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최악의 상황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 온다.
* * *
하나만 미리 말해두자, 내가 변신한 이 여자는 보통 썅년이 아니었다.
“저, 저기 주느비에브씨! 저번에 말한...아, 레몽 사제님! 아무것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이봐, 주느비에브. 이번 주말에도 나랑 같이 상업지구...아, 사제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쳇.”
‘도대체 시발 몇 명한테 껄떡질을 한거야?’
육망성 내부에 들어 온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내가 변신한 여자의 얼굴만 보고 물소마냥 다가오는 녀석들이 5명이 넘었다. 2분당 1명. AOS 게임에서 각잡고 해도 2분당 1킬도 하기 힘든데, 이 여자가 그 의문의 사제장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크르릉, 아르틴을 노리는 남자들이 왜 이리 많은 것이냐!”
다만 그들 모두가 평신도에 가까웠는지, 사제로 변한 유니코르가 조금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는 것으로 금세 꼬리를 말고 물러가긴 했다.
솔직히 우스웠다. 당장 보이는 것만 해도 초점 흐린 여자를 2~3명 씩 데리고 다니는 녀석들이, 연애 흉내라도 내보고 싶어서 세뇌노예 대신 같은 여성 신도를 꼬시는 모습이.
하지만 차라리 유니코르가 남자로 변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순결하지도 않은 남자들이 유니코르에게 터치라도 하는 순간, 그대로 살인이 일어나지 않을까?
본래는 순결한 남자도 허락 없이 유니콘을 만지는 순간 뿔드릴을 맞고 죽어버리는 것이 이 세계의 상식이다. 오로지 처녀 순애나 순결을 맹세한 유니콘의 계약자들만이 그런 제약에서 자유로울 뿐.
‘그렇게 생각하면 영구 계약이 특전은 특전인가...’
나는 지나가는 남자를 노려보는 유니코르의 머리라도 쓰다듬어주려다가, 남자로 변한 모습을 보자니 좀 역겨워서 그냥 나중에 칭찬해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시온이나 다른 히..인질들이 갇힌 방을 알아야 하는데..”
처음에는 지하 1층에 갇혀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시온은 계속해서 기절한 상태였다. 아티팩트의 성능을 생각하면 영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가깝다.
나는 여자의 신도복에서 분홍 구슬을 꺼냈다. 이 구슬이 내 판단을 가장 어렵게 하고 있었다.
“파장으로 봐서는 매혹의 권능이 맞는데...왜 난교파티 같은 게 아니라 강령술 의식을 치루는 거지?”
매혹의 권능을 쓰는 것 자체는 서큐버스 릴리트가 확실하다고 생각했지만, 주요 의식이 강령술인 만큼 어쩌면 망령군주나 리치가 속임수라도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상급 서큐버스와 계약해서 만든 아티팩트 일수도 있는데..만약 리치쪽이라면 제물로 지하에 가둬져 잇을 거고, 서큐버스라면 가둬두고 정신지배로 세뇌하고 있겠지.’
어느 쪽이든 스파이인 만큼 엄중히 다뤄지고 있을 것 이다. 지하냐 지상이냐.
“지나가는 녀석들을 잡고 물어보다 보면 아는 사람이 나오지 않겠느냐?”
“에이, 그렇게 물어본다고 알면 비밀장소에 감금이 아니잖아.”
“흥, 해보지도 않고 모르는 법이다! 본좌는 지금 사교도의 높은 사제이니 말해줄 것 이다!”
내가 순진한 유니코르를 타박하자, 유니코르는 자신만 믿으라며 다른 신도들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비밀잠입에서 탐문수사라니.
“야 유니..아니 레몽 사제님! 그만하세요!”
내가 호다닥 유니코르를 쫓아가려던 그때,
“안녕 주느비에브, 오늘은 외롭지 않은 거야? 나를 찾아오지 않으니 섭섭한 걸.”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온 느끼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뭐야 시발, 아직 2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나타난다고?’
“아하하, 안녕하세요오...사제님!”
나는 힐끔 달린 뱃지를 눈앞에 나를 붙잡은 녀석이 사제라는 것을 알았다. 초록색 곱슬머리에 애매하게 느끼하게 잘생긴 외모의 녀석은 등 뒤에 여자를 5명이나 데리고 다니는 주제에, 나를 향해 연신 토악질이 샘솟는 역겨운 미소를 보내며 유혹하고 있었다.
“사제님이라니, 월레스라고 불러줘야지? 그날 밤 서로 말 놓기로 했잖아?”
“아하..하..월, 월레스님.?”
“아니, 편하게 월레스라고 불러줘.”
녀석이 내게 세발자국 다가오자, 나는 한발자국 물러났다. 유니코르가 와서 좀 떼어내주면 안되나 싶었지만, 녀석은 인질의 위치를 물어보는 것으로 정신이 없어보였다.
“저기, 월레스...? 오늘 레몽 사제님과 선약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하는 수 없이 내가 빠져나가기 위해 슬금슬금 물러나자, 월레스라는 새끼가 갑자기 내 손목을 붙잡았다. 뭐야 시발.
“어딜 가는 거야. 네 애인은 나잖아, 레몽은 하급 사제고 나는 상급 사제라고! 왜 나를 찾아주지 않는 건데?!”
쾅! 녀석이 나를 벽으로 밀친후 벽에 손바닥을 미치며, 내 턱을 어루만졌다.
“그러지 말고 주...”
우득!!!
녀석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내가 녀석의 갈비뼈에 촌경을 갈기자, 뼈가 부러지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이 가볍게 무너졌다.
“어디서 좆달린 남자 새끼가 벽쾅질이야!”
“허으..어억..주..주느비..에브...”
아 시발, 좆됐다. 정체를 숨겼어야 했는데.
“저, 죄, 죄송해요. 가볍게 밀쳤는데 넘어지실 줄은...”
“...그..그런..플레이야..?주느..비에브가..해주니..은근히..기분..좋..”
뻐억!!!
나는 녀석이 얼굴을 붉히자, 척추 반사적으로 녀석의 턱주가리를 발로 그대로 사커킥을 갈겨버렸다. 녀석은 1m 정도 구른 후 몸을 꿈틀거리더니, 이내 정신을 잃은 듯 몸이 축 늘어졌다.
“으 시발, 카이엔 새끼가 앵기는 것도 좆같은데, 어딜 감히 남자가...”
아 젠장. 카이엔 때문에 BL에 민감한데, 남자 새끼가 나를 여자로 보고 들이대니까 참지 못하고 질러버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남자놈이 성욕을 담아 내 몸을 만졌다는 사실 만으로도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관대한 처사인가. 나는 그렇게 납득하며 방금 이 남자가 데리고 다니던 노예들을 바라봤다.
“너희들, 사제님이 조금 많이 피곤하신 것 같으니, 빈 방에 데려가서 눕히거라.”
““예, 알겠습니다.”“
내 말에 일제히 대답한 노예들은 사제를 부축하더니 그대로 데리고 사라졌다. 다행히 주변에는 신도들을 들쑤시고 다니는 유니코르가 부담스러웠는지,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본 사람 없겠지? 없을 거야 아마.’
나는 간신히 납득하며, 우선 유니코르를 쫓아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
“어머, 재밌는 장난감이 또 숨어 들었네?”
마왕성에서 분홍 구슬로 아카데미를 구경하던 릴리트는, 사제를 때려눕힌 후 스파이의 위치를 찾아다니는 두 남녀의 모습을 보며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당장 렉스턴 꼬마를 불러서 잡으라고 할까~? 아니면, 좀 더 재밌게 가지고 놀아볼까♡”
오로지 쾌락과 유희만을 쫓는 릴리트에게, 렉스턴이라는 천재가 일으킨 소환의식은 너무나도 즐거운 유희였다. 그래서 리치나 망령왕이 알아채기 전에 몰래 의식을 가로챘더니, 그 판단은 정확했다.
같잖은 머저리들의 군상극에, 사건을 조사하는 여기사에, 여기사를 구출하려고 나타난 동료들 까지. 게다가 조금 정신을 집중하자 장미관 주변으로 강력한 존재들이 하나 둘 몰려드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러면 의식이 실패할지도 모르겠는 걸? 약간의 스릴은 재밌기는 하지만...너무 과한 전력은 게임을 재미없게 한다고♡”
어떻게 골려주며, 아슬아슬하게 의식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약 30년간 쓰지 않던 지능을 굴리기 시작한 릴리트는, 이내 떠오르는 묘수에 기쁜 웃음을 지었다.
“그래, 하나씩 진입하게 하는 게임을 하는 거야! 장미관을 통째로 던전처럼 만들면 충분히 즐길 수 있겠지?”
사실 깊이 생각한 것은 아니고, 그저 이러면 즐겁지 않을까 하는 얕은 생각 이었지만, 자신의 아이디어에 충분히 만족한 릴리트는 렉스턴을 시켜 아카데미에 소환시킨, 자신의 상급 몽마에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어머, 릴리트님! 무슨 일이신가요?]
“안녕 시르카~지금 내가 재밌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거든♡”
**
우웅!
유니코르를 향해 쫓아가던 나는, 갑자기 느껴진 마기의 파동에 미간을 찡그렸다.
‘뭐야 방금? 마기가 건물 전체를 뒤흔든 것 같은데?’
혹시 벌써 들키기라도 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유니코르가 저 멀리서 키 작은 신도 하나를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아르..주느비에브! 찾았느니라! 이 자가 여기사의 위치를 안다는 구나!”
뭐? 그걸 찾았어? 당혹감에 신도를 바라보자, 신도는 내 시선에 움찔 놀랐다.
화아악!
‘이런 시발.’
왜 놀라나 했더니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보고 주먹을 내지를 뻔 한 나는, 초월적인 인내심으로 주먹을 참은 후 신도를 향해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여기사가 갇힌 방이 어딘지 아신 다고요...?”
“네! 그, 지하 2층에 숨겨진 방이 있는데...거기에 갇혀 있습니다!”
“봐라! 본좌가 찾으면 찾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게 진짜 찾아지네. 조직의 관리가 개판 오분 전이라는 것을 곱씹은 나는, 다시 상냥하게 신도를 바라봤다.
“그럼, 혹시 안내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제님이 사제장님에게 중요한 임무를 받아서 말이에요!”
“무, 물론이죠!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또 다시 얼굴을 붉힌 신도는, 앞장서서 우리를 지하로 이끌기 시작했다. 나는 신도 몰래 너무 기세등등해진 유니코르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은 후 유니코르와 함께 신도를 뒤따라갔다.
*
“여기 입니다! 이 안에 여기사가 갇혀 있어요!”
신도의 뒤를 따라오자,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시온이 갇혔다는 지하 2층에 돌입할 수 있었다.
지하 2층은 기분 나쁜 마기로 가득 찬 상태였다. 강령술 의식을 치룬다는 말을 생각해보면, 아마 퀘스트의 남은 시간은 마왕군 간부가 소환되기 남은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기분 나쁘구나, 아르틴. 빨리 여기사랑 사람들을 구하고 의식을 부수는 게 좋겠다.]
[그게 좋겠어,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사건이 커질 것 같고,]
끼이이익!
내가 문을 당기자, 이상하게도 잠겨있지 않은 문은 너무 손쉽게 열렸다. 이정도로 상태가 개판이라고?
“으으...아르틴 도련님...”
“시온!”
방문을 열자 확실히, 온몸에 피멍이든 시온이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었다. 내가 황급히 들어가서 신성력을 일으켜 치료하려고 하자, 유니코르가 같이 뒤따라 들어왔다.
“여기사의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 구나, 괜찮겠느냐?”
“글쎄, 한번 치료를 해봐야 알겠는데...”
끼이이익!
그때 열려있던 뒷문이 쇳소리를 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자, 방금 전 까지 우리를 안내한 신도가 괴상한 웃음을 지으며 문을 닫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표정을 보자 갑자기 쎄한 기분이 들었다.
“잠깐! 유니코르 못 닫게 막아!”
“으응?! 아, 알겠다!”
유니코르는 내 외침에 황급히 문을 향해 발길질을 날렸지만, 발이 문에 닿기 전 문이 완전히 닫히자, 방금 전까지 우리가 들어왔던 입구는 마치 신기루처럼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어둡고 칙칙한 감옥같던 방이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새 방바닥에 신음을 흘리며 누워있던 시온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를 까득 물며 폴리모프를 풀었다. 사람을 쾌락으로 유혹하기 위해 환상을 보여준다는몽마의 권능, 우리는 이미 함정에 걸려든 상태였다.
“이쪽으로 와 유니코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나는 단숨에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쥔 후, 어느새 안개처럼 흐릿해진 주변을 향해 겨눈 채 어느새 본 모습으로 돌아온 유니코르를 보호했다.
“너, 너무나도 강력한 권능이다. 이리도 강한 힘을 지닌 몽마라니, 몽마의 군주가 아닐까 싶구나..!”
“정신 바짝차려, 어디서 뭐가 나타날지 모르니까.”
위기의 상황,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만약 정말 릴리트 본인 이라면, 퀘스트가 문제가 아니라 이 쪽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아직 기억 회귀에 대한 단서도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든 이 상황을 돌파해야한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그 순간, 서서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어?”
“여기는..이상한 방이로구나, 아르틴?”
안개가 완전히 사라진 방의 모습은, 내게는 너무 익숙한 형태였다. 하트 모양의 침대에 내부가 다 보이는 샤워실. 분홍색 벽지까지 일본 AV에서 가끔 나오던 러브호텔의 모습이 지금 방의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시발 여기가 왜...?”
“아르틴 저길봐라! 저기 뭐라고 적혀있구나! 악마들의 언어 같다!”
그때 유니코르가 다급하게 외친 곳을 바라보자, 나는 그만 굳게 쥐고 있던 롱소드를 놓치고 말았다.
왜냐면, 그 곳에 적힌 문구는 악마어로 적혀있었을 뿐, 확실히 너무나도 익숙한 문구였기 때문이다.
섹스하지 않으면 못나가는 방
좆됐다. 나는 확실히 좆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