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후일담 #03
* * *
‘방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회의실에 들어와 아그네스랑 만난 지 10분이 지났다. 나는 내 옆 자리에 앉아서 내 손과 깍지를 낀 채 싱글거리며 웃는 아그네스를 바라보았다.
“정말 미안해요 아르틴, 마음 같아서는 매일 같이 식사도 하고 샤오메이처럼 옆에서 같이 수업도 듣고 싶은데..”
“아, 아니야. 바쁘니깐 이해할 수 있지. 내가 자주 찾아올 수 있게 노력할게.”
정말 나와 같이 있는 게 기쁜 듯 홍조까지 피어오른 아그네스의 손등 위로 다른 손을 포개자. 아그네스는 내 눈치를 힐끔 보더니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온다.
부학생회장이자 제국의 황녀와의 비밀데이트, 나와 아그네스가 둘 다 사랑해 마지않는 로맨틱한 상황이 아닌가.
“....뿌득.”
“흐윽...아그네스가아...더럽혀진 것 이다...”
지금 우리 맞은편에서 이를 갈고 무섭게 쳐다보는 녀석 한 명과 아그네스를 보며 눈물을 훌쩍이는 녀석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아그네스가 내게 안겨서 나를 옆 자리에 앉힌 후 꽁냥 거리기 시작한 후로, 그 무뚝뚝한 카이엔이 슬금슬금 투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유니코르는 중간부터 엉엉거리기 시작했고.
나를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의자에서 뛰쳐나올 듯이 분해하는 남자라니, 지금 당장 쳐죽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소름이 확 끼친다.
더 무서운 건, 아그네스는 그런 카이엔의 반응을 알고도 더 부추기듯이 내게 안겨온다는 점이다. 혹시 나 모르게 비릿한 미소로 승리 선언 같은걸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근데 너는 왜 울고 있는 건데? 이미 얼마 전에 나랑 아그네스랑 사귀는 거 알았잖아!]
[너는 본좌의 마음을 모른다! 최애 처녀가 하렘충에게 더럽혀지는 모습을 앞에서 봐야하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른다! 최소한 순애였다면 납득했을 터인데!!]
내 머리 속을 울리는 유니코르의 외침에 나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 정신이 아찔해졌다.
“왜 그래요 아르틴? 표정이 많이 안 좋아요. 혹시 저번 싸움에서 다친 건가요..?”
“아니야, 다친 곳 없으니깐 너무 걱정 하지 마, 그냥 스트레스를 좀 받아서 그러네..”
텁.
내 품에 안겨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아그네스를 달래기 위해 대충 둘러댄 내가 홍차를 마시려고 하자, 갑자기 아그네스가 내 손목을 잡아왔다.
“..응? 아그네스?”
“홍차는 안 좋아요. 그보다 허브티가 릴렉스에 참 좋다고 들었어요. 제가 직접 타 드릴게요.”
아그네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왜 인지 모르게 서둘러서 차를 타러 회의실을 빠져나간다.
저렇게 서두르다니, 내가 그렇게 피곤해 보였나?
하지만, 기분은 오히려 좋았다. 사귀는 연인이 나를 챙겨주는 데 싫어할 천치가 어디 있겠는가.
“...깨가 쏟아지네 파트너.”
아그네스가 나가자 그 나간 자리를 향해 시선을 힐끔 돌린 카이엔이 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이성애자인 내가 여자랑 연애하겠다는데.
“나도 뭐 연애 하고 좀 즐기면서 살 수 있지. 언제나 마왕 토벌에 미쳐 살 수는 없잖아?”
“연애는 마왕을 해치우고 나서도 할 수 있잖아.”
그리 말하는 카이엔의 목소리에는, 나로는 이해하기 힘든 깊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마왕에 대한 깊은 증오심이 같이 섞여 나왔기에, 퉁명스럽게 맞받아치던 나는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나도 다 계획이 있어, 그러니깐 너무 걱정은 하지 마.”
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 추가된 상태창의 새로운 기능들을 본 후, 나도 이것저것 생각한 것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말해주기 힘든 계획이야?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내 말에 조금 평정심을 되찾은 건지, 평상시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간 카이엔이 물었다.
“...이번에는 나중에 이야기 해줄게, 왜 내가 매번 설명을 못했는지 지금은 이해하잖아?”
수많은 회귀동안, 나는 저 답답한 녀석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다.
하지만 파트너가 된 후의 카이엔을 설득하기 위해 내가 주로 썼던 말은, 나를 믿어 달라는 파트너로써의 호소였다. 모든 사건을 전부 설명할 수 없는 회귀자의 딜레마와도 같았으니깐.
기억 회귀를 한 지금의 카이엔이라면, 내가 늘 사건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몸을 비틀어가며 노력했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아, 믿어줄게. 그게 파트너니깐.”
카이엔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답답한 녀석을 설득하기 위해 친해지는 과정을 패스해도 된 다니, 이것도 기억회귀의 장점이겠지.
“자! 차를 가져왔어요 아르틴!”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쟁반에 음료수를 가득 가져온 아그네스가 들어왔다.
“다른 두 사람은 뭘 좋아할지 몰라서, 그냥 있는 음료수를 다 가져 왔으니 골라 드시면 되요.”
“와! 당근 주스다! 당근 주스는 본좌의 것 이다!”
두 사람의 앞에 쟁반을 내려놓은 후 내게 찻잔을 하나 내미는 아그네스.
“아르틴은 이걸 드시면 돼요, 제가 직접 주문한 허브로 우려낸 허브티랍니다?”
“고마워 아그네스, 잘 마실게.”
부드러운 허브의 내음을 음미하며, 나는 호륵 차를 한 모금 맛보았다.
코를 가볍게 뚫는 민트 같이 시원한 향기, 목에 넘기는 것으로 느껴지는 풍부한 청량감.
“맛이랑 향 둘다 좋네! 익숙한 맛도 나고,..이게 무슨 허브야?”
“네? 아, 그 그냥 몸에 좋은 허브에요! 저도 이름은 잘 모르겠네요?”
“그래? 이런 시원한 향은 마나를 머금은 약초라서 많이 비쌀 텐데..”
무슨 풀이었더라? 왜 이렇게 익숙한 향기가 나지?
“응? 이건 서리바람 풀냄새가 아니더냐? 저번에 ‘폴리모프 해제 용액’을 만들 때 쓰지 않았느냐!”
움찔! 움찔!
유니코르가 자신의 자리에서 냄새를 킁킁 맡더니, 서리바람 풀이라면서 호등갑을 떨자 내 옆에 있던 아그네스랑 카이엔이 동시에 움찔거린다.
뭐지? 이 반응은?
“...잠깐, 서리바람 풀이 스트레스에 좋던가? 분명 코막힘, 마나탈력증세, 그리고..”
탈모. 머리의 열기를 식혀줘 탈모에 좋다고들 많이 이야기 한다.
“아그네스? 너 설마...”
아그네스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아그네스가 내 눈을 피해 천장을 바라보며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
“이, 이상하네요? 저한테는 스트레스에도 좋다고 추천해주시던데...”
“...너 내가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니깐 탈모 올까봐 서리바람 약초차를 먹이는 거야?”
내 탈모가 내 히로인들에게 그렇게나 큰 충격이었단 말인가?
가슴을 옥죄이는 슬픔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아그네스에게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너는 또 왜 움찔 거리는데, 너도 내 탈모에 좋은 식품 찾고 있냐?”
“아, 아니.. 아니 맞아! 응, 파트너가 그걸로 스트레스 많이 받았잖아? 그래서.”
뭔가 황급하게 말을 돌리려다가, 갑자기 탈모가 맞다며 인정하는 모습.
‘...녀석이 신경 쓰는 건 탈모가 아닌가?’
뭐지? 무언가 조금 감을 잡을 것 같은데. 가슴이 먹먹해져서 머리가 잘 돌아가질 않는다.
“아, 맞다! 이번 사건은 저랑 마리안느 왕녀님이 잘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옆에서 들었어. 황태자님도 동의해주셨다면서?”
어머, 들렸나요 라고 작게 중얼거리던 아그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리처드 오라버니한테 제가 애교를 좀 부렸거든요. 오라버니는 저한테 약하니까요.”
“...아그네스 너 애교같은 거 싫어하지 않았어?”
학생회의 얼음 황녀라고도 불릴 정도로, 이시기의 아그네스는 주변에 마음을 잘 열지 않고 고고한 태도로 자신의 여린 속내를 지키고 있었을 텐데.
“아르틴을 위한 일인걸요? 그 정도로 쉽게 넘어갈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죠...”
“...아그네스, 고마워.”
나는 방금 서리바람 약초차로 느꼈던 배신감도 잊고, 아그네스를 향해 사랑이 담긴 눈빛을 보내며 다시금 뜨거운 포옹을...
““크흠!”“
카이엔과 유니코르의 개지랄 때문에, 포옹 대신 손을 잡는 걸로 타협했다. 연애 좀 하겠다는데 눈치 존나 주네 진짜.
“맞다, 세니아 선생님이 연금술 동아리를 신청하셨더라고요? 아르틴이 부장으로 기입되어 있던데.”
“아..그거, 우리가 같이 한 곳에 속해서 활동할 곳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괜찮지 않아?”
“나쁘지 않네요, 연금술이라면 제작에 오래 걸리는 것도 많으니 합숙도 신청하기 쉽고, 재료 채집을 명분 삼아 아카데미 밖에 나가기도 쉽고요.”
그 말 그대로, 빌런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기숙사를 비워야 할 일도 많고, 아카데미 밖을 나가야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금술 동아리는 최적이다. 스케줄을 잡기도 편하고, 학생회의 아그네스가 있으니 각종 서류를 처리할 때도 무척 편할 테고, 조르바가 있으니 예산도 문제 없을 것 이다.
“사실 동아리 문제는 제가 손대지 않아도 통과 될 것 같아요. 요즘 교수님들이 아르틴에게 잘보이려고 극성인거 알아요?”
“말도 마, 수업 내내 시달려서 지겨워 죽겠으니깐.”
그 후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던 우리는, 아그네스의 배웅을 받아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저도 아르틴하고 같이 가고 싶은데, 처리해야할 서류가 있어서요...”
전쟁터로 보내는 남편을 배웅하는 새색시라도 되는 것처럼, 아그네스는 나를 애달픈 눈으로 바라보며 보내기 싫다는 듯 손을 꼬옥 붙잡고 있었다.
“...걱정 마, 오늘 밤에 내가 찾아 갈게.”
“..정말인거죠? 분위기 있게 와인이라도 준비 해 놓을까요?”
내가 밤에 찾아 간다고 말하자 환하게 웃는 아그네스를 보니, 너무 사랑스러워서 꼭 껴안아주려다가 학생회 사람들이 볼 까봐 그러지는 못했다.
밤에 질릴 정도로 껴안아 줘야지.
“그럼 가자, 여기서 볼 일도 끝난 것 같다.”
나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는 카이엔을 무시한 채, 카이엔과 유니코르를 데리고 학생회 부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어이, 거기 하급 귀족 버러지.”
등 뒤에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이제 돌아가서 샤오메이랑 만나서 바이올렛에 대해 상의하려고 했을 텐데 말이다.
“뭡니까, 리가르도 선배님?”
내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일곱 명의 학생을 동반한 리가르도 위센이 오만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왜 네 선배지? 곧 퇴학당할 문제아에게 선배라고 불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만?”
“그렇다고 말 까고 리가르도 위센이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이 무례한 녀석!! 왕국 출신인 하급 귀족의 자제가 감히 위센 가문의 후계자님에게 어디서 망발을!”
내 퉁명스러운 말대꾸에 리가르도가 이를 갈자, 옆에 있던 따까리 중 하나가 나를 향해 버럭 소리 지른다.
“먼저 하급 귀족 버러지라고 부른 건 그쪽 아닙니까? 왜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시비입니까?”
“하, 가만히 있었다고? 네가 우리의 권고를 수차례 무시하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뛴 게 문제라는 생각은 안 드나?”
아, 역시 그런가. 자세히 보니 주변에 있는 학생들은 내 흐릿한 기억으로 왕국의 귀족파였던 학생들이다.
그 수장인 리가르도 위센까지 나와서 렉스턴을 박살 낸 나한테 본보기를 보여주려 하는 건가.
“됐고, 저는 할 말 없으니 가보겠..”
“제국의 기사 하나 이겼다고 자신이 무슨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나? 네까짓 게 학생회와 왕국의 차기 귀족들을 적으로 돌려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나?”
“아니 그러니깐 됐...”
“그렇게 날 뛰고 다니면 뭐라도 되는 것 같아? 너는 그저 가문에도 버림받은 하급 귀족만도 못한 쓰레기일 뿐이야. 주제를 알고 나대는 게 좋지 않겠어?”
“아니 듣자하니 개 씨...”
“애초에 너 같은 버러지가 왜 아그네스랑 마리안느 왕녀님의 비호를 받는지 모르겠네. 너랑 네 잘난 평민 친구는 우리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아카데미에서 발도 못 붙이게 만들 거라고. 알아?”
“뭐 이런 좆같은 놈ㄷ...”
“그보다 너 정체가 뭐야? 뭔데 아그네스가 작부처럼 아양떨면서 직접 차까지 타주는 건데? 황녀는 황태자님한테도 직접 차를 타주신 적이 없어. 아, 황녀님의 약점이라도 잡고 있나? 네 수인 노예에게 시켜서 은밀한 취미라도 몰래 알아낸..”
짜아악!!!
기고만장하게 내 말을 계속 끊고 있던 리가르도 위센의 뺨이 세차게 돌아가자, 녀석은 다리가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너, 너 이새끼 지금 뭐한 거냐!!”
물론, 그 뺨을 후린 건 나였다. 또 전처럼 누가 나서서 도와주기 전에, 내가 직접 마나를 담아 턱을 후려쳤으니 한동안 죽이나 먹어야 할 거다.
“위센 회계관리님! 정신 차리세요! 위센 도련님!”
“이 새끼가 감히....!”
리가르도 위센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옆에 있던 학생 중 두 사람이 칼을 뽑다가, 칼을 뽑은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계속 뽑는다면, 본좌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나까지 기분이 나빠졌어, 파트너.”
자신들을 향해 투기를 내뿜으며 싸울 준비를 하는 카이엔과 유니코르의 반응에 리가르도의 따까리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나는 리가르도 옆에서 몸을 흔드는 여학생을 밀친 후 놈의 뺨에 따귀를 연달아 때리기 시작했다.
짜악! 짜악! 짜악! 짜악! 짜악! 짜악!
“그, 그만! 그만 때려! 아파! 아프다고!”
한 10대 정도 마나를 담아 때리자, 리가르도는 고통에 정신을 차린 건지 팔로 얼굴을 감싸며 울부짖듯이 내게 외쳤다.
“내가 누구냐고? 내가 뭐하는 새끼냐고?”
솔직히 말 좆같이 하는 것도 참기 힘들었다. 카이엔을 욕하는 건 뭐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샤오메이를 수인 노예라고 불러? 아그네스의 은밀한 취향? 작부처럼 아양을 떨어?
짜아악!!!
나는 녀석의 팔을 치우고 다시 뺨에 싸대기를 후려쳐, 녀석의 입안에 핏물이 터지게 만들었다.
“잘 들어, 나는 아그네스의 약혼자다. 내 앞에서 아그네스의 험담을 하는 새끼는 반 죽여놓을 거야.”
퍼억, 퍼억.
위센을 두들기던 내 손에 주먹을 쥐자. 내 손에 녀석이 흘린 피가 묻는 감각이 느껴진다.
“마, 막아! 위센 도련님을 해하려고 하잖아!”
“그럼 네가 유니콘에게 덤벼보던가! 신수를 우리가 어떻게 이겨!”
“저 신입생은 오러 소드까지 쓰잖아! 네가 검술을 잘하니 나서보던가!”
주변에서 다른 학생회 부원까지 몰려와 나를 말리려고 했지만, 유니코르와 카이엔이 나와 위센의 주변을 감싸자 아무도 나를 말리지 못했다.
“사, 사려줘...그마안..주, 주글거 같아...”
나는 내 주먹에 앞니가 3개 정도 나가 피를 철철 흘리며 살려달라고 울면서 비는 위센을 차갑게 내려다 봤다.
“너도 잘 기억해, 한번 만 더 내 앞에서 얼쩡거리면, 렉스턴이 당한 것 보다 수배는 더 아프게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깐.”
좆같은 새끼. 퉷.
나는 녀석의 얼굴에 침을 뱉어주고는,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카이엔, 유니코르. 더 볼일 없을 것 같으니깐.”
나는 그대로 유니코르와 카이엔을 데리고 학생회 부실에서 빠져나왔다.
등 뒤로 비명에 가까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괜찮아, 파트너?”
“아, 괜찮아. 존나 패줬잖아?”
“..그게 아니라, 이제 엄청 귀찮아질 텐데.”
시발, 귀찮아 질거면 귀찮아 지라지.
“별 좆같은 새끼들이 내 사람 건드리는 거, 나는 좋아하지 않아. 귀찮게 굴거면 굴라지.”
“아니, 잘했다! 저런 재수 없는 놈들은 저렇게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 법이다!”
내가 현실과 이 세계 양쪽을 살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호구로 보는 놈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번 회차의 시작때도 말했잖아. 이제 안 참는다고.
“앞으로도 잘 알아두라고 일부러 팬거야, 나한테 깝치면 백작가 자제든 공작가 자제든 평등하게 존나 팰거라고.”
오늘의 일은 아카데미를 넘어서 아마 각국에 제대로 소문이 퍼질 거다. 그리고 그게 내가 바라는 바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위센의 피가 묻은 손으로 머리를 뒤로 넘겼다.
“더 이상 저런 병신들 한테 까지 안 참고 살아. 나는 내 방식대로 간다.”
그 말을 듣는 카이엔의 표정을 모르겠지만, 녀석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묵묵히 나를 따라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