 것이 바로 계약을 통한 강화였다.
나는 자신이 계약을 중계해주겠다는 카이엔의 말에 혹해서, 당시에도 아카데미에 와있던 저 미친 망아지, 37대손 순혈 유니콘 ‘유니코르’랑 계약했었다.
‘그때는 몰랐지, 미친 처녀충 하고 계약하면 제대로 된 연애도 힘들다는 걸’
과거에는 처녀를 위협하는 금태양, 여자들을 타락시키는 포주, 여성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창녀들을 습격하여 몬스터로 취급받던 유니콘들은, 마왕군의 등장으로 시대가 바뀌자 행동 방침을 바꾸기 시작했다.
처녀인 척 남자들을 홀려 여성들의 존엄성을 깎아 내리는 서큐버스, 순진한 처녀들을 꼬셔 비처녀로 타락시키는 인큐버스, 그리고 금태양과 비처녀들을 사냥할 것을 천명으로 삼아 인간에게 성스러운 힘을 나눠주기 시작한 유니콘은 몬스터에서 신수로 신분이 수직상승 한 것이다.
물론 계약자 본인도 오로지 처녀만을 숭배해야 하며, 비처녀와 말이라도 섞으면 정신감응으로 개지랄을 하는 탓에 대부분의 유니콘의 계약자는 정신병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연애? 처녀한테도 무슨 말만 했다 하면 심기체 중 뭐가 미달이라고 꽥꽥 대는데 집중이 되겠나. 그래도 나중에는 정신감응 저항력을 올려둔 덕에 썸은 좀 타긴 했다만.
‘생각해보니 그것도 카이엔 그 새끼가 나 여자하고 잘되는 거 막으려고 견제 친 건가?’
나는 힐끔 저 멀리서 유니콘의 머리를 쓰다듬는 카이엔을 보았다.
“노, 놀라워요! 유니콘은 아무리 순결한 남자라도 계약자가 아니라면 만지는 것은 무리인데, 유니콘을 만지다니요!”
카르멘 교수의 말에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놀라자, 클레어는 자기가 칭찬이라도 받은 듯이 뿌듯해 하는게 보인다.
물론 저것도 원작에서 있는 설정이다. 신수들과 정령에 대한 친화력이 남다르다고 했던가?
[[네 이놈, 네 녀석은 체는 처녀일지라도 심과 기가 탈락이거늘 어딜 다가오느냐!!!]]
“형님 저희 진짜 어떻게 함까..! 조르바 도련님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이쪽을 보고 있슴다..!”
또 다시 다른 여학생을 호통 치는 유니콘을 보고, 샤오메이가 벌벌 떨면서 나를 향해 속삭이며 묻는다.
‘나도 답 없는데.’
저 미친 망아지는 계약자였던 나도 통제가 불가능 했는데, 회귀한 지금은? 무리지.
이거 결국 조르바한테 말하고 넘겨야 하나? 라고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안녕 아르틴? 너도 이 수업 들으러 왔구나??”
고개를 돌리자,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바이올렛이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서있었다.
“안녕 바이올렛, 너도 이 수업 듣는 거야?”
보통 바이올렛은 이 시간에 마법의 역사학 같은 재미없는 수업을 듣곤 했던 터라. 나는 굉장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내 물음에, 바이올렛은 조금 상처받은 얼굴로 손가락을 꾸물거리며 나를 힐끔힐끔 바라본다.
“..저기, 어제 약속..혹시 잊은 건 아니지? 무슨 일 있던 거지?”
아. 맞다.
“꽤 기다렸는데 아무도 안 오길래,..그, 전에 말한 빌런이란 거나, 카이엔 관련해서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아, 그게 말이지..”
좆됐다좆됐다좆됐다좆됐다좆됐다좆됐다좆됐다좆됐다좆됐다좆됐다
미안! 너 빼놓고 샤오메이랑 아그네스랑 떡치느라 잊었네! 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
“미안, 빌런 중 하나가 수상한 낌새를 보여서 따라가느라, 나도 갑작스럽게 밤까지 미행해야 했거든.”
“역시! 그렇지!? 나는 또 너희가 나를 따돌리나 싶어서 걱정했지 뭐야!”
미안 바이올렛, 정말 미안해..!
‘다음에 꼭 맛있는 디저트 가게에서 잔뜩 맛있는 거 사줄게..!’
“게다가, 아르틴 네가 아그네스 황녀님에게 불려갔다는 이상한 소리도 들어서, 오해할 뻔 했지 뭐야?”
뜨금.
“오늘 아침에는 네가 여자랑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소문도 들리고! 정말 깜짝 놀랐잖아!”
움찔! 움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순수한 목소리로 우리의 가슴을 후벼 파는 바이올렛의 말에, 나와 샤오메이를 죄책감을 이기지 흠칫 거리며 몸을 떨었다.
“...왜 그래 두 사람? 아까부터 왜 자꾸 몸을 움찔거려?”
“어? 아니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잠을 잘 못자서 그런가 자꾸 졸려서 그래!”
“마, 맞슴다! 저도 아침을 잘 못 먹었는지 배가 살짝 아파서 그렇슴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둘이 찔린 듯한 반응을 보이자, 바이올렛은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내온다.
‘뭔가, 뭔가 화제를 돌릴 만한 게 없나?!’
속으로 다급해진 내가 어떻게든 화제를 돌리려는 순간.
[...본좌는, 감동했도다!!]
갑자기 머릿속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나와 샤오메이, 그리고 바이올렛은 등 뒤를 돌아보았다.
바이올렛의 등 뒤에는, 어느새 다가와 있던 유니콘 유니코르가 콧김을 격하게 내뿜으며 흥분한 듯 앞발로 땅을 탁탁 내려치기 시작했다.
[보아라, 이 순결함 그 자체인 영혼을! 심기체가 완벽히 처녀성을 유지하고 있으니, 본좌는 감동을 멈출 수가 없도다!]
“..저, 저요?”
바이올렛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유니콘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이올렛을 향해 엉거주춤 엎드리기 까지 한다.
[그대야 말로 처녀의 덕목! 처녀의 화신! 순결의 결정체! 내 일찍이 아그네스 황녀이후로 이런 순결한 여인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구나! 그대라면 본좌의 등에 올라타도 좋다!]
“네? 저, 저는 그게. 아으. 부담스러운데..”
쩌렁쩌렁 외치는 미친 말의 정신감응에, 이 수업에 참가해있던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바이올렛에게 몰리자. 바이올렛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양손을 휘적이며 거부한다.
“무슨 소리 인가요 바이올렛 양! 유니콘이 계약자도 아닌 여인을 태우는 건 아주 크나큰 명예라고요! 자, 다들 바이올렛 양에게 축하의 박수를 쳐줍시다!”
하지만 당사자의 반응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카르멘 교수는 호들갑을 떨면서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그러자 주변의 학생들이 힐끔힐끔 분위기를 살피더니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
“와아! 아름답다!!”
“아카데미의 대표 처녀의 탄생이다!”
“유니콘이 인정한 순수한 처녀라니! 참으로 대단해!”
결국, 분위기를 이기지 못한 바이올렛은 나를 향해 간절히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내왔다.
하지만 화제를 돌리기엔 이 상황이 최고라 생각한 나는 시선을 돌려버렸고.
“우으으으으, 나 이제 시집 못가...!”
[좋지 않나 처녀여! 영원히 순결을 간직한 채 고귀한 순백으로 남는 것은 영원한 영광이로다!]
바이올렛은 결국 분위기에 휩쓸려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 채 유니콘의 위에 강제로 올라타, 난데없는 승마 수치플레이를 누려야만 했다.
‘레이디 고디바...당신은 도대체 무슨 싸움을 했던 건가요.’
미친 망아지는 난데없이 여학생이 남자 손 한번 안 잡아본 모태솔로란 걸 선포하고, 주변에선 그걸 대단하다고 칭송한다. 당사자는 죽을 정도로 창피해 하는데.
‘역시, 저 망아지는 최악의 폭탄이다.’
이번 생에는 절대 엮이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왠지 모르게 나를 향해 시선이 꼿히는 게 느껴진다.
“...왜? 날 봐? 재 왜 날 봐?”
“저, 저도 모름다 형님!”
저 미친 재앙을 불러오는 말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기분 나쁘게 자신의 뿔을 환하게 밝히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