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두번째 후일담 시온 이드리스#02(재업)
* * *
시온이 생각한 계획은 생각보다 간단한 계획이었다.
시온은 도련님과 아르틴, 그리고 공화 연방에서 온 두 꼬맹이가 노는 것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사람의 대화와 행동을 하나도 빠짐없이 관찰했다.
그 후에는 조금 ‘과장’을 넣어, 아르틴의 아버지인 루드비히 남작과 렉스턴의 아버지인 와이즈 백작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였다.
찰싹!
“이 못난 녀석! 감히 렉스턴 도련님께 무례하게 구는 것도 모자라 감히 밀치다니! 네 녀석은 루드비히 가문의 수치다 수치!”
처음으로 움직인 것은 아르틴 루드비히의 아버지, 루드비히 남작이었다. 남작은 아들이 행한 무례가 혹여나 가문에 피해가 될 것을 무서워하여, 사용인들과 와이즈 백작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아들을 엄히 벌했다.
“죄송합니다 백작 각하! 제 못난 아들이 감히 아드님을 욕보이고 말았습니다!”
“...그쯤 해두게, 아이들의 일이니 너무 엄히 가르치는 것도 좋지 않아.”
와이즈 백작은 그저 애들 간의 다툼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총명한 아들에 비해 너무나도 소심했던 루드비히 남작은 그런 모습에도 지레 겁을 먹었다.
“렉스턴 도련님! 앞으로 혹여나 제 아들이 조금이라도 무례하게 군 다면 제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아주 뼈에 사무치도록 엄히 벌하도록 하겠습니다!”
“ㄴ..네? 알겠습니다아..”
렉스턴은 그런 루드비히 남작의 태도에 당황스러워 했지만, 시온은 그런 렉스턴을 대신해 아르틴이 끼친 아주 작은 ‘무례’도 전부 루드비히 남작에게 전달하였다.
“또 렉스턴 도련님에게 무례하게 군 것이냐!”
“이 쓸모도 없는 녀석! 네가 가문을 망치려고 작정을 했구나!”
“변명은 듣기도 싫다! 내일 저녁까지 식사는 굶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엄격한 태도와 도를 넘은 매도에, 아르틴은 점점 자신감을 잃고 소극적이 되어갔다. 여기까지는 모두 계획대로 흘렀기에, 시온은 만족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고 했다.
허나, 시온의 계획에는 한 가지 큰 변수가 있었다.
“야 아르틴! 네 쿠키도 나한테 줘! 안 주면 너네 아버지한테 이를거야?”
순진한 렉스턴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순수하게 착했지만, 자신이 라이벌로 인식한 아르틴이 약한 모습을 보이자 순수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야, 아르틴. 오늘 검술 수련하느라 내 신발이 엉망인데, 저택에 가서 내 신발 좀 가져와.”
“얼간아, 가서 은화 몇 개 좀 챙겨 와봐. 아니 나중에 준다니까?”
머리가 커질수록 렉스턴의 괴롭힘의 강도는 심해졌다. 샤오메이와 조르바는 그 모습을 보고 막으려 했지만, 그 두 사람이 막으려 할수록 렉스턴의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다.
시온이 한 일? 아르틴이 반항하면 루드비히 가문에 그 사실을 알렸다. 렉스턴이 가끔 루드비히를 괴롭힐 것을 명하면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행했다.
15살이 되었을 때, 아르틴은 어렸을 때의 총명함을 잃고 모든 일에 소극적인 아이가 되었다. 그에 반해 렉스턴은 개화한 자신의 천재성과 더해 자신감을 얻고 주변에 칭찬을 받기 시작했다.
시온이 보기에는 그것이 올바른 자리였다. 자신을 상냥하게 대해준 렉스턴 도련님이 모두의 인정을 받는 모습에, 시온은 속으로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도련님이 아직까지는 자신을 여자로 보진 않지만, 언젠가는 자신에게 사랑을 내려주실 거라 믿으며, 시온은 여전히 묵묵히 렉스턴을 따르고 있었다.
*
시온은 어느 날 알아차리고 말았다. 요즘 들어 렉스턴 도련님이 자신을 피한다는 사실을.
도련님은 애써 아닌 척 하고 있지만, 시온 자신과 눈을 마주칠 때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도련님의 눈동자에 담긴 공포를 자각했다.
‘뭐지? 저번에 맨손으로 곰을 때려죽인 것 때문에 그런가? 아니면 감히 도련님을 연모한 하녀의 손가락을 꺾어 주의를 준 걸 알아차리신 건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상냥하게 바라보던 렉스턴의 시선에는 이제 그런 상냥함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시온의 정신을 더욱 짓누르고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시온은 모든 타인에게 관심을 끊었다. 자신이 정성을 다하면 도련님이 다시 봐 줄 거라는 생각에, 하녀들의 대화를 엿듣거나, 아르틴을 괴롭히거나, 검술을 수련하는 일은 전부 중지했다.
대신 자신의 과한 것처럼 느껴지는 근육을 줄이고, 여자답지 못한 손의 굳은살을 전부 뜯어냈으며, 렉스턴을 24시간 내내 보필하며 도련님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렉스턴은 더더욱 자신을 밀어냈다. 몰래 읽은 편지에서 자신을 떼어내 달라는 말에, 시온은 가슴이 찢어지는 실연의 고통을 속으로 참아야 했다.
그래도 시온은 참았다. 그저 렉스턴 도련님이 사춘기가 와서 그렇다고 믿으며, 언젠가 자신을 향해 상냥하게 웃어줄 거라 믿었다.
*
“─레기 같은 년, 넌 해고야! ──모도 없는 멍청한 년!”
결투의 날, 기절한 시온을 깨운 것은 자신의 몸을 걷어차는 렉스턴의 발길질이었다.
“도, 도련님.. 그만.. 왜... 그러시는...”
“닥쳐! 나가 죽어! 죽어! 죽어!!!”
언제나 아르틴을 바라보며 짓던, 악의에 찬 미소가 자신을 향할 때, 시온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고통을 느꼈다.
가문과, 기사단에 이어서,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어 줬던 그 상냥한 아이는, 어느새 자신을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에, 시온은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퍽─! 우득!
...그때, 자신을 구해준 것은, 시온이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었다.
“사람이 추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너를 위해 싸우다가 다친 사람을 괴롭혀?”
아르틴 루드비히, 자신이 괴롭히고 열락시킨 꼬맹이. 그 꼬맹이가 지금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이 시온에게는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렉스턴을 만인의 앞에서 때려눕힌 후 무대를 내려가기 전, 피투성이에 지친 몸으로 자신에게 다가와 손수건을 내밀었다.
“앞으로 저런 병신이랑 엮이지 말고 좋은 주인을 찾아. 알겠어?”
“....네?”
자신도 모르게 아르틴에게 존댓말을 해버렸지만, 아르틴은 그런 자신을 뒤로한 채 비틀거리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좋은 주인이라니? 시온은 그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손에 잡힌 손수건을 보며 한 가지는 떠올릴 수 있었다.
아버지도, 조국도, 주인에게 버림받았을 때, 자신을 대신해 분노해 준 사람은 아르틴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아르틴...도련님...”
그 날, 산산조각난 시온의 마음이 다시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아아..도련님..’
그 후로도 아르틴은 2번이나 자신을 구해줬다. 마왕군의 괴물에게 공격당했을 때, 위험한 자신을 위해 검을 뽑고 나선 아르틴의 모습에 시온은 고통조차 잊고 전율을 느꼈다.
거기에 자신의 실수로 렉스턴을 죽이지 못하고 장미관에 붙잡혔을 때, 정신을 차린 자신은 아르틴의 품에 안겨 있었다.
“이 멍청아, 위험하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
자신보다 훨씬 키 크고, 멍청하고, 쓸모도 없는 이 못난 여자를 내려다보며, 아르틴은 환하게 웃어주고 있었다.
‘도련님, 죄송해요. 도련님, 사랑해요. 도련님, 이 평생을 다 바쳐..도련님에게 속죄하고 싶어요..’
어째서 과거의 기억이 지나가는 지 시온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꿈속에서라도 아르틴의 품에 안겨있는 자신이 너무나도 행복하게 느껴졌다.
“아아..도련님...제 모든 걸 도련님에게 봉헌할게요..”
행복한 꿈속에 잠긴 시온은, 자신을 끌어안은 도련님의 목을 끌어안아 입술을 맞췄다. 이게 몽마들의 더러운 수작이라도 이제 아무런 상관없었다. 이 행복을 계속 느낄 수 있다면 꿈이라도 좋았으니까.
**
“읍?! 으브브브!?”
숨을 쉬지 않는 시온을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이어나가던 나는, 갑자기 내 입안을 음미하듯이 혀를 놀리는 낯선 혓바닥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시발?! 애는 인공호흡 하는데 갑자기 왜 혀를 밀어 넣어? 변태야?’
갑작스러운 딥키스에 놀란 내가 고개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어느새 내 목을 휘감은 시온의 팔이 나를 꽉 끌어안아 놔주지 않았다.
“아, 아르틴? 지금 뭐하는 것이냐! 지금 외간 여자랑 뒹군 것도 모자라, 본좌의 눈앞에서 바람을 피우는 것이냐!”
[아니, 그게 아니라 애가 갑자기 나한테 키스하면서 놔주질 않잖아!]
옆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시온을 전전긍긍하며 바라보던 유니코르는 갑작스러운 키스에 배신감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존나 억울했다.
“우웁! 츄으...우읍! 푸하! 왜 이렇게 힘이 쌔?!”
간신히 입술을 떼어낸 나는, 어느새 입에 잔뜩 묻은 시온의 타액을 손으로 닦아낸 후 시온을 들어 침대로 내던졌다.
“헤에...아르틴 도련님...”
“...저거 진짜 자는 게 맞느냐? 아니, 의식을 잃었다가 그대로 꿈을 꾸는 게 가능한 일이더냐?”
유니코르의 물음에 나는 답을 단번에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숨도 쉬지 않아 열심히 신성력으로 치료하며 살려놨더니, 갑자기 키스를 해오다가 꿀잠을 자는 시온의 모습은 내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단..건강한 것 같으니 제대로 치료한 게 아닐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유니코르는 이해 못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포기했는지 한숨을 내쉬고는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왜 옷을 벗고 있고, 다른 암컷의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느냐? 향수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어? 아니 그게..”
맞다. 계속 된 절정 때문에 기절한 알‘미라즈를 오나홀처럼 써서 박아대다가 갑자기 들린 벽 박살나는 소리에 알몸으로 뛰어왔지.
‘..뭐라고 변명해야 하지?’
문제는 변명할 거리가 없었다. 알몸에 향수 냄새에 정액 냄새까지 풀풀 풍겨놓고 이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변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샤오메이나 아그네스가 온 것이냐? 아니면 바이올렛?”
그때, 유니코르는 내 반응을 바라보더니 뭔가 한숨을 내쉬며 이해한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지?
“물론, 그대가 세 여인을 매우 아끼는 것은 이해한다. 본좌도 그대가 오직 나만을 사랑해 달라는 욕심은 부리지 않으마. 그러니 본좌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으니 너무 심려치 말거라.”
“어? 응? 그게 아니라...”
시발, 뭔가 단단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내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고 자신을 배려하느라 말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나?
...생각해보니 현실적으로 자기가 옆에서 자는데 바람을 피우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하는게 당연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해명하고 설명해야 하지?
“본좌가 잠시 자리를 비켜주마, 밥을 먹고 올 터이니 좋은 시간을 가지도록 하거라 반려자여...”
“아니, 잠깐만 유니코르! 그 쪽으로 나가면 안 돼!”
나는 뭔가 결심한 듯 아련한 목소리로 말하며 거실로 나가는 유니코르를 황급히 붙잡았다. 당장 거실에는 알‘미라즈가 알몸으로 소파로 만든 침대에 누워있으니, 들키면 대참사가 분명하다.
“..왜 그러느냐 아르틴? 이미 본좌 앞에서 아그네스랑 그렇고 그런 것도 하지 않았느냐?”
“아니, 그게 아니라...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설마! 3P를 원하는 것이냐? 아무리 본좌라도 그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단 말이다!”
“그게 아니라...아니 3P 분명 원하기는 하는데...”
다급하게 양팔로 자신의 가슴을 끌어안는 유니코르를 보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그 순간.
“스승님? 무슨 일인가요?”
알‘미라즈가 열린 문틈 사이로 상체를 내밀었다. 자연스럽게 내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나있는 구릿빛 가슴이 출렁이는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니, 유니코르. 잠깐 내 이야기 좀 들어봐?”
“아르틴?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자기 유니코르의 말투가 묘하게 짧아졌다. 새하얗게 물들어있던 머리카락도 점점 검게 변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유니코르..? 마, 말투가 많이 이상해 졌는데..?”
“그보다, 지금 당장 설명해줬으면 하는데?”
유니코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 차가운 시선에, 나는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는 옛 말이 진실이길 바라며자연스럽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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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코르한테 무릎을 꿇은 건 알겠어요. 근데 어쩌다가 3일내내 섹스파티를 벌인 건가요?"
샤오메이의 날 선 말에 내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자, 샤오메이는 시선을 돌려 유니코르를 바라봤다.
유니코르는 샤오메이의 그 눈빛에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시선을 바닥을 향해 돌렸다.
"그...원래는 본좌도 엄하게 아르틴을 꾸짖으려고 했다. 정말이다!"
"...원래는?"
"그게...말이다..."
침묵한 나를 대신해, 유니코르가 아그네스와 샤오메이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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