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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09화 (109/266)

〈 109화 〉 후일담의 후폭풍(수정)

* * *

“..렇게 해서, 3일 간 불건전한 이성교제를 즐기고 말았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나는 속으로 침을 삼키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

아그네스는 표정을 알 수 없는 무뚝뚝한 얼굴로,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하아.”

샤오메이는...복잡한 얼굴이었다. 내게 하렘을 가장 먼저 권했던 게 자신이어서 일까?

바이올렛은 나를 보며 소리 없이 입술로 기운 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나를 응원하는 그 상냥한 표정을 본 나는, 양심이 바늘로 쑤시는 것처럼 아파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차라리 크게 화를 냈다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내 잘못이 분명한 사안에 다들 화를 내지 않고 침묵하거나 도리어 나를 편드는 모습은 마음 편하지 않았다.

‘...내가 진짜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건지.’

다시 3일 간의 일을 되새겨보자,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미친 짓을 저질렀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알‘미라즈의 유혹? 시르카의 몽마섹스빔? 솔직히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릴리트의 유혹도 견뎌낸 내가, 그런 것을 이겨내지 못할 리가 없지, 참으려고 했으면 분명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너무 들떴었나봐, 3일 간 여자 4명을 끼고 무지성 섹스파티라니, 진짜 돌았나봐.’

아그네스도, 샤오메이도, 바이올렛도 모두 나를 위해서 나서서 관계자나 높은 분들을 만나서 해명하고 있었을 텐데, 나는 좀 느긋하게 쉬라고 3일을 줬더니 다른 여자랑...

게다가 유니코르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문제가 너무 컸다.

알‘미라즈는 바이올렛의 사역마다. 문제는, 정작 주인이자 내가 직접 고백한 바이올렛 하고는 아직 손잡고 입맞춤한 게 다라는 사실이다. 솔직히 바이올렛하고는 눈도 못 마주칠 것 같다.

시온은...설명할 것도 없다. 조르바랑 샤오메이에게 시온과 렉스턴은 용서할 수 없는 원수같은 존재다. 아까부터 샤오메이가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는 건 그 탓이 가장 클 터.

게다가 몽마 시르카는 나랑 유니코르를 죽이려고 했던 장본인이자 릴리트의 부하. 제국의 황녀의 약혼자가 마족을 사역마로 부리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마 북부교단과 제국이 뒤집히지 않을까.

‘와 시발...생각해보니 라인업 개 돌았네 진짜...나 미쳤나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으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생각이 많아지니 무지성 섹스파티의 후폭풍이 실로 체감되기 시작한다.

──물론 행복했다. 존나 행복했지. 하지만 그래도 역시 양심에 찔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런 생각없이 본능대로 사는 건 짐승이나 할 짓이 맞으니까.

“아르틴.”

“네! 네!!”

그때, 아그네스가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부르자, 나도 모르게 존댓말로 대답하고 말았다.

“솔직히 이번일이...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아요.”

아그네스는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 걸음걸이는 소설 속에 묘사되던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기품 있는 모습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그네스의 표정은 소설 속의 묘사와는 달랐다.

언제나 모든 이에게 당당하고 똑 부러지는 모습을 내보이며, 오직 주인공에게만 가끔 약한 말을 내보일 뿐 자신의 나약함을 마음 속 깊숙이 숨기는 고고한 제국의 황녀가.

‘...울고 있어.’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루비 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에, 슬픔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하렘을 아르틴에게 권한 것은, 다름 아닌 저니까 책임이 있다면 제게 있다고 생각해요.”

아그네스의 울먹이는 모습을 보자, 내 머리가 차갑게 식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마왕성으로 떠나던 4회차에, 분명 약속했을 텐데, 다시 만나면 아그네스가 슬퍼하는 일이 없도록, 평생 웃으면서 행복하게 만들어 줄 테니 나와 약혼해달라고 약속했었는데.

“그리고 저도 아르틴이 행복했다고 하니 너무 기뻐요. 저는 이번 생은 오로지 아르틴이 행복한 삶을 즐겼으면 좋겠는걸요.”

꼬옥, 아그네스가 무릎을 꿇고 있던 나를 들어 올려 껴안자, 내 품에 안긴 그녀의 온기의 따뜻함이 전해졌다.

“그러니까, 너무 기죽어서 주눅 들지 말고, 제가 사랑하는 아르틴은 언제나 가슴을 쭉 펴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아그네스.”

아그네스의 온기에 머뭇거리는 내게, 누군가 다가와 손을 잡아주었다.

“맞아, 아르틴은 언제나 멋진 나만의 왕자님이니까! 늘 멋있는 모습만 보여줬으면 좋겠는 걸?”

“바이올렛...”

바이올렛은 나를 보며, 늘 그랬던 것처럼 밝은 미소를 내게 보여줬다. 자신감을 잃고 주눅들어 있던 모습은 완전히 이겨낸 것처럼.

“...으! 정말! 이런 흐름이면 제가 계속 화내기도 그렇잖아요!”

아그네스와 바이올렛의 행동을 뒤에서 지켜보던 샤오메이가, 내 목을 옆에서 끌어안으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샤오메이..”

“미리 말해두지만, 아직 오라버니를 용서한 건 아니에요? 다른 여자를 저희보다 중요하게 여기면, 그때는 정말로 화낼 거에요.”

그 모습에,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이토록 사랑해주는 아이들이 있는데, 나는 몽마 섹스는 못 참지를 외치면서 다른 여자한테 홀리기나 하다니.

나란 남자는, 하렘을 이끌 우두머리로써 실격이나 다름없었다.

“미안해 애들아! 너희를 두고 내가 잠깐 미쳤었나봐..! 이제는 정신 차리고 하렘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 눈 돌아가지 않도록 정신 차릴게!”

“..억지로 그런 약속을 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희는 아르틴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 해도 행복하니까...”

“아니야! 약속할 게! 그리고 이번에도 사고를 쳤으니 무슨 벌이든 달게 받을게!”

감정에 북받쳐 오른 나는, 진심을 담아 외쳤다. 나를 이토록 사랑하는 여자들에게 용서받을 수만 있다면, 종교재판소의 고문 패키지도 다시 받을 각오가 되어있었으니까.

“..정말요?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다는 말, 사실인가요 오라버니?”

“응, 아르틴이 분명 뭐든지 하겠다고 했어! 그렇지 아르틴?”

“저는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아르틴이 꼭 그렇게 벌을 받고 싶으시다면...”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샤오메이가 나를 보며 히죽 웃고, 아그네스가 눈물을 닦아내더니 아주 상냥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심지어 방금 전까지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주던 바이올렛까지, 그런 두 사람의 속셈에 동조하듯이 싱글거리며 활짝 웃고 있었다.

“벌이라고 하면..역시 그게 좋겠죠?”

“애, 애들아? 뭔가 흐름이 이상한데?”

“걱정마세요 오라버니, 저희가 설마 오라버니에게 나쁜 걸 시키겠어요?”

콕, 샤오메이가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누르더니 근육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몸이 너~무 피곤하면, 성욕도 줄어 든다고 하던데...후후후”

“샤, 샤오메이? 아그네스? 이게 무슨 소리야? 바이올렛?”

내 당혹스러운 외침에도, 물음에 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나 해서 황급히 유니코르나 다른 여인들을 바라봤지만, 녀석들은 혹시나 불똥이 튈까 내게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시온 마저 샤오메이에게 더 밉보였다가 하렘에서 쫓겨날 것이 두려웠는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걱정 마 아르틴, 딱 일주일 동안만 고생하자. 알았지?”

바이올렛의 상냥한 응원이, 지금은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

“그래서, 지금 하는 게 그 벌이라고?”

카이엔과 조르바는 조르바의 사용인들이 설치한 파라솔 아래에 앉아, 홍차를 홀짝이며 멀찍이 아르틴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 오라버니! 다섯 세트만 더! 다리에 힘을 꽉 주면서 체중은 주먹을 향해!”

“악!!!”

샤오메이의 지도에 따라,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아르틴. 야외 수련장의 뜨거운 햇볕에 땀이 한 가득이었지만 훈련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 맞아, 일주일 간 샤오메이랑 바이올렛, 그리고 아그네스 황녀님에게 돌아가면서 육체 훈련에 예법, 각종 지식까지 자는 시간 빼고 18시간 내내 배운다고 하더라.”

“그게 의미가 있어? 아르틴은 이미 아카데미 수준에서 배울 레벨이 아닐 텐데?”

“아르틴이 무술 배운다고 해놓고 한동안 연금술 하느라 바빴잖아? 샤오메이 녀석이 그거 때문에 잔뜩 토라져 있었다고. 예법은..전 회차에 황태자에게 지적당한 부분을 확실히 익혀둔다고 하던데.”

세 여인이 제시한 벌은 다름 아닌 일주일간의 특별과외였다.

일련의 사건에서, 아르틴이 겪은 위험과 그로 인한 회귀의 위험을 자각하던 이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아르틴의 자발적인 벌칙 선언에 제대로 훈련을 해주겠다며 나선 것.

“...그런데 사실상 데이트잖아, 저. 저게 무슨 무술을 가르치려는 모습이야!”

카이엔은 자신이 쥐고 있던 잔의 손잡이가 금이 가도록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아, 자아, 열심히 하면 가슴에 얼굴 파묻기 10초에요 오라버니?”

“아악!!! 아악!!!!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할게!!!”

샤오메이의 가문에서 보내준 수련용 제압구를 온몸에 달고 겨우 걷던 아르틴은, 등 뒤에서 샤오메이가 풍만한 가슴을 짓누르며 응원하자, 악에 찬 모습으로 전력을 내고 있던 것이다.

“뭐, 다른 두 사람도 다를 것 없지만. 여하간 다들 아르틴에게 너무 약하단 말야.”

“....나는 접근도 못하게 막으면서, 저 여자 셋은 아르틴을 얼마나 타락하게 하려고...”

카이엔이 죽은 눈으로 샤오메이와 아르틴을 노려보자 조르바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홍차를 마셔 동요를 가라앉혔다.

솔직히 말해서 조르바도 카이엔이 꺼려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장미관에서 카이엔이 몽마에게 납치된 당시 꾼 꿈이 여자로 몸이 변해서 아르틴에게 범해지는 소망, 즉 TS암컷타락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후.

아르틴의 하렘은 카이엔에게서 아르틴을 떨어트리며, 최대한 거리를 떨어트리며 경계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는 것이다.

‘..아르틴도 참 무르다니까. 이런 변...아니, 이상성욕인 녀석을 챙겨 달라니.’

조르바도 명실상부한 이성애자, 그렇기에 그런 취향인 카이엔이 영 껄끄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카이엔을 데리고 다니며 챙기는 것을 자처한 것은 아르틴의 부탁 때문이었다.

­“부탁할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 무리에서 왕따나 괴롭힘이 있는 건 내가 못 참겠거든.”­

‘카이엔이 그런 취급을 당한다는 걸 알자마자 챙겨달라고 부탁하다니, 녀석도 매정하지 못한 면이 있단 말이지.’

그렇게 속으로 평하면서도, 조르바는 자신도 모르게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의 쿠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 마침, 아르틴을 향해 눈을 이글거리며 쿠키를 향해 손을 뻗던 카이엔과 손이 맞닿고 말았다.

흠칫!

“아, 미, 미안해 조르바.”

“아, 아니야 카이엔. 나도 아르틴을 보느라 한눈을 팔았군.”

카이엔과 손이 닿자 소스라치게 놀란 조르바는 애써 괜찮은 표정을 지었지만, 카이엔은 그런 조르바의 태도에 조금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 홍차 더 필요해 카이엔?”

“아..부탁할게, 조르바.”

...아르틴이 간과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원작에서는 아르틴의 복수를 한 덕분에 두 사람은 무척이나 친했지만, 아르틴이 살아있는 분기에서는 두 사람이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늘 아르틴이 카이엔을 무리에 끼며, 당연히 친할거라고 생각한 탓에 눈치 채지 못했을 뿐, 눈치가 빠른 조르바는 아르틴을 가끔 암컷의 눈으로 바라보는 카이엔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호륵.”

“자, 스콘이나 쿠키도 먹으라고. 그..조금 있다 여자들이랑 놀러 갈 건데, 카이엔 너도 생각 있어?”

“...아니, 권해줘선 고맙지만 미안해. 그런 쪽에는 흥미가 없어서.”

물론 카이엔도 조르바가 꺼려지기는 마찬가지, 늘 여자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며 여색을 즐기고 아카데미 최고 인싸 중 한 명답게 부담스러운 조르바는 기본적으로 조용한 성격인 카이엔에게는 너무 밝은 남자였다.

“아..그런가. 어쩔 수 없지.”

“...미안.”

그 직후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카이엔은 사람이 불편해도 자리를 피하지 않는 착한 녀석이었고, 조르바는 아르틴에게 부탁을 받아 카이엔을 돌봐줘야 했다.

“...오, 아르틴이 결국 제대로 한세트 끝냈나 보군.”

“...또 스킨쉽을! 아르틴에게 그만 좀 붙어...!”

“...”

결국, 양쪽 다 거부하지 못하는 불편한 친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녀석이 좀 껄끄럽기는 해도, 나는 모두가 즐거운 편이 좋다고 생각하거든"­

아니었다. 아르틴이 만든 것은 모두가 불편한 세계의 완성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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