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vs몽마 시르카
* * *
가공된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희미해진 직후.
키에에엑!!!
촉수덩어리 하급 마물이 마력의 불길에 타오르며, 촉수 어디에 달려 있는지 짐작도 되지 않은 아가리로 단말마를 내뱉고는 구운 오징어같은 냄새와 함께 뒤틀리기 시작했다.
“뜨겁습니다! 제, 제 몸이 불타오릅니다! 살려주세요! 바이올렛 양!!”
“괜찮아 알‘미라즈?! 그, 어떻게 꺼야 하더라!?”
당연히 촉수에 휘감겨 있던 알‘미라즈는 타오르는 촉수의 불길에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바이올렛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모습을 본 바이올렛이 황급히 자신의 마법을 해제하는 주문을 외우려고 할 때. 촉수가 완전히 타버려 잿더미가 되었다.
“...어라?”
“아, 안 아픕니다? 화상도 없고, 뜨겁지도 않네요..?”
자신을 감았던 촉수가 사라지자, 질끈 감았던 눈을 뜬 알‘미라즈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리 빛 살결에 검게 타오른 흔적 따위는 없었다. 사실 생각해보니 그다지 뜨겁지도 않았던 기분이 든다.
──본래 마르코시아스는 자신의 적을 불태우는 마녀의 주문, 자신의 적이 아닌 존재에는 무해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불꽃을 발현하는 마법이다. 심지어 마법의 주체가 된 패밀리어인 알‘미라즈가 고통스러워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단지, 알‘미라즈는 마법을 연습할 때 사과도 불태우지 못하던 바이올렛을 떠올리며, 지레 겁을 먹고는 눈앞에서 타오르는 불길에 놀라서 꽥꽥 소리를 질러댄 것 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도 본인이었다.
“괘, 괜찮은 거야? 아까 많이 아프다고 하지 않았어?”
“....대, 대단하시군요! 드래곤 하트를 사용해 만든 지팡이를 들었다고 하지만, 이정도로 강력한 마력이라니! 거기에 패밀리어인 저를 단번에 치료하는 섬세함! 이 알‘미라즈! 주인님의 일취월장에 감탄한 것 입니다!
짝짝짝! 알‘미라즈가 박수를 치자 바이올렛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언제 치료의 마법을 사용한 적이 있던가?
하지만 소환의 마법진도 자동으로 그려주고, 한 소절 영창 하는 것으로 마치 열 소절의 주문을 영창한 것 같은 위력을 보여주는 지팡이를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보조로 마법을 발동할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납득해버렸다.
‘드래곤 하트가 2개나 들어갔다고 하더니...! 이 지팡이 엄청 대단해 아르틴..!“
지팡이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드래곤 하트를 보며 바이올렛이 납득한 표정을 짓자, 알‘미라즈는 황급히 화제를 돌리기 위해 지팡이를 바라보며 급히 떠들기 시작했다.
“아,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 이라면 제 소원을 이루어주는 권능을 다룰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도해 보는 게 어떠십니까?”
“소원을 이루어주는 권능..? 그거 낮에는 실패해서 불행만 주지 않았어..?”
“그, 그건 그 남자가 원하는 행복이 그런 망측한 것이라 그런 겁니다! 그보다 지금은 지팡이의 보조도 있으니, 충분히 해볼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권능이라니, 바이올렛은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하면 아르틴에게 어떤 불행이 될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아르틴을 구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마음 속 한구석에 자리잡은 상태. 바이올렛은 도전와 안전에서 조금 고민을 하다, 문뜩 예전에 아르틴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바이올렛, 너의 잠재력을 네가 한정지어서는 안 돼, 네가 꿈꾸고 상상하는 모든 것을 떠올려. 너는 너희 할머니 보다 대단한 최고의 마녀가 될 사람이잖아?”
“...좋아. 해보겠어. 내 소원은 마족들에게서 아르틴을 구해내고 싶어. 알‘미라즈.”
아르틴은 자신을 믿어줬다. 그러니 나 스스로가 자신을 믿어야 나아갈 수 있다. 굳게 결심한 표정으로 알‘미라즈의 이름을 부르자, 노란 머리의 토끼소녀는 자신의 노란 눈동자를 번뜩이며 악마처럼 웃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계약의 악마 알‘미라즈가 그 소원을 이루어드리겠습니다!”
자신감에 가득 찬 외침과 함께, 알‘미라즈의 눈이 빛나며 몸이 허공에 떠오른다. 지팡이의 드래곤하트가 이에 공명하듯이 붉은빛과 파란빛을 반짝이고, 거대한 마력이 주변을 휘감으며 화려한 마력광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찬란한 마력이 알‘미라즈의 춤사위 같은 몸짓에 흐트러지나, 지팡이는 마력이 누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윽고 완성된 알’미라즈의 권능이, 거대한 빛줄기가 되어 복도를 가로지르더니 어딘가로 빠르게 쏘아지기 시작했다.
“하, 우햣! 성공입니다 바이올렛 양! 저, 빛줄기가 저희를 아르틴 님에게로 인도할 것 같습니다!”
마력이 무의미하게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무언가를 이루어 낸 것을 난생 처음으로 목격한 알‘미라즈는, 마치 발정기의 토끼처럼 흥분에 찬 눈으로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권능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반푼이 악마라고 얼마나 무시를 당해왔던가,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알‘미라즈의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저, 정말이지? 저것만 따라가면 아르틴을 구할 수 있는 거야?”
“예! 틀림없습니다! 이 전지전능한 감각, 분명 소원이 확실하게 성공했습니다! 빨리 서두르시죠 바이올렛 양! 아르틴님이 기다리실 겁니다!”
...드디어 내가 해냈다. 아르틴을 구할 수 있다! 바이올렛은 드디어 이루어낸 성공에 감격에 차 빛줄기가 남긴 궤적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기다려 줘 아르틴, 이번만큼은 꼭 널 구하고 말 거야..!!’
**
캬아아아아아악───!!!
“으윽..!”
마치 악귀처럼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나는 이를 아득 물고는 성법을 전개해 마기의 침투를 간신히 막아내야 했다.
유니코르에게 걷어차인 탓에 코뼈가 부러진 건지, 쌍코피를 줄줄 흘리며 울음소리를 퍼트리는 상급 몽마 시르카는 무척이 분노한 것처럼 보였다.
“참을 수 없어요..감히 제 아름다운 얼굴을...! 그렇게 무참히 발로 걷어차는 것도 모자라, 스텀핑으로 확실하게 얼굴만 노려서 공격하다니...!!”
그래 뭐, 좀 유니코르가 기묘할 정도로 저 몽마의 얼굴만 노려서 공격하긴 했다. 그 충격으로 퉁퉁 부어있던 얼굴은 가볍게 회복하기는 했지만.
“하지만, 그런 창녀의 얼굴로 아르틴을 보며 입맛을 다시다니, 본좌는 인간은 참아도 너 같은 사악한 종족이 본좌의 반려에게 꼬리치는 모습을 두고 보지 않는다!”
그런 시르카를 보고 유니코르는 당당하게 외치며, 다시금 머리를 새하얗게 물들여 양손에 신성력을 두르더니 시르카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감히 하등한 바이콘이! 내 고귀한 얼굴을 상처입힌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주마!”
몽마 시르카는 진심으로 화가 난 건지 존댓말도 그만두고 화를 내며 유니코르를 향해 검은 불길을 분사하기 시작했다.
물론 구경만 하고 있던 것이 아니던 나는, 유니코르와 시르카가 떠드는 사이 영창해둔 마법을 시르카를 향해 던졌다.
“라이트닝 스피어!!”
“캬아아악! 이 반푼이 인간 주제에!”
내가 아는 한 7위계 이하의 마법 중 가장 빠른 공격 마법이 시르카의 어깨를 관통하자. 시르카는 고통에 미간을 찡그리더니 나를 향해 5개의 마탄을 초고속으로 난사하기 하였다. 내가 펼쳐낸 마법의 장벽과 마탄이 부딪히자 일어난 강력한 폭발에 내 몸은 충격으로 뒤로 넘어졌다.
“아르틴!!”
“감히 저를 상대하면서, 계약자를 신경 쓰다니!”
쩌어엉!!
유니코르가 내 쪽을 향해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시르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각 지대를 향해 검은 마기로 둘러싸인 손톱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에 대응하듯 유니코르의 신성력을 두른 주먹이 맞부딪히자,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두 여인 사이에서 그 짧은 순간 수십 회가 넘는 속도로 퍼져나갔다.
‘젠장, 유니코르가 명백히 밀리잖아, 괴물이냐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타버린 몸과 날개, 거기에 우리의 추가타까지 전부 회복하고도 마기가 넘쳐나는 건지, 시르카는 압도적인 양의 마기로 유니코르의 신성력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만약 마리안느의 실전 스파링이 없었다면, 그리고 이유를 모르겠지만 퀘스트 완료로 인한 각성이 아니었다면 당장 유니콘의 사지가 찢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나는 내 오르콘하일 롱소드를 움켜쥐고 시르카를 향해 뛰어들어, 시리도록 선명한 오러 소드를 펼쳐 내가 익힌 검술의 정수를 펼치기 시작했다.
─제국 검술식 오의, 트롤 죽이기.
벤다, 찌른다의 묘리를 펼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눈앞의 상대방을 도살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대 거인 살해자, 우르반 헬릭의 쾌검술은 마물의 재생력과 마력을 자신의 강함의 5배까지 상정하고 상대방의 전신을 끝없이 도려내는 연격에 가깝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급소로 향하는 검로를 예측하고 방어 자세를 취하거나 움츠러들기 마련, 허나 완전히 급소를 벨 수 없다면 대신 신체를 도려내고 곧 이어 다음 급소를 향해 검을 휘둘러 상대방을 끝없이 압박하며 깎아내리는 오의.
“이이익..! 각성조차 못한 버러지 인간 주제에 귀찮게 하다니!!”
유니코르를 압박하던 시르카의 연격이 끊기자, 유니코르의 주먹이 몇 발 시르카의 신체에 강력하게 꽂혔다.
아니, 본 모습 그대로 사실대로 묘사하자면, 몽마의 거대한 가슴과 얼굴만을 노린 유니코르의 주먹이 한발 한발 가격할 때 마다, 몽마 시르카의 육체가 짖눌러 뭉게지는 모습이 집요한 악의까지 느껴졌다.
“이 미친년이 진짜! 왜 자꾸 내 얼굴하고 가슴만 노리냐고!!”
시르카가 다시 한 번 강력한 마기를 주변 공간 전체에 내뿜자, 그 마기를 견디지 못한 내 육체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아르틴! 조심하거라!”
물컹! 날아가는 나를 낚아챈 유니코르 덕에, 난 유니코르의 풍만한 가슴을 완충제삼아 간신히 착지할 수 있었다.
“고, 고마워 유니코르. 그런데 지금 전투중인데 너무 꽉 끌어안은 것 같은데..?”
“후후, 너무 부담 갖지 말거라! 그대와 본좌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사이니 말이다!”
아니, 난 그런 맹세를 한 적이 없는데요.
“이 미친 바이콘이, 남자에게 순결을 잃은 충격으로 미쳐버린 것이냐? 내 완벽한 얼굴과 몸매만 노리는 것도 모자라서, 전투 중에 연애질이라니! 분수를 몰라도 정도가 있지!”
시르카는 유니코르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을 넘어 화가 나기 시작한 건지, 삿대질 까지 해가며 유니코르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 같아도 존나 빡칠 것 같아서 저 몽마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간다.
“흥, 그대 같은 노처녀 창녀들은 하나는 알고 둘을 모르는 구나. 그대들이 보지에 친 거미줄을 치우느라 평생을 창녀처럼 살아갈 때, 우리 유니콘들은 아르틴 같은 멋진 반려와 순결하고도 고귀한 사랑을 음미하며 사는 축복받은 종족이니라!”
“뭐, 뭐?! 노처녀 창녀!? 지금 상급 몽마이자 차기 몽마 군주 후보 중 하나로 촉망 받는 나를 보고 노처녀 창녀라고 한 거야?!”
몽마를 보고 노처녀 창녀라니? 내가 그런 의문에 유니코르를 올려다보자, 유니코르는 한껏 비웃음을 담아 몽마 시르카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느냐? 한 사람을 사랑하는 법도 몰라, 사랑받지도 못해, 평생을 모르는 남자의 정기나 빨면서 자신들이 마치 대단한 종족인 것 마냥 정신승리 하지만, 그대들은 그냥 권능으로 야한 꿈이나 좀 보여주고 정기나 받아 마시는 창녀에 불과하노라!”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중상모략을...!”
“아니라면 연애라도 해본 적이 있느냐? 자기 자신에 취해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제 좋다는 남자는 있었겠지만, 노처녀라는 말에 발끈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남자랑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느낀 적은 없는 것 같구나!”
“아냐! 나 좋다고 따라다니던 인큐버스가 얼마나 많았는데, 그런 헛소리를..!”
“그렇다면 말해 보거라. 그대는 첫 키스를 어디에서 했느냐!”
움찔. 그 말에 몽마 시르카의 몸이 거칠게 떨려왔다. 설마 진짜로?
“....그, 마왕성 근처의 꽃밭에서...로맨틱하게..아무튼 다 해봤거든! 그런 헛소리로 날 깎아내리지 마! 서큐버스는 쾌락을 탐미하는 종족! 그 중에서도 간부인 내가 노처녀일 리가 없잖아!”
그 순간 외치는 시르카의 목소리는 사실상 절규에 가까웠다. 마왕성 근처에 꽃밭이라니? 내가 마왕성에 쳐들어 갔을 당시에 그런 로맨틱한 공간은 없었다. 릴리트의 식인꽃이 가득한 정원이면 몰라도.
“...저런....”
“조금 안쓰럽기까지 하구나, 우리를 거짓으로 속이려고 해도, 자기 자신은 못 속이는 꼴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에,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외쳐봤자 아무런 설득력이 없는데, 나는 차마 그 모습을 오래 보지 못하고 눈을 돌려야만 했다.
마치 5회차가 되기 전, 연애는 해봤냐고 말로 공격당할 때 마다 속으로 울음기를 참아야 했던 내 모습이 아른거리며 비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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