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굴복
* * *
딸깍, 딸깍.
“히극...흐우...”
학장의 만년필 소리가 울릴 때 마다, 세니아 선생님은 마치 자신이 채찍이라도 맞는 것처럼 움찔거렸다.
자신 딴에는 겁먹어서 놀라 흠칫 거리는 걸 테지만, 옆에서 듣기엔 야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학장 본인도 신경 쓰였는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우리를 엄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세니아 리브스 교수님.”
“히익..네엣..!!”
“리브스 교수님의 평소 품행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주변 교수님들께서도 칭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네..네엣?”
세니아 선생님은 분명 혼날 거라고 생각한 건지, 갑자기 시작된 칭찬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저번에 제가 부탁한 일도 잘 해주신 것 같더군요. 다른 교수님들이 우리 아르틴 학생을 직접 본 후 오랜만에 근로의욕을 되찾기 시작한 것 같아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갑자기 나오는 내 이름에, 나는 학장과 세니아 선생님을 바라보며 이게 무슨 일인가 파악하려 했다.
“아, 아니에요! 아르틴이 열심히 수업을 들어준 것뿐 인걸요!”
“하하, 겸손하시기는. 다른 학생들도 선생님을 참 좋아하는 것 같던데, 친화력도 좋은 교육자의 덕목입니다.”
나는 그제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저번에 나보고 개인 수업을 받아볼 의향이 없냐고 묻던 질문이, 세니아 선생님 개인의 의사가 아니라 학장이 직접 권유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수업에 들어갈 때 마다 국뽕 유튜브의 외국인 배우들처럼 아르틴 대단해를 외치던 교수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압박을 받았을지 상상도 안 된다.
‘그런데 선생님이 딱히 수업을 열심히 들어 달라는 이야기는 안 했는데?’
여린 선생님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일부러 이야기 안 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머릿속에서 아르틴 루드비히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 멘탈이 여린 학생, 그런데 대뜸 학장이 주시하고 있다면서 부담을 주긴 싫었겠지.
세니아 선생님은 저 풍만한 육체의 부드러움 만큼이나, 부드러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아가씨인 것 이다.
“조금 전에 있었던 헤프닝은 실수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 비서가 냉방 아티팩트를 켜주지 않은 탓도 있으니 말이죠. 다만 앞으로는 같은 실수가 없도록 조심해주시길 바래요. 리브스 교수님.”
“가, 감사합니다아...”
너그러운 목소리로 용서해준다는 학장의 말에, 포식자를 피하는 토끼처럼 뾰족한 귀를 쫑긋거리던 세니아 선생님은 안심한 표정으로 다행이다. 라고 중얼거렸다.
그 뒤로, 나에게 뭐라 길게 말하긴 했지만,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대체로 내 능력을 떠보려는 학장의 질의응답에 가까웠다.
그리고 귀찮은 게 싫었던 나는 대충 유니콘의 덕으로 넘겼다.
‘여기서 학장의 제자 루트를 탈 수는 없지. 내 자유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데.’
루베루스 트리스티기온 학장은, 아카데미의 학장이라는 직책보다 현시대의 가장 위대한 대마법사로 유명하다.
내가 주로 사용하기도 하는 마법을 미리 메모라이즈 하는 암기식 마법체계의 창시자인 초대 트리스티기온의 칭호를 5대째 물려받은 그 마법 실력은 역대 최강. 아마 마왕군의 최강의 군단장 중 하나, 리치와 맞먹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내가 노리는 것은 군단장급의 강함이 아니라는 거다.
‘마왕을 죽여야 하는데, 역대 최강이 군단장급이면 마왕은 어떻게 상대하겠어?’
게다가 내 마법 실력은, 3회차 당시 악마와의 계약으로 얻은 일종의 야매에 가깝다. 지금은 그때 미리 외워둔 쓸모 있는 마법과 지식들을 기억력에 의지해 떠올려서 쓰는 것이니, 진짜 대마법사 앞에선 밑천이 떨어질 수 있다.
야매라고 하면 멋이 없으니, 실전 특화형 마법체계라고 자칭하기로 하자.
“이런, 아르틴 학생의 뜻이 그리도 완고하니 늙은이가 뜻을 접을 수밖에 없겠군요. 아르틴 학생이라면 제 제자와 좋은 라이벌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과찬입니다. 그리고 저는 한동안 세니아 선생님에게 배우기로 했거든요.”
“이런 이런! 역시 젊은 남학생은 늙은 교수보다는 젊은 여교수님이 좋겠지요! 어쩔 수 없군요.”
결정적으로 나는 폭유 금발 선생님의 수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마침 내가 언급해주자, 세니아 선생님은 조금 감동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역시 이렇게 호감도를 쌓아두는 거지.
**
“휴우! 혼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월급이라도 삭감되면 어쩌나, 엄청 걱정했거든!”
학장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나오자, 세니아 선생님은 다행이라는 듯 내 손을 붙잡고 방방 뛰며 기뻐하기 시작했다.
출렁 출렁.
그 격한 움직임에 두꺼운 로브 위로도 뚜렷하게 보이는 가슴의 움직임. 바라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지는 광경이 정말 좋았다.
“이게 다 아르틴이 수업을 열심히 들어준 덕이야! 선생님이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들이미는 선생님. 동시에 내 눈앞에 화면이 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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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자신의 하렘을 완성시켜보자! [닫기]
당신은 자신의 소중한 연인 중 그 누구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거나, 그냥 못된 호색한 같군요!
그런 당신을 위한 퀘스트! 많은 여성을 자신의 여인으로 공략해보세요!
숫사자는 무리의 암사자들을 지키기 위해 더욱 강해지는 법입니다!
히로인들의 호감도가 100을 달성한 후 사랑을 맹세하면 보상을 얻게 됩니다!
현재까지 공략한 여성 :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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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막 세니아 선생님의 호감도가 50을 달성했습니다!
호감도를 더 높여 하렘의 구성원으로 노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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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생긴 퀘스트 시스템에서 자리 잡은 하렘에 관련된 퀘스트 알림창이였다.
못된 호색한이라니, 좀 억울한 설명을 뒤로 하고 강해진다는 설명은 확실했다.
바이올렛과 서로 사랑을 확인한 날, 1단계 마나의 정수 특기가 2단계 마나의 정수 특기로 레벨업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보상으로 받은 포인트는 무려 10만이었다.
1개당 2만 5천 포인트인 불사조의 깃털이 4개. 1개당 5만 포인트인 드래곤 하트가 2개. 말도 안 되는 보상이다.
‘...이건 정말로 여자를 늘리라는 시스템과 세계의 계시인가?’
사랑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이던 나에게, 하렘에 대한 퀘스트라니.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다.
애초에 이 세계는 게임도 아니었는데, 호감도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지만 사실 원작에서도 상태창 같은 건 없었으니, 시스템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지식은 전무해서 뭐라고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
‘물론 샤오메이가 3첩 4처...같은 이야기를 하며 허가해주기는 했지만, 아그네스도 허락해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드래곤 하트 2개긴 하지만...’
...그래 뭐 상대방이 좋다면 나쁜 게 아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작게 들긴 시작한다.
원작에서 마왕의 권속 중 하나인 블랙 드래곤을 봉인하기 위해, 카이엔은 자신이 품고 있던 드래곤 하트를 포기해야 했다. 근데 그게 무려 2개잖아.
‘...대의를, 대의를 위해서라면 괜찮지 않을까?’
내 안에서 상점을 쓰지 않겠다던 결심이, 하렘과 포인트로 인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절대 내 앞에서 흔들리는 가슴에 홀린 게 아니다. 빵빵해진 내 리틀 아르틴이 내 뇌를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내 여인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수단을 고려하는 것이다.
정말로.
**
다행히 선생님은 내가 발기한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럼, 선생님은 강의하러 가볼게! 나중에 봐!”
나는 남자들 특유의 엉거주춤하게 선 자세로 손을 흔들어 선생님을 배웅했다.
선생님이 저 멀리 떠나가 보이지 않자 양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 발기를 최대한 가렸지만, 내 생각보다 흥분한 리틀 아르틴은 겉으로 봐도 꽤 티가 나는 상태.
평상시에도 발기를 하면 꽤 크기가 나오긴 했지만, 길거리에서 이정도로 발기한 적은 처음이라 나는 당황했다.
‘왜 이렇게 발기가 심하게 된 거야? 무슨 발정난 원숭이도 아니고..!!’
...생각해보니 자위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떠올랐다.
물론, 2일 전에도 아그네스랑 샤오메이와 뜨거운 밤을 보내긴 했다.
하지만 아르틴의 육체는 매우 왕성한 성욕을 지닌 상태, 까놓고 말해 내가 매일 아침 검은깨가루와 함께 챙겨먹는 정력제는 효과가 꽤 좋은 편이다.
그렇다고 유니코르가 자는데 옆에서 몰래 자위했다가는, 들켜서 놀림 받을 게 100%.
결국 나는 넘쳐나는 정력에 부스터를 걸어두고도 여의치 않으면 참으며 지내야 했다.
‘...에이 씨, 혼자서 해결해야하나.’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주변을 걸으며, 아카데미 부지 내에 위치한 공중 화장실을 찾기 시작했다.
“아, 저기 있다!”
드넓은 아카데미에는 당연히 공중화장실이 설치되어있다. 어떻게 그런 하수처리 시설을 판타지 세계에서 챙겼냐고? 묻지 마라. 냉방 아티팩트라면서 에어컨도 있는 세계인데 알아서 만들었겠지.
나는 화장실을 박차고 들어가, 비치된 휴지를 적당히 챙겼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에서 딸친 게 군대였는데, 이제는 애인까지 있는데 화장실에서 딸을 치다니..’
뭔가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렇게 발기한 상태로 돌아다녔다가는 이번에는 황녀를 자지로 굴복시켰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사람은 없어 보이네, 적당히 아무 칸이나...아아악?!”
“안녕하세요, 아르틴 도련님?”
가장 안쪽에 위치한 화장실 변기 칸을 열자, 그 안에는 시온이 다소곳이 앉아 나를 맞이했다.
“너, 너 뭐야?! 어떻게 여기 안에 들어와있어?! 너 변태야?”
“..후후, 아르틴 도련님이 화장실을 찾는 걸 보고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 말은 아까부터 나를 미행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잖아.
“그런 강렬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면 조금 부끄러워요 도련님..”
어이가 없어서 빤히 쳐다보자, 뭔 생각을 하는지 시온은 자신의 얼굴을 붉혔다.
진짜로 제정신이 아니란 건 확실하다. 어떤 여기사가 남자 화장실 안에서 사람을 기다려?
“됐으니깐 나가서 기다려... 볼일보고 나서 나갈 테니깐.”
“볼일이라, 어떤 볼일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때, 시온이 마치 먹이를 노리는 뱀 같은 날카로운 눈매로, 내 부풀어 오른 아랫도리를 탐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하자, 나는 황급히 두 손으로 내 리틀 아르틴을 지켰다.
“어딜 쳐다보는 거야! 이 변태 녀석! 그럴 목적으로 찾아온 거냐!”
내가 다급하게 외치자, 시온은 입맛을 다시며 아래에서 눈을 떼더니 나를 향해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후후, 너무 매정하게 굴지 마세요, 제가 찾아온 건 도련님이 시키신 일을 완수해서 랍니다?”
흠칫, 그 말에 내가 멈칫 하자, 시온은 천천히 내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매혹적인 눈웃음을 지었다.
“말씀하신 빌런의 징조 제가 찾아왔는데, 정말 매정하게 쫓아내실 건가요?”
천천히 허벅지를 쓰다듬는 손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 손을 차마 막지는 못했다. 달콤한 목소리가 나를 흔들고 있음을 부정하기가 힘들었다.
수백가지 고문도 견딘 나였지만, 이토록 여자의 유혹에는 무력했단 말인가.
‘아니야, 그래도. 이 미친년은 아니야! 떠올려라 아르틴, 이 미친년의 기행을!’
나는 두 눈을 꽉 감고, 시온이 했던 미친 짓을 떠올렸다.
나를 향해 욕설을 퍼붓던 시온, 매도하던 시온, 알몸으로 도게자 하던 시온...
아 시발.
알몸으로 도게자하며 내게 굴복하던 떠오른 순간 이제는 바지가 아니라 내 자지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때, 내 눈앞에 또 다시 무언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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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 이드리스의 호감도가 90을 넘었습니다! 100을 달성해 하렘의 구성원으로 영입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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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주군의 의무
당신이 시온에게 시킨 임무를 시온은 훌륭하게 완수했습니다!
충성스러운 기사에게 보상을 하사하는 것은 주군의 의무.
시온이 원하는 보상을 내려 만족시켜주도록 합시다!
보상 : 시온의 호감도, 3000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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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포인트, 10번만 모으면 현자의 돌이 하나.
5번이면 대천사의 깃털이 하나.
‘...미안, 애들아. 너희를..너희를 위해서야..’
나는 내 리틀 아르틴을 감싸고 있던 양 손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시스템이 주는 자본주의의 단맛에 나의 긍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시온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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