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바이올렛과 계약의 악마
* * *
여전히 주말의 첫날, 시계가 오후 1시를 알리는 시간.
온갖 일이 일어났던 제1 대련실의 근처에 위치한 제3 대련실, 그곳에는 익숙한 형상의 마녀가 지팡이를 쥐고, 자신과 10m정도 떨어진 표적을 향해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자, 제 본질은 계약의 악마. 그대가 원하는 바람을 이루어주는 악마입니다! 그러니, 간절히 바라십시오!]
노란 토끼 형상의 악마가 강력하게 외치자, 바이올렛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를 빙그르르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 바이올렛 퍼플크로우는, 간절히 바라오니! 저 표적을 불태워라!”
지팡이가 멈추고, 그 끝이 표적을 가리킨다. 동시에 노란 토끼에서 엄청난 양의 마력이 뿜어져 나와, 대련실의 공기를 뒤바꾸기 시작했다.
[우햐햣!! 그렇다면 목도하여 두려워하십시오. 지옥의 겁화를──!!!]
마력은 바이올렛의 바람에 따라, 표적뿐만 아니라 주변 일대를 모두 태울 것 같은 거대한 검은 화염의 형상이 되어 표적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꿀꺽, 바이올렛도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긴장하여 마른 침을 삼키는 순간──
화륵!
“...어라?”
[...어라?]
닿는 순간 혹시 모를 폭발에 대비해 방호 마법까지 준비했던 바이올렛은, 거대한 검은 화염구슬이 허수아비에 부딪히자 작은 불씨만을 일으키고 사라지자, 허탈감에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방금, 방금은 성공했잖아? 무척 크고! 대단하고! 그런데 왜 위력은 부싯돌 급인거야?!”
[그, 그것은. 당신이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정신을 집중하십시오! 지옥의 군주의 열두 권속의 힘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하루 전, 중급 악마 알‘미라즈와 계약했다는 것을 안 바이올렛은 처음에는 자신이 사기계약을 당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허나, 계약서에 따른 알‘미라즈의 상냥하고도 친절한 악마식 설명을 1시간 이상 듣고 난 후,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모르겠다고 납득해버린 그녀는 아르틴이 싸울 때 바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주말의 아침부터 레포트나 복습, 예습 대신 패밀리어가 된 알’미라즈의 힘을 다루기 위한 수련을 시작한 것 이다.
그런 것 이지만──
“하지만 벌써 100번도 넘게 실패했잖아!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아침부터 계속된 시도에도,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자. 아무리 자존감이 낮은 바이올렛이라도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했다. 하물며, 간단하게 적을 밀치거나, 베거나, 불태우는 것조차도 실패하는 것은 하급 악마인 임프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가, 간절함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제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을 방금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아무리 그래도 그 많은 마력으로 부싯돌 위력은 좀...”
[너무 강한 마력을 다루지 못하면, 마치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것이 계약의 악마의 일족이 가지는 리스크! 전지전능에 가까운 힘에는 패널티가 있는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그리고, 바이올렛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이 일의 원흉은 이 이빨을 열심히 까고 있는 알‘미라즈였다.
실제로 바이올렛의 재능은 꽤 좋은 편에 속한다. 방금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검은 화염구슬 또한, 바이올렛의 재능과 집중력이 더해진 결과에 속했으니까.
허나, 계약의 악마는 계약자의 구체적인 상상을 악마 자신이 구현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다양한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마력의 양만 상급 악마에 준할 뿐, 마력 자체를 다루거나 구체화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마수보다 못한 알‘미라즈에게는 도리어 다루기 힘든 힘이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명령을 받은 후, 3m가 넘는 대검을 휘두르려 하는 상황. 당연히 휘두르기는커녕 들어 올리는 것조차 실패해놓고도 이 악마는 사악하게도 뻔뻔히 바이올렛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마는 것이다.
“..하아, 이상하네. 이렇게 안 될 리가 없는데.”
악마의 속임수는 자존감이 낮은 바이올렛에게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렇기에 아침부터 계속된 훈련에, 도리어 바이올렛은 자존감을 잃어 정신적으로 지쳐있었다.
“전생에는, 나중에 가서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힘도 어느 정도 능숙하게 다뤘던 것 같은데...역시, 아르틴이 도와주지 않아서 인가..?”
움찔!움찔!
[아, 메, 메피스토펠레스님과 계약한 적이 있으시단 말입니까...?]
바이올렛의 독백에, 알‘미라즈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바이올렛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 표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바이올렛도 여태까지의 일을 의심했을 지도 모르나, 바이올렛은 토끼가 짓는 표정을 분간하는 능력이 없었다.
“...그랬지, 아르틴이 도와준 덕분에. 솔로몬의 반지를 적에게서 뺏은 후에 나한테 줬었거든.”
[소, 솔로몬의 반지를 말입니까아?! 아, 아르틴이라는 분이 말이죠?!]
아련한 추억을 회상하는 바이올렛의 표정에, 알‘미라즈는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필멸자 중에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과 같은 초월자의 영역을 넘어, 승천의 영역에 발을 내딛는 존재들을 성좌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도 계약의 성좌 솔로몬은, 악마와 인간 양쪽 모두에게 특별한 성좌였다.
인간계에 이르기를 최초의 마녀, 시바 여왕을 탄생시킨 위대한 마법사왕이라 불리우며
지옥에 이르기를 당시에 존재하던 모든 지옥의 악마들을 굴복시킨, 가장 위대하고 악랄한 인간.
악마들에게 솔로몬은 공포와 경외를 동시에 받는 존재였다. 동시에 계약의 악마는 솔로몬이 직접 창조했다고 전해지는 악마. 알‘미라즈가 공포에 떠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솔로몬의 아티팩트를 손에 넣고, 메피스토펠레스님의 유일한 친구라니, 아르틴 루드비히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 겁니까?’
이미 알‘미라즈의 속 안에서 아르틴이라는 인간은, 제 2의 솔로몬이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경외심과 공포가 싹트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나중에 무례를 끼칠까, 알’미라즈는 토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 공손한 포즈로 바이올렛에게 질문했다.
[저..그, 아르틴이라는 인간 분은 어떤 분입니까?]
“어머, 너도 아르틴이 궁금해?”
[계, 계속 말씀하시니 호기심이 들어서 말입니다. 악마는 호기심에 죽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내가 그렇게 많이 말했나~라고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도, 바이올렛은 아르틴을 떠올리자 행복한 웃음이 그려지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글쎄, 아르틴은 무척 대단해. 남들보다 눈에 띄게 강한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눈에 띄게 똑똑한 것도 아닌데, 모두가 포기한 불가능한 일을 이뤄내거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다니...전지전능한 존재...?‘
“늘 다정하고, 사람을 챙겨. 처음에는 나도 그냥 친구의 친구로 생각했는데, 어느 샌가 내 마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거 있지?”
‘사람의 마음에 파고드는 악마적인 매력...메피스토펠레스 님을 홀릴 정도라면 얼마나 강력한 권능인 겁니까..?’
“그러면서도, 언제나 위태롭게 보여서, 같이 곁에서 서서 도와주고 싶어져.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생각해.”
‘사람을 따르게 하는 용인술 까지..분명 인간들의 세계에서 왕이나 황제의 피를 이은 위대한 존재인 게 틀림없습니다...!’
알‘미라즈의 헛된 착각을 알아차리지 못한 바이올렛은, 이상하게도 아르틴을 떠올리자 마음이 편해지며 조바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늘 믿음직해서, 떠올리기만 해도 안심이 되는 사람. 그래서 사랑에 빠졌으니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한테 먼저 사귀자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러니 이제는 아르틴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할 거야.”
[과연, 먼저 사귀...사귀자고 했다고 말하셨습니까? 연인...이십니까?]
아르틴이라는 인간의 대단함을 곱씹던 알‘미라즈는, 바이올렛의 입에서 나온 발언에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 사귄다고 해야 할까? 후후, 약혼이라고 해야겠지? 그렇게 정열적으로 고백해 왔는걸.”
사랑에 빠진 표정의 활기찬 대답에, 알‘미라즈는 자신이 이곳에 오기전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맞다. 지금 아르틴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짐에게 말해주거라,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짐에게 즐거운 여흥이 될 것 같구나”
...사랑에 빠진 소녀의 표정. 자신에게 내린 명령의 의도는 분명 순수하게 친구의 소식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고 알‘미라즈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약혼이라니?
[그, 약혼은 너무 갑작스럽지 않습니까? 우선 연애부터 천천히 하는 것이 그 나이대의 또래에 맞는 건전하고 유익한 연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으..응? 건전하고 유익한 연애..?”
[바이올렛 양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평생을 운운하는 약혼은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다급해진 알‘미라즈가 청소년의 건전한 연애관에 대해서 설토를 하자, 바이올렛은 자신이 소환한 것이 악마가 아니라 천사였는지에 대해서 순간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었다.
“확실히, 주변에는 조금 갑작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네...할머니에게도 말씀드려야 하고...”
[네! 맞습니다! 그러니 일단 천천히 시작하는 것이!]
“그래도, 샤오메이랑 아그네스랑도 약혼으로 시작했으니까...나도 질 수는 없는 걸! 응! 연애도 좋지만, 두 사람처럼 먼저 고백하지 못한 만큼 아르틴에게 잘해주고 싶어!”
아그네스랑 샤오메이는 또 어느 잡년이야, 라는 말이 튀어 나올 뻔 한 것을 억누를 수 있던 것에 대해, 알‘미라즈는 스스로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도대체 몇 명의 여자를 취한 겁니까. 그 남자는...!’
지옥에 돌아간다면, 메피스토펠레스님에게 어떤 설명을 해야 하는 걸까 알‘미라즈가 토끼귀를 잡아당기며 고민하는 사이, 바이올렛은 개운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이렇게 답답하게 앉아만 있지 말고 마실 거라도 사오자! 알‘미라즈도 마실래?”
[지금, 음료수를 마실 상황이 아닙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토끼니까, 당근 주스 좋아해? 아는 애중에 당근을 무척 좋아하는 애가 있어서 찾은 당근 주스랑 당근 케이크를 잘하는 카페가 있거든!”
[당근 주스요? 가겠습니다.]
한계까지 고통 받던 토끼의 작은 뇌가 당분을 원했다. 알‘미라즈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바이올렛은 알’미라즈를 안아들고 카페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학생 식당 인근에 위치한 카페 ‘해피 타임’, 당근 주스와 당근 케이크를 맛있게 하여 유니코르를 데리고 일행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이런 좋은 공간이 있다니! 당근 주스는 XL사이즈로 부탁드립니다!]
“후후, 알았어. 여기 당근 주스 XL사이즈로 하나랑, 호박 주스 L사이즈로 하나 주시겠어요?”
“네, 4실버입니다.”
계산을 마친 후, 음료를 기다리기 위해 빈 자리를 찾던 바이올렛은 야외 테이블에 보이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어라? 아르틴이 저기 있네?”
[ㅇ, 예에?! 아르틴님 말입니까?!]
“응, 저기 붉은 머리의 귀엽게 생긴 남자애 보이지? 재가 아르틴이야!”
바이올렛의 품안에 안겨 당근 주스의 달콤함을 상상하던 알‘미라즈는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겁에 질린 눈빛으로 시선을 천천히 돌렸다.
“...”
“...”
그리고 그 손끝에는, 기분 나쁠 정도로 신성력을 뿜어내는 여인과 어색하게 마주 앉아 디럭스 초코 우유를 빨대로 휘적거리는 붉은 머리의 소년이 앉아 있었다.
‘...저게 아르틴 루드비히?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인간이군요.’
아르틴 루드비히에 대한 알‘미라즈의 평가는 그저 그랬다. 허나 여전히 경외심과 공포는 남아 있었다. 솔로몬의 아티팩트를 손에 넣은 존재, 메피스토님의 친구라는 위치는 절대로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무언가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둘이 엄청 친한 데, 싸우기라도 했나? 분위기가 이상하네?”
[맞은편의 저 여인과 말입니까? 저 여인이 샤오메이인가 아그네스인가 하는 그 여자 입니까?]
“아니, 재는 유니코르야. 순수혈통 유니콘인데 아르틴하고 계약했거든.”
유니콘이면 유니콘이지, 순수혈통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미라즈는 굳이 입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거기에 두 사람의 분위기는 친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색한 사이였다.
‘거기에, 이 알’미라즈의 통찰력으로 봤을 때는, 저 유니콘의 눈빛도 뭔가 심상치 않군요...‘
힐끔 힐끔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는 저 반응. 단순히 친구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라 썸남을 의식하는 ‘암컷’의 눈빛이었다. 도대체 저 남자의 권능의 끝은 어디에 있길래, 여자를 셋이나 취해놓고도 유니콘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인가.
“저기, 알‘미라즈. 너는 계약의 악마라고 했지? 뭐든지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존재.”
[...네? 맞긴 합니다만,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알‘미라즈가 아르틴 루드비히라는 인간에 대해 재차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바이올렛이 문뜩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자 알’미라즈는 의아한 감정을 담아 되물었다.
“아르틴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여서, 아르틴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을까?”
바이올렛이 생각한 것은, 옛 이야기에 전해지고는 하는 마녀의 축복 같은 것이었다. 패밀리어의 힘을 이용해 거는 마녀의 축복은, 대상에게 가벼운 행운이나 행복을 불러 온다고 전해진다.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바이올렛의 눈으로 보기에는 두 사람의 심각한 표정으로 추측하건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깜짝 행운으로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아주 순수한 선의였다.
[...흠, 정말로 순수한 바램, 사랑하는 이를 위한 간절함이 들어간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알‘미라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무지렁이 같은 마력 컨트롤에 대한 근본 없는 자신감은 둘째 치더라도, 바이올렛과 계약했기에 느껴지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선의는 허수아비 따위에 바이올렛이 느끼던 적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순수했기 때문이다.
[그럼 제 이름을 외치십시오! 당신의 바램에 따라 아르틴 루드비히에게 소소한 행복을 전달해 주겠습니다!]
“으, 응! 알았어!”
왠지 이번만큼은 성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주먹을 꾹 움켜쥔 바이올렛은 품에 안겨있던 알‘미라즈를 허공으로 띄우며, 진심으로 아르틴을 축복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간절히 외쳤다.
“──알‘미라즈!”
또랑또랑한 바이올렛의 외침에, 노란 토끼를 보라색 마력이 천천히 휘감기 시작했다. 이제껏 보지 못한 반응에, 바이올렛과 알‘미라즈는 성공을 확신했다.
“드디어, 성공인가 봐!”
퍼엉!!
...그리고 빛에 휘감겨 알‘미라즈는 갑자기 연기와 함께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라? 알‘미라즈? 어디에 간 거지?”
설마 실패해서 지옥으로 돌아간 건가? 라고 생각이 들어, 좌절에 빠지려던 찰나.
“꺄아아아악! 뭐냐! 아르틴! 지금 뭐하는 짓이냐!”
“이 목소리는? 유니코르?!”
밖에서 들려오는 유니코르의 비명소리에, 바이올렛은 황급히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꺄아아아악?! 제가 왜 이런 모습으로 안겨있는 겁니까!?”
“아르틴!! 설마하니 성욕에 못 이겨서 수인 호문쿨루스라도 만든 것이냐!! 본좌가 있는데 어떻게!!”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털이 복슬복슬한 토끼 수인에 아르틴은 잠시 현실감을 잃었다.
‘이게 씨발 갑자기 무슨 일이지?’
내가 아는 이 세계의 수인은 사람에 동물귀를 단 유사 수인에 불과했는데, 이 수인은 왜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서 내 품에 안긴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꿈인가 라고 생각한 순간, 유니코르의 전력펀치가 내 아가리를 향해 꽂혔다.
“커억!!”
간신히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바닥을 구르며 야외 테이블을 와장창 박살냈다. 갑자기 죽빵을 얻어맞은 나는 억울한 마음에 고개를 들자, 벅스 버니의 여체화 같은 노란 토끼 수인이 몸을 가리며 꺄악 꺄악 비명을 질렀다.
“지금 어딜 쳐다보느냐..! 알몸의 여인을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다니! 아르틴 네 녀석은 수치심을 모르는 짐승인 게냐!”
“아니, 털가죽 뒤덮인 수인한테 알몸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데!”
“꺄아아악! 제 알몸을 그만 쳐다보세요! 이 변태! 호색한!”
“나는 너 같은 수인한테 발정하는 변태가 아니야 이 미친 토끼 인간아! 누굴 수간충으로 알아!?”
내가 다급하게 버럭 소리를 지르자, 빼액빼액 비명을 지르던 노란 토끼 수인은 내게 겁이라도 먹은 것 인지 움츠러든 표정으로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그렇게 심하게 말할 것은 없지 않느냐아...”
동시에, 유니코르가 이유는 모르겠는데 상처 입은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재까지 진짜 왜 저러냐, 이게 도대체 무슨 개판이야?!’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조용하던 카페가 갑자기 난장판이 되자, 나는 속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오라버니?”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며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와 호칭에 고개를 황급히 돌리자, 샤오메이가 눈물을 흘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발 돌겠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