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10화 (110/266)

〈 110화 〉 두번째 후일담 마무리(수정)

* * *

일주일간의 특별과외가 진행되던 어느 날.

아르틴이 지쳐 잠든 밤을 틈타, 세 여인은 골드 클래스의 살롱에 모여서 비밀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아르틴에게 먹일 영약이 내일 쯤 완성될 것 같아!”

“저도, 다음 주면 본가에서 보낸 사범이 도착할 것 같네요.”

들뜬 표정의 바이올렛과 즐거운 표정의 샤오메이,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내색은 안하지만 근래 들어 행복한 아그네스는 즐거운 마음으로 모임을 보내고 있었다.

“이번 특별과외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 인 것 같아요 황녀님! 아르틴 오라버니랑 매일 6시간 동안 같이 보낼 수 있다니!”

“응, 나도 처음 들었을 때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아르틴하고 매일 같이 있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한 거 있지?”

“다 여러분이 제 계획에 잘 따라준 덕분이죠. 아르틴도 군말 없이 과외에 잘 참여하고 있고 말이죠.”

사실 특별과외라고 해봤자 아르틴이 세 사람에게 배울 것은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샤오메이에게 무술을 배우는 것이 가장 충실한 수업일 뿐.

제국 검술도, 예법도, 마법도, 지식도 각 회차 내내 지겹도록 파던 아르틴에게는 디테일의 차이일 뿐 매일 같이 몰두하며 배워야 할 것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벌이라고 생각했던 특별과외는 첫 날부터 사실 상의 세 여인과의 1:1 데이트로 이어지자, 내심 긴장했던 아르틴도 행복하게 과외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수고가 많은 건 제대로 된 트레이닝을 맡고 있는 샤오메이죠.”

“맞아, 우리는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지만, 샤오메이는 진짜로 무술 가르치고 몸 만들어 주느라 바쁘잖아?”

샤오메이는 그 말에, 염려치 말라는 듯 비릿한 웃음을 작게 지었다.

“말했잖아요? 저는 오라버니를 아직 용서한 게 아니라고? 데이트도 하고 잔뜩 굴릴 수도 있고, 공화연방 말로 꿩먹고 알먹기 아니겠어요?”

안 그래도 일련의 사건 속에서 샤오메이는 조금 자존심이 상한 상태였다.

장미관에서 아르틴은 릴리트나 시르카와의 싸움에서 몸에 익은 제국검술과 왕국의 전투법, 거기에 마법과 성법까지 썼지만, 정작 자신에게 배운 무술은 제대로 익히지 않았다면서 사용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여기서 가장 강한 건 바로 저 샤오메이! 그런데 이번 회차에서는 무술가를 자처한 오라버니가 무술을 안 쓰다니! 제 자존심을 긁는 일이라고요!”

그래서 이번 특별과외를 아그네스가 몰래 전음으로 전했을 때, 가장 먼저 격렬하게 동의한 것은 바로 샤오메이였다.

수인 특유의 외향적인 일을 좋아하는 성향이 더해져, 샤오메이는 오붓하게 데이트 하는 것만큼이나 땀을 잔뜩 흘리며 몸을 움직이는 수련 데이트도 좋아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걸로 오라버니도 한동안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릴 틈도 없을 거고! 유니코르도 마기를 다루는 법을 배운다고 바쁘니 최고 아니겠어요?”

“알‘미라즈도 간간히 같이 데이트를 즐기니까 너무 좋아하더라고! 저번에는 셋이서 같이 그림도 그렸는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또 사역마랑 같이 보내다니, 바이올렛 양 당신은 도대체..’

아그네스는 들뜬 얼굴로 아르틴과의 데이트를 자랑하는 바이올렛을 보자, 복잡한 기분이 들고 있었다.

사실, 지금 일련의 상황에서 가장 억울하거나 화를 내야 할 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이올렛이라는 사실을 아그네스는 알고 있었다.

샤오메이는 기억을 되찾자마자 아르틴을 독점하기 위해 강제로 범하려던 과거가 있었고, 자신은 누구보다 먼저 아르틴에게 정식으로 고백해 첫 여자이자 첫 연인이라는 위치를 얻었다.

하지만 바이올렛은? 현재 아르틴과 엮인 여인 중, 가장 순결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바이올렛뿐 이었다.

하물며 저 유니코르가 아르틴에 의해 연인이 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아르틴과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는 바이올렛은 아그네스가 가장 대하기 어려운 존재가 된 것이다.

더욱 곤란한 것은, 장미관 사건 이후로 자신감을 되찾은 바이올렛은 전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했기에 그녀의 심경을 유추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그런 와중에, 금쪽같은 6시간을 다른 하렘의 여인을 위해 할애하다니...성녀라는 칭호는 바이올렛에게 어울리는 게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랑 또 키스를..꺄악! 너무 좋았던 거 있지?”

봐라, 지금도 키스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이야기를 듣던 샤오메이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저랑 샤오메이는 데이트 시간에 아르틴하고 관계도 맺고 있는데 말이죠...’

한 편으로는 그런 바이올렛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자신도 원래는 아르틴과 그런 퓨어한 사랑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아니, 사실 요즘도 손만 잡아도 두근두근 가슴이 뛰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바이올렛과 같은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역시, 그 두근거림은 착각이 아니었지.’

첫 성행위를 하던 날, 아그네스는 그 날 느낀 새로운 감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쳐 기절한 자신 몰래, 아르틴과 샤오메이가 격렬하게 성행위를 하던 것을 몰래 지켜보면서 느낀 배덕감을,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금지된 욕망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평생을 북부교단에서 강조하는 순결과 미덕을 지키며 살아온 아그네스에게, 그것은 너무 강렬한 쾌락을 동반한 감정이었다.

그 날 이후로 그 감정을 조금이라도 되살려보기 위해, 아그네스는 일부러 샤오메이를 끌어들여 3P를 해보기도 했지만 뭔가가 부족했다.

그런데, 자신이 열심히 아르틴을 위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을 때, 아르틴은 광란의 섹스파티를 즐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낀 그 어두운 배덕감에 아그네스는 작은 환희를 느꼈다.

‘..정신 차려야 해요. 아르틴을 제 변태적인 취미에 끌어들여서는 안 되니까요!’

어쩌면, 하렘을 허가해준 것이 그런 자신의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아그네스는 스스로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혹여나 자신의 개인적인 변태적 성취향 때문에 아르틴을 좌지우지 하려 든다면, 분명 점점 더 강렬한 자극을 원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그래도 아르틴도 이제 하렘을 최대한 늘리지 않겠다고 했으니, 두 사람도 만족할만한 결말 맞지?”

“시온 그 망할 여자가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4처 4첩으로 막을 수 있다면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유니코르의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은 유니코르도 하렘에서 처로 인정하여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사실 비슷한 처지였던 유니코르에 공감한 바이올렛이 눈물을 펑펑 흘리며 추진한 덕이 가장 크기는 했지만.

가만히 내버려두면 얼마나 하렘을 키울지 몰랐기에, 샤오메이는 이 정도면 최선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그네스는 그런 화목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

“아뇨, 상황이 그렇게 낙관적이지는 않아요. 저희도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으니까요.”

“..마음의 준비라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바이올렛의 물음에, 아그네스는 품 안에서 편지 한 통을 꺼냈다.

사실 아그네스가 이번 모임을 모은 것은 이 편지를 공유하기 위함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건..뭔가요 황녀님?”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하얀 낙인...잠깐, 설마?”

“네, 맞아요. 역시 바이올렛 양은 알아채셨군요.”

아그네스는 아직까지 눈치 채지 못한 샤오메이를 위해, 편지 봉투 위에 찍힌 하얀 낙인을 가리켰다.

그 낙인에 찍힌 문양은 북부교단을 상징하는 십자모양이었다.

“학생회에서도 저랑 마리안느, 그리고 학생회장님만 아는 사실이지만..요 근래 북부교단 내부에서 거대한 숙청이 벌어졌어요.”

“...숙청이라면, 혹시..”

북부교단과 숙청, 그리고 낙인에 찍힌 십자모양.

이쯤 되자 샤오메이도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챈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으며, 일찍 알아챈 바이올렛은 이미 표정이 어두워져 있었다.

“성녀 올가 비르투스를 중심으로 한 교단 내의 이단 척살. 네, 3회차 당시에 아르틴을 처형했던 숨은 이단인 검은 태양 교파를 전부 처형했다고 하네요.”

아그네스는 설명을 이어가며, 편지 봉투에서 편지를 한 장 꺼냈다.

그 편지에는 긴 이야기가 적혀있지 않았다. 오직 두 줄의 간단한 문장만이 적혀있을 뿐.

『집청소가 조금 길어져버렸네요, 이제 아르틴을 만나러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친애하는 암캐들에게, 성녀가­』

“올가 비르투스, 그 성녀가 아카데미로 올 것 같아요.”

그 말은, 세 여인을 주축으로한 안정된 하렘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

“살, 살려줘! 나는 차기 대주교라고! 살려주면! 네게 막대한 보화를..!!”

서걱!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뚱뚱한 남자는, 맞은편에서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던 남자의 손에 의해 순백의 사제복이 붉게 물들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신님을 져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일찍이 북부 교단의 성지이자 본산인 교황청에서의 살인은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나, 방금 교황청에서 주교를 베어낸 남자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이 짧게 기도문을 외웠다.

신을 위해 자신의 손을 더럽혀 피를 묻히는 존재, 그것이 북부 교단을 지탱하는 두 기둥 중 하나인 흑기사들의 소임이며 자신의 의무이기 때문에.

“어머, 역시 세르게이 경, 도망친 더러운 이단의 돼지를 확실히 처리하셨군요.”

그 때, 자신의 등 뒤에서 들리는 자애로운 여인의 목소리에 흑기사는 검을 납도한 후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갖췄다.

“첼레프스키라고 불러주십시오, 감히 제 이름이 성녀님의 입을 더럽힐까봐 두렵습니다.”

“너무 자신을 업신여기지 마세요 세르게이 경, 그대는 진정으로 여신님을 모시니 어찌 복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저벅, 저벅.

무릎을 꿇은 흑기사, 세르게이 첼레프스키를 일으켜 세운 여인이 그의 이마에 성호경을 긋자, 세르게이는 그제서야 딱딱하게 굳어있던 해골처럼 마른 얼굴의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이런 더러운 이단놈들과, 마왕에 홀린 사악한 이들이 넘치는 세상입니다. 저희 교단에는 세르게이 경 같은 신앙심 깊은 분들의 책무에 깊은 은혜를 느끼고 있답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이제 말씀하신 이단 놈들의 수뇌부는 거의 다 처리한 상태이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의 총수였던 보리스 타타르기르 대주교가 남아 있잖아요? 장벽으로 도망쳤으니 비루하게 죽거나 마왕의 하수인이 될 테지만.”

“제 불찰입니다. 이 죄는 일곱 번의 고행으로 제 몸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고행이라, 제 살을 파먹는 그런 자해 행위를 저 엉덩이 무거운 여신이 신경 쓸 리 없다고 여인은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은 신앙심을 잃은 지 오래지만, 이들에게 자신은 여전히 교단 내의 어둠을 뿌리 뽑은 위대한 선견자이며, 이 어두운 세계를 이끌어 줄 여신의 환생이자 화신과도 같은 존재인 성녀였으니까.

“그런 고통은 여신께서도 바라지 않으실 겁니다 세르게이 경. 그 대신 경에게 개인적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부탁이라니, 성녀님께서 제게 하실 부탁이 무엇입니까?”

성녀의 말에, 세르게이 첼레프스키는 당장 심장이라도 꺼낼 기세로 되물었다.

그런 세르게이의 태도에, 좋은 사냥개를 길들였다고 성녀는 속으로 자축하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세르게이 경은 아카데미의 교사를 맡기도 하셨죠? 이번 숙청이 끝나면 아카데미로 돌아가셔야 한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어린 학생들을 계도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만.”

“저도 이번에 아카데미로 갈까 합니다. 가시는 길에 저를 호위하여 주실 수 있으실까요 세르게이 경?”

“..성녀님이 아카데미에 가신단 말씀입니까? 어째서? 성녀님은 이미 교단의 누구보다 신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계신 분이 아니십니까?”

하, 그 잘난 여신의 말씀, 필요할 때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말씀을 떠올리며 성녀는 속으로 조소를 품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어둡고 힘든 시대를 구원해 줄, 두 용사를 만나야 하니까요.”

“용사라면, 일찍이 1달 전에 말씀하신 자들을 말하는 겁니까?”

성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신의 대리인, 마왕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용사 카이엔 실버소드.”

그 사사건건 자신을 방해한, 더럽고 추악한 동성애자 자식.

“그리고, 여신의 총애를 입으시는 분. 그리고...여신께서 이르시길, 제 반려가 될 존재.”

그리고 단 한 사람. 자신에게 사랑을 알려준 유일한 남자.

“아르틴 루드비히, 두 사람을 직접 만나러 가고자 합니다.”

달빛을 등진 성녀는, 피로 물든 복도에 서서 그 이름을 되뇌였다.

아르틴 루드비히, 내 사랑. 내 유일한 사랑.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가치 있는 단 한 사람.

“다른 간악한 이들이 그들을 더 이상 더럽히기 전에,제가 그들을 이끌어야 하니까요.”

성녀는 잠시 방황하고 있을 아르틴을 떠올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뜬 성녀가 미소 짓자, 세르게이는 피로 물든 바닥에 다시 한 번 무릎을 꿇었다.

그 날, 내부 청소가 끝난 북부교단의 실질적인 1인자 자리는 16살 밖에 안 된 성녀였던, 올가 비르투스가 차지하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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