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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98화 (98/266)

〈 98화 〉 상급몽마 시르카! 넌 내꺼야!

* * *

카이엔은 아르틴의 시선에 얼굴을 붉히며 눈을 돌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얼굴을 볼 때 마다, 방금 전까지 꿈에서 보이던, 자신이 꿈꾸고 상상하던 아르틴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자, 잠깐, 이게 무슨 짓이야 파트너..!]

[언제까지 네 정체를 숨길 수 있을 줄 알았어...? 내가 바보로 보여?]

[그...그만둬 파트너, 우리에게는 그 날의 맹세가...지켜야 할 약속이..!]

[그리 진지하게 굴지 마, 이번에는 나도 널 욕심내고 싶다고 파.트.너]

[아아..이러면 안 돼 아르틴..안..돼..돼...♡]

“...!”

다시 생생하게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음몽의 기억에 카이엔은 심장이 쿵쿵쿵 뒤기 시작했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음마의 수작에 불과했다.

자신은 애초에 아르틴에게 본 모습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음몽 속에서 자신은...안 돼. 음, 카이엔은 마음을 다잡았다. 적이 바로 앞에 있는데 헛된 망상에 집착할 수는 없는 법.

...이번에 일이 끝나면, 저번에 풍비박산난 만화부 부원 중 한명을 찾아가기로 마음 먹으며, 카이엔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마물과 시르카­릴리트가 있는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 씨발새끼가?’

그리고 그 반응을 본 아르틴은,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왜 지금 상황에 나를 보면서 얼굴을 붉히는 거지?

문뜩, 카이엔이 몽마의 함정에 빠져서 꿈을 꾸고 있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아르틴은 자신이 상상하기 싫은, 아마도 카이엔이 꿨을 꿈의 풍경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

아르틴이 갑자기 욕을 뱉자, 세 사람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르틴의 자연스럽게 능숙한 시선처리로 고통에 울부짖는 시르카­릴리트를 험악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자신이 방금 느낀 모멸감과 분노가 전부 저 몽마 때문이라는 듯.

“...이건 전부 다 네년 탓이다. 1학기 중간고사도 되기 전부터 아득바득 기어 나온 릴리트 네년 탓이라고!”

“...이, 시건방진 필멸자가!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요! 감히 제가 깃든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도 모자라서!!”

뒤에서 나타난, 무력화 시켜놨던 미청년이 자신의 권능에서 빠져나온 것도, 감히 자신의 장난감을 상처 입힌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억울한 분노까지 자신을 향하지, 시르카­릴리트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

릴리트의 본체는 여전히 마왕성에 있는 것 같았으나, 릴리트의 정신이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하자 그 존재감 만으로 주변 일대의 벽이 금이 가며, 압도적인 위압감이 우리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크윽..! 상급악마와 대등한 위압감이야 스승님..! 위험해!”

“본좌의 뒤로 물러 서거라 아르틴! 본좌가 그대를 지킬 테니!”

잠재능력을 각성도 못한 내가 릴리트의 분노 앞에서 당당하게 마주 서있는 카이엔처럼 버틸 능력은 없었다.

어느 만화에 나온 패기라는 것처럼, 아마 각성했다고 하더라도 어지간한 녀석들은 저 분노를 마주보는 것으로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겠지.

다행히도, 유니코르가 기억을 찾음과 함께 더 강해졌으며 동시에 바이올렛의 꿈에 진입할 때 알‘미라즈와 임시 계약을 맺은 덕에 나는 위압감을 견딜 수 있었다.

‘그래도 상황은 좋지 않아..저 중급 마물들 드글거리는 거 봐.’

카이엔이 한바탕 베어 넘긴 후였지만, 그럼에도 아직 죽지 않은 마물들은 차고 넘쳤다. 50마리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저 수에 진절머리가 났다. 자기 마물을 다 가져온 건가?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시르카의 몸을 차지한 릴리트 본인이야.’

어떻게 봉인의 룬에 95% 가까이 봉인 된 것 같던 시르카를 복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르카 Mk.2는 육안으로 분석하기에도 이전의 시르카보다 더 강력함이 느껴졌다. 아마 릴리트의 권능을 때려 박아 넣은 게 아닐까.

그런데 그걸 심지어 릴리트가 조종한다. 유니코르의 말마따나 100년 묵은 노처녀 서큐버스 따위가 아니라, 원작에서도 주인공 파티의 악몽이라고 묘사되는, 나이로 치면 할망구라고 불러도 무방할 마왕의 간부가.

...사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없는 건 아닌데...

‘아, 시발 그건 진짜 존나 하기 싫은데...’

그 방법은 플랜 Z 정도로 생각할 정도로, 뒤로 미뤄놨던 방법이라서 더욱 꺼려졌다.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지?

“노처녀에 깃든 할망구 서큐버스가 분노해서 미쳐 날뛰는 구나!!”

“되다만 바이콘 너는 정말 안 닥칠건가요!!!”

“...바이콘? 바이콘이라고 했어 지금?”

하지만 길게 생각하기에는, 상황이 실시간으로 나빠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결단을 내렸다.

“아르틴, 방금 저 서큐버스가 이상한 말을...”

“아가리 다물고 이거나 받아!”

나는 앞에서 달려오는 마물을 썰으면서 동시에 나를 향해 당황한 표정을 짓는 카이엔을 향해, 내 보물을 내 던졌다.

“......오르콘하일 롱소드?”

“지금은 네가 들고 싸워! 성검도 없는데 그 정도는 들고 싸워야 상대가 되지!”

그래, 저 표정.

내가 쥐고 있던 오르콘하일 롱소드를 카이엔에게 던져주자, 녀석은 나를 바라보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아니, 감격했다고 보기 보다는...

“...고마워 파트너! 정말, 정말 소중히 간직할게!”

“아니야! 빌려주는 거야! 가지려고 하지 마! 얼굴 붉히지 마 제발!”

저 애잔한 표정, 중학생 시절 짝사랑 했던, 반에서 유일하게 날 안 괴롭힌 반장에게 지우개를 빌리고 난 후의 내 모습과 무척 닮아서 기분 나빴다. 저럴까봐 안 빌려주고 싶었다.

‘나보다 흉부근도 탄탄하고 배에 王자까지 있는 새끼가 도대체 왜..’

원작에서도 멀쩡히 히로인이 존재하던 주인공 새끼가 도대체 왜 나한테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감히 절 앞에 두고도 한눈을 팔다니!!”

그때, 시르카­릴리트가 분노어린 날개 짓으로 카이엔을 향해 돌격하며, 마기를 잔뜩 두른 날카로운 검은 손톱을 크게 휘둘렀다.

“──꺼져, 지금 파트너와 교감하잖아”

“캬앗?!”

그리고 그 순간, 내 안력으로도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인 카이엔이, 릴리트의 손톱을 휘둘러 막아냈다. 오르콘하일 롱소드에는 내 오러 소드보다 훨씬 정순한 마나를 품은 카이엔의 검은빛의 오러 소드가 펼쳐져있었다.

“이익, 또 어디서 이런 치트 아티팩트를 가지고 와가지고!!”

“치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나와 아르틴의 결속의 상징이야. 비겁하다고는 하지마?”

카이엔 십새끼가 또 역겨운 소리를 내뱉었지만, 릴리트는 그런 카이엔을 단번에 힘으로 찍어 누르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서서히 카이엔이 밀어 붙이기 시작했다.

애초에 몽마는 육탄전에 강한 마족이 아니다. 강력한 마법과 적들을 완전히 농간하는 환영, 그리고 반항하기 힘든 권능이 위력적인 마족. 반면 카이엔은 무려 전대 드래곤의 힘과 권능을 물려받은, 반인반룡에 가까운 존재.

거기에 가냘픈 철쪼가리라고 불러도 무관한 기존의 검 대신, 내가 직접 만든 명검을 쥐고 있으니, 여태까지 해오던 힘 조절을 때려치우고 드래곤의 전력을 낸 카이엔이 밀릴 이유는 없다.

“이 힘은..! 당신, 평범하게 잘생긴 필멸자가 아니었군요!”

“본좌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할망구 서큐버스여!”

그때, 유니코르의 거센 날라차기가 시르카­릴리트의 가슴 정중앙에 적중하자, 릴리트는 뒤로 물러나며 이를 바득갈았다.

“감히, 감히 제 힘, 마법, 권능. 모든 것에 도전하다니..!! 이 자리에서 전부 죽여 버리겠어요!!”

릴리트는 자신이 단순히 마기를 이용한 힘싸움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다시 허공에 수십 개의 거대한 마법진을 펼치며 마물들의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그걸 두고 보면 우리가 병신이지. 알‘미라즈!”

“준비 끝났어! 스승!”

카이엔과 유니코르에게 릴리트가 어그로 끌린 사이, 정신파로 마법을 준비하던 나와 알‘미라즈는 그대로 릴리트를 향해 마법진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속박의 마법 ─ 데카라비아Decarabia

“끄아아아악?! 어느 틈에...?! 그보다 어떻게 제게 속박 마법을...!?”

릴리트가 이쪽을 향해 당황한 눈으로 쳐다봤다. 당연한 반응이다. RPG 게임에서 레벨 차이가 심하면 상태이상이 걸리지 않듯, 나랑 알‘미라즈는 근본적으로 상급 악마에게 먹힐 만한 마법을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릴리트에게 활짝 웃으며, 지팡이를 흔들어 보였다.

“사기템 개꿀.”

“이 망할 치트 사용자가!!!!! 이 정도 마법은 3초면 풀 수 있어요!!!”

릴리트는 도대체 마기를 얼마나 지니고 있는 건지, 방금 전보다도 더 강력한 마기를 뿜어내서 자신의 몸을 구속하는 마법진을 파괴하기 위해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는 그 3초가 중요했다.

단 3초로 뭘 할 수 있을까. 카이엔으로 목 베어넘기기? 유니코르로 신성력 때려넣기?

아마 전부 적당한 타격은 줄 테지만, 치명상이라고는 할 수 없을 터. 마왕의 권속은 존나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나는 샤오메이에게 배운 보법을, 마리안느에게 배운 마나근 활성법으로 터트리며, 동시에 발 끝에서 마력을 분사시켰다. 오로지 릴리트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내가 한 순간에 릴리트를 향해 달려들자, 중급 마물들이 나를 죽이기 위해 촉수와 발톱을 휘두르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딜 감히!!”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유니코르는 녀석들의 접근을 차단했고, 카이엔은 추가로 접근하는 녀석들을 전부 베어 넘겼다. 내가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지만, 15년간 같이 싸운 전우와 영혼으로 연결 된 계약자답게 녀석들은 내 작전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 덕에, 나는 한순간에 시르카­릴리트의 앞에 도달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릴리트는 조소를 지으며 나를 노려봤다.

“저 미청년도 아니고, 되다만 바이콘도 아니고, 심지어 악마도 아닌 네 녀석이 달려들다니, 너무 오만한 거 아닌가요?”

맞는 말이다. 나는 오르콘하일 롱소드가 있어도 녀석에게 상처주기 힘들다. 치명상은 무리지.

“하지만 상처는 내지 못해도, 하던 걸 마무리 할 수는 있지.”

“...하던 거?”

나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바로 시르카가 담긴 봉인의 룬을.

“가라!! 몬스터 볼!!!!”

“끄아아악?! 이게, 이게 무슨!? 옛 신의 파편이라니?! 그 강력한 아티팩트를 어떻게에에!?”

나는 릴리트의 절규를 뒤로 하고, 릴리트 녀석이 점거한 시르카의 육체를 향해 봉인의 룬을 내밀고는 룬을 작동시켰다.

즈와아아앙──!!!

룬은 녹색 빛을 강하게 내뿜으며, 시르카의 남은 힘과 존재를 완전히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길지 않았다. 이미 빨아들일대로 빨아들인 육체에서, 시르카의 존재가 가지는 지분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세우스의 배에서, 새로 보수한 나무조각 대신 마지막 남은 마스트를 빨아들인 것이다.

위잉──! 위잉──!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시르카의 남은 파편을 빨아들인 봉인의 룬에서 빛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내게는 마치 남은 의지가 저항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꿈속에서의 시간 내내 95%가 넘는 시르카의 존재를 길드여 놓은 봉인의 룬에, 뺏기다 만 파편 따위가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따안──!

봉인의 룬의 녹색 빛이 점멸을 멈추더니, 이내 은은한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해냈다.

“시르카, 넌 내꺼야!!!”

나는 봉인의 룬을 높이 들어올렸다. 과정은 비록 순탄치 않았으나, 이 좆같은 장미관 사태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이득을 얻어냈다.

신난다─! 상급몽마 시르카를 붙잡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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