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63화 (63/266)

〈 63화 〉 준비 #03

* * *

쪼르륵.

달콤한 초코 우유를 빨대로 들이키자, 입안에 풍기는 부드러운 달콤함에 지금까지 쌓인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고급 카카오를 쓴 건지, 달콤함의 깊이가 다르다. 현실 세계의 공장제 초콜릿과는 다르게, 100% 카카오 버터를 사용하여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은 절로 미소를 부르는 달콤함의 퍼레이드와도 같다!

우유는 또 어떤가. 일품인 초코의 맛에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은 목 넘김으로 보아, 고급 마력우의 우유를 쓴 게 분명하다. 비린내가 없는 이 맛은, 아무것도 타지 않은 순수한 흰 우유의 고소함도 기대하게 만드는 깊이가 있다.

마왕군은 병신이다. 초콜릿과 커피를 독점하고 계약한 상대에게만 팔았다면, 인류의 절반을 자신들의 하수인으로 타락시킬 수 있었을 텐데.

“하아...녹는다 녹아. 피로가 싹 가시네.”

역시 아카데미의 카페. 현실의 프랜차이즈 못지 않은 퀄리티의 음료수는 이 혐오적인 더위를 잊을 수 있게 해준다.

나는 직접 냉기 마법을 걸어 시원하게 만든 테이블에 축 늘어져서, 시간을 확인했다.

“1시 20분. 약속 시간까지 10분 남았나.“

그 말은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이 10분이나 더 남았다는 소리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좀 더 전력을 다해 늘어지며 새벽부터 장비를 만들 준비를 하느라 쌓인 피로를 회복하기로 했다.

어차피 10분 후부터는, 마리안느 스승님과 만나 신나게 군대보다 더 빡세게 굴러야 할 판이니까.

“하아...하기 싫다.”

참으려고 해도 터져 나오는 한숨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수련도 싫은데, 스승님하고 수련이라니.

하지만, 나는 내 옆에서 페이스를 잡아줄 트레이너가 필요했고, 샤오메이와 아그네스는 각자 내 공동 훈련 제안을 거절했다.

­“죄송해요, 저는 중간고사에 대비해서 이번 달 학사 일정을 짜야 해서..”­

­“저는 도련님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라 죄송함다! 대신 본가에서 다른 사범님을 불러드릴 테니 며칠만 참아주십쇼!”­

태산 도장의 사범급 무술가를 불러준다는 샤오메이의 말은 고맙긴 했지만, 언제 마왕군 간부와 싸워야 할지 모르는 상황.

며칠을 쉴 수 없었고, 그렇다고 텔레포트로 자리를 비우면 연금술로 만들던 장비들이 다 맛이갈 상황이라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마리안느를 떠올린 건 내가 아니라 아그네스였다.

­“전생에도 마리안느 왕녀님한테 많이 배웠잖아요? 신체 기본 스펙을 올리기 위해서는 마리안느 왕녀님하고 수련하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기억회귀에 대한 단서를 찾을지도 모르고요.”­

정말 맞는 말이라서, 나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놈의 잠재능력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올라가는 건지..”

─────────────────

잠재능력 : 개화 – 당신은 한계를 넘은 수련으로 벽을 한 단계 넘었습니다.

─────────────────

이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잠재능력.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 잠재능력이 낮다면 신체의 성장이 시원치가 않다. 반대로 잠재능력이 상승했다는 것은 내 육체가 한계를 넘었다는 알림이기에 결국 방법을 궁리하게 되는 것 이다.

물론, 가장 빠른 방법은 희귀한 재료를 잔뜩 넣어서 강제로 신체의 형질을 바꾸면,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 영약을 받아들이는 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는 것. 무협에서 영약을 먹고 내공을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 운기조식을 하듯이, 좋은 효과의 영약은 자신의 체질을 변화 시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지금 강해지겠다고 영약 먹었다가 뭔가 사건이라도 터진다면...”

그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내 친구나 애인 중 한 명이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 나는 기껏 강해진 보람이 없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련은 심플하다.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잠재능력이 올라가긴 하니까.

“아~ 샤오메이랑 아그네스랑 바이올렛이랑 알콩달콩 거리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기 싫은 건 하기 싫은 것, 나는 공허한 마음에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어이, 카페는 너 혼자 쓰냐! 닥치고 음료수나 먹어!”

“아, 죄송합니다. 제가 기분이 좀 안...”

그 순간 내 목소리가 컸는지,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 숙여 사과하던 나는 얼굴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좆같은 얼굴을 내가 어디서 봤더라...?’

곰보가 가득 박힌 남자의 얼굴을 잠시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를 기분 나쁨이 가득 몰려온다. 주변에 있는 덩치들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요즘 네가 황녀님과 사귄다는 이상한 헛소문이 돈다고 기고만장 해진 거냐! 1학년 브론즈 애송이 주제에!”

“..저기, 그...”

나는 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곰보의 말을 손을 들어 올려 멈추고, 미간을 찌뿌리며 초코 우유의 당분을 비료삼아 뇌세포를 열심히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아, 그래. 글링턴 후작가의 두꺼비 영애의 곰보 오빠! 맞다, 결투 전에 깝치러 왔던 그 선배였지!”

내가 드디어 떠올려서 기쁨에 박수를 치자, 곰보와 덩치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무, 뭐? 두꺼비? 곰보? 이 새끼가 감히 미쳤나! 퇴물 여기사 하나 이겼다고 기고만장하다니!!”

곰보가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저번처럼 개구리와 모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진검을 뽑아 나에게 겨눴다.

물론 내 잘못이 크긴 했다. 사람보고 다짜고짜 두꺼비와 곰보라고 부르면 화가 나긴 하겠지.

하지만 마침 잘 됐다. 운동 전에 가볍게 몸을 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병신들이 시비를 걸어 주는 상황을 놓칠 수는 없다.

“자자, 진정하세요.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사람이 아무리 얼굴이 곰보빵이어도 곰보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건데.”

“이, 이 새끼가 저번에도 그렇고! 저 새끼 반 병신 만들어 놔!”

내가 대놓고 비꼬면서 성질을 건들자, 개구리 선배와 모아이 선배가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그 곰수인 계집도 없으니, 제대로 박살을 내주마!!”

“어라! 샤오메이! 여기 야 여기!”

“뭐, 뭣?! 샤오메이?!”

기세가 등등 해서 나를 보며 히죽거리는 개구리와 모아이의 등 뒤를 향해, 내가 한껏 반가운 얼굴로 샤오메이를 부르며 손을 흔들자 두 사람의 고개가 황급히 돌아간다.

“병신들. 누가 싸움 걸어 놓고 한눈을 팔아?”

나는 왼쪽에 서있던 모아이의 다리를 향해 마나를 일으켜 강렬하게 로킥을 갈겼다.

퍼억!!

“아아악!! 이 비겁한 새끼가앗!”

“생긴 건 존나 좆밥인데, 생각보다 튼튼하네 모아이!”

솔직히 뼈에 금은 갈 정도로 힘을 담아 찼는데, 모아이는 생각보다 더 튼튼한 녀석이었는지 내 발차기로 휘청거릴 뿐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 비겁한 버러지 녀석! 팔 하나를 도려내서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 해주마!”

“2:1로 덤비면서 비겁한 운운은 좀 웃기지 않아?”

그런 모아이를 보고 꽤 날카롭게 검을 휘두르며 치고 들어오는 개구리 얼굴 선배에, 나는 가볍게 뒤로 물러나며 테이블에 있던 빈 커피잔을 개구리의 얼굴에 던졌다.

서걱!

개구리는 놀라운 속도로 커피잔을 두 동강 냈다. 실버 클래스 라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 저 정도 실력이면 졸업할 시기에는 제법 쓸 만하겠다고 속으로 평가했다.

‘그냥 무지성 잡몹 엑스트라인 줄 알았는데, 골드 클래스인 저 곰보 보다 훨씬 낫네.’

이쪽은 어떨까, 하고 모아이를 바라보자, 쾌검 스타일인 개구리와 다르게 롱소드를 양손으로 무겁게 쥔 모아이는 나를 반 토막 낼 기세로 거칠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터엉!

“휘유, 맞으면 뼈 하나 부러지는 걸로는 모자라겠는데요? 안 맞았지만.”

“이 날파리 같은 녀석!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냐!”

“어이! 합동 공격으로 저 새끼를 작살을 내주자고!”

내가 서 있던 자리가 완전히 박살이 나자, 나는 감탄의 휘파람을 불며 짝짝 박수를 쳤다.

그 모습을 보고 더 열이 받은 걸까. 개구리와 모아이는 분노를 터트리더니 둘이서 뭔가 신호를 주고받은 후, 철저한 연계공격을 더해 나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샤악! 휘웅! 쾅!!!

‘이 두 사람, 저번에 만났을 때 붙었으면 생각보다 힘들었을 것 같은데.“

일부러 정신을 흩트려 놓기 위해 도발까지 했는데. 공격의 날카로움이 무너지기는커녕 연계공격은 확실히 감탄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이런 수준인데 실버라니, 머리가 어지간히도 빡대가리 인가?

‘하긴, 그러니까 유니콘하고 계약한 계약자 한테 시비를 걸지.’

한 5분 정도 공격을 피해 다니자, 두 사람은 숨을 몰아쉬며 나와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이 버러지 같은 녀석...더럽게 빠르기는...!!”

“후우, 한 번만 맞으면 박살을 내버릴 텐데..!! 너는 정면으로 싸우는 법도 모르냐!”

“어라, 지쳤습니까~? 2:1에 두 사람은 무기까지 들었는데~? 브론즈한테 지는 겁니까~?”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두 사람을 좆같은 말투로 살살 약 올렸다. 이제 좀 흥이 나는데 가만히 넘어갈 수는 없지.

“하긴, 자존심도 없으니 후작가 장남도 아니고 차남한테 딸랑거리며 똥꼬나 빨고 다니죠~ 후작가 차남 똥꼬는 꽤나 달달한가 봅니다? 저도 한 번 빨아볼까요?”

“이 개자식이! 진짜 죽여줄 테다!”

내 도발에 참지 못한 모아이가 먼저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내 어깨를 향해 오러 소드까지 일으키며 덤비는 게 진심으로 나를 죽이려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샤오메이에게 배운 보법을 가볍게 밟은 후, 오른발을 축으로 몸을 가볍게 모아이의 옆으로 돌아 완전히 무방비한 옆구리와 마주쳤다.

필요한 건 확실한 한 방, 나는 반사적으로 공화연방의 무술이 아닌, 왕국의 전투술, 현실의 복싱을 사용했다.

퍼어억!!

“커억..!! 콜록..! 콜록!”

오른쪽 몸통에 꽂힌 바디블로가 정확히 간장을 때린 건지, 모아이는 그대로 자세가 무너져 바닥에 쓰러져 기침을 연신 터트린다. 공공장소에서 기침을 할 때는 마스크 쓰는 법도 못 배웠나.

“이, 이 개자식이이!! 감히 눌튼을!!!”

개구리가 폴짝 뛰어오르며, 다시 한 번 날카로운 쾌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오는 공격은 피하기에는 낯설 거라고 생각했나 보지.

나는 그런 기대를 부숴주기 위해, 세 번째로 검을 내지르던 양팔을 잡아 반대로 이쪽에서 떠올랐다.

“엣? 내 공격을 간파해..?!”

“점프 공격은 패배 플래그인 거 못 배웠습니까?”

이래서 사람은 배움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대로 공중에서 개구리의 몸을 꺾은 후, 바닥을 향해 낙하하며 개구리의 양다리를 꽉 잡아 고정시킨 후, 바닥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왕국 격투술 오의 ─ 머슬 버스터.

쿵!!! 우드득!!

“아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

본래라면 척추를 부수고 목뼈까지 박살 내는 최흉의 살인기. 하지만 내가 힘 조절을 한 덕분인지 개구리는 다리뼈만 금이 간 듯, 양다리를 붙잡고 아파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개구리를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털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카페에 있던 가구들이 완전히 박살이 난 상황이었다.

“카페가 완전 엉망이잖아.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링턴 선배님.”

내가 고개를 돌려 몰래 도망치기 시작한 곰보를 부르자. 녀석은 경찰에 걸린 도둑마냥 완전히 얼어붙어서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네, 네 녀석이 부순 거잖아! 왜 나를 부르는 거냐!”

“아니, 모아이랑 개구리 선배가 선배님이 시킨 대로 절 혼내 주려다가 다 부숴 먹은 걸, 왜 제 탓을 합니까?”

“애초에 네가 먼저 시비를 걸었잖아..!!”

“누가 시비 좀 걸었다고 주변을 다 때려 부숩니까? 선배님이 책임 지셔야죠.”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나, 나는 글링턴 가문의 차남이야!”

이 곰보 새끼도 그렇고, 개구리와 모아이도 그렇고. 내가 위센 공작가 후계자 조진 소문은 듣지도 못한 건가?

어이가 없어서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어깨에 팔을 얹고는 어깨동무를 해 오기 시작했다.

“잘 싸우던데 아르틴! 저번에 여기사랑 싸울 때도 그렇고. 마법보다 무술이나 검술에 재능이 있는 거 아니냐!”

“아, 오셨어요 누님?”

“히, 히익, 와. 왕녀님?!”

내 옆을 바라보니, 왕국의 제1 왕녀, 마리안느 스승님이 나를 보며 재밌는 구경을 했다는 듯 유쾌한 미소로 어깨를 팍팍 두들겼다.

“그나저나, 왕국식 격투술에도 아주 능하던데! 조금 있다 나랑 스파링 좀 어울려 줘야겠어!”

“네? 제가요? 스파링을요? 누님하고요?”

“그래! 설마 방금 전까지 잔뜩 싸워 놓고 나랑은 뺄 생각은 아니겠지?”

“아니죠! 해야죠! 물론 해야죠!”

으름장을 놓듯이 큰 소리로 외치며 내 어깨를 힘을 줘 주무르는 통에, 전생에 대답이 시원치 않다고 힌두 스쿼트를 수백 개 씩 시키던 악몽이 다시 떠오를 것 같아 나는 자연스럽게 싫다는 말을 집어넣고 기합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 바로 가볍게 준비 운동하고 오늘은 스파링을 잔뜩 하자고! 기초체력을 기르고 싶다고 했지? 싸우다 보면 늘게 되어있어!”

“자, 잠시만요! 왕녀님! 저 무뢰한하고 어울리시면 안 됩니다!”

그런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 쑥대밭을 뒤로 하고 질질 끌고 가려던 마리안느 스승님은, 뒤에서 황급하게 부르는 개구리의 말에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지금 뭐라고 했지? 내가 귀가 영 안 좋아서 잘못 들었는데.”

“저 남자는 아까 아그네스 황녀님이랑 대마녀의 손녀 바이올렛이나, 무신의 딸 샤오메이랑 뒹굴고 싶다고 말하던 허언증의 호색가입니다! 족보도 없는 귀족이랑 어울리면, 왕가의 체면이....에욱..”

아까 내 말을 전부 엿들은 건지, 신나서 고자질을 하던 곰보는, 마리안느 스승님이 자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아래턱을 움켜쥐자 겁에 질린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 말은, 아르틴과 약혼한 내 친구인 아그네스를 모독하는 말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냐? 이 망할 곰보새끼야?”

“아...아..아닙니다아앗...제, 제가 실수를..”

왕녀의 패기에 겁에 질린 건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곰보 선배는 가냘픈 목소리로 용서를 빌기 시작했고, 곰보의 바지가 젖어 드는 것을 본 마리안느 스승님은 곰보의 몸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네 사죄는 받아 주지, 대신 이 카페는 확실히 배상하고, 내 눈앞에 다시는 그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마라.”

“가..감사합니다!!”

고개를 연신 조아리는 곰보를 보며 일그러진 얼굴로 혀를 찬 마리안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자, 그럼 갈까 동생! 뒤처리는 이 떨거지가 대신 해준다는 군!”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며 성큼성큼 앞서가는 마리안느를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역시 사자처럼 무서운 기백. 거인 살해자의 이명이 아깝지 않는 위압감은 왕국의 제1 계승자 다운 풍모라고 봐야 할까.

“아, 그리고 방금 들은 이야기는 좀 설명을 해줬으면 하는데. 아그네스랑 바이올렛이랑..샤오메이?”

“네? 그건 그냥 저 선배가 지어 낸 헛소리..”

내가 발뺌을 하려는 순간, 마리안느 스승님의 오른손이 내 어깨를 부드럽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프지 않은 그 감각이 나는 도리어 소름 돋게 무서웠다.

“스파링, 재밌겠네. 그렇지 동생? 다들 몇 대 맞으면 진실을 말하더라고?”

나는 그 순간, 시온과는 전혀 다른 최상위 포식자의 살기가 담긴 눈빛에, 명백히 좆됐음을 직감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