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vs몽마 시르카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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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는 언제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다.
어린 시절에는 멀쩡한 남자들을 글러먹게 만드는 미소녀 메스가키의 모습으로, 조금 더 자라면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남자의 혼을 쏙 빼놓는 미인으로, 그 후로는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성숙해지고, 농염해진다. 늙는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시르카는 또래의 몽마들이 즐거운 쾌락을 맛 볼 때, 어머니가 구해다준 구슬에 담긴 정기를 흡수하며 마법의 공부와 전투 훈련에 몰두했다.
어머니에게서 독립한 이후에는? 인간의 정액을 섭취하는 것은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정기 채집 방식이었다. 그저 음몽을 꾸게 한 후 흘러나오는 정기만 흡수해도 그 양을 늘리면 다른 몽마들의 2~3배에 달하는 정기를 채집할 수 있었다.
‘연애도 섹스도 나이 먹고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몽마를 싫다고 할 남자들은 없잖아?’
시르카에게는 잠깐의 쾌락보다 커다란 목표가 있었다. 먼 옛날 마왕님과 봉인되었다고 전해졌으나, 백 년 전 인간에 의해 봉인이 풀려나 흩어진 몽마들을 모아 위대한 세력을 만든, 몽마군주 릴리트님처럼 강하고 멋진 몽마가 되는 것 이었다.
“시, 시르카! 이번 새해에는 너와 같이 보내고 싶어!”
“미안해 카오, 나는 지금 남자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어, 그래서..연애는 무리야.”
몽마들의 사회에서 성인식이 지나고도 처녀인 서큐버스란 존재할 수 없는 상상 속의 존재. 심지어 더럽히기 좋은 그 성실하고 근면한 태도는 많은 인큐버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르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을 거부했다.
거부하고, 거부하고, 또 거부하고, 몽마 뿐만 아니라 마족 전체로 치면 하루에 20번도 넘게를 구애를 받았지만, 시르카는 쾌락에 빠져 자신을 게을리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모든 구애를 거절했다.
물론 시르카의 마음을 떨리게 한 남자가 없던 것은 아니다.
“나, 비록 지금은 하급 전투원에 불과하지만, 너랑 같이 마왕군의 간부가 되고 싶어!”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함께 노력해왔던 늑대인간 소꿉친구.
“나태의 죄에 빠져 모든 것을 거부하던 날 깨운 건 바로 너였다. 시르카. 부디 나와 나머지 생을 같이 하지 않겠나.”
막 마왕군에 임관한 자신에게 무례하게 굴다가 뺨을 맞은 후로 정신을 차린 상급 마족.
“분명 처음은 서큐버스면서 처녀인 너를 가지고 놀려고 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너만을 사랑하고 있어 시르카!”
20년 만에 다시 만난, 어린 시절 유난히 자신을 괴롭혔던 도내 최고 꽃미남 인큐버스까지.
정말 많은 남자들이 자신에게 구애를 했었다. 하지만 시르카는 언제나 단호하게 거절했다.
‘미안해요, 하지만. 언젠가 제 꿈을 이루는 날에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언제나 눈물을 머금고 자신을 좋아해준 남자들을 거절하며 출세가도를 달리던 시르카는, 마침내 자신이 평생을 동경해 온 몽마군주 릴리트의 눈에 띄게 되었다.
“시르카라고 했나? 자기 정말 재밌는 서큐버스네..♡ 내일부터 내 비서로 일해도 좋아.”
그날 밤 시르카는 혼자만의 술파티를 즐기며 자신의 오랜 노고를 치하했다. 하급 몽마에서 시작해 열심히 노력한 끝에 마침내 상급 몽마이자 릴리트의 최측근이 된 것이다. 시르카의 나이가 100살이 되던 해였다.
“이제부터는 조금 느긋하게 살아도 좋겠지? 못 해본 연애도 하고, 여행도 가보고, 첫...첫경험도 해보는 거야..!”
나이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마족 중에도 장생종은 넘칠뿐더러 자신을 좋다고 따라다니던 남자들도 많았다. 거울을 보면 여전히 자신의 외모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완숙미가 넘쳤다.
하지만, 시르카는 몰랐다. 자신이 열심히 살아온 100년간, 타인들도 각자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안녕 시르카! 저번에 우리 28번째 아들의 생일에 보내준 선물 고마워! 우리 타칸도 선물 엄청 좋아하더군!”
자신처럼 간부가 되겠다던 풋풋한 미소년 늑대인간은, 중급 마족에서 자리를 잡은 후 결혼해 벌써 54명의 자식과 22명의 손주를 본 중년의 배나온 아저씨가 되었다.
“오, 시르카님. 제 다섯 번째 결혼식에 축하해주러 온 겁니까? 그대는 제 평생의 은인, 당신이 아니었다면 사랑의 즐거움도 알지 못했겠지요.”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던 상급 마족은, 실의에 빠져있던 자신을 달래준 다른 마족 처녀와 결혼한 후로 벌써 첩을 넷이나 더 들인 상태였다.
“시간도 참 빠르구나...우리 히소카가 너한테 차인 충격으로 인간과의 전선으로 떠났었지, 제국의 검성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너랑 참 어울리는 한 짝이 되었을 텐데...”
심지어 평생을 자신을 기다리겠다며 맹세하던 도내 최고 꽃미남 인큐버스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겠다며 전쟁터로 향하더니, 인간 제국의 검성의 칼에 맞고 목숨을 달리한지 올해로 25주기였다.
‘...어라?’
그제서야 시르카는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을 좋다고 따라다니던 남자들은 어느새 새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거나, 수명이 다하거나, 인간과의 전쟁에 목숨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때까지도 결혼을 하지 못한 마족들은 미치광이나 변태, 아니면 괴팍한 괴짜들 뿐.
‘아, 아직 괜찮아. 새로 좋은 남자를 만나면 되지? 과거의 인연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어!’
평생을 가만히 있어도 자신을 좋다고 하는 남자들밖에 만나지 못했던 시르카는, 극단적인 남자 가뭄에 제 스스로 좋은 남자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저기...루카스는 이번 휴가에 무슨 일정이 있어? 없으면 나랑 같이...”
“시, 시키실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시르카님을 위해서라면 이 목숨을 제물로 명령을 수행하겠습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그냥 식사나 한 번 같...”
“과연! 시르카님께서 정기를 채집할 인간들을 잡아오라는 소리군요! 제 부하들을 이끌고 질 좋은 인간 수컷들을 잡아오겠습니다!”
하지만 마족에게 있어서 강한 마족은 보통 사랑할 존재가 아닌 복종해야 할 존재. 입맛에 맞는 어린 마족들은 릴리트의 뒤를 이을 위대한 마족인 시르카에게 연심이 아닌 충심만을 품고 있었다.
“시르카? 여태까지 거미줄 치고 사는 서큐버스 아니야? 이 나이가 되도록 처녀인 서큐버스는 무슨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조금...”
“100살 넘게 먹고 처녀라니! 그러다가 신성력이라도 쓰는 거 아닌가? 저희 가문이 충성맹세를 할 수는 있어도 귀한 아들을 그런 곳에 장가보낼 수는 없죠!”
그렇다고 동년배나 같은 동격의 마족들이 시르카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었다. 몽마를 원한다면 젊고 어린 몽마들도 많을뿐더러, 밉보였다가는 자신의 가문을 통째로 파멸시킬 수 있는 강한 여자는 결혼 상대로 선호되는 마족이 아니었다.
“....어라? 어라라?”
그렇게 올해로 137세를 맞이한 몽마 시르카는, 여전히 연애 한번 못해본 노처녀가 되었다. 뒤늦게 본 연애 소설의 영향으로 처녀를 사랑하는 낭군님에게 주겠다는 결심 탓에 섹스조차 못해본, 노처녀(???)이자 노처녀(NO처녀)가 아닌 유일한 서큐버스인 것이다.
***
움찔!
“뭐, 뭐냐...?! 갑자기 이 엄청난 마기는...?! 아직까지 이런 힘을 숨기고 있던 것이냐?”
“무, 물러서 유니코르! 저 몽마, 기색이 이상해!‘
갑자기 몽마의 주변에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구체화 된 것 같은 날카로운 마기에 나와 유니코르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흐..흐흐...이제 아무래도 좋아...”
섬뜩한 목소리로 흐느끼며 웃기 시작하는 몽마 시르카는, 우리를 향해 고개를 들자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노처녀..? 거미줄 창녀...? 마음대로 불러라..!! 여기가 이제 너희들의 무덤이 될 공간이니까!”
“이런 미친! 아르틴 조심해라! 귀신도 처녀귀신이 가장 한이 많다는데, 심지어 저건 노처녀 마족이다!”
“노처녀 소리 그만해!!!!!”
방금 자신이 노처녀라고 불러도 좋다고 해놓고, 유니코르가 노처녀라고 부르자마자 몽마 시르카는 마기로 이루어진 격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주변을 고정하던 릴리트의 분홍 안개마저 강렬하게 집어삼키는 검은 마기의 해일에, 나는 황급히 인벤토리를 열어 신성 촉매를 꺼내 성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의례성법???? : 수호??
신성력이 촉매에 휘감겨 찬란히 빛을 발하자, 우리를 덮친 마기의 해일을 가르는 절대적인 보호막이 나와 유니코르를 안전하게 지켜냈다.
물론 실시간으로 신성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 나는 끝없이 기도문을 외우고 또 외우며 보호막이 1초라도 더 지속될 수 있도록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 이토록 강력한 힘이라니...! 몽마들은 정기에서 힘을 얻는다고 들었는데, 노처녀가 어떻게 이정도의 마기를 지닌게냐...!”
“아가리 닥쳐!! 너희를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유니코르의 감탄사에, 오히려 마기의 흐름이 더욱 강력하게 우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런 강력한 공격은 군단장과의 전투에서 밖에 느껴보지 못한 나로서는 굉장히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이건, 이건 시발 좆됐다..! 여기서 회귀하는 건가...!’
아직 기억 회귀에 대한 단서도 얻지 못했는데,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인벤토리에서 미리 준비한 온갖 촉매들을 다 꺼내가며 보호막을 유지했다.
“대천사의 깃털에, 유니콘의 뿔에..! 백사자의 갈기 까지! 아르틴, 군단장을 상대할 여력은 남겨놔야 하지 않느냐!”
유니코르의 다급한 외침은 맞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촉매는 상점에서도 꽤 비싼 편에 속하는 재료. 그저 상급 마족 따위에게 낭비해서는 안 될 귀중한 도구였다.
“크하하하핫! 오래도 버티는 구나 질긴 벌레놈들! 그 목숨을 내 모든 권능과 마기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짓밟아 뭉게주마!!”
하지만 저 마족의 수상할 정도로 강력한 마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시간이 좀 더 흐르자 그 강력한 촉매들에 담긴 신성력도 점점 빛이 바래지며 성법의 보호막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죽는 건가? 군단장도 아니고 그저 상급 마족에게?’
다 같이 회귀한 셈이니 존나 쉬운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난이도가 미쳐 돌아간다. 이대로는 갑자기 닌자라도 나타나서 저 몽마를 해치우지 않는 이상 나와 유니코르는 죽고 말겠지.
‘...그래도, 유니코르 만큼은 다음 생에도 함께잖아. 만약 다음 생에 다른 애들이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유니코르랑 같이 방법을 찾아내보자.’
내가 초탈한 눈빛으로 유니코르를 바라보자, 유니코르는 슬픔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볼을 쓰다듬었다.
“걱정 말거라 아르틴...본좌는, 나는 다음 생에도, 그리고 그 다음 생에도, 끝없는 억겁의 윤회속에서도 영원히 그대와 함께 할 것이니까.
“...그건 좀 무서운..우웁...”
내가 무섭다고 말하기도 전에, 유니코르는 내 목을 끌어안더니 내게 진하고 달콤한 입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어차피 죽은 목숨 유니코르의 키스를 받아들이며 마주 껴안았다.
“이 씨발년놈들이 마지막까지 염장질을!!! 뼛조각도 남기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죽..꺄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앙!!!
내 성법의 보호막이 몽마 시르카의 마기에 박살나려는 순간, 갑자기 거대한 폭발음이 들린 직후 시르카는 고통어린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시르카가 맹렬하게 뿜던 시꺼먼 마기가 흩어지자, 나는 시르카의 등 뒤에서 쏘아진 새하얀 세 줄기의 광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르카는 양 날개가 그 광선에 찢겨진 듯 피투성이 모습으로 고통에 허덕이고 있었다.
‘뭐야 이 마법은?’
아까 시르카의 날개를 태운 빛의 기둥과 비슷한 형질의 세 갈래의 광선.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저 몽마를 엄청난 힘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곧 세 갈래의 광선은 그 힘을 잃고 희미하게 변했지만, 시르카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오로지 재생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이다. 지금이 이 노처녀 몽마를 확실히 처리할 유일한 기회야!’
나는 신성력을 다 쓴 탓에 비틀거리는 유니코르를 뒤로 하고, 인벤토리에서 미리 준비해둔 아티팩트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끄..끄으윽...네..네 녀석...”
“성스러운 신의 파편이여, 타락한 존재를 자신의 빛으로 감싸 가두어라!!”
“꺄아아아악!!! 힘이! 내 힘이!”
내가 시동어를 외치자, 내가 준비한 아티팩트인 봉인의 룬이 정신을 못 차리는 시르카의 힘과 존재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먼 옛날 산산조각 났다고 전해지는 신의 육체로 만들어진 이 아티팩트의 성능은 간단했다.
현실에 있던 어느 게임의 볼처럼, 그로기 상태로 만든 마족을 룬석에 봉인하는 효과.
릴리트의 권능 중 일부를 봉인할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사용하는 것이 그보다 값진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시르카! 넌 내거야!!!”
“꺄아아아아악!!!!”
릴리트의 권능을 가지고 있는 강력한 상급 마족, 그걸 포획할 수 있다면 엄청난 개이득이 아닌가. 물론 마족을 테이밍 하는 법은 모르지만, 그럴 때는 테이밍(물리)를 쓰면 그만이다.
봉인의 룬은 바닥을 긁으며 저항하는 시르카의 힘을 무자비하게 계속해서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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