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후일담
* * *
권능 도둑을 잡은 다음 날.
유니코르가 나와 함께 초원의 땅에게로 되돌아가기 위해 포탈을 준비하고 있었다.
“포탈이 준비됐다! 본좌의 폴리모프 상태에서도 이런 게 가능하다니, 생각보다 유능하구나!”
원래라면 유니코르가 유니콘으로 변해야지만 가능한 권능이지만. 내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임시계약을 통해 힘을 같이 조율해주자, 너무도 쉽게 포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래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 포탈을 탄다고 해도 이 모습으로는 꽤나 걸어야 할 터인데.”
“아니, 절대 안 돼. 이제 네가 유니콘일 때는 절대로 안 탈거야.”
원래 본신으로 돌아가려던 유니코르를 말린 것도 나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두 번 다시 타나봐.
“설마, 아직도 남장여자 소리 때문에 토라져 있는 게냐? 꽤 귀여운 모습도 있구나.”
“닥쳐!! 네가 내 마음을 알아! 난 그거 때문에 잠도 못 잤어!”
유니코르의 나는 분함에 주먹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어야만 했다.
─────────────────
칭호 : 반전 매력의 보유자
당신을 여성으로 인식하고, 그걸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몇 남성들은 당신에게 기본적인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닫기]
─────────────────
괴물이 죽기 전 한 말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상태창을 확인해 봤더니, 이런 좆같은 칭호가 달린 걸 보고는 어제 밤에도 잠도 못 잤다.
그 탓에 아침에 일어나보니 베개맡에 내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져있었다.
‘이런 칭호 때문에 접근하는 녀석이 있다면, 진심으로 죽여 버려야지.’
아무튼, 그 탓에 나는 이제 유니코르를 절대로 유니콘으로 변신 시키지 않기로 결심했다.
‘물론, 이제 더 만날 일은 없겠지만.’
초원의 왕의 권능도 되찾았으니, 나와 유니코르는 이제 서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다. 매 회차에서도 내가 직접 찾아가는 일이 아니면 만나는 일은 없었으니, 더 만날 일은 없을 터.
“그래도 헤어진다고 당근 케이크를 3개나 사주다니, 생각보다 아쉬운가 보구나!”
“헤어지는 마당에 케이크 한두 개가 뭐가 대수라고. 마지막에 수고했으니깐 챙겨주는 거야.”
“그럼 2개만 더 사주면 안 되겠느냐! 본좌는 우리 여사제들하고 나눠먹고 싶도다!”
“케이크 정도는 너네 교단 돈으로 사서 나눠 먹어...”
마지막까지 같잖은 귀여운 제스처로 내게서 케이크를 받아내려는 녀석을 보면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뭐, 그래도 썩 나쁘진 않았어, 2회차 생각도 나고.’
미운 정도 정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같이 고생했던 녀석과의 만남은 꼭 좆같은 면만 있던 건 아니었다. 그립거나 옛날 생각도 몇 번 나기도 했고.
문뜩, 나랑 눈이 마주친 유니코르도 녀석 답지 않게 조금 아쉽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하다. 여자도 아니고 순결하지도 않는 네가 왜 이리도 친근한지 모르겠구나.”
“뭐, 너도 미운 정이라도 들었나보지. 가자. 권능 돌려주러.”
내 말에 유니코르는 조금 눈을 굴리더니, 새침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흐흥, 좋다. 느긋하게 걷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나랑 유니코르는 천천히 포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느긋하게, 옛 생각이라도 하며 잡담이나 나눌까.
**
“그렇게 돼서, 도둑은 제 손에 죽었고 권능은 회수했습니다.”
나는 초원의 왕의 앞에 서서,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전부 설명했다.
[그런가, 역시 그대가 또 다시 우리를 구했구나. 내가 예상했던 대로.]
초원의 왕은 가벼운 사념파로 대답하자, 유니코르가 손을 들어 올렸다.
“왕이시여,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 남자가 저희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그 말에 초원의 왕의 정신파장이 무거워 졌다. 생각이 많아 진 건가.
‘하긴, 전생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하려면 골치 아프겠지.’
우리가 앞에서 대놓고 설명해도 못 알아듣던 녀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골치 아플 테니깐.
[...정녕, 그것이 궁금한가, 유니코르여?]
무거운 사념, 짓눌릴 것 같은 무게감에 유니코르가 살짝 위축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녀석은 답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뜻을 물리지 않았다.
“..저도 궁금하네요, 저보다 강한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넘쳐 나는데, 굳이 저를 택하신 이유가 뭡니까?”
나도 그런 유니코르의 의견에 무게를 더하자, 초원의 왕은 조금 긴 고민을 하나 싶더니, 결국 마음을 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자네들 둘 다 이번 일을 해결한 공신이니, 들을 자격이 있을 테지.]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길래 이리도 무게를 잡는 걸까, 나와 유니코르는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건, 유니코르를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아카데미에서 오직 그대 밖에 없기 때문이네.]
...왕의 말에 나와 유니코르는 잠시 말을 잃었다.
“아, 혹시 저를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은, 계약에 대한 적합성을 이야기 하는 건가요?”
유니코르가 애써 기묘할 정도로 높았던 계약의 동조율을 떠올리며, 스스로 납득하려고 했다.
[아니, 내가 말하는 것은.. 유니코르 자네의 성격과 천성을 감당할 이를 말하는 거네.]
“..그게, 그게 무슨 소리 인가요 왕이시여! 저는 고결하고 위대한 일각수의 권위 있는 후예입니다!”
“푸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당황해서 자신의 가치를 외치는 유니코르의 옆에서, 나는 있는 힘껏 녀석을 비웃어줬다.
그래, 확실히 저 챰피같은 데다가 까다로운 성격은 아무나 감당하기 힘들지!
[허나 유니코르여, 자네는 성년이 되었음에도 아직 계약자는커녕, 자신의 신도도 없으면서 교단의 여사제를 신도로 끌고 다니지 않는가?]
“와..왕이시여! 그건 비밀로 해주기로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에 유니코르가 놀라서 내 눈치를 보며 쉿, 쉿 거린다.
설마, 그때 데리고 나왔던 여사제들이 신도가 아니라 아르바이트 같은 거 였다고?
나는 문뜩, 유니코르와 높은 교감을 보이는 여학생을 탐욕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여사제들의 눈빛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다들 고생이 많군요...저도 이해합니다.”
“도대체 뭘 이해한다는 말이냐! 아까 전까지만 해도 즐겁게 대화 나누면서 아쉽다고 하지 않았느냐!”
“무슨 소리야, 헤어질 때는 미운 정 때문에 아쉬운 법이지. 행복하진 않았어.”
방방 날 뛰는 녀석을 비웃으며 내가 말하자, 멘탈이 터진 유니코르는 눈의 초점이 풀린 채 울먹이고 있었다.
[권능 도둑을 잡기 위해서는, 나의 권속의 힘이 필요했다. 신성한 유니콘의 일족의 정통 후계자인 유니코르라면 큰 힘이 되어줄 것은 명확했지...]
“하지만, 저 성격을 감당할 사람이 저밖에 없던 탓에..”
[...이미 5년 넘게 그녀와 계약을 하며, 유일한 신도이자 계약자가 되었던 그대야 말로 적합한 인재였네. 그리고 내 추측은 정확하게 맞았네.]
그 말에 납득했다. 확실히 유니코르의 넘쳐나는 신성력이 없었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신성력을 잘 다루지만, 신성력 자체에는 궁합이 나빠서, 녀석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을 테니깐.
“그렇다면 제가 맡아도 어쩔 수 없죠! 뭐, 봉사한 셈 치겠습니다!”
[그러니 아르틴이여, 앞으로도 유니코르를 잘 부탁하네.]
하하하, 호쾌하게 웃던 나는 조금 얼굴이 굳었다. 뭐지? 방금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초원의 왕을 바라보며 묻자, 그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저 머리카락 같은 갈기털에 가려진 왕의 눈이, 내 시선을 피해 옆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마왕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그대에게 유니코르가 꼭 필요할 걸세. 이번 사건을 해결하면서 자네가 그걸 증명한 셈이지.]
아니 잠깐만, 이건 그냥 폭탄 넘기기잖아. 왜 시선을 피하는 건데.
[그러니, 앞으로도 자네가 매번 유니코르를 맡아줬으면 좋겠네. 그대도 유니코르와 깊은 인연을 맺지 않았는가? 우리가 이번 사건을 해결한 그대를 위해 준비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주게.]
“아니요오?! 저는 저 성질 나쁜 망아지랑 그런 깊은 인연을 맺은 적 없는데요?!”
“뭐, 뭣?! 아르틴!?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유니코르가 나를 상처입은 눈으로 바라보자, 가슴이 조금 찔리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두 번이나 도와줬는데 이렇게 통수를 쳐.
그때, 초원의 왕의 갈기털 사이로 붉은 안광이 점멸하자 내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
계승특성 : 유니콘의 유일한 계약자 [열기]
초원의 왕의 위대한 권능에 의해, 당신은 유니콘의 유일한 계약자가 됩니다!
계약에 따라 선결조건 : 신성직을 무시하고 신성력을 획득합니다.
계약에 따라 선결조건 : 대마법사를 무시하고 마나 감응력을 획득합니다.
계약에 따라 선결조건 : 대드루이드를 무시하고 자연의 마나를 획득합니다.
해당 특성은 시간의 흐름에 벗어난 존재의 권능입니다. 회귀를 진행해도 해당 특성은 유지가 됩니다.
─────────────────
─────────────────
처음으로 계승특성을 획득했습니다! 튜토리얼을 클리어 하신걸 축하드립니다!
튜토리얼 완료 보상으로 『퀘스트』 메뉴가 추가됩니다!
튜토리얼 완료 보상으로 『상점』 메뉴가 추가됩니다!
─────────────────
이게 뭐야 씨발, 튜토리얼? 퀘스트 상점? 아니, 유일한 계약자?
“저는 아직 계약에 동의하지도 않았잖아요!! 이거 사기계약입니다!”
[유니코르를 잘 부탁하네, 아르틴 루드비히. 마왕에 맞서는 자여.]
간절한 내 말을 이 악물고 무시하는 초원의 왕이 가볍게 콧바람을 일으키자, 나의 몸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대가 있던 땅으로 직접 돌려보내 주지. 그대의 모험에 행운을 빌겠네.]
“아니, 필요 없으니깐 유니코르는 환불시켜줘요!! 차라리 돈이나 보물로 줘!!”
내 강렬한 외침이 공허하게 초원을 울렸지만, 흐릿해진 내 몸은 빛으로 감싸진 채로 주변의 풍경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시야가 돌아오자, 나와 유니코르는 포탈을 열었던 숲의 한가운데에 서있었다.
나라를 잃은 듯 허망하게 앉아있는 유니코르의 옆에는, 당근 케이크가 담긴 상자가 하나밖에 없었다.
“...아르틴? 이게 어찌 된 것이냐? 왜 본좌가 그대랑 계약 된 거냐?”
“...”
방금까지 멘탈이 나가있던 유니코르는 이제서야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후 눈물에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묻지마 씨발...”
사기계약을 당한 나도, 억울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머리 검은 짐승은 돕는 게 아니라고 했던 옛말이 떠오른다.
카토블레파스의 그 갈기털은 갈기털이 아니라 정말로 머리카락이었나 보다.
이렇게 통수도 다 치고.
좆같은 새끼들.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본좌는? 본좌의 하렘은..?"
"...헛소리 말고 일단 돌아가자...기숙사로.."
나는 주저앉아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유니코르를 일으킨 후 아카데미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그네스랑 샤오메이한테는 어떻게 설명하지?
계속 그 좁은 브론즈 기숙사에서 애랑 같이 지내야 하나?
"아.."
머리가 어질거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