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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03화 (103/266)

〈 103화 〉 두번째 후일담 ­ 시온 이드리스

* * *

창문을 타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시온의 움직임은 마치 뱀과 같아, 바닥에 착지하는 그 순간에도 아무런 소음도 내지 않고 창문을 닫아 자신이 들어온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흠냐암...당근 한 박스...더 주는 것이다...아르틴...”

그나마 나는 아주 미세한 소음도, 당장 거실에서 벌어지는 소란도 모르고 배를 긁으며 늘어지게 자고 있는 유니코르의 잠꼬대에 묻히고 있었다.

‘하! 금수답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도 모르는 거야?’

시온은 그런 유니코르의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유니콘이면 유니콘답게 계약자의 순결을 지켜야 할 터인데, 외간 여자들이 꼬이는 것을 막지는 못할지언정, 오히려 태평하게 자는 모습이라니.

‘네 년만 아니었어도, 아르틴 도련님에게 가장 먼저 봉사할 수 있는 것은...’

뿌득, 이를 작게 간 시온은 최대한 냉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저 유니콘을 처리하고 싶은 살기가 조금씩 샘솟았지만, 저 유니콘도 아르틴 도련님이 아끼는 존재. 자신이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휴우, 도련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잖아. 진정하자.’

간신히 냉정을 되찾은 시온은 거실을 향해 걸어갔다. 지금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순결을 위해 사랑도 받지 못하는 유니콘이 아니라, 성적으로 흥분한 도련님에게 은총을 받는 것 이였으니까.

“..아르티인...어딜 만지는 것 이냐아...으응...엉큼하구나..”

“....뭐?”

문을 열려는 그 순간, 유니코르가 내뱉은 잠꼬대에, 시온은 그 순간 억눌렀던 살기를 여과없이 뿜어내며 유니코르를 향해 뒤돌아봤다. 지금 저 유니콘이 뭐라 한 거지? 감히 도련님에게 음심을 품어?

“건방진 유니콘이 감히 무ㅅ”

시온이 날카롭게 말을 내뱉자, 갑자기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 직후, 마법에 당한 것처럼 시야가 암전되었다.

‘어라아...?’

*

“우리 가문은 대대로 제국을 위해 휘둘러지는 검, 너 또한 제국을 위해 휘둘러지는 검이 되어야 한다.”

이드리스 자작가에서 태어난 시온은, 어릴 적부터 저 말을 끝없이 듣고 자라야 했다.

마왕군이 깨어나기 수백 년 전부터 제국의 기사 가문 중 하나였던 이드리스 가문은, 불세출의 영웅은 배출해내지 못했지만 그런 영웅들을 보필한 기사들을 끝없이 배출해낸 명문 기사가문이었다.

제국의 제3기사단의 부장을 맡고 있는 시온의 아버지는 자신의 위치와 가문에 긍지를 지니고 있었으며, 1남 1녀의 자식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기대를 품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장남이자 후계자인 아들은 죽은 어미의 지병을 물려받은 탓에 어릴 때부터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기대는 올곧이 시온에게로 향하였다.

“다른 가문의 여인처럼 나약하게 클 생각은 버려라. 너는 이드리스 가문의 딸이다. 우리 가문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긍지 있는 기사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다보니 당연하게도 시온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검을 쥐어야 했다. 넉넉지 않은 가문의 사정 탓에 밤에는 스스로 상처에 약을 발라가며, 시온은 오로지 기사로써의 삶을 강요당했다.

물론 그런 삶에 시온의 의지는 없었다. 어린 시온은 검술 훈련보다 꽃꽂이와 바느질을 더 좋아했지만, 철이 들 무렵의 시온은 이런 삶에 순응하여 또래들 중 눈에 띄는 검의 재능을 지니게 되었다.

허나 시온은 아카데미에 가지 못했다. 극성인 아버지는 행정가가 된 장남을 대신해 시온이 하루라도 빨리 기사로써 가문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온은 15살의 어린 나이에 아카데미로 향하는 대신, 아버지의 인맥으로 황실 기사단의 견습 종자가 되었다. 이 선택에도 시온의 의지는 반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절의 시온은 묵묵히 검을 쥐고 휘둘렀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시온에게 가족애란, 자신에게 기대하는 아버지에게 보답하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

그 날은 오랜만에 주말의 휴일이었다. 시온은 집에 돌아가 얼마 전에 받은 종자들과의 검술 대련에서 1등을 하여 받은 상을 자랑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오! 드디어 왔구나 시온! 우리 이드리스 가문의 자랑! 나의 사랑스러운 장녀!”

“어머, 아버지가 웬일로 마중을 다..? 그리고 이 분은..?”

가문의 저택에 도착하자, 평소처럼 집무실에서 근엄하게 자신을 맞이하는 게 아닌, 들뜬 표정으로 마중을 나온 아버지의 모습에 시온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아버지의 옆에 같이 마중을 나온 사람은 난생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아, 이 분은 무려 널 스카우트하기 위해 찾아온 흑장미 기사단의 기사분이란다! 어서 인사드리렴!”

“안녕하십니까, 흑장미 기사단의 로만이라고 합니다.”

“어머, 기사단에서...저를 말인가요?”

흑장미 기사단? 난생 처음 듣는 이름에 시온은 고래를 갸웃거렸으나, 종자인 자신을 스카우트 하겠다는 말에는 시온도 들뜬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제국을 지탱하는 빛이 있다면 제국을 지탱하는 어둠도 있는 법, 저희 흑장미 기사단은 음지에서 제국을 위해 일하는 기사단입니다. 이드리스 경에게 훌륭한 따님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뭔가 위험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나쁜 남자 스타일의 남성, 자신을 소개하며 짓는 치명적인 미소. 시온에게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제국을 지탱하는 어둠? 대외에는 비밀리에 운영되는 기사단? 거기에 저런 미남이 자신을 훌륭하다고 평가해주다니? 15살인 시온에게는 기쁨에 혼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선택지였다.

“어떠냐! 너도 이제 슬슬 기사단에 속하여, 제국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잡는 것은? 이 아비도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구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세계의 전부와도 같았던 아버지가 기뻐했다. 시온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변변찮은 기사단에 속하는 것 보다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찾아가고 싶은 나이 15살이었다.

“좋습니다. 부디 제국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로만님!”

시온은 자신을 로만이라고 소개한 남자에게 경례를 하며, 태어나서 가장 크게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후로 이런 미소를 짓는 일은 두 번 다시는 없었다.

*

제국의 뒷면을 지탱하는 기사단은 여덟 개나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흑장미 기사단이 맡은 역할은, 요인 암살과 공작, 암살과 납치에 해당한다.

그에 속한 인물들은 첫 1년간, 스스로의 자아를 죽이고 오로지 제국을 위해 그 어떤 위험하고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 되도록 교육 받는다.

당연히, 개개인의 구성원에게 부여되는 인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온이 어린 나이에 뽑힌 이유? 이드리스 자작의 애국심이라면 딸의 변화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거란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 시온 이드리스는 없다. 너는 제국을 위해 존재한다. 알겠나?”

흑장미 기사단에서의 2년은, 시온에게는 끔찍한 상처이자 악몽 같은 세뇌의 나날이었다.

마족을 죽이는 법보다 사람을 암살하는 법을 배우고, 기척을 지우는 움직임을 몸에 익히고, 어떻게 사람을 고문하고 망가트리는지를 배우고, 오로지 충성을 바치도록 세뇌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시온은 다른 기사들처럼 완벽히 자신을 죽이지 못했다. 그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자신을 데려온 로만은 첫 1년간은 상냥하게 자신을 대했으나, 2년째가 되던 해에는 그 모습이 전혀 달라졌다. 시온이 인간의 마음을 버리게 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행사하였다.

그리고 그 수단의 절정은, 무작위로 납치한 무고한 제국의 백성들을 시온이 죽이도록 하는 ‘사람베기’였다.

“베십시오, 그렇지 못한다면 당신이 대신 죽던가.”

“하...하지만, 저들은 마왕의 협잡꾼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니잖아요!”

시온의 당혹성에 물든 외침에, 로만은 무표정한 얼굴로 벌벌 떨던 한 아이의 엄마를 베어 죽였다.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로만은 눈꺼풀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예, 저들이 죽는 것은 당신이 미숙하고 나약해서입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저들을 베고 흑장미 기사단의 일원이 되십시오. 아니면 제 손에 죽던가.”

...시온은 사람의 마음을 다 버리지 못했다. 그 말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정도로 초인적인 정신력도 없었다. 패닉에 빠진 시온은, 그 날 처음으로 범죄자가 아닌 사람을 죽였다.

막 결혼한 새댁 하나, 어린 남자아이 둘, 건장한 성인 남성 하나와 노부부. 그 모든 사람의 죽음을 시온은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마침내 시온은 망가졌다.

“보기 좋군요 시온. 이제부터 당신은 흑장미 기사단입니다.”

피투성이가 된 시온을, 로만은 웃으며 바라보며 기사단의 증표를 내밀었다. 눈이 풀린 시온이 증표를 받자, 제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그 피비린내는 증표가 아니라 시온 자신의 손에서 나는 냄새였다.

“이제부터 당신은 제국을 위해 온갖 더러운 일을 맡게 될 겁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모든 일은 오로지 제국이라는 정의를 위한 일이란 것을.”

로만은 어깨를 두드리며 그녀를 흑장미 기사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

그리고 3달 후, 마왕과 거래한 산적왕의 산적 떼를 일부러 잔인하게 몰살 시키게 한 흑장미 기사단은 시온을 불명예제대 시켰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국을 위해 오명을 뒤집어쓸 인물이 필요했고, 신입인 시온은 쓰다 버리기 좋은 비수였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제국 정보부의 명령이 아닌, 시온의 독단적인 광기로 이루어진 잔학무도한 행위였다. 모든 귀족과 기사들이 시온의 학살과 광기를 비난했다.

“어찌 이드리스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느냐! 내 옛정이 있어 가문의 호적에서 파지는 않겠다. 제국을 떠나거라! 가서 영영 돌아오지 말아라! 그것이 이 아비를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피투성이로 물든 시온이 찾은 유일한 안식처였던 자신의 가문, 자신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분노에 찬 얼굴로 자신을 추방시켰다.

가문을 위해, 제국을 위해 더러워진 시온은, 더 이상 갈 곳도 받아줄 사람도 없었다. 시온은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제국을 떠났다.

그 시절의 시온과 마주쳤던 사람들은 그녀의 눈이 마치 시체와 같았다고 말했다.

*

“누나, 괜찮아? 어디 아픈 거야?”

왕국의 어느 귀족의 파티. 어느 가문의 호위 용병으로 고용되어 참석한 시온은 테라스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꼬마가 자신에게 다가왔다. 금발머리에 또랑또랑한 눈동자가 아름다운 잘생긴 꼬마아이는, 시온의 얼굴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 무고한 아이를 벤 후로 아이를 멀리해 온 시온은 미간을 찡그리며 술잔을 쭉 들이켰다. 미치도록 독한 술에 정신을 잃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꺼져 꼬맹아, 나는 지금 기분이 무척 개같으니까.”

“기분이 개 같으면 좋은 거 아니야? 개는 무척 귀엽고 다정하잖아!”

활기찬 꼬맹이의 대답이 신경질이 거슬렸다. 마음 같아서는 테라스에서 꼬맹이를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시온은 최대한 신경을 껐다.

“누나는 어디에서 왔어? 아! 그 문장 공부했어! 로...롤랜드 남작가 맞지!”

“행커스 남작가다. 대답해줬으니 꺼져.”

“아! 맞다! 어제도 공부했는데 헷갈렸어! 정말이야! 그럼 누나는 행커스 남작가 사람이야?”

“아니, 난 제국 출신이야. 이제 진짜 꺼져. 머리 아프니까.”

실제로 앵앵거리는 꼬마 아이 특유의 고음이 시온에게는 너무 시끄러웠다. 머리가 지끈거려 미간을 손으로 주무르며 새 술이라도 받아와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아프면 안 돼! 열이 나는 거야? 아니면 누나도 나처럼 이빨이 흔들려서 뽑았어?”

그때, 말 많은 꼬맹이가 자신의 손을 잡자, 시온은 억눌렀던 짜증을 터트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자신을 걱정하는 그 눈이, 꼭 잡은 앙증맞은 손이, 너무나도 따뜻했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가문의 의사를 불러올게! 누나 잠깐 기다려!? 어디 가면 안 돼?”

“..자, 잠깐 꼬맹아!”

시온이 말릴 새도 없이, 금발의 꼬마아이는 의사를 부르러 사라졌다.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분명 더 귀찮아 질 것 같은 예감에, 시온은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의 손이 너무도 따스했다.

“...”

문뜩, 사람의 온기를 느낀 것이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고 시온은 생각했다. 17살의 시온에게, 그 온기는 떨쳐낼 수 없을 정도로 따뜻했다. 망가져버린 시온의 눈에 무심코 눈물이 흐를 정도로.

그것이 시온과 렉스턴의 첫 만남이었다.

*

시온은 여전히 뒤틀리고 상처 입은 상태였으나, 검술실력과 동시에 잠행술과 첩보기술을 알아본 와이스 백작에게 거둬져 렉스턴의 호위가 되었다. 겸사겸사 검술 가정교사도 맡게 되었다.

물론 사람을 가르쳐본 적이 없는 시온은 처음엔 어차피 몇 년 돈이나 벌 생각으로 있었다. 실제로 렉스턴에게는 검술의 재능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순수하고 밝은 렉스턴의 모습에 시온은 뒤틀린 애정이 솟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상냥한 태도에, 시온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허나, 늘 그랬듯이 이변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어느날 친구들과 놀러 나간 렉스턴이 울면서 들어오자, 시온은 화들짝 놀라 렉스턴에게 다가갔다.

“무, 무슨 일이신가요 렉스턴 도련님? 어디 맞기라도 하셨습니까?”

“흐에엥! 샤오메이가! 샤오메이가아!”

...아주 단순한 일이었다.

렉스턴은 늘 자신의 곁에 머무는 자신 대신, 또래이자 와이즈 가문과 거래하는 펠카스 상단의 대녀인 린 샤오메이라는 꼬맹이한테 반해버린 것이다.

문제는, 그 꼬맹이는 왕국의 대귀족 와이즈 가문의 후계자 대신, 렉스턴이 늘 데리고 다니던 묘하게 어른스럽던 하급 남작가의 붉은 머리의 꼬맹이를 더 좋아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렉스턴이 용기를 낸 고백을 단칼에 거절한 것이다.

“내가, 내가아 재수 없게 생겨서 싫데!! 흐에에엥!!”

“.......”

그리고 그 순간, 서서히 치유되던 시온의 정신이 뒤틀리며 꼬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니라 또래아이를 좋아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자신은 렉스턴 도련님을 모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히 거절하다니? 그것도 이 잘생기고 순진무구한 렉스턴 도련님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남작가의 꼬맹이를?

자신은 가질 수도 없는 행운을 보란 듯이 내버리는 태도에, 그리고 감히 자신이 모시는 도련님을 보란 듯이 엿 먹인 붉은 머리 꼬맹이를 향해, 시온의 뒤틀린 분노가 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흑장미 기사단에서 배운 주인을 위해 충성하는 법은 오직 한 가지 종류였다. 몇 년 전에 배운 기억을 떠올리며, 시온이 비릿하게 웃기 시작했다.

“...울지마세요 도련님. 제게 아주 좋은 생각이 있답니다?”

“히끅! 조, 좋은 생각? 그게 뭔데?”

“렉스턴 도련님이 그 꼬맹이보다 더 잘난 걸 보여주면, 그 꼬맹이가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알려주면 샤오메이 아가씨도 도련님을 좋아하지 않겠어요?”

“아, 아르틴을? 어떻게? 아르틴은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검술도 잘하는데?”

펑펑 운 탓에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가를 비비는 렉스턴을, 시온은 다정하게 웃으며 끌어안으며 토닥였다.

“걱정 마세요, 제가 다 방법이 있답니다. 도련님은 저만 믿으시면 되요. 알겠죠?”

갈색으로 물들어가던 시온의 눈동자가, 아주 오랜만에 금빛으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산적을 학살하던 때 이후로 빛을 잃었던 그 살기 어린 눈동자가 다시금 돌아온 것 이다.

“저는 오직 도련님 만을 위해 존재하니까요.”

**

“크, 큰일이구나! 정신을 차려 보거라 여기사!”

유니코르는 당황한 표정으로 주마등을 보고 있는 시온의 몸을 흔들며 치료하고 있었다.

고의는 아니었다. 단잠에 빠져 자던 중 각성 후 더욱 예민해진 감각에 걸린 살기를 느꼈고,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살기를 뿜은 대상을 향해 발차기를 먹였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진 사람이 시온이라는 것을 알자, 유니코르는 당혹감에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왜 본좌와 아르틴의 침실에 시온이 있단 말이더냐??’

일단 중요한 것은 시온의 상태였다. 너무 무방비하게 걷어차인 탓에, 신성력으로 치료를 하고 있음에도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수, 숨을 쉬지 않고 있지 않느냐?!”

“무슨 일이야 유니코르!?”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는데 숨을 쉬지 않자 유니코르의 당황이 절호조에 달할 무렵, 침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마침 잘 왔구나 아르틴! 시온이 숨을 쉬질...않...는..데..”

“시온? 시온이 왜 여기 있어?! 방금 벽 박살난 소리는 대체 뭔데?”

...아르틴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방금까지 섹스를 하던 아르틴은 정액과 애액으로 범벅이 된 발기한 자지를 대롱대롱 내보인 채 시온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유니코르의 시선도 그에 따라 짜게 식어가고 있었다.

“아르틴, 방금까지 거실에서 뭐했느냐?”

“...어?”

“지금 거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과, 이 여자냄새랑 향수냄새는 또 뭐냐?”

“어? 그게...그보다 시온! 정신차려봐! 숨을 안 쉬잖아?!”

아르틴은 다급하게 시온의 몸 위에 올라타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다. 유니코르는 뭐라 당장 따지고 싶었지만, 시온의 상태 때문에 끝나고 두고 보자고 눈을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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