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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74화 (74/266)

〈 74화 〉 아티팩트 증정식

* * *

그날 저녁, 연금술 동아리의 부실. 아르틴을 제외한 모든 연금술 동아리 부원들이 모여서, 아르틴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르틴이 자신들에게 나눠줄 첫 장비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으니, 나눠주겠다며 모두를 불러 모은 것이다.

“...아르틴 오라버니가 많이 늦네요.”

“그러게~ 브론즈 기숙사는 조금 멀어서 그런가?”

그리고 겉으로는 연금술 동아리를 표방하기는 했지만, 부원의 절반이 아르틴의 연인인 상황에서 아르틴이 부재중인 지금의 상황이 조르바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

“아, 홍차 좀 더 드시겠어요, 바이올렛 양? 샤오메이 양?”

“아...감사합니다 아그네스 황녀님.”

우선, 중앙 테이블에 모여 앉아있는 저 여인들의 어색한 분위기를 보자, 사이가 나쁘지는 않지만 근본적으로 아르틴에 대한 선의로 뭉쳤을 뿐, 친분이 있는 것은 바이올렛과 샤오메이 뿐이다.

“아, 곧 있으면 중간고사 시즌, 중간고사 때도 빌런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두 분은 미리 시험 준비를 하고 있으신가요?”

“...저는 혹시 모를 군단장이나 권속에 대비해서, 수련을 하고 있어서요. 근접전과 실전에서 점수를 딸 자신은 있으니 별로 상관은 없다고 생각해요.”

“아, 그렇군요. 수련도 중요하죠.”

그 짧은 대화에, 조르바는 숨이 막혀오는 답답함에 잠시 머리가 어지러웠다. 저 소극적이면서도 대화의 맥을 끊는 대화법은 고의가 아니라서 더욱 악의적이다.

애초에 소수의 친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멀찍이 거리를 두는 것을 선호하는 샤오메이는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그네스는 타인과의 대화 자체는 익숙하지만, 친해지는 법에서는 유난히 약한 편에 속했다.

“아~저도 요즘에는 마법을 수련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공부는 뒤로 미루고 있어요. 혹시 나중에 같이 모여서 스터디라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어머, 그런가요? 지인 이전에 아카데미의 선배로써 여러분을 도와줄 수 있다면 저는 환영이랍니다. 바이올렛 양.”

그런 두 사람의 분위기를 읽은 건지 바이올렛이 친화력 있게 아그네스에게 말하자, 아그네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때? 샤오메이도 같이 공부할 거지? 여자들끼리 뭉치는 것도 좋을 것 같지 않아?”

“음...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도 좋아요.”

아그네스의 확답을 받아낸 후, 바이올렛이 샤오메이에게 묻자, 샤오메이는 조금 무표정한 얼굴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시 고요한 침묵, 조르바는 감탄하여 공중제비라도 돌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르바의 생각으로는 이 어색함의 원흉은 아르틴이 분명했다. 하렘을 세우겠다고 당차게 외쳤으면 여인들끼리 의기투합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남자의 역할이 아닌가.

게다가 이 어색한 분위기에, 자신의 옆에서 뚱한 얼굴로 중앙 테이블에 앉은 세 여인을 반쯤 노려다보는 카이엔의 존재가 더해지니 바이올렛도 카이엔의 눈치에 신경 쓰느라 화제를 이끌어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아르틴이 도착할 때 까지 조르바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이 어색한 분위기에 묻혀 가던가, 대화의 흐름을 자신이 주도하던가.

“그러고 보면, 다들 아르틴이 뭘 나눠 준다고는 아직 말 안했지? 혹시 들은 사람?”

능청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조르바는 주변의 기계 안에 담겨져 있는 검이나 지팡이 따위를 구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게요, 지팡이는 아까 카페에서 바이올렛 언니를 위해 만들었다고 했었죠?”

지팡이라, 조르바가 주변을 둘러보니 지팡이는 딱 하나였다. 연금술에 문외한 자신이 보기에도 초월적으로 강력한 마력이 흐르는, 마법사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국보급 지팡이.

‘저거 하나면 도시 국가를 2개는 사고도 남겠는데...’

문제는, 눈에 띄는 것은 지팡이 외에는 검 두 자루와 각반 1개가 전부라는 점이었다.

“각반은 샤오메이 꺼 같고, 검 두 자루면...각각 아그네스랑 카이엔을 위해 만든 건가봐?”

그 말에 홍차를 기품 있게 마시던 아그네스도, 세 여인만 말없이 노려보던 카이엔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틴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준 검. 슬며시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금술 장치 안에 놓여 있는 검을 눈으로 훑었다.

두 자루의 검은 마치 부부검처럼 마주보게 눕혀져있었다.

왼쪽에 있는 검은 날카로운 스몰소드로, 황금처럼 빛나는 검 손잡이와, 크로스 가드 박힌 보석에 새겨진 촘촘한 마법 구조식은, 아르틴이 쓰는 사람을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들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검신 전체를 미스릴로 만든 덕에 그 위력은 보지 않아도 상상이 될 정도.

‘...후훗, 아르틴도 참, 이렇게 대단한 검을 만들어주지 않아도 되는데.’

아그네스가 지금도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은, 오라버니인 리처드 황태자가 15살에 기사 서임을 받은 직후 선물해줬던, ‘기사도’라는 이름의 명검이었다. 아주 작게나마 미스릴이 섞여 평범한 강철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예리함과 튼튼함을 자랑하는 검으로, 오늘까지는 아그네스의 애검이었다.

철컥.

아그네스는 4년간 아껴온 애검의 검집을 허리의 벨트에서 살짝 풀어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아그네스의 마음 속에서는 이미 오라버니가 선물한 ‘기사도’는 이제 방에 잘 장식해 두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오른쪽에 있는 검은 균형이 제대로 잡힌 롱소드였다. 미스릴보다 가치 있다고 불리는 드워프들이 만든 최고의 금속, 오르콘하일에 의해 균형 있게 제작 된 이 검은 카이엔이 보기에도 기품 있는 귀부인 같이 아름다운 검이었다.

거기에 아르틴이 검 자체를 구동식 삼아 부여한 마법이 있으니, 만약 이 검만 있다면 군단장이 나타나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아르틴도 꽤 센스가 좋은걸... 길이도 나한테 얼추 맞는 것 같고.’

저 건방진 세 여자가 순진한 아르틴을 홀린 탓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카이엔도, 지금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최대한 억누르고 있었다. 이정도 라면 요즘 자신에게 무심했던 아르틴에게 삐졌던 마음을 풀어 줘도 되리라. 카이엔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샤오메이도 바이올렛도, 어느새 다른 두 사람처럼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각반과 지팡이에 다가가, 그 영롱한 자태를 구경하고 있었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 다는 말이 있다지만, 좋은 도구는 장인이 가치를 알아보는 법.

‘...그래서 내껀 진짜 어디 있지?’

조르바가 슬쩍 자신의 물건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부실의 문이 경쾌하게 열렸다.

“안녕! 다들 일찍 왔네? 나 오래 기다렸어?”

**

내가 반갑게 인사하며 동아리 부실에 들어오자, 방금 까지 서있던 녀석들이 황급하게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 어색함에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도, 아무도 무슨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해주질 않는다.

‘뭐지? 나 모르게 서프라이즈 파티라도 준비했나?’

파티라, 그러고 보니 아르틴의 생일은 가을이었지만 내 생일은 딱 지금쯤이었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생일이지만, 나 혼자라도 챙길까.

“오라버니! 사람을 불러놓고 늦으면 어떻게 해요!”

“아하하, 아티팩트를 하나를 마무리 하다가 늦어버렸지 뭐야. 미안 미안.“

“...흥, 본좌는 왜 따라오게 한 건지 모르겠구나.”

내가 늦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을 때, 열린 문으로 뾰로통한 표정의 유니코르가 털레털레 따라와 의자에 앉았다. 아까 낮에 카페 때 삐진 게 아직도 갈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마음의 상처가 컸나보다.

‘조금 귀찮기는 한데...공략은 안 해도 기분은 풀어주는 게 좋겠지.’

나는 급하게 준비한 아티팩트가 담긴 상자를 주머니에서 꺼내 책상위에 내려놓은 후, 연금술 기계를 열고 가장 먼저 샤오메이를 위해 준비한 각반을 꺼내들었다.

“자! 그럼 내가 늦기도 했으니까. 바로 아티팩트들 나눠주고 해산하도록 할게. 다들 괜찮지?”

“휴, 이번 한번만 봐주는 거예요, 알았죠 오라버니?”

샤오메이가 그렇게 말하며 쪼르르 앞으로 나오자, 엉거주춤하게 앉아있던 녀석들이 한 번에 동시에 일어나 자기들 멋대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내색은 안 해도 꽤 기대했나 보지?

“자, 우선은 샤오메이를 위한 각반! 흑룡의 뼈와 가죽을 베이스로 만들어서 어지간한 마법이나 공격은 이걸로 가볍게 쳐낼 수 있을 거야!”

내가 각반을 내밀자 냉큼 각반을 받은 샤오메이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각반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와아...흑룡의 부산물이요?”

“거기에 금속은 미스릴을 썼고, 20가지 이상의 보조 마법이 걸려있어서 언제든 사용하기 편할 거야. 신어봐!”

“고마워요 오라버니! 집에 돌아가면 저희 집안 가보로 삼을게요!”

샤오메이는 각반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내 볼에 진하게 입맞춤을 하고는 자리로 돌아가 앉아 각반을 신어보기 시작했다.

“자, 다음은 바이올렛, 드래곤 하트 2개에, 불사조의 깃털, 세계수로 뼈대를 잡았고 천공 독수리의 발톱으로 안정성을 잡은 지팡이야. 마법에 사용되는 회로식도 생각나는 대로 전부 박은 만큼, 리치가 쓰는 지팡이보다 이게 훨씬 더 강할지도 모르니까 잘 간직해줘.”

나는 가볍게 쥐는 것만으로도 생명력과 마나가 충만해지는 지팡이를 보며 스스로 만족감을 느꼈다. 본래는 내가 쓰려고 만들던 지팡이를, 바이올렛을 위한 아티팩트로 선회하면서 정말 많이도 공을 들였다. 이번에 만든 아티팩트 중 가장 포인트를 많이 잡아먹은 녀석인 만큼, 때깔도 참 고운게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조금 전 까지 지팡이를 기대하는 표정으로 줄을 서있던 바이올렛은, 내 지팡이에 대한 설명을 듣자 오히려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잡는 것도 꺼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이런 걸 정말 날 줘도 되는 거야? 차라리 아르틴이 쓰는게 훨씬 나을 것 같은데...”

“또, 내가 아까 카페에서 말했지. 바이올렛은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바이올렛은 이걸 쓸 자격이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받아 둬.”

“그, 그래도..”

나는 머뭇거리는 바이올렛의 손에 지팡이를 꼬옥 쥐어줬다. 바이올렛은 계속 부담스러워 하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내가 뜻을 굽힐 것 같지 않자. 결국 납득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혹시라도 지팡이를 떨어트릴까, 양팔로 지팡이를 감싸 안아 애지중지 하는 모습은 조금 답답했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믿으며 나는 다음 아티팩트인 스몰소드를 꺼내 들었다.

“자, 다음은 아그네스를 위해 만든 스몰소드, 100% 순 미스릴로 제작한 다음, 부족한 강도는 마나와 강화 마법으로 보충했어. 오러소드와 마나방출의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게 보조 마법식도 잔뜩 새겨놨으니, 아그네스에게 딱 맞을 거라고 생각해.”

“..고마워요 아르틴, 이런 귀한 선물을...”

내가 검을 내밀어 건네자, 아그네스는 검을 받고 무척이나 기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눈물까지 글썽이기 시작했다.

“가, 갑자기 왜 울어 아그네스?! 이런 건 진짜 별거 아니니까 울 필요 까지는 없어!”

“별게 아닐 리가 없잖아요! 이 재료들 전부 아르틴이 전생에 이룬 업적으로 받아온 거라고 했으면서...이런 소중한 물건을 받고 어떻게 안 울 수 있겠어요...”

진심으로 감동한 듯, 검을 보면서 훌쩍이는 아그네스, 내가 당황해서 조르바를 보자. 안아주라고 눈치를 엄청나게 주고 있다.

조르바의 조언에 따라 내가 끌어안은 후 토닥여주자, 아그네스는 조금 진정한 건지 숨을 고르며 나를 부드럽게 마주 안아줬다.

“미안해요 아르틴, 기쁜 상황인데 제가 울어버려서...”

“괜찮아. 이제 진정했어?”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아그네스의 눈물을 닦아준 후, 내가 포옹을 풀자 아그네스는 내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맞춰왔다.

“정말 고마워요 아르틴, 그래도 앞으로는 무리하지 말아요?”

마지막까지 나를 걱정하는 말을 남기고 자리로 돌아간 아그네스, 나는 행복함이 가슴 깊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게 행복이구나.

“자, 기뻐하는 건 좋은데 이제 내 차례라고 아르틴. 나를 위해서는 얼마나 대단한 걸 준비했지?”

그때 벅찬 행복을 비집고 들어오는 조르바의 허스키한 목소리 때문에, 내 흥이 전부 깨지고 말았다.

진짜 쓸 때 없이 목소리만 좋아서 사람을 열 받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니까.

“네건 없는데?”

“..없다고? 아르틴?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남자잖아. 내가 남자 물건을 왜 만들어 줘.”

“...농담이지?”

“농담이야. 열 받아서 놀려봤어.”

내 말에 당황했던 조르바의 표정이 짐짓 굳어지자, 나는 그제서야 만족한 얼굴로 작은 단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유니콘의 뿔을 섞어 만든 단검이야. 마법을 깨트리거나 부수는 데에는 효과적이니까. 혹시 누가 마법으로 널 붙잡으려 하면 이걸로 탈출하면 될 거야.”

내가 붉은 비단에 쌓인 하얀 단검을 내밀자, 단검을 뽑은 후 그 가치를 파악하던 조르바는 유니코르에게로 서서히 시선을 옮겼다.

“유니코르 뿔 아니니까 눈 돌리지 말고 받았으면 들어가.”

“이런, 눈치 챘나? 역시 신경이 쓰여서 그랬지. 고마워 아르틴.”

...사실은 정말로 준비 안하려고 했었다. 남자놈들에게 선물이라니.

그래도, 혼자 기억도 없는데 내 말을 믿고 같이 움직여주는 조르바한테 아무것도 안 만들어주면 다른 사람에게 호로새끼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어서 가볍게 만들어 줬다. 포인트도 최저로 썼지만 본인이 만족하니 된 게 아닐까?

“...파트너.”

그때, 가장 맨 뒤에 있던 카이엔이 슬그머니 내 앞에 섰다.

“그 짧은 시간에 이 많은 걸 준비하다니, 파트너는 정말 대단하네.”

“...어, 음...”

“그럼, 내 것도 조금 기대해 봐도 될까. 파트너?”

카이엔은 뭔가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내 옆에 놓여있던 롱소드를 바라봤다.

“...네 건 없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지금은 조금 긴 롱소드를 꺼내, 내 생도복 벨트에 검 집을 채웠다. 역시 지금은 조금 길지만, 앞으로 덩치가 커질 걸 생각하면 아밍 소드가 아니라 롱소드로 만든 게 답이었다.

“...내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응? 그야...넌 남자잖아.”

“남자라서 라니...조르바 펠카스 것도 준비해 줬잖아?”

“조르바는 약하잖아. 호신용 도구 정도는 준비해 줘야지.”

“...나는! 내 것도 준비 햇짢아. 장난이지? 그렇지?”

카이엔은 왠지 전에 없던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보채기 시작했지만, 나는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너는 얼마 후에 성검이랑 대천사의 반지 얻잖아?”

“그, 그래도. 그건 몇 달 후잖아? 당장 마왕군 간부랑 싸울 수도 있고.”

“너는 안 챙겨줘도 강하잖아. 저번의 권능 도둑도 방심만 안 했으면 혼자서 회쳤을 거면서.”

“...샤, 샤오메이도 강하잖아! 아그네스도 강하고! 나랑 뭐가 다른데?”

“재네는 내 연인이잖아. 당연히 다르지 카이엔.”

“나, 나는 파트너인데...!! 아르틴 네가 둘도 없는 파트너라고...!!!”

하아, 귀찮은 녀석. 주인공이면 주인공답게 네 하렘 챙기면서 쑥쑥 기연 먹고 크면 되지, 감히 BL충 녀석이 내 포인트를 노린단 말인가? 이전 회차에 줬다가 그 노골적인 시선 때문에 악몽까지 꿀 뻔 했는데, 그 짓을 반복할 수는 없지.

나는 동공과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녀석의 떨림이 귀신같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기분 나빴지만 티를 내지 않으며 최대한 산뜻한 미소를 지어줬다.

“파트너니까, 카이엔 너니까 내가 챙겨주지 않아도 잘 해줄 거라고 믿고 있는 거지. 너도 나 믿지 파트너? 나도 그만큼 널 굳게 믿고 있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카이엔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굳거나 웃거나를 반복하며 동요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원작에는 늘 무표정한 표정 탓에 감정을 읽기 힘들다고 적혀있었는데, 이 모습을 보면 솔직히 작가가 설정 틀린 거라고 봐도 좋겠지.

“....그, 그래...알았어 파트너...나 믿는 거 맞지...?”

“물론이지, 우리 약속했잖아? 같이 마왕을 쓰러트리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자고.”

“그...그랬지...마왕을 쓰러트리고...그 이후에.....아니, 아무것도 아냐...”

카이엔은 결국 내 궤변에 납득한 건지 굉장히 풀죽은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게 내 연애를 방해하지 말았어야지. 호모인 것도 참기 힘든데 연애를 방해한 원한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단 한명을 빼고 모두가 만족하고 있을 무렵, 나는 구석에서 그 광경을 삐진 눈으로 지켜보던 유니코르를 가리켰다.

“유니코르, 너도 나와! 이제 네 차례야!”

“...응? 보, 본좌 것도 준비했단 말이냐? 정말로?”

“....유니코르 것도 준비 했다고 파트너?!”

카이엔의 절규를 뒤로 하고, 놀란 얼굴로 주춤거리며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온 유니코르에게, 나는 아까 미리 책상에 꺼내놨던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이, 이게 무엇이냐 아르틴...?”

“내가 아까 무심결에 한 말에 상처 받은 것 같아서...뭐, 가볍게 준비했어. 한번 열어봐.”

유니코르가 천천히 상자의 포장을 뜯고 뚜껑을 열자, 그곳에는 내가 직접 만든 작은 귀걸이가 있었다.

“귀걸이...?”

“시간이 짧아서 대단한 건 준비 못했고, 저번에 권능 도둑하고 싸울 때도 그렇고 마리안느 누님하고 붙을 때도 그렇고, 신성력이나 마나의 낭비가 좀 보이더라고...그걸 보조해주는 귀걸이야.”

“...정말, 본좌를 위해서 직접 만든 것이냐?”

“그래, 그러니까 이거 받고 이제 화 풀어 유니코르. 너 길게 삐지면 내가 더 힘드니까.”

유니코르의 어깨를 두드려 주자, 유니코르는 엄청 기쁜 얼굴로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귀걸이가 든 상자를 양손으로 꼭 움켜쥐었다.

“아, 알겠다! 본좌가 이번에는 특별히 화를 풀터이니, 앞으로는 더 예의를 갖추도록 하거라!”

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면서도 신나서 미소를 짓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역시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각반보다는 귀걸이가 좋은데.”

“나도 지팡이 대신 반지 같은 걸로 달라고 하면 안 되겠지..?”

“이런 말은 너무 욕심이겠지만...오늘은 유니코르가 부럽네요.”

그때 뒤에서 내 연인들이 작게 중얼거리는 혼잣말을 나는 듣고 말았다.

‘애들아, 그게 훨씬 더 비싸고 좋은 건데...? 더 시간도 길고 의미도 깊은 건데...?‘

당장이라도 피눈물을 흘릴 것 같은 카이엔을 거르고, 뭐가 문제인지 알려달라는 뜻을 담아 조르바를 바라보자, 녀석은 도리어 나보고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지? 엄청 억울한데...‘

분명 다 같이 기뻐해야 할 아티팩트 증정식에, 신나서 방방 뛰는 것은 오직 유니코르 뿐이었다.

'그래...너라도 기쁘니 다행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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