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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68화 (68/266)

〈 68화 〉 Tag : mixed fighting

* * *

‘어제는 너무 심하게 굴렸나.’

주말의 아침, 제1 대련장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와 준비 운동을 하던 마리안느는 어제의 대련을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평상시에는 거침없는 대범한 행동과 언행으로 유명한 마리안느지만, 그녀라고 해서 타인에게 완전히 무신경 한 것은 아니다. 아그네스를 돌보는 태도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오히려 강한 태도에 비해 속은 날카로우며, 동시에 민감하다.

그래서 일까, 어린 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타고난 강자이기에 약자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던 스승님의 가르침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그 자식, 이상한 헛소리를 해가지고..’

처음에는 황태자의 부탁도 있고, 아그네스의 남자에 어울리는 지 시험할 겸 적당히 하려고 했지만...

그 귀여운 아그네스를 두고도,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린다는 사실이, 마리안느의 트라우마를 조금 자극했다. 그래서 조금 감정을 실은 펀치로, 신나게 두들겨 패주기는 했지만..

‘어른답지 못했군. 응. 실수했어.’

이제 고작 17살인 1학년 에게 어제의 대련은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헤어질 때는 내일도 부탁한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힘없는 목소리로 보아 다른 전사들처럼 핑계를 대고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이 심했던 것과 별개로, 제 역량이 부족하니 지금은 포기하겠다고 당당히 말하지는 못할망정, 직접 부탁한 스파링에 나오지 않는 것은 사내로써 어떨까. 왕국의 사내라 하면 모름지기 양 다리가 잘려도 제 말은 지켜야하는 법이다.

힐끔 시계를 보자, 이제 곧 약속시간이다. 길게 볼 것도 없이, 10분만 더 기다리다가 자리를 떠나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훈련복의 옷매무새를 다듬던 찰나.

“오,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마리안느 누님!”

“...하하! 어제 그렇게 맞고도 아침부터 기운차구나, 아르틴!”

기운차게 인사하며 들어오는 아르틴을 보자, 방금 전까지 생각하던 걱정들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래야 내가 인정한 의동생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덕분에 포션으로 물배를 채웠거든요. 오늘은 좀 살살 부탁드릴 게요 누님.”

“네가 무신의 딸과 대마녀의 손녀에 대한 오해를 풀어준다면 말이지.”

그 말에 시선을 돌리는 아르틴을 보자, 다시 조금 열이 받기 시작했다. 역시 좀 강하게 혼내줄 필요가 있는 것 같은데.

*

의도적으로 말을 돌리자, 마리안느 스승의 눈에 투기가 피어오르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걱정마라. 오늘은 유니코르가 있으니까.

“뭐? 2명이서 싸우겠다고?”

“마법이나 성법은 치트키긴 하지만, 저랑 유니코르는 계약자니까요. 실전에서도 둘이 싸울 테니 합을 맞춰보고 싶어서요.”

그런 내 말에, 유니코르는 겁에 질린 눈빛으로 고개를 힘없이 끄덕였다. 아마 마리안느가 거절이라도 하길 바라는 것처럼 보였지만.

“틀린 말은 아니군. 저번에 카페에서 두 덩치처럼 실전에서의 연계는 중요하니 말야. 좋아! 둘이 동시에 덤비라고!”

마리안느 스승의 당당한 외침에, 유니코르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것을 본 나는 유니코르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레슬링 복장 같은 훈련복을 건네주고, 탈의실에 밀어 넣었다.

“자, 잠깐! 아르틴! 이런 파렴치한 복장을 본좌에게 입혀도 되는 것이냐! 게다가 너무 가슴이 조이는 구나! 역시 훈련은 무리인 것 같으니..!”

“그렇게 징징대다가 늦어도 난 모른다? 마리안느 누님은 늦는 거 엄청 싫어할 텐데.”

내가 엄포를 놓자, 결국 유니코르는 레슬링 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우으...무지 파렴치한 복장이다. 꼭 이런 걸 입고 훈련을 해야 하느냐?”

레슬링 복을 입은 유니코르는, 꽤 파렴치한 모습이었다. 하늘거리는 새하얀 원피스로 가려져있던 큼지막한 가슴이나, 잘록한 허리에 비해 큰 엉덩이와 육덕진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나니, 확실히 창피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인간에게 보이는 건데, 그렇게 신경 쓰이는 거야?”

“읏..! 아니, 유니콘은 언제 어느 때라도 순결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노라!”

“그러면 기숙사에서 돌핀 팬츠에 티셔츠 차림으로 돌아다니질 말던가.”

기숙사에서 복장을 생각하면, 저건 다 핑계에 가깝다. 나는 머뭇거리는 유니코르의 손목을 잡아 탈의실에서 나왔다.

“자, 잠깐, 부끄럽노라! 이 바보! 여심도 모르는 바보니라!”

뭐라고 시끄럽게 떠들기는 했지만, 나는 방금 본 유니코르의 몸매로 발기하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하느라 듣지 못했다.

이 옷 입고 발기하면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 분명했으니까. 혹시라도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지.

*

‘시발, 내가 무슨 착각을 한 거냐!’

그런 걱정이 무슨 병신 같은 걱정이었냐는 듯, 스파링이라는 이름의 실전 격투 훈련이 시작되자 나는 죽기 살기로 싸워야만 했다.

“역시 신수 유니콘!! 터프하구나! 이것도 막아봐라!!”

“꺄아아악!! 아르틴! 이 여자는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이다!!!”

뻐억─! 쾅!!!

권능 도둑도 체술로 제압하던 유니코르가, 마리안느 누님의 래리어트를 맞고 날아가 벽에 쳐박히자, 나는 이제 웃음조차 지을 수 없었다.

“자, 아르틴. 덤비는 기세가 줄어든 것 같은데, 내가 직접 가야겠어?”

슬슬 그만 쉬고 다시 덤비라는 압박에 나는 이를 아득 물었다. 샤오메이에게 배운 태산도장의 무술과 왕국의 격투술을 더해, 마나로 최대한 신체스펙을 끌어 모았는데, 땀 몇 방울 나게 하는 게 고작이라니.

역시 타고난 초인. 황태자 말고 이 시점에서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어쩌면 군단장을 상대로도 좋은 승부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인정받아야 해.’

마리안느를 동료로 삼으면, 훨씬 스토리가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전대 스승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내 나름대로의 자존심이 꺽이는 기분.

“후우..좋아, 계속 갑니다! 유니코르! 가자!”

“으아아악! 본좌는 이제 좀 쉬고 싶노라!!”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탄환처럼 빠르게 벽에서 튀어나온 유니코르의 발차기가 마리안느 스승의 복부를 향했다. 예상한 듯 마리안느가 가드를 올려 공격을 막아내자. 유니코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맹공세를 이어나갔다.

‘시발, 너무 빨라서 끼지도 못하겠잖아..!!’

마법의 보조만 있다면 어떻게 해볼 텐데, 이정도 수준에서 마법도 연금술의 버프 도핑도 템빨도 없는 나는 할 수 있는 게 적다. 대신, 눈으로 보고 경험치라도 쌓으려는 찰나.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췄다.

번뜩이는 주홍빛 눈동자가 유니코르의 공격을 이미 파악했는지, 어느새 유니코르의 발목을 붙잡아 공격을 막아낸 마리안느 스승이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스펙은 좋은데, 너무 직선적이잖아! 그래서는 이렇게 읽혀버린다고!”

“꺄아아아악!!! 본좌가 빙글빙글 돌아간다아아!!”

“유니코르!”

나는 자이언트 스윙을 당하다가 다시 벽으로 날아가는 유니코르를 향해 몸을 던져 받아줬지만, 그 물리적인 충격은 사라지질 않아 경기장 바닥을 힘차게 구르고 말았다.

“켈룩, 켈룩..괜찮아? 유니코르?”

받아낸 충격으로 몸을 일으킨 후, 유니코르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이런. 눈이 풀린 게 방금 충격으로 기력을 다했거나 기절한 게 틀림없다.

“마법이나 성법을 봉인하고도 이 정도라니, 정말 생각보다 쓸만 하구나. 아르틴!”

유니코르를 한쪽으로 밀어 넣고 앞으로 나오자, 방금의 공방으로 꽤나 힘을 소모했는지 땀을 닦아내던 마리안느가 나를 치켜세워 주기 시작했다.

물론, 퀘스트는 아직도 성공하지 않았다. 인정해 줄 거라면 퀘스트나 해결해주지.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는 말씀을 하시려는 거겠죠?”

“눈치도 빨라서 마음에 드네. 아그네스랑 사귀려면 이 정도는 고난의 측에도 못 껴!”

슬슬 체력이 방전됐는지 손도 달달 떨리지만, 퀘스트를 실패할 수는 없었다. 유니코르가 열심히 체력도 빼줬으니,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서라도 인정받는 수밖에 없다.

‘인벤토리, 자양강장제 앰플!’

나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작은 앰플을 입에 쭉 밀어 넣자, 피로로 퍼져있던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한번 광란의 밤을 보낼 때 마다 체력 딸려서 만든 약이지만, 저번에 샤오메이와 훈련할 때 쓰던 약보다 3배는 효과가 좋은 농축형 정력제나 다름없다.

“그럼, 갑니다!”

“좋아, 이제 1:1이니 네 수준에 맞춰 상대해줄게!”

마리안느가 몸을 낮추고 레슬링 자세를 취하자, 나는 마찬가지로 레슬링 자세로 덤벼들어 강하게 태클을 걸었다.

뿌득! 마나까지 사출하며 추진력을 더했는데도, 마리안느 스승은 마치 바위처럼 굳건하게 서서 버틴다.

‘미친, 3cm? 전력으로 태클을 걸어도 3cm라고?’

“마나는 잘 쓰는데, 허벅지랑 코어 힘이 부족하네! 이제 넘겨주마!”

“으아아악!!”

그 말과 동시에 내 몸이 천천히 들려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대로 수플렉스로 고꾸라질 상황. 나는 마지막까지 발버둥치겠다는 마음으로 손을 마구 뻗었다.

뭉클!

“꺄, 꺄악!”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으로 손을 뻗어 마리안느 누님의 몸을 붙잡았는데, 손 안을 채운 부드러움이 느껴짐과 동시에, 누님이 마치 아가씨처럼 비명을 지르더니 뒤로 넘기려던 내 허리를 놓고는 황급히 떨어졌다.

방금 내가 만진 곳은...추측컨대, 누님의 엉덩이를 아주 강하게 움켜쥔 것이 틀림없다. 그 탓에 깜짝 놀란 누님이 나를 놔준 거구만.

“이, 이 호색한 같으니. 지금 일부러 내 몸을 주무른 거냐?”

자신이 아가씨처럼 비명을 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누님은 얼굴을 붉히며 내게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억울했다. 기분 좋은 해프닝이긴 했지만, 노리진 않았는데.

“방금 머리가 바닥에 꽂힐 뻔 했는데, 제가 그럴 여유가 있었겠습니까!”

“으, 으윽...그건 그렇기는 한데.”

하지만 조금 낯선 반응이긴 했다. 전생에 누님은 존나 털털해서, 실수로 가슴이 드러나도 덕분에 눈이 호강했으니 오늘은 스쿼트 500개 추가라고 외치던 사람이었는데. 저렇게 창피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니?

“그만 하실 겁니까? 그만 하신다면 제가 이긴 걸로 알겠습니다.”

하지만 꽁승은 놓칠 수 없지. 머뭇거리는 누님에게 포기할거냐고 묻자, 누님은 장난 하냐는 듯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설마 나를 여자 취급 할 셈이냐? 감히? 이런 모욕을 주다니..!”

화가 나서 나를 향해 덤비는 스승님을 향해, 나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다리를 걸어 자세를 무너트리려고 했다.

‘이런 미친, 아까보다 단단하잖아!’

“관절을 노려도, 힘이 부족하면 상대방을 넘어트릴 수 없어! 끝내주마!”

다시 한 번 내 몸이 들리기 시작하자, 나는 최대한 무게중심을 낮췄지만 이 거인 살해자 앞에서는 무용지물 이었다. 보아하니 이번에 내려 꽂히면 정말로 기절할 것 같은데..!!

‘패배는 안 돼! 퀘스트 실패하면 망한다고!!’

나는 다급한 마음에, 순간 내 시야를 가득채운 가슴을 향해 손을 뻗어, 마리안느 누님의 가슴을 한 가득 움켜쥐었다!

몰캉!몰캉!

“꺄아악!!”

내가 대놓고 가슴을 주무르자, 마리안느 누님은 나를 대충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자신의 양 가슴을 가렸다. 그저 떨쳐내기 위한 던지기에 당황하지 않은 나는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이, 이번에는 진짜로 노렸어!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 하지 마!”

“...”

이 짧은 공방에서, 나는 확신했다. 이 퀘스트를 정공법으로 깨는 건 무리라고. 그러니, 마리안느 누님의 약점을 노려야 한다고.

‘생가슴....설마 스포츠 속옷도 안 입었다니..!!’

아까 엉덩이는 너무 다급해서 잘 느끼지 못했지만, 손끝으로 느껴지는 촉감은 확실했다. 한 번 더, 저 곳을 노릴 수만 있다면...

...절대로, 내 욕망에 의한 결론이 아니었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마리안느 누님을 이겨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 번이라도 제압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분명 누님의 성격상 어찌됐든 나를 인정해줄 것 이다.

‘이건 전부, 아그네스를 위해서야..!!’

퀘스트의 클리어를 위해, 나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저 음습한 얼굴..!! 또 변태적인 행위로 나를 괴롭힐 셈이냐?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다!”

“실전에서도 설마 이걸로 전투를 멈출 겁니까? 저는 아직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이익...이 변태 녀석, 이번에는 진짜 끝을 내주마! 너에게 아그네스를 허락할 수는 없어!”

뭔가 점점 어긋나는 것이 느껴졌지만, 묘하게 몸이 후끈거리고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왠지 지금의 상태라면, 어떤 여자랑 붙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기묘한 격투기가 시작됐다. 어떻게든 제압을 하려는 여자와, 어떻게든 야한 짓으로 이기려는 남자의 싸움이.

**

아그네스는 들뜬 발걸음으로, 제1 대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후훗, 아르틴이 제가 도시락을 싸온 걸 알면, 무척 기뻐하겠죠?’

요리를 많이 해보지 않아, 양 조절에 실패해 양 손에 들어야 할 정도로 많이 만들기는 했지만, 아르틴이라면 분명 전부 맛있게 먹어줄 것이다.

자신의 연인이 먹는 모습만 상상해도 가슴을 살랑살랑 간지럽히듯 행복감이 올라오자, 아그네스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열심히 참아야 했다.

‘한동안 잘 만나지도 못했으니..같이 오붓하게 대화도 하고, 입맞춤...연인이니, 입맞춤도 나쁜 게 아니겠지요..?’

어차피, 약혼한 관계에, 이미 몸까지 섞어놓고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아그네스는 여전히 아르틴과 손을 잡는 것도 부끄러운 소녀였다. 이전에는 그저 용기를 열심히 냈을 뿐, 묘하게 들뜨는 마음은 스스로 제어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흠흠, 분명 열심히 수련하고 계실 테니, 슬쩍 들어가서 깜짝 놀래켜 주는 것도 괜찮겠죠?”

헛기침으로 마음을 누른 아그네스가 저번에도 아르틴을 만났던 제1 대련실의 문을 살짝 열자, 안을 들여다보기 전부터 두 사람의 기합 소리가 귀를 찢을 듯이 터져 나왔다.

‘이 정도로 격렬한 수련이라니..전생에 그랬던 것처럼, 강해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군요..!!’

아그네스는 기억 속에 있던, 뼈를 깎고 피를 토할 정도의 거친 수련을 하던 아르틴을 떠올리며, 그의 노력에 감동을 느꼈다. 그런 그를 속으로나마 응원해 주기 위해, 마음을 다 잡은 아그네스는 문 사이 너머로 제1 대련실의 안을 들여다 보았다.

“.......어머?”

그 안의 풍경은, 아그네스의 예상과는 조금 많이 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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