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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83화 (83/266)

〈 83화 〉 왜 그리도 슬피 우느냐

* * *

장미관의 지하 1층에는 지상 1층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마물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릴리트의 정원 심도 깊은 곳에서 마기를 먹이 삼아 자란 흉측한 괴물들은, 야한 느낌으로 사람을 공격하던 위층의 마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자신이 만든 미궁을 골고루 음미하길 원했던 릴리트의 악취미가 더해진 디자인이었다. 약한 마물들을 처치하고 점점 강한 마물들을 상대하다보면, 지쳐 쓰러진 모험가들은 마물의 밥이 되거나 자신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의 간부가 택하는 전술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카이엔이라는 존재는 명백히 마왕군에게는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화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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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급 마물인 달마귀를 사냥했습니다.

충분한 경험을 쌓은 용사 카이엔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생명력과 마나가 전부 회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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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카이엔의 손에 잡혀 내부에서부터 타올라 바비큐처럼 구워진 달마귀는 정원의 마물 중에서도 릴리트가 무척이나 아끼는 마물이었다. 어둠에서 사람을 사냥하는 사냥꾼의 기질에, 제국의 기사들도 갑옷채로 단번에 찢어발기는 강력한 육체능력은 중급 마물인 어둠 트롤이 부럽지 않았다.

때문에 릴리트의 정원에서는 지친 모험가들을 괴롭히며 사냥을 즐기는 골치아픈 마물이었지만, 레벨업이라는 시스템 덕에 지치지 않는 카이엔에게는 그저 재생능력이 없고 좀 더 약한 트롤에 불과했다.

“...이렇게 찾았는데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다니.”

10분 만에 벌써 지하 1층을 절반 이상 돌파한 카이엔은, 장미관에 들어오기 전보다도 명백히 강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자신이 강해지는 감각과는 별개로 아직도 아르틴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카이엔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이라고 했어. 지금 몇 분이나 지났지? 설마 유니코르랑 벌써 관계를 가져버렸다면...”

잘근잘근 엄지손톱을 물어뜯은 카이엔은 좀 더 서둘러 지하 1층의 함정들을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르틴이 지하 1층에 있다는 보장은 없으나, 만약 지하 1층에 그 암컷 짐승과 방치하게 된다면 벌어질 끔찍한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런 다급한 마음과 무색하게도, 아르틴은 발견되지 않았다. 몇 분간 12개의 복도를 정리하고 8개의 방을 열었지만, 오로지 함정과 괴물뿐, 그나마 종종 정신을 잃은 채로 발견되는 민간인을 구조하자, 퀘스트 보상이 들어올 뿐.

“젠장, 젠장, 젠장!! 아르틴! 조금만, 진짜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아무리 찾아도 아르틴이 발견 되지 않자, 카이엔은 아까 발견한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혹시 지하 2층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엔..!!”

그때였다.

“아, 아르틴? 지금 날 부른 목소리, 아르틴이야?!”

“...이엔! 카이...와줘..!!”

복도의 끝 코너에서 들려오는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카이엔이 마나를 일으켜 복도를 주파하자, 그곳에는 아주 가끔 볼 수 있었던 막다른 복도가 있었다.

“키에에엑!!!”

“캬르륵! 크롸아앗!!!”

자신의 발걸음 소리에 흉폭성을 드러내는 마물들 사이로 보이는 복도의 끝, 그곳에는 죄수를 가두는 감옥 문처럼 생긴 철문이 있었다.

“카이엔, 도와줘어..!! 그만둬 유니코르...!!”

“미안하다 아르틴! 본좌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노라!”

그리고 철문에 나있는 작은 쇠창살 창문 너머로, 아르틴을 덮치려는 욕망에 가득 찬 유니코르의 목소리와 애타게 자신을 부르는 아르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있었구나, 아르틴.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거지?”

“캬아아아악!!!”

카이엔이 보기 드문 행복한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리자, 마물들이 일제히 카이엔을 향해 덮쳐들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지하 1층에서 나왔던 마물들보다 훨씬 강력하고 통제된 무리였으나, 카이엔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카이엔의 오른쪽 가슴, 사람의 심장이 아닌 두 번째 심장에서 막대한 마나가 흘러나오자, 오러소드에서 청량한 파란색 불길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일검 ─ 섬광?光

카이엔의 호흡이 멈추고, 근육들이 수축했다. 마나가 응집하고 기운이 잦아 들자, 마물들은 눈앞의 인간이 지쳤다고 생각한 듯, 자신들의 전력을 다해 인간을 찢어발기려고 들었다.

그 순간, 카이엔의 검이 파란빛으로 반짝였다.

억눌렀던 기운이, 마나가, 근육이, 호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름과 동시에 카이엔의 검이 휘둘러졌다. 검은 허공을 스쳐 지나간 듯 보였으나, 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복도라는 공간 자체가 베여져 어긋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곧 이어,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진 막대한 마나가 공간이 어긋난 복도를 가득 채우자, 그제서야 마물들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였다.

“쿠..쿠륵!?”

콰아아앙──!!!

마나가 거칠게 폭파하자, 방금까지 마물들이 가득했던 복도는 마물들의 피와 살점으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만들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카이엔은 황급히 철문을 향해 다가갔다. 단단히 잠겨있던 철문이지만, 카이엔이 힘을 쥐자 마치 골판지처럼 뜯겨나갔다.

“아르틴!”

“카, 카이엔! 살려줘!”

방 안에서는 알몸상태의 유니코르가 힘으로 아르틴을 억누르고 있었다. 생도복이 반쯤 찢어진 아르틴은 방금 문을 부수고 들어온 카이엔을 보며 다급하게 도와달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자 순간 유니코르에 대한 살의가 치솟은 카이엔은, 모든 게 릴리트의 탓이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흥분상태의 유니코르를 검집으로 후려쳐 기절시켰다.

“쿠에에에에엑?! 으걱.”

괴상하고 망측한 비명소리와 함께 털썩 쓰러진 유니코르, 그 광경을 본 아르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머금는다.

“고, 고마워 파트너...! 나는 저런 미친 망아지한테 범해지는 줄 알고...! 정말 네가 와줘서 다행이야...!”

“별 것도 아닌데, 다친 곳은 없어?”

다행히 아르틴은 아직 유니콘에게 범해지지 않았다. 그 사실에 카이엔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달콤한 분홍색 안개 향이 진하게 느껴졌지만, 곧 이어 아르틴의 나신을 살피느라 바쁜 카이엔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였다.

“다, 다친 곳은 없어...그런데 그렇게 뚫어져라 보면 부끄러운데...”

“아, 미. 미안 파트너, 나도 모르게 그만...”

문뜩 얼굴을 붉히는 아르틴을 보자, 카이엔은 급하게 헛기침을 했다. 자신도 모르게 아르틴의 중요한 부분을 뚫어져라 쳐다본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황급히 등을 돌린 카이엔이 방금 본 아르틴의 몸매를 완전기억능력을 이용해 몇 번이고 되새김질 하려던 찰나.

“파, 파트너?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나...아직 몸이 너무 뜨거워, 파트너...릴리트가 내 몸에 이상한 짓을...”

아르틴이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옷깃을 잡자, 카이엔은 묘한 감정이 샘솟기 시작했다.

‘저, 정신차려, 카이엔. 나에게는 계획이 있잖아! 아르틴과 약속한 그 날을 위한 계획이..’

침을 꿀꺽 삼킨 카이엔이 눈을 감으며 손을 뿌리치려 하는 순간, 아르틴은 갑자기 카이엔을 방의 벽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파...파트너?! 갑자기 이게 뭐하는 짓이야!?”

“미안 카이엔...네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

장미관의 지하 1층, 마물들의 시체가 즐비한 복도의 너머에 있는 어두운 방.

“우으...거기는..안 돼 아르틴..안..되는데...“

방문을 떼어낸 순간 발동한 수면의 권능에 의해 잠든 흑발의 미청년을 보고, 릴리트의 권속 중 하나인 상급몽마 시르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조금만 방심했으면 큰일 날 뻔 했네요. 드래곤의 마나를 다루는 남자라니.”

장미관의 2층에서 의식을 준비하던 시르카는, 릴리트의 노성에 황급히 지하 2층으로 날아가고 있던 차였다. 우연히 터진 폭음을 감지한 시르카는 릴리트가 준비한 마물들을 한 번에 폭살시켜 버리는 흑발의 미청년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모습을 숨겼다.

기습해서 죽여야 하나? 저렇게 강한 남자라면 아무리 상급 몽마인 자신이라도 피해가 없진 않을 텐데. 만약 유니콘의 계약자가 합류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지? 그 자는 무려 릴리트님의 권능을 조금이나마 깨부순 존재인데.

시르카는 그 짧은 순간 자신의 주인님을 실망시키지 않게 머리를 쥐어 싸맸으나, 그 고민은 곧 바로 무가치한 것이 되었다. 흑발의 미청년은 철문을 강제로 떼어내더니, 이어서 발동한 릴리트님의 수면의 권능이 담긴 함정에 의해 쓰러지듯이 잠들기 시작했다.

‘기, 기회다!’

아마 릴리트님의 안개에 깊게 취한 탓인지, 흑발의 미청년은 그 강력한 드래곤 하트의 마법 내성으로도 저항하지 못하고 단번에 쓰러졌다. 그 즉시 미청년에게 다가간 시르카는 달콤한 잠에 이르게 하는 자신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권능은 성공한 듯, 흑발의 미청년은 발칙한 소리를 내더니 몸까지 비틀어가며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은 상급 몽마인 자신이 보기에도 순간 혹할 정도로 고혹적이고도 아름다운 모습이라, 시르카는 순간 남자의 정기를 빼먹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다.

‘안 돼! 괜히 정기를 빼먹다가 이 미남이 깨어나기라도 하면, 유니콘의 계약자는 어떻게 하고..!’

시르카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쾌락에 충실한 것이 몽마라지만 군주님께서 시킨 일을 농땡이 치면 자신을 지켜보는 릴리트님이 큰 벌을 내리실 게 분명했다.

‘그래, 유니콘의 계약자를 먼저 처리하고, 이 초특급 미남은 그 다음에..!’

마음을 다짐한 시르카는, 혹시나 흑발의 미청년이 일어날 상황에 염려해 자신이 릴리트님에게 직접 하사 받은 힘의 일부까지 사용하여 깊은 잠에 빠트렸다. 이 상태라면 아마 자신의 몸을 난도질 하더라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리라.

“기다리고 있어! 초특급 미남! 다녀와서 내 시종으로 삼아줄게!”

시르카는 곧 바로 유니콘의 계약자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황량하게 뜯겨져 나간 철문 안에는 카이엔이 달콤한 꿈에 취해있었다.

“아아...아르틴...사실 나도...너를...”

고요한 방 안에는 카이엔의 공허한 잠꼬대만이 덧없이 울려 퍼졌다.

**

장미관의 바깥, 아그네스를 대표로 한 아르틴의 연인들은 카이엔을 믿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카이엔이라고 했나? 우리 미남군이 탈락해버렸네♡ 다음은 누가 들어올래?]

하지만 갑자기 분홍색 안개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에, 아그네스는 앓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카이엔씨까지 당하다니, 내부가 무척 위험한 것 같네요.”

무척이나 수상하고 늘 아르틴을 묘한 눈으로 보긴 했으나, 카이엔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최강자에 가까웠다. 그런 카이엔이 당했다니, 장미관의 내부는 얼마나 끔찍한 상황이란 말인가.

“다음은 제가 나설게요! 우리 셋 중 가장 강한 건 저에요, 제가 오라버니를 확실하게 구해오겠어요!”

가장 먼저 다음 차례로 나선 것은, 아르틴이 만들어준 흑룡의 각반을 찬 샤오메이였다. 그 강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에, 아그네스로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네요, 샤오메이. 부디 아르틴을...”

“저, 저기! 샤오메이 말고 내가 다녀오면 안 될까..!”

그때 조용히 있던 바이올렛이 황급히 지팡이를 들고 앞으로 나서자, 샤오메이와 아그네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바, 바이올렛 언니..? 다급한 마음은 알겠지만, 여기서는 가장 강한 제가 다녀오는 게..”

“그래요, 저도 바이올렛양처럼 직접 구하러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샤오메이양이 직접 나서는 게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바이올렛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재능을 생각한다면 전투에 강해서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였던 것은, 3회차의 바이올렛 이라는 사실은 샤오메이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며, 아그네스도 희미한 기억으로 짐작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건 3회차의 바이올렛. 메피스토펠레스와 직접 계약하지 못한 지금의 바이올렛은 믿음직한 면에서는 많이 뒤처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물론, 그것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바이올렛 자신이었다. 허나 바이올렛은 고개를 저으며, 아르틴이 만들어준 지팡이를 의지하듯 강하게 움켜쥐며 용기를 내었다.

“나, 나는 3회차 당시에 릴리트랑 맞서 싸운 적도 있어! 아르틴이 만들어 준 지팡이도 있으니, 무력하게 당하지는 않을 거야.”

“하, 하지만 언니..”

“게다가, 가장 강한 샤오메이마저 당하면, 정말 우리에게는 희망이 많지 않아. 그러니, 내가 들어가서 최대한 길을 뚫어볼게.”

그 말에 샤오메이는 그저 당황했으나, 아그네스는 미간을 찡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릴리트는 계략에 능하다고 전해지죠, 단순히 힘으로 이길 수 없다면 저나 바이올렛양이 진입하는 게 맞을 것 같지만...”

“저기, 잠깐만요, 그거 제가 싸우는 것 말고는 쓸모없다는 소리 아닌가요?!”

갑자기 자신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말에 샤오메이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를 뒤로 하고, 아그네스는 그럼에도 바이올렛을 보내는 것이 석연치 않았다. 결국 바이올렛을 보내는 것은 아르틴을 구하기 위한 발판으로 쓰겠다는 말과 다름없었으니까.

“저를 믿어주세요 황녀님. 이번에는 반드시 해낼테니까.”

그런 자신을 향해 각오를 다진 눈으로 바라보는 바이올렛의 눈빛에, 아그네스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들이 그녀를 믿어주지 않는다면, 아르틴을 구한다 하더라도 바이올렛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될 것 같았기에.

“그럼, 부탁드릴게요 바이올렛. 부디 아르틴을 구해주세요.”

“네,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구해낼게요.”

결연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인 바이올렛은, 상처 입은 샤오메이와 간절히 부탁하는 아그네스를 뒤로 하고, 천천히 장미관을 향해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장미관의 굳게 닫힌 문이 서서히 열리더니, 바이올렛의 입장과 동시에 무거운 쇳소리와 함께 쿵하고 닫혔다.

“...부탁드릴게요, 바이올렛...”

“저기, 황녀님. 저 이래 뵈도 5학년 매번 낙제 안하고 다닐 정도로는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방금 말씀은 무슨 뜻인지...”

아그네스는 간절히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다음에 장미관의 문이 열릴 때는 부디 아르틴의 활기찬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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