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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48화 (48/266)

〈 48화 〉 미드나이트

* * *

새벽 3시,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아르틴의 방에 불이 꺼졌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역시 산송장이었다.

욕망의 괴물주제에 어울리지도 않게 욕망을 참는다는 짓을 해서일까, 입에는 반쯤 개거품을 문 소년의 모습으로, 다급하게 기숙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히힉, 드디어, 드디어!”

자신의 표정이 너무 기괴하게 변한 탓에 연기하던 대니얼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자각 못한 채, 마기만을 간신히 억누르며 산송장은 창가의 아래에 도착했다.

물론, 기숙사의 전체에 걸려있는 보호 마법이 산송장의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하지만 산송장에게는 상관없었다. 가볍게 벽을 톡톡 건드리는 것으로, 보호마법의 틈새를 도려낸 산송장은 웃으면서 벽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헤헤, 유니콘이 인정한 처녀, 드디어! 맛본다!”

푹!

산송장의 팔이 가볍게 아르틴의 창문을 깨부수려는 순간, 그 손등에 날카로운 단검이 날아와 박혔다. 대니얼의 형태는 단검을 견디지 못하고 피가 터져 나왔다.

“어라? 내 손? 누구야? 누구냐고! 누가 찔렀어!”

“어딜 그 더럽고 천박한 욕망을 가지고, 아르틴 도련님의 처소에 숨어들려고 한 거지?”

산송장이 분노하여 벽에서 뛰어 내리자, 수풀에서 단검을 굴리며 시온 이드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상시라면 산송장의 욕망을 자극하는 퇴폐적인 미녀인 그도, 지금은 장애물에 불과했다. 그래서 산송장은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망할 새끼, 감히 내 몸에 상처를 냈으니, 나도 네 몸에 상처를 가득 내주마!”

분노에 찬 목소리를 터트리며, 산송장은 시온을 향해 뛰어올랐다.

*

시온은 자신을 향해 뛰어오른 애새끼의 복부에 마나로 가속한 발차기를 날렸다.

“쿠에엑!”

마나를 가속의 촉매로 사용한 발차기는, 기사에 이르러선 중형 마물도 무시 못 할 파괴력을 지녔다. 당연히 꼬맹이의 몸이 기숙사 옆 숲을 향해 마구 굴러 나무에 쳐박혔다.

“그대로 뒤져버리면 좋을 텐데, 벌레 같은 녀석.”

시온은 진심을 담아 파란 소년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제국에서 한 때 유망주로 많은 전장과 토벌을 겪은 시온은, 녀석이 소리칠 때 흘러나온 마기를 아주 미약하게나마 감지 할 수 있었다.

아르틴 도련님에게 맡은 일에 대해 보고를 드릴 겸 자는 얼굴을 관찰하고자 찾아 온 시온이지만, 불쾌감과 안도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만약 자신이 오지 않았다면? 저 불결한 녀석이 감히 아르틴 도련님의 방에 침입했으리라.

아직 자신에게는 허락 되지 못한 방에 저 더러운 게 발을 들이려 했다, 그 사실에 시온은 몸을 일으킨 녀석을 죽일 생각으로 들고 있던 단검을 급소를 향해 투척했다.

채애앵!

하지만 산송장은 탄환처럼 빠른 단검을 아주 손쉽게 쳐냈다. 산송장의 손이 검게 물든 것을 본 시온은 더욱 깊은 혐오감을 느꼈다.

“마기라, 같잖게 마족이랑 계약이라도 했나보지?”

대답은 듣지 않았다. 이미 시온은 산송장을 죽일 생각으로 레이피어를 빼들어 오러 소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죽어!!!”

산송장이 짐승 같은 자세로 뛰어오르자, 시온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레이피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2초가 지나기도 전에, 산송장의 몸에는 24개의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 중 20개는 인간의 급소였기에 시온은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시온의 그런 예상을 비웃듯이 산송장은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접근해 시온의 복부를 향해 검게 물든 주먹을 휘둘렀다.

“커흑?! 빌어먹을 괴물 새끼가..!”

반사적으로 마나를 복부에 집중시켜 내장을 보호했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위력에 시온은 바닥을 세 번 구르고 나서야 간신히 다시 자세를 잡았다.

어느새 산송장의 모습은 대니얼이라는 학생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검은 피부로 말라비틀어진 모습은 북부에 자주 나오는 마물인 웬디고의 형상이었다.

자신의 생각보다 더 위험한 존재다. 그렇게 생각한 시온은 레이피어의 오러 소드를 더 강하게 피어 올렸다.

“너 같은 괴물 새끼를 아르틴 도련님에게 보낼 수는 없지..이 자리에서 죽어!”

“죽여? 네가? 너를 아르틴 앞에서 강간하면서 죽여주마!”

두 사람의 의견은 일치했다. 오로지 상대방을 죽인다. 서로의 형상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서걱! 서걱! 채앵!

신체 능력은 마기를 두른 산송장이 당연히 우위였으나, 아직 인간의 가죽을 다 벗지 않은 탓에 압도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시온은 살기로 머리가 차갑게 식은 상황, 더욱 날카로워진 검세가 산송장의 온몸을 난도질했다.

“부족해! 그 정도로는 안 죽어 멍청아!”

하지만 산송장의 생존력은 시온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몇 번이고 급소나 관절을 박살내 무력화 시키려 했지만, 최속에 가까운 레이피어의 공격을 산송장은 단순히 재생력과 방어력 하나로 버텨내고 있었다.

이런 유형의 마수나 마족은 대검이나 중검이 효과적이다. 시온처럼 급소를 노리는 타입의 검술은 그저 재생력이 다할 때 까지 깎아 내는 수밖에 없기에 상성이 그리 좋진 않았다.

“쳇, 벌레처럼 질기기는!”

시온의 공세가 더욱 가속하자, 구멍의 숫자가 백 개를 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산송장의 재생력은 시온의 공세를 웃돌고 있었다.

“너야 말로 귀찮은 게 날파리 같구나! 죽어!”

공세를 뚫고 산송장의 손톱이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잡자, 시온은 레이피어를 들어 올려 공격을 쳐내려했다.

콰앙!!!

하지만 그 위력은 아까 복부로 받아낸 위력과는 수준이 달랐다. 더 짙은 마기를 두른 손톱의 충격을 레이피어가 견디지 못하고 오러 소드와 함께 박살이 났다.

“이게 무슨..?!”

당황하는 시온의 눈동자에 산송장의 주먹이 보이자 시온은 황급히 팔을 들어 올려 막으려 했지만, 그 충격을 시온의 신체는 견딜 수 없었다.

우드득!

“으하핫! 뼈가 부러지는 감각! 너무 재밌다고!”

산송장은 즐겁다는 듯 웃으면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눈앞의 괴물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달은 시온은 침음성을 흘리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르틴을 지켜야 한다는 집착이 고통을 마비시켰다.

콰앙! 콰앙! 콰아앙!

단번에 죽일 수 있는 발톱 대신 주먹을 휘두르는 산송장의 공격조차 맨 몸으로 받아내는 것은 무리다. 시온의 방어술은 매우 수준이 높았지만, 결국 무술가도 아닌 무기가 없는 인간의 한계는 명확했다.

“많이 재밌었어! 그러니 살아남으면 꼭 내 육변기로 가지고 놀아주마!”

산송장이 시온의 머리를 향해 검은 발톱을 휘둘렀다. 그나마 멀쩡한 오른팔을 들어 올렸지만, 검으로도 받아내지 못한 저 공격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시온은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감았다.

“의례성법????─퇴마.”

그 순간, 시온의 감긴 눈꺼풀 너머로도 알 수 있는 새하얀 빛이 터졌다.

“끄아아아아악!!”

자신과 싸우던 괴물이 울부짖는 소리, 시온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떠 주변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왕의 힘을 훔친 녀석이 기어온 것이다! 본좌의 힘을 보여줄 때다!”

“너무 날뛰지 마, 잘 못 하면 기숙사 부수겠다.”

새 하얀 여인과 함께 창문에서 뛰어내린 아르틴은, 전에 본 적 없던 신성한 빛을 몸에 두른 채로 천천히 시온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댔다. 거짓말처럼 상처가 사라지고 뼈가 붙기 시작했다.

“많이 힘들었지? 이제 내가 맡을 테니 쉬고 있어.”

아르틴이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자, 시온의 얼굴이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네..네엣..”

어째서 일까, 자신보다 20cm는 작은 이 도련님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며 자신도 모르게 공손히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뜩 시온은 어린 시절 본 동화 속의 백마 탄 기사가 떠올랐다. 자신을 구해주는 멋진 왕자님.

아르틴 루드비히. 나의 기사님. 나만의 기사님...

***

“아파!! 아프다고!!”

아픔에 울부짖는 괴물의 소리는 존나 시끄러웠다. 내가 싸움 시작할 때 방음 마법을 섞어놔서 다행이지.

‘싸움 구경도 재밌긴 하네, 나랑 시온이 결투하는 것도 이런 감각이었나?’

사실 처음 괴물이 보호 마법을 찢을 때부터 나랑 유니코르는 녀석을 눈치 채고 있었다. 다만 준비도 할 겸 시온이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확인하려고 구경하고 있었지.

“역시 비처녀다. 저런 조잡한 괴물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봐라! 본좌라면 인간 형태를 유지할 때 한방에 끝냈다!”

유니코르가 또 비처녀를 숨 쉬듯이 혐오하며 신성력을 펼치자, 내 안에서도 성스러운 힘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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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 유니콘의 임시 계약자 [열기]

유니콘과 일시적으로 계약한 상태입니다. 계약에 의거해, 계약자와 동일한 힘을 얻습니다.

유니콘의 계약자는 신수의 힘을 공유하게 됩니다.

그에따라 선결조건 : 신성직을 무시하고 신성력을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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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이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임시 계약도 끝낸 상황. 오랜만에 다루는 신성력으로 의례성법을 강하게 한 발 먹였더니 저 괴물의 상처가 눈에 띌 정도로 심각했다.

“확실히, 초반 치트긴 하다니깐. 이게 무슨 힘이야 도대체.”

“이제 본좌의 위대함을 알겠느냐! 본래라면 비동정인 그대에겐 허락되지 않는 과분한 힘!”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유니코르가 나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확실히 존나 쌔긴 했으니깐.

아마 어지간한 성직자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신성력, 2회차 때 이걸 컨트롤 하려고 어지간히도 애를 먹었다.

“으아아악!! 죽여버리겠다!!!”

그때, 내게 의례성법을 맞고 나가떨어진 괴물이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저러면 후회할 텐데.

“감히 어딜 본좌를 무시하고 지나치려고 하느냐!!”

우직끈!!!

유니코르가 내게 달려드는 괴물의 옆구리에 주먹을 내지르자, 괴물의 몸이 반으로 접히더니 그대로 나무를 3그루정도 박살내고 나서야 괴물이 신음성을 흘렸다.

“이게 초반 빌런이면 조금 시시한데, 치트 썼으니 어쩔 수 없나.”

유니콘의 기사라고 하면, 유니콘을 타고 싸우는 기사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기사로는 부족한 나를 대신 해서, 어린 아이 모습으로 마족들의 목을 뽑아 대던 유니코르는 확실히 좀 살벌하긴 했다.

“봤느냐! 빨리 본좌를 칭찬해도 좋다!”

저런 챰피같은 모습만 아니면 참 좋을 텐데. 나는 한숨을 쉬며 3써클 마법, 마나 웨펀을 시전해 롱소드를 만들었다.

“빨리 끝내면 당근 케이크 2개 사줄게, 됐지?”

“그 말 꼭 기억한다! 절대 어기지 마라 아르틴!”

검은 기둥을 만드는 괴물의 마기를 바라보며, 나는 유니코르와 함께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왜 권능 도둑이 날 찾아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녀석이 시온의 검술에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고 질기다는 점.

내 스트레스의 원인, 내 탈모의 원흉.

그리고 스트레스성 탈모의 가장 좋은 해결법은 스트레스 해소.

"일단 내가 받은 스트레스 전부 풀릴 때까지만 가지고 놀아줄게."

최고의 샌드백이 내게 스스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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