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 * *
이곳에 갇히고 나서 15분 정도가 지났다.
콰아앙──!!
“해, 해치웠느냐..?”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벌써 이 짓만 다섯 번째잖아!”
마나 포션으로 도핑까지 해가며 휘두른 내 일격은, 유니코르의 발언에 의해 힘이 빠진 것 인지 러브호텔 방의 벽과 바닥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유니코르와 합동 공격으로 벽을 두들겨보기도 했고, 마나 엘릭서에 촉매까지 사용해서 마법을 난사하거나, 신성력을 이용해 성법으로 기적을 일으켜 이곳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다.
방금 일격이 남은 마나를 대부분 박아서 휘두른 공격이었는데, 이것도 먹히지 않다니.
“틀렸어, 진짜 릴리트 본인이나 그에 준하는 존재의 권능 같아. 닿는 감각이 없었어.”
나는 대검을 인벤토리에 넣고 마나 회복 포션을 꺼내 쭉 들이 킨 후 빈 유리병을 벽에 던졌다.
그런 나를 비웃듯이, 벽에 전력으로 던진 유리병은 마치 구름에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부드럽게 튕겨져 나와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내 신발 끝에 닿았다.
“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기서 이대로 영원히 갇혀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
“...걱정 하지 마, 다른 애들도 여기로 모이고 있었잖아? 이런류의 결계는 내부에서 단단한 만큼 외부에서의 충격에는 약해. 조금만 기다리면 구하러 올 거야.”
“그, 그런 것 이냐? 다행이구나! 마왕의 권속의 책략에 놀아나는 줄 알고 걱정하지 않았느냐!”
내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자, 유니코르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웃으며 내 옆에 다가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나는 슬쩍 조금 떨어지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아무리 봐도 현실에서 봤던 그 장소잖아...’
사실 유니코르에게는 별거 아니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시간이 여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지금 이러고 있는 순간에도 퀘스트의 제한 시간은 꾸준히 흘러가고 있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의식을 방해하러 온 사람을 이런 방법으로 가둬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여의치 않다는 소리기도 하지.’
만약 릴리트 본인이 직접 나설 수 있었다면, 진작 우리를 제압한 후 감옥에 가뒀을 것 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방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시발, 섹스하지 않으면 나가지 못하는 방이라니. 그런 건 만화에서나 나오는 거 아니었냐고..’
여전히 한쪽 벽에 선명하게 적혀있는 문구를 보며,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힐끔 유니코르를 바라봤다.
“그래도, 이 침대는 엄청 크고 푹신하구나! 우리 기숙사에도 이런 침대를 놓는 게 어떻겠느냐?”
유니코르에게는 저 문구가 뭔지,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너랑 섹스 해야지 방을 나갈 수 있다고 어떻게 말하냐고.
‘저번에는 내가 진짜 돌았지, 유니코르에게 흥분 하다니, 나는 수간충이 아니야...’
다행히도 낮에 아그네스의 정성어린 봉사를 받은 내 이성은 눈에 보이는 욕망에 잡아먹힐 수준은 아니었다. 유니코르가 지금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저렇게 허벅지를 아슬아슬한 부분까지 노출하거나, 가슴을 출렁 거려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누워서 쉬다 갈까.”
나도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유니코르의 옆에 누웠다. 다음 탈출 방법을 써보려고 해도 마나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상황, 어차피 붙잡혀 있어야 한다면 느긋하게 쉬는게 이득이다.
“와..러브호텔은 정말 천장이 거울이라서 비추는 구나...”
“거울? 천장? 정말이구나! 본좌와 아르틴이 비추고 있다!”
내 말에 유니코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품에 안기듯이 가까이 다가와 신기하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샴푸의 향기가 인상적이었다. 살결도 꽤 부드럽고.
‘...아니, 왜 자꾸 정신이 이쪽으로 흘러가지?’
정신 차려야 한다. 유니코르의 저 순진무구한 눈빛을 봐라. 얼마나 반짝 거리는가.
‘역시 아무리 10만 포인트가 있어도 말박이는 아니지 말박이는...’
나는 유니코르의 잼민이 모습과 미친 망아지 모습을 번갈아가면서 떠올리며 마음의 평화을 되찾기 시작했다.
[흐응~그래서는 재미없다고요?]
그 순간, 달콤한 여인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속삭여졌다.
“누구냐?!”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몸을 번쩍 일으키며 대검을 움켜쥐었지만, 주변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내 옆에 기대다시피 누워있던 유니코르만이 놀란 눈으로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 갑자기 왜 그러느냐..?”
[어머~♡ 여자를 놀라게 하면 안 되는 것도 모르나요? 정말 분위기를 못 읽는 남자군요!]
장난기 가득한 교태로운 목소리, 하지만 계속 듣는 것만으로도 뇌가 녹아버릴 것 같은 달콤한 감각. 아주 익숙한 감각이어서 잘 알고 있다. 이런 목소리를 어떻게 잊겠는가.
“....릴리트?”
[딩동댕! 어떻게 맞추셨나요? 하긴, 이런 비밀 단체도 알아냈으니 절 알고 있어도 이상하진 않지만요~♡]
“릴리트? 릴리트가 어디에 있다는 것 이냐!?”
아마도 이 목소리는 나만 들리는 것이 분명했다. 유니코르가 화들짝 놀라서 허공을 두리번거리며 노려보는 것으로 봐서는 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게 틀림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재미없는 걸요. 섹스만 하면 바로 나갈 수 있는 방인데 동료를 기다리다니, 그런 전개는 아무도 만족시켜주지 못해요! 그런 재미없는 전개는 제 쪽에서 사양이라고요!]
저 시발련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생각할 무렵, 갑자기 방의 양쪽에서 마치 가스새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우리 답답한 침입자 분들을 위한 저 릴리트의 작은 서비스~♡ 초강력 최음가스랍니다!]
“뭐? 초강력 최음가스!?”
[자, 동료분들이 도착하는 게 빠를까요, 유니콘과 그 계약자가 타락하는 게 더 빠를까요~♡ 저는 후자를 기대하고 있으니 꼭 기대를 지켜주세요!]
“이런 시발, 그만둬! 차라리 그냥 싸우게 해줘!”
이게 무슨 개같은 상황인가 하고 당황하는 사이, 내 코 끝에 달콤한 최음가스의 향기가 퍼지기 시작하자, 나는 황급히 코를 막고 바람마법으로 연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아르틴? 이게 무슨 일이냐...? 갑자기 최음가스라니..? 릴리트는 무슨 소리고?”
“우리를 여기에 가둔 게 릴리트야, 그런데 널 바이콘으로 타락시키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고 최음가스를 뿌렸어!”
“바, 바이콘 타락이라니! 설마 아르틴! 넌 나를 그런 눈으로...!”
유니코르는 내 노력을 보고도 착각을 하는 건지, 황급히 자신의 가슴을 가리며 새하얀 원피스 의 치맛자락을 꼬옥 눌러 자신의 허벅지를 열심히 가렸다. 하지만 그런 유니코르도 자신의 윤기있는 부드러운 입술은 가리지 못했...
‘이런 시발. 좆됐다.’
최음제의 약효가 돌기 시작했다.
***
“틀렸어요, 모든 창문이 잠겨있고 아무리 강하게 충격을 줘도 금도 가질 않아요.”
“...정령들도 틈을 찾지 못했어. 물리적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건 힘들 것 같아.”
장미관의 입구 앞, 분홍색 안개로 뒤덮인 장미관을 바라보며 카이엔과 샤오메이는 혀를 차고 있었다.
“아르틴이 안에 있는데...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큰일나는 위험에 쳐해있으면 어떻게 하지..?”
바이올렛까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지만, 아그네스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장미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몽마군주 릴리트, 저희의 전력을 분산시킬 속셈이라면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군요...”
아르틴이 잠입하고 얼마 후, 모든 멤버가 모여서 아르틴의 뒤를 따라 돌입하려고 움직였다.
[어머, 그렇게 재미없게 놀면 안 되지 자기들? 게임에는 룰이라는 게 필요하잖아?]
그때, 장미관의 전체를 감싼 분홍빛 안개에서 감미로운 달콤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릴리트! 설마 네가 지금 아르틴을 상대하고 있는 거냐!”
[어머, 설마요, 그냥 게임 중이라고요? 제 본체는 마왕성에 있는 상황...아무리 저라도 그 정도 거리에서 여러분을 물리적으로 상대하는 건 무리랍니다♡]
카이엔이 목소리의 정체가 릴리트 라는 것을 알리자, 그 뇌쇄적인 목소리에 순간 정신이 흐릿해진 아르틴의 연인들이 전부 정신을 차렸다. 지금 자신들이 마주하고 있는건 인류의 적, 마왕의 4대 권속 중 하나였다.
[어머, 그렇게 무섭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저는 싸움 대신 가벼운 게임을 준비 했는걸요. 이름 하여 서큐버스의 미궁~!]
“...뭔가요, 그 게임이란 건.”
[간단해! 자기들이 아르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탈락하면, 뒤이어서 오직 한 사람이 게임에 참가하기 위해 이 건물에 진입할 수 있어! 먼저 지하 3층에 도달하는 사람이 승리♡]
“그런 불공정한 게임에 참가할 리가 없잖아요! 오라버니를 혼자 움직이게 한다니, 그런 위험한 게임을 저희가 받아들일 것 같나요!”
[으음~ 그렇게 말해도...그럼, 게임 대신 싸울 거니까 인질들 전부 죽여 버려도 괜찮아?]
릴리트는 그 이후로 말을 잃은 여인들을 보더니,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이야기를 끝냈다.
그 이후로 여러 방식으로 장미관에 돌입하려고 노력해봤지만, 어지간한 힘으로는 장미관에 침입조차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에 불과했다.
물론, 네 사람의 전력을 다한다면 장미관의 결계를 돌파하는 것은 가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발생할 인명피해에 대해, 냉정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좋게 생각하면, 벌써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으니까, 오라버니가 지하 3층에 거의 다 도달한 게 아닐까요? 저런 결계는 제약이 중요하니까, 만약 도착한다면 돌입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결국 아르틴에게 모든 걸 맡기는 셈이잖아? 나는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어머~기특해라, 나도 그런 히로인을 참 좋아하는데!]
흠칫! 일행이 놀라서 전투자세를 잡자, 그 모습을 보고 분홍색 안개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하하핫! 너무 긴장하지 마! 자기들이 기다리던 소식을 가지고 온 거라고?]
마치 자신들을 조롱하는 여인의 태도에도, 침착을 유지한 아그네스가 한발 앞장서서 안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아르틴이 골인 지점에 도착한 건가요?”
[때앵~♡ 아쉽게도 그건 아니야! 대신 다음 사람이 입장할 차례라고?]
“...다음 사람이라니, 그럼 지금 아르틴은...?”
아르틴의 탈락 소식에, 여인들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그런 여인들의 반응이 릴리트는 너무나도 즐거워서 웃음을 참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후후...자기들이 말하는 아르틴은,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함정에 빠져서 갇히고 말았답니다~♡ 얼른 가서 구하지 않으면 유니콘의 계약자가 바이콘의 계약자가 되어버려요?]
“....예?”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함정이라니, 자신들의 긴장을 조롱하는 듯한 명칭에, 아그네스를 포함한 두 사람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단 한명, 카이엔만이 그 소식에 분개한 표정으로 입구에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음은 내가 입장하지, 상관없겠지?”
“잠깐만요 카이엔! 이럴 때는 좀 더 차분히 해야...!”
[좋아! 이번에는 내 마음에 쏙 드는 미남이네! 다음 사람 입장~♡]
카이엔이 선언에 아그네스가 당황하는 사이, 카이엔의 선언에 장미관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반응할 사이도 없이 카이엔을 빨아들인 안개는, 어느새 다시 굳게 닫힌 문만을 과시하고 있었다.
“...아르틴 오라버니가, 유니콘하고 섹스를 해야 한다고요?”
“어, 어떻게 해야하죠, 아그네스 황녀님? 아르틴이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충격을 받은 듯 중얼거리는 샤오메이와 당황한 바이올렛, 카이엔은 독단적으로 혼자 입장한 상황에서, 아그네스는 스트레스성 위염에 가슴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카이엔을 믿어보는 수밖에요. 그래도 매번 아르틴이 강하다고 평가한 남자니까...”
그 말에 샤오메이와 바이올렛은, 본인들이 원수처럼 여기던 유니콘과 아르틴이 섹스 해야 할 상황에서, 아르틴을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자신들과 아르틴의 관계를 지독히도 방해한 남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괜찮을까요? 강하긴 한데...”
“괜, 괜찮겠지...! 아르틴이 늘 카이엔은 용사라고 말했잖아? 우리는 계속 진입할 방법을 찾아보자!”
결국 상황을 받아들인 두 여자는 애써 침착하게 납득하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불안함은 사라지질 않았다.
아그네스는 그런 두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굳게 마음을 먹었다. 여기서 자신들까지 패닉에 빠져버리면, 아르틴을 도와줄 사람이 남지 않는다는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기다려요 아르틴, 방법을 꼭 찾아내서 도와주러 갈테니까..”
아그네스는 애절하게 맹세하며, 아르틴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준 검을 굳게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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