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88화 (88/266)

〈 88화 〉 유니콘과 계약자, 거기에 몽마를 섞은(수정)

* * *

─푸욱!

“키아아아악!!”

“아 씨발 드디어 다 잡았다!”

마지막 마물의 심장에 롱소드를 깊이 찔러 넣자, 녀석은 단말마를 지르더니, 이내 육체에서 마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마물이 죽을 때는 마기를 흩뿌리기 마련. 나는 검을 뽑은 후 대충 휘둘러 검신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 많은 마물들을 해치우다니, 역시 본좌의 반려자다운 강함이구나, 그대를 보고 있으니 발정기가 올 것만 같구나..”

“아니, 그게 유니콘이 할 말이야 유니코르..?”

“그대와의 사랑 덕에 본좌는 유니콘이자 유니콘이 아닌 존재가 된 것을, 덕분에 그대가 이리도 강해졌으니 기뻐해도 좋아.”

신성력을 조금 회복한 듯 유니코르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죽은 마물들이 남긴 마기를 남김없이 흡수하기 시작했다. 유니콘이 마기의 흡수라니, 이제는 진짜 바이콘이라고 취급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놀랐구나, 본좌의 기억 속의 그대는 이토록 강하지 않았는데, 검이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고 정순한 것은 둘째 치고, 검술도 날카롭고 중간부터는 나보다 더 강한 것처럼 느껴지더구나.”

“...너랑 계약한 게 2회차 였는데, 그야 나머지 10년을 놀고먹었을 리가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10구가 넘는 마물들의 시체를 내려 봤다. 확실히 중급 마물이 만만한 마물은 아니다. 세니아 선생님이 죽는 이벤트에서 나타난 마물들도 대다수가 하급 마물, 중급 마물은 다섯 마리 정도만 나와도 목숨이 위험한 초반부의 중간 보스.

하지만 잠재능력은 아직 낮긴 해도 전생의 기술과 국보로 지정해도 문제없을 아티팩트 오르콘하일 롱소드, 거기에 녀석들이 흘린 피를 전신에 뒤집어쓸수록 강해지는 육체능력까지.

‘이거 정말로 잠재능력만 오르면 딱인데. 이 망할 놈의 잠재능력은 어떻게 아직도 안 오르냐.’

아직 마나도 전력을 낼 정도로는 부족하고, 신성력도 유니코르에만 의지해서 사용하는 상태. 피뿌리기로 육체능력을 보좌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방금 몽마 시르카에게 죽을 뻔한걸 생각하면, 확실히 더욱더 강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내 여자들은 내가 지켜야지, 캐리 받고 사는 삶이 도대체 무슨 삶이야.’

아르틴 루드비히 이전에 사나이 양희민, AOS 게임을 해도 언제나 탑만 가던 정통 탑신병자의 삶을 살던 내게 캐리 ‘해줘’라고 징징대는 암컷의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기, 아르틴? 지금 무슨 생각 중이더냐?”

“...응? 아니 그냥, 더 강해져야겠다는 생각. 그런데 왜?”

이번에는 어떤 영약과 기연을 따올지 고민하고 있을 때, 마기를 전부 흡수한 유니코르가 뭔가 얼굴을 붉힌 채 내 옆에 다가왔다.

“다른 게 아니라..본좌가 이번에 무척 열심히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이번 싸움이 끝나면...좀 ‘특별한’ 사랑을 그대와 나누고 싶구나.‘

아니, 애는 처녀 뚫린 지 얼마나 됐다고...상태창이 사실 틀렸고 정말로 바이콘이 된 게 아닐까? 혹시 릴리트의 권능이 유니코르의 정신을 타락시킨 게 아닐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유니코르와 몸을 섞기로 마음먹은 순간, 나는 유니코르도 내 하렘에 들이기로 마음먹은 후였으니, 유니코르가 어떤 모습,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사랑으로 보답해 줘야지.

“좋아, 그 특별한 사랑이란게 뭔지 들어보고. 체위에 관한 거야? 아니면 플레이?”

내가 긍정의 의미를 표하자, 유니코르는 활짝 웃으며 환해진 얼굴로 내게 팔짱을 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물론 이 모습도 좋지만, 본좌는 그대와 진실 된 모습으로 사랑을 하고 싶구나.”

“진실 된 사랑이라...아니, 진실 된 사랑이 아니라 진실 된 모습?”

느긋하게 순애섹스라도 하고 싶은 건가,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뭔가 말이 이상하게 다른 것을 눈치챘다. 혹시나 싶어 유니코르의 얼굴을 보자 뭔가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 본좌와 그대가 자연으로 돌아가, 각자의 본연의 모습으로 사랑ㅇ...”

따악─!!

유니코르가 말을 더 이어 나가기 직전, 나는 싸다구를 후려치려는 내 마음 속의 가부장제를 억누르고 대신 맨들맨들한 이마에 딱밤을 쌔게 때렸다.

내게 이마를 얻어맞은 유니코르는 순간 자신이 맞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글썽였으나, 턱에 단단히 힘이 들어간 채 단호하게 눈을 부라리는 내 시선에 눈을 숙였다.

“유니코르, 내가 너를 좋아하고, 그래서 너와 몸을 섞은 건 맞지만. 그런 끔찍한 소리는 부부간에 해서도 안 되는거야.”

“...그..그렇게 끔찍한 소리였느냐? 본좌는 그저...”

“안 돼.”

내 의사는 단호했다. 비록 유사 말박이가 되었으나, 진짜 짐승 인간조차도 내게는 무리인데 진짜 말박이가 되라니. 이 말을 꺼낸 게 다른 연인이라고 하더라도 수긍할 수 없는 이야기다.

“미, 미안하구나..그럼 그대와 한 침대를 쓰면서 자고 싶도다...”

그런 내 단호한 의사는 유니코르에게도 전해졌는지 유니코르는 내게 사과하며 내가 충분히 수용 가능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나는 그제서야 표정을 푼후 마법으로 전신에 묻은 피를 처리한 후 유니코르를 꼭 안아주었다.

“그 정도는 부탁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도 때려서 미안해. 돌아가면 맛있는 디저트를 잔뜩 사줄게, 알았지?”

“....으,으응. 그대의 품은 참 따뜻하구나...”

나는 내 품안에서 아픔을 달래는 유니코르를 잠시 쓰다듬어 주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으나, 내 앞에서 그런 역겨운 소리를 해놓고도 주먹으로 얻어맞지 않은 것만 해도 연인에 대한 존중은 충분했으리라.

‘나중에 체벌용 도구도 만들어야지, 흉터가 안 남는 회초리나 승마용 채찍 같은 거.’

*

유니코르와의 휴식을 끝낸 나는 지하 2층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유는 이곳에 갇혀 있을지도 모르는 히로인을 구출하기 위해서.

물론 본래라면 당장 지하로 내려가야 할 상황이다. 몽마 시르카와 릴리트가 남겨두고 간 마물과의 전투로 시간이 꽤 소모된 직후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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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긴급 상황! 히로인을 구출하라!

당신의 히로인 후보들이 악당에게 붙잡혔습니다!

숫사자는 자신의 여인의 위험을 좌시해서는 안 됩니다!

멋지게 붙잡힌 히로인 후보들을 구해내 보도록 합시다!

퀘스트 보상 : 구해낸 각 히로인 후보에 대한 호감도, 상점 포인트.

현재까지 공략한 여성 : 0/3명.

남은 퀘스트 완료 시간 : 00: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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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완료 시간이 늘어났어, 그것도 20분에서 30분 사이.’

나는 릴리트의 대리인으로 나온 것처럼 보였던 몽마 시르카가 내 봉인의 룬에 의해 힘을 대부분 봉인 당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단순히 타임 어택이 아니라, 이런 구조로 시간을 늘릴 수 있다면, 그냥 직접 이 의식을 방해하기만 해도 히로인을 전부 구출한 것으로 취급해 줄지도 몰라.’

나와 유니코르 단 둘이서 해치우는 것은 불가능 하진 않지만, 무리에 가까울 터, 최대한 빨리 히로인과 합류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먼저 만나야 할 것은...

‘아까 몽마 시르카를 불태운 기둥이나 그로기 상태로 만든 세 줄기의 빛, 여기서 갑자기 그런 것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바이올렛 밖에 없어.’

물론 샤오메이도 기공포를 쏠 수 있긴 하지만, 만약 샤오메이였다면 호랑이처럼 달려와 몽마 시르카의 가슴팍을 걷어찬 후 그녀가 택한 마왕군의 무게를 교육(물리)로 단단히 알려줬을 터.

나는 간간히 덤벼오는 마물들을 전부 베어 넘기며, 유니코르에게는 바이올렛의 기척만을 찾게 하며 장미관의 지하 2층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유니코르, 여전히 모르겠어?”

“으음, 역시 이 분홍 안개가 거슬리는 구나..자꾸 본좌의 기감을 어지럽히니 말이다.”

하지만 영 소득은 없었다. 함정이 없는 방에도 대피한 신도로 보이는 몇 명이나 발견해서 기절시키거나, 납치된 것으로 보이는 여자를 몇 명 찾아낸 게 전부다.

그냥 지하 3층으로 내려가서, 이 웃기지도 않은 결계를 부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움직일까 라고 다시 고민할 무렵, 머리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마치 우주와 교신하듯이 집중하던 유니코르가 눈을 번쩍 떴다.

“찾았다 아르틴! 마녀의 기운은 모르겠지만, 네가 만든 지팡이의 강력한 기운이 지하 2층으로 내려온 게 느껴지는 구나!”

“뭐? 어디? 어느 쪽인데?”

“본좌가 안내하마! 따라오거라!”

나와 유니코르는 바이올렛이 있다는 방향을 향해 전속력을 다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명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이곳의 마물들은 수준이 너무 높아! 혹시 기습이라도 당하면 위험하니 최대한 빨리 합류하자!”

“마치 누구에게 설명하듯이 구구절절 말하는 구나! 그런 건 설명하지 않아도 좋다!”

“아, 맞다. 설명이 버릇이 되어 가지고...”

사실 예전의 유니코르라면 왜 황급히 합류하려는지 이해 못했을 것 같아서 설명한 거였지만, 회귀의 기억을 찾은 유니코르는 묘하게 기억을 찾기 전보다 똑똑한 것 같았다. 괜히 그걸 말하면 짜증낼 까봐 말하지는 못했다.

“여기야! 여기 방안에 바이올렛이 있겠구나!”

“...여기? 방안에? 여기서 잠시 쉬는 건가..?”

유니코르가 멈춰선 방문은, 왠지 이상할 정도로 낯이 익은 방문이었다.

‘이거 아까 전에 봤던 그 섹스 하지 못하면 나갈 수 없는 방하고 비슷한 입구인데..?’

벽을 부수고 나올 때 그 무늬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던 터라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 문이 단단히 봉인 되어있는 걸 보니 함정인 것 같구나! 왠지 둘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둘? 둘이라고? 낮에 봤던 그 토끼인간 패밀리어 아니야?”

“그건 흐릿해서 잘 모르겠구나, 일단 문을 부수고 꺼내주는 게 빠르지 않겠느냐?”

맞는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마나와 신성력으로 오러 소드를 끌어올려, 마법으로 잠긴 문을 강하게 후려쳤다.

콰앙──!!

전에 추측했던 대로 외부의 충격에는 취약했던 건지, 잠겨있던 문은 시원하게 박살났다.

방 내부의 모습은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었다. 어째서인지 분홍색 안개가 가득했기 때문에 나는 마법으로 방안의 안개를 전부 밀어내며 시야를 만들었다.

“...자, 잠깐 아르틴, 뭔가 이상하다. 이 구성은 분명...”

유니코르가 뭔가 불길함을 느낀 듯 나를 막으려 했다.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방금 우리가 빠져있던 함정과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것을.

하지만, 유니코르가 바이올렛이 이 안에 있다고 말했다. 만약 바이올렛이 함정에 빠진 상태라면?

나는 이 앞이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도 들어가야 했다. 나는 유니코르에게 알고 있다는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인 후, 당당히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쿠웅──!!

그 순간, 우리가 부수고 들어왔던 문이 어느새 복원되어 묵직한 철소리와 함께 닫힌 후, 봉인의 인장이 문 위로 떠올랐다.

“이리도 쉽게 함정에 빠지다니, 유니콘의 계약자도 별거 아니구나?”

“...씨발, 이게 진짜 함정이네.”

분홍색 안개가 모여서 형체를 이루더니, 2명의 몽마가 눈앞에 나타났다. 초록색 머리에 키가 좀 작은, 자기 머리만한 커다란 가슴을 과시하는 야한 복장의 서큐버스와, 금발머리에 좆같은 게이처럼 나풀거리는 천 옷을 입은 인큐버스.

“...아르틴, 긴장하거라, 저 서큐버스의 마기는 심상치 않구나.”

우리가 상대했던 몽마 시르카, 혹은 그 이상의 압력이 느껴지자, 나는 긴장감에 입술을 씹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이올렛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은 보이지 않게 만들었거나.

“바이올렛 어디 있어, 설마 그것도 함정이었나?”

“글쎄, 어떤 것 같아? 우리가 너를 꾀어내려고 그 마녀를 붙잡고 있을까~?”

“하, 하하! 얌전히 항복하면 마왕군의 포로로써 대접은 해주마! 너도! 그 마녀도!”

나를 놀리려는 기색이 역력한 초록머리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허접한 도발, 평상시라면 적당히 입을 놀려 줬겠지만, 바이올렛이 잡혀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힐끔, 나는 유니코르에게 2회차 당시 정했던 수신호를 보냈다. 오른쪽 어깨를 2번 움찔거리자, 유니코르는 내 신호를 읽고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결심한 듯 자세를 잡았다.

“호오, 싸울 생각인가? 나쁘지 않아. 패배한 너희 앞에서 그 마녀 아가씨를 즐기는 것도 즐거운 여흥 아니겠어?”

“..어라? 저희 진짜로 싸워요? 그런 건 계획에 없었는ㄷ...”

지금이다. 노란 머리의 인큐버스가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오르콘하일 롱소드를 움켜쥐곤 쏘아진 화살처럼 녀석을 향해 빠르게 튀어나갔다.

──제국검술, 호랑이 죽이기.

녀석이 내 마나를 감지하고 황급하게 고개를 돌렸지만, 그 순간 이미 오러 소드에는 내 의지가 투영 되어, 인큐버스의 심장을 정확하게 노리고 휘둘러지고 있었다.

“뒤져 유사금태양 인큐버스 새끼야!!!”

“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나의 검이 녀석의 심장을 도려내기 직전, 나와 동시에 공격한 유니코르의 발차기가 서큐버스의 얼굴을 박살내려는 그 순간.

따악─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울렸다.

“...이게? 무슨?”

“아르틴! 괜찮느냐 아르틴?! 이 간악한 몽마놈들! 우리에게 무슨 수작을 한 거냐!”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우리의 움직임이 멈췄다. 정확히는 보법을 밞아 허공에 떠오른 그 상태로, 마치 누군가가 나와 유니코르의 시간을 멈춘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캬하하! 이렇게 너무 순진하게 속아주다니, 준비한 내가 다 기쁘잖아. 아르틴?”

녹색 머리의 서큐버스는 우리를 보며 큰 소리로 비웃기 시작했다. 설마 이 정도로 힘의 차이가 날 줄은 예측하지 못해, 내가 당황하는 표정을 짓자 그 웃음은 더욱 커졌다.

“역시 그대만이 날 즐겁게 해주는 구나, 장난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리고 서큐버스가 손가락을 다시 한 번 튕기자, 이번에는 몽마들을 감쌌던 분홍색 안개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있던 것은..

“...바, 바이올렛? 지금 이게 무슨...!?”

서큐버스가 드러낸 진짜 모습은, 바이올렛이었다. 정확히는 머리가 3회차 당시처럼 보라색으로 물든 바이올렛. 그 모습에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눈 앞에 있던 인큐버스도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알‘미라즈?”

“히..히익...사, 살려 주십시오 아르틴님!”

내 검에 찔려 죽기 직전이었던 몽마 알라딘은 어디가고, 가슴을 출렁이며 벌벌 떠는 토끼 수인 같은 모습의 알‘미라즈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 칼날을 두려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아직도 모르겠어? 회귀 했다더니 정말로 감이 다 죽었네. 그렇지?”

바이올렛은 어느새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평상시 입는 단정한 드레스가 아닌 노출이 많은 드레스 차림으로 느긋하게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저 미소, 저 눈빛, 어딘가 미묘하게 익숙한 저 발음. 저 가슴. 커다란 가슴. 아니지 시발 가슴은 아니야.

“...너?”

“악마의 장난은 좀 짓궂긴 하지만, 기다리게 한 벌이라고 생각해. 알았지?”

바이올렛은 전에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장난기 가득한 요염한 미소로 나를 유혹하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바이올렛을 홀린 다른 서큐버스냐? 아니면 릴리트 또 너야?!”

“.....”

내가 눈을 부라리고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외치자, 정곡이 찔린 건지 바이올렛의 모습을 한 그것은 묘하게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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