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초원의 왕과 권능 도둑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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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개요는 간단했다.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서 유니콘을 타고 사라진 내가 교수님이 수업을 끝내 무료해진 학생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아르틴 걔는 어떻게 유니콘을 탄 거야? 유니콘들은 순결한 여성만 태우는 거 아니였어?”
“소문으로는 엘프라면 순결한 남자도 태워준다던데?”
“하지만 아르틴 걔는 엘프가 아니잖아?”
“엘프의 피가 섞여 있다거나 그런 거 아니야?”
“쉿! 조용히 해! 아까 쿼터 엘프인 노엘 백작 영애는 비처녀라고 망신당했잖아..!”
입소문을 탄 나와 유니콘의 이야기는 단시간에 학교에 퍼졌고, 정말 수많은 추측이 오고갔다고 한다.
“아르틴의 가문이 지금은 왕국 소속이지만, 사실은 마왕에게 멸망당한 동물과 교감하는 민족의 후손이라서 유니콘을 탈 수 있데!”
“아니야, 내가 듣기로는 걔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겨주신 아티팩트가 있어서 그걸로 유니콘과 계약했다는데?”
“나는 유니콘이 아르틴을 데려간 이유가 너무 많은 처녀를 건드려서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납치했다고 들었어!”
정말 별의 별 소문과 추측이 돌았다고 한다.
“야, 사실 아르틴 여자인거 아니야?”
그리고 이 헛소리도 처음에는 수많은 어이없는 추측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무슨 소리야, 아르틴이 왜 여자야?”
“야, 잘 생각해봐. 그 조르바 펠카스랑 린 샤오메이가 아르틴 같은 남자애랑 왜 친하게 지내겠어? 걔는 후계자도 아닌데? 걔가 여자니깐 조르바가 소꿉친구 같은 걸로 데리고 다니는 거지!”
“설득력이...있어!!”
문제는, 이 가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먹힐 정도로 점점 살이 붙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걔 기숙사에서도 방을 혼자 쓴다고 들었어, 브론즈 클래스는 원래 2인 1조가 기본이잖아? 학교 측에서 남장여자인거 숨겨주려고 혼자 쓰게 특례를 준거래!”
“담인 선생님인 세니아 교수님 하고도 자주 1:1 상담을 했다고 하네요, 아마 자신의 성별을 숨기느라 상담한 게 아닐까요?”
“애초에 나는 남장여자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곱상하고 예쁘게 생긴 남자애가 어디 있어? 몸도 가냘프고 예쁘잖아...”
“야, 너 좀 기분 나쁘다. 오늘부터 밥은 우리랑 따로 먹어.”
내가 아카데미를 비운 하루 동안,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나중에는 소설 한 편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러니깐, 사실은 내가 루드비히 가문에서 계속 여자애만 태어나자 남자처럼 기른 아이인데, 어릴 적에 가문에 놀러 온 조르바랑 만난 후로 애정공세를 해오는 조르바 때문에 샤오메이랑 친해졌고, 렉스턴은 나를 짝사랑하는 탓에 그런 조르바랑 나를 질투해서 못살게 굴었으며, 남자처럼 살았던 탓에 가장 순결한 여인이라 유니콘이 너무 감탄한 나머지 나를 태우고 처녀의 축복을 걸어주러 데려간 거라고?”
“아닌 거지? 아르틴? 그냥 이상한 소문인 거지? 지금 학교에 소문이 쫙 퍼져서 나도 오는 길에 3번이나 들었는걸!”
이게 무슨 개좆같은 소리야..!!
“당연히 아니지!! 나는 신체 건강한 남자라고!!!”
나는 머리를 움켜쥐고 경악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소리쳤다. 유니콘 한번 올라탔다고 도대체 무슨 소문이 돌고 있는 거야?
“아니, 나는 아니라고 믿고 있었는데, 너무 소문이 구체적이라서 혹시나 해서...”
내가 놀라서 소리치자 마찬가지로 놀란 바이올렛이 흠칫 하더니 손가락을 배배꼬며 미안하다는 듯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이런, 바이올렛에게 화낼 게 아닌데. 나는 심호흡을 하며 조금 침착한 마음을 되찾았다.
“미안 바이올렛, 너한테 큰소리를 낼게 아니었는데. 너무 당황해서 너한테 소리치고 말았네.”
“아니야! 나도 이상한 소문을 듣고 와서 막 설명 한 거니깐, 나도 미안해!”
애초에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어서 그렇지 크게 당황할 사안도 아닌 것 같다.
멀쩡하게 달린 내 리틀 아르틴만 보여줘도 소문이 종식되는 건 한 순간일 테니.
“잠깐, 학교 내에 소문이 그렇게 퍼져있으면, 아그네스랑 샤오메이도 알고 있었어?”
홱 하고 고개를 돌리자, 샤오메이랑 아그네스가 내게서 슬그머니 눈을 피한다.
뭐야. 진짜로 알고 있었다고?
“저는 듣긴 했지만, 조르바 도련님이 헛소문에 집중하시 길래 그냥 기회다 싶어서..”
“저는 아르틴이 일부러 퍼트린 소문인줄 알았어요..”
내 가장 확실한 증인들이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 상황이 괴상망측하게 돌아가고 있었지.
“저 그런데, 해명하실 거라면 빨리 해명하시는 게 좋을검다. 형님이랑 도련님이랑 렉스턴을 소재로 이상한 만화까지 만들어지고 있다고 들었슴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태창을 띄우면, 무슨 칭호를 얻었을지 확인하기 두려워진다.
“너, 너무 걱정하지 마요 아르틴. 여차하면 저랑 약혼을 발표하면 그런 소문은 사라질 거예요.”
“아니, 그건 좀 나중으로 미루자. 지금 약혼까지 터지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아그네스가 작게 속삭이자, 나는 전력을 담아 손을 흔들어 거부했다. 집에 불이 났다고 기름을 부어서 맞불을 낼 수는 없잖아.
“소문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그보다 내가 세 사람을 모은건 더 중요한 일 때문이거든.”
내 이상한 소문에 대해서 더 이야기 하면 아침조회 시간이 될게 분명하다. 더 이상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빠지지 않게 나는 주제를 바로 잡았다.
콰앙!!
“아르틴! 그대가 사실 여장을 좋아하는 변태 인간이라는 게 사실인가! 본좌는 크게 실망했다!”
제발, 다른 곳으로 꺼져. 뿔 달린 사탄놈아!!
**
“그래서, 나는 한동안 유니콘이랑 같이 다니면서 그 권능도둑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세 사람도 나를 도와줄 수 있겠어?”
나는 뒤늦게 들어와 지랄발광 유니코르를 제압한 후,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 이번 빌런에 대해 차분히 설명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좌시할 수 없는 아주 위험한 인물인걸요. 저는 학생회를 움직여서 같이 찾아볼게요.”
“저도 형님이랑 다니면서 열심히 찾아보겠슴다. 수상한 인기척이나 기운은 가진 사람을 찾으면 되는거 아님까?”
“어, 응! 나도 패밀리어에게 부탁해서 찾아볼게!”
다행히도 세 사람은 문제없이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서줬다. 확실히 기억 회귀가 있으니 세 사람은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에도 제대로 납득해줬다.
“저, 그런데 이 아이가 정말 그 유니콘...님 인가요?”
그때, 아그네스가 별빛이 담긴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유니콘을 향해 관심을 보였다.
“저번에 그 여자 아이들의 마음에 말뚝을 박던 유니콘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슴다..”
“우...난 시집가기 틀렸어..”
샤오메이도 옆에서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바이올렛은 그 날의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싼다.
“맞아, 애가 유니콘 유니코르야. 이건 폴리모프 한 모습이고.”
그렇게 말하며 유니코르를 소개하는데, 이상하게 유니코르가 아까부터 초점을 부들거리며 말이 없다.
“야, 유니콘, 너도 스스로 자기소개 해야지. 앞으로 우리 도와줄 사람이라니깐?”
“..된다.”
“응? 뭐라고?”
유니코르가 아주 작게 중얼거리는 탓에, 뭐라고 하는지 못들은 나는 다시 되물었다.
“이럴 수는 없다...세상이 무너져도 이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왜 그래? 야. 정신 차려 유니콘!”
탁!
내가 어깨를 붙잡고 흔들자, 유니코르가 신경질 적으로 내가 어깨에 올린 손을 쳐낸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내가 뭔가 싶어서 바라보자, 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보더니 그 시선을 다시 아그네스에게로 향한다.
“아그네스 황녀여!!! 가장 고귀한 처녀였던 그대가 어찌 순결을 버리고 비처녀의 길을 택했는가!! 본좌는 너무 슬퍼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하는 유니콘의 충격발언에, 우리는 각각 다른 의미로 전부 경악했다.
“야! 무슨 소리야!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이거 놔라 비동정! 네가 황녀를 더럽혔도다! 가장 아름답고 고결한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순백의 처녀를! 네가 더럽혔단 말이다! 읍읍!”
나는 다급하게 몸부림치는 몸을 뒤에서 끌어안은 채 입을 틀어막았다. 과격하게 저항하는 탓에 그 새하얀 가슴이 과하게 출렁였지만, 도저히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그네스 황녀님..? 아르틴...?”
“그, 오해에요 바이올렛! 아르틴이 저를 막 강제로 더럽히거나 한 게 아니라 저희는 그저 서로 간에 마음을 확인하고 상호 동의간에..!”
“그런 구체적인 설명은 필요없슴다 황녀님!!”
너무 당황한 나머지, 무슨 일이냐고 묻는 바이올렛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기 시작한 아그네스의 입을 샤오메이가 다급하게 틀어막아줬다.
하지만, 조금 때는 늦은 건지, 바이올렛이 나를 향해 돌린 시선은 심상치가 않았다.
“...정말로, 아그네스 황녀님하고 그런 관계를 가진거야?”
“바, 바이올렛. 내가 다 설명해 줄게, 그러니깐 너무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고..!”
“..설명할 필요가 뭐가 있어?”
그렇게 말하지만, 상처 입은 표정을 숨기지 못 하는 바이올렛이 자리에서 다급하게 일어났다.
“아그네스 황녀님이랑 아르틴은 원래 사귀던 사이였으니깐... 응, 이게 당연한 일이잖아?”
“바이올렛 언니, 일단 진정하고 형님하고 차분히 대화하는게..”
“아니, 나는 정말 괜찮아. 곧 아침조회 시작하니깐 나는 가볼게.”
바이올렛은 그 말을 하며 다급하게 창고를 빠져나갔다.
멀어지는 발소리가 귓가에 똑똑히 들렸지만, 바이올렛을 우리 중 누구도 잡을 수 없었다.
“읍!! 읍읍..! 으읍...! 읍...”
텁! 텁텁! 텁!! 텁...츄욱.
내 품 안에 안긴 채 조용히 슬리퍼 홀드를 당하던 유니콘은 격렬하게 내 팔을 두드렸지만, 이내 저항을 멈추고 몸을 늘어트리며 기절했다.
“어..이제 어떻게 하지?”
누군가 물었지만, 대답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미친 망아지 때문에, 이 사건을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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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 내십쇼 형님.. 분명 바이올렛 언니도 잘 설명하면 될 겁니다.”
일단 우리는 회의를 마치고 각자의 교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기절한 유니콘을 창고에 버려두고 샤오메이와 같이 B반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영 기운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상처 받은 표정의 바이올렛은 처음이었는걸.”
그리고 그건, 바이올렛을 속인 우리에 대한 배신감이 준 상처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한 쪽이 계속 아팠다.
“제가 나중에 한번 잘 이야기 해보겠슴다.. 바이올렛 언니라면 분명 이해해 줄검다..”
몰캉! 몰캉!
샤오메이는 기운 내라는 듯, 그 커다란 가슴을 내게 밀착시키며 어깨동무까지 해줬지만, 그래도 영 기운이 나질 않아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드르륵.
“야, 왔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금까지 웅성거리던 교실의 학생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쳐다본다.
그중 몇 명은 소문을 확인하려는 건지 엉덩이를 들썩이며 내게 다가올 준비를 한다.
쿵!!!
그때, 샤오메이가 가볍게 진각을 밞자, 우렁찬 소리가 교실의 들뜬 분위기를 단숨에 진정시켰다.
“...”
내 쪽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샤오메이의 눈에는 무시무시한 투기가 담겨있을 테지.
시끄럽게 굴고 싶은 녀석이 있다면, 내게 먼저 덤벼보라는 경고가 담긴 샤오메이의 시선을 보고도 자신감 있게 가십거리를 입에 담을 녀석은 없었다.
기운이 없는 내가 샤오메이의 부축을 받아 조르바가 있는 뒷자리에 가서 앉자. 조르바는 이해한 다는 듯이 내 어깨를 툭하고 두들겼다.
“이상한 소문은 금방 지나갈 거다. 너무 그렇게 기운 없어 하지마 아르틴.”
이런 상황에서는 내 편을 들어주겠다는 듯, 조르바는 나를 의심하는 기색 대신 걱정하는 눈빛으로 자신만 믿으라며 나를 격려했다.
소문 관련이 아니긴 했지만. 굳이 귀찮게 설명하기도 싫었던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책상에 엎드렸다. 가만히 있어도 한숨만 푹푹 나왔다.
드르륵!
“안녕~애들아! 오늘도 좋은 아침이야! 아카데미는 늘 날씨가 상쾌해서 정말 좋다니깐!”
세니아 선생님이 활기찬 인사와 함께 반에 들어왔지만, 다들 샤오메이의 눈치를 보느라 반갑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자, 세니아 선생님은 이상함을 알아챈 건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슨 일 있니? 다들 분위기가 왜 그래?”
학교생활이 다 그렇듯이 다정한 선생님보다 살기에 가까운 경고를 보낸 샤오메이가 무서웠던 걸까, 누구도 방금 있었던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
영문을 모르는 세니아 선생님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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