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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00화 (100/266)

〈 100화 〉 두번째 후일담

* * *

루비루스 트리스티기온 학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보고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보고서의 내용이 나쁜 소식이라서? 그건 아니었다. 따지자면 나쁜 소식이라기보다는 좋은 소식, 그 중에서도 기뻐해야 할 소식에 가까웠다.

보고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3일 전, 장미관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간략한 내용과, 관계자 들에게 사건에 대해서 들은 진술들이 간략하게 요약되어 적혀져있었다.

“..정말, 이 보고서가 사실이란 말입니까?”

“네, 지금 융합강령술 강의를 맡은 카르네드 교수와 마족봉인술 강의를 맡은 오클리에 교수가 현장에 나가 확인한 사실입니다. 현장에서 발견 된 마물의 시체와 강령술의 흔적, 장미관 전체에 남아있는 마기만 봐도 확실하다고 합니다.”

끄으응, 그 말에 루비루스 학장은 더욱 미간을 찡그리며 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이 보고서의 말대로라면, 마왕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인재를 이끄는 이 아카데미 내부에서 마왕의 권속의 추종자가 나타났다는 소리다. 이는 아카데미의 평판 이전에 안전에 대한 중요한 사안이었다.

게다가, 보고서에 적힌 해당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고 해결한 인물들의 이름은 학장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들 뿐이었다.

“이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여 해결한 학생들이...”

“예, 지난번 마왕군의 간자 사건을 해결한 아르틴 루드비히 학생을 주축으로 한, 세니아 리브스 교수님의 연금술 동아리 멤버들입니다.”

제국의 황녀 아그네스, 무신의 딸이자 수제자 샤오메이, 대마녀의 손녀 바이올렛까지, 심지어 장미관 사건이 해결되고 난 후지만 아카데미 사람들을 불러들인 것은 펠카스 상단의 후계자 조르바였다.

하지만 그런 쟁쟁한 인물들을 제치고 보고서의 선두에 이름을 올린 것은 아르틴 루드비히.

왕국의 지방에 위치한 보잘 것 없는 남작 가문의 삼남이며, 동시에 요즘 가장 유명한 학생이었다.

“우선, 큰 비극이 될 수 있는 사건이 초기에 진압된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만...”

보고서를 내려놓은 루비루스 학장이 싸늘한 목소리를 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건의 책임자인 몇몇 교수들은, 그 말투와 눈빛에 움찔 떨며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번 사건을 미연에 방지해야 했던 것은 학생들이 아니라 자신들이야 했으니까.

“만약 이 용기 있는 학생들이 실패했다면, 아니면 이 학생들도 이번 사건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지금쯤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겠군요.”

“며, 면목이 없습니다. 학장님.”

“저희도 설마, 아카데미 내부에 그런 모임이 있을 줄은...”

뻔하디 뻔한 거짓말에, 학장의 미간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책임을 져야 할 교수들의 가벼운 면책성 발언은, 누가 봐도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는 철저히 실력주의를 표방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카데미의 설립 이념은 마왕군을 상대하기 위한 인재 육성의 장. 이곳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 졸업하는 이들은 좋든 싫든 마왕군과의 전쟁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만약 실력도 없는 이가 고평가를 받는다면? 단순히 혼자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능력한 개인이 모이면 무능력한 집단이 되어 큰 사고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물론 이를 무마할 만큼 가문의 뒷배가 큰 녀석들은 자신의 재능에 고평가를 받고는 했다. 하지만 모든 범인들이 좋은 가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아카데미에 불만을 가지며, 자신들의 그룹을 가지게 된다.

육망성은 아카데미에 널린 그런 흔한 모임들 중 하나였다. 실력이, 가문이, 혹은 외모나 사교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도태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아카데미는 그들을 챙겨주지 않았다.

“이게 다 재능도 없는 녀석들이 반사회적인 이념을 지녀서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매년 하위 10%의 학생은 퇴출시키는 게 어떻습니까?”

“아예 학생들의 개인 모임을 금지시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 나잇대 녀석들이 몰려다녀봐야 별 이상한 곳에 힘만 쓰지 않습니까?”

보고서를 읽은 교수들이 학장의 눈치를 보며 의견을 하나 둘 씩 내기 시작했지만, 그 의견에 담긴 속뜻은 같았다.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알아서 처리하자는 뜻 일터.

‘...교육 기관인 아카데미가 어찌 이런 모습을 취하다니..’

루비루스 학장은 속으로 혀를 찼으나, 저들을 나무랄 수 없는 입장이었다. 결국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본인도 여태껏 입을 다물고 동조하지 않았는가.

동조하지 않는다면? 각 개개인의 재능에 맞춰 커리큘럼을 짜주자는 이야기는 매 년 막 부임한 뜻있는 교수들에게서 나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학장은 늘 고개를 젓고 그 의견을 취하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카데미의 예산은 한정적이고, 인력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도 마왕군의 전선에서 희생되는 인물들이 많다. 예산은 어떻게 충당하더라도 인력은 쉽게 충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결과가 학생들이 마왕군의 계략을 막아 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학장은 쓴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일단, 마왕에 대한 위험에 대해 특별 교육을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특별 교육은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것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이수하도록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속히 커리큘럼을 짜서 보고하도록 담당 교수에게 지시전달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주동자라고 나와 있는 렉스턴 와이즈 학생에 대해서는...”

“아, 렉스턴 학생은 마나를 폐하고 자퇴하여 가문에서 직접 유폐시키기로 했습니다.”

그 말에 몇몇 교수들은 의아함을 품었다. 아직 사건이 벌어진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벌써 징계가 확정되었단 말인가?

“와이즈 가문의 가주인 레오날드 와이즈 백작께서 오늘 아침 그리 하겠다 연락하셨습니다.”

“아...”

그 말에 교수들은 불만을 가질지언정 반박하지는 못했다. 와이즈 가문은 아카데미에 가장 많은 기부금을 보내는 대가문 중 하나였고, 영향력은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다른 대가문 출신의 학생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이는 좀 더 진중히 고려할 사안 같습니다만...”

오로지 학장만이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며, 방금 이야기를 꺼낸 왕국 출신의 귀족파 교수에게 물었다. 이번 사건은 그런 가벼운 징계로 넘어 가기에는, 너무나도 큰 문제였다.

“안 그래도, 레오날드 와이즈 백작께서 직접 아카데미에 찾아와, 관계자 학생들과 면담하여 사죄하겠다고 하시더군요.”

“...백작 본인이 말입니까?”

“자식을 잘못 키운 것은 부모의 책임이니, 스스로 직접 사과하는 것이 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학장은 침음성을 흘렸다. 왕국의 대귀족이 직접 학생들에게 사과를 한다니, 아카데미로써는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진실 된 사과일지는 루비루스 학장 본인도 알 수 없었다.

‘..마법만 공부할 때가 참 좋았는데 말이야, 이제는 어떠한 일에 한마디를 내뱉는 것도 이리 어렵다니.’

당사자의 체벌이 저렇게 되면 결국 나머지 불만을 잠재우는 것은 아카데미의 몫이었다.

골치 아픈 사실에 학장에 두통에 시달리고 있을 때, 옆에서 담담히 보고하던 비서가 추가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몇몇 교수님들이 불만을 표하고 있습니다.”

“불만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역시 개개인의 커리큘럼을 주도하고자 하는 젊고 깨어있는 교수들이 나선 것인가? 학장은 이 골치 아픈 일련의 사건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희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요 며칠 아르틴 학생이 수업에 나오지 않자, 아르틴 학생이 수업에 참가하도록 독려해 달라는 교수님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

아르틴 루드비히 학생은, 사건을 해결한 이후로 후유증이 깊다는 이유로 며칠 째 요양을 선언하고 수업에 불참하고 있었다.

당연히 아카데미 측에서는 2번이나 위험한 사건을 해결한 아르틴 학생을 귀빈 대우를 하여 최상의 서비스를 약속했으며, 실제로 현재 브론즈 클래스로 대우 받는 아르틴 학생을 실버 클래스, 최대는 골드 클래스까지 승급시킬 것이 논의 되고 있다.

그런데, 당장에 학생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실에 고마움과 부끄러움을 느껴도 모자랄 판에, 수업에 참석을 요구하라니?

“지금 그게 정말로 사실입니까?”

“몇몇 원로 교수님들은 아르틴 학생이 대학원생이 될 의향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하시더군요, 임시 조교라도 할 의향이 없냐면서 말이죠.”

“그런 건 본인들 스스로 물어 보라고 전달하세요! 학장이 자신들 심부름 꾼 인줄 안단 말입니까!”

루비루스 학장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자, 주변의 몇몇 교수들은 그 분노에 움찔했다.

실제로 이후 아르틴 학생에 대해 물어보려고 눈치를 보고 있던 차에, 학장이 소리를 지르자, 자신들이 먼저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인재가 부족해요 인재가...어찌 이리도 다들 이기적인지...”

학생들을 선도해야 할 어른들이 이리도 자신의 이익과 입지만을 생각하다니, 학장은 큰 한숨을 내쉬며 아르틴 루드비히를 떠올렸다.

‘...그 학생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요.’

일련의 사건들에서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마왕군의 간자와, 심지어 마왕군 간부와 맞서 싸운 찬란한 보석. 아카데미의 희망이 있다면 그 아이가 아닐까.

아르틴 학생을 위한 편의는 좀 더 늘려야겠다고 생각하며, 학장은 다시 사건의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이어나갔다.

**

그 시간, 아르틴은 무릎을 꿇고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르틴.”

“네...”

“오라버니.”

“네....”

차가운 아그네스와 샤오메이의 목소리에, 아르틴은 눈을 힐끔거리며 최대한 불쌍하고 처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두 여인은 그런 아르틴의 모습에도 단호한 태도로 팔짱을 끼고 서서 아르틴을 내려다 봤다.

“바이올렛 양을 구한 것은, 저희가 따로 말하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하니까.”

“네...”

“유니코르랑 관계를 맺은 것도... 저희가 이해 해줬잖아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유니코르도 진심으로 아르틴을 사랑한다고 주장했으니까.”

“네...”

“게다가, 3처4첩을 계속 아르틴에게 말했던 것도 저희니까...이해할 수 있었어요. 올가 양이랑 루시라는 여인이...온다고 해도, 네 2명 정도 아르틴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었으니까. 계산 내였거든요.”

“...올가랑 루시는 아직 만나지도 않았...죄송합니다..”

무어라 억울함을 항변하려던 아르틴은, 매섭게 자신을 노려보는 샤오메이의 위압감에 발언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릴리트에게서 느껴졌던 위압감도 이렇게 매섭지는 않았는데.

“후우...네, 여기까지는 저도 샤오메이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사건의 뒷수습을 위해 움직이느라 혼자 있었으니 심심하셨겠죠. 거기 까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고요.”

“...그..그게..”

“그런데 저 여자들은 도대체 뭔가요? 악마에, 마족에, 시온 이드리스 저 여자는 도대체 여기 왜 있는 건가요 아르틴?”

움찔!

아르틴의 뒤에서 같이 무릎을 꿇고 있던 알‘미라즈, 시르카, 그리고 시온은 아그네스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최대한 아래로 향했다.

“저기, 두 사람은 진정하고, 응? 아르틴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 그렇게 몰아붙이기 보다는 대화로 해결하자? 응?”

“그, 그렇다. 반려도 뭔가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 테니 진정하고 반려자의 의견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

옆에서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던 바이올렛과 유니코르가 아르틴을 감싸자, 아그네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틴이 홀로 쉬고 있는 사실이 염려되어, 학생회의 일을 마친 직후 아르틴이 머무르는 임시 숙소에 찾아온 아그네스가 본 풍경은 눈을 의심해야 했었다.

“그럼 설명해주시겠어요 아르틴?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어서, 몽마군주인 릴리트와 한바탕을 해놓고 서큐버스랑 바이올렛의 사역마인 악마와 알몸으로 있던 건지?”

“게다가, 어째서 병실에 있어야 할 기분 나쁜 여자가 오라버니 방에 숨어있던 건가요?”

“아니..그게...”

아르틴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마땅찮은 변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면 용서해 줄까?

‘조르바...! 카이엔...! 누구라도 좋으니까 나좀 도와줘..!’

아르틴은 참담한 표정으로 속으로 두 남자를 불렀지만, 조르바는 이 사태의 뒤처리로 가장 바쁜 사람이었고, 카이엔은...여인들에게 경계당해 찾아오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자신이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사실이 아르틴에게는 장미관을 돌파할 때 보다 더 두렵고 힘든 역경으로 느껴졌다.

“그게...그러니까....일단 알‘미라즈부터 설명하자면...장미관 당일 이야기부터 해야 하는데...”

“일어서지 말고 무릎 꿇고 이야기 하세요. 오라버니.”

다리가 저려서 자연스럽게 설명과 동시에 일어나던 아르틴은 다시 조용히 무릎을 꿇어야 했다.

‘너무 서럽다...’

하지만 아그네스와 샤오메이는 화가 단단히 난 듯 보였다. 그야, 마족과 뒹굴고 있는 아르틴의 모습을 봤으니 화가 안 날수가 없었겠지만...서러운 건 서러웠다. 3처4첩을 말했던 것은 두 사람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걸 따질 자신은 없던 아르틴은, 다시 얌전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게 그러니까..장미관의 결계를 깨고 난 후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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