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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14화 (114/266)

〈 114화 〉 학창생활 #01

* * *

낯선 천장이다.

‘확실히..2층 침대 바닥만 보다가 천장 보면서 일어나니까 좀 상쾌하네.’

나는 창문에서 비춰오는 태양빛이 눈을 찌르자 상쾌한 느낌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까지 정확하게 1분 전, 20년을 부지런하게 살지 않으면 죽는 삶을 살다보니 정말 미친 듯이 피곤한 게 아니라면 이 시간에 눈이 떠진다.

“그럼, 오늘도 체크해볼까.”

요즘 들어 매일 하루 일과의 시작은 놀랍게도──키를 재는 거였다.

“오늘도 0.2cm나 컸네. 확실히 영약 효과가 좋긴 좋아.”

장미관 사건이 끝난 후, 격렬한 전투는 내 연인들에게 맡긴 나는 피지컬을 만들기 위해 신체의 성장을 돕는 영약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2회차 때는 그런 것 없어도 문신이니 뭐니 더해서 꽤 듬직하게 키우기는 했지만..역시 성장기인 1학년에 영약까지 섭취해주는 게 효과가 최고다.

“근육도 꽤 붙었고..요즘은 머리카락도 잘 안빠지네.”

스트레스 받을 일 없이 행복 학창생활을 한 덕일까? 아니면 어디 심하게 다친 후유증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비오는 날 삭신이 안 쑤시는 신체라니, 정말 최고야.’

죽고 싶지 않아서 몸만 죽어라 굴린 1회차, 강해지려고 온갖 훈련은 다 찾아서 해본 2회차, 혼자서 빌런들 상대해야 했던 4회차는 몸이 성한 구석이 없었던 만큼, 지금 부상 없는 육체는 절호조라고 봐도 좋다.

‘거기에 이번에는 상점 덕에 엘릭서 같은 것도 필요하면 가져다 쓸 수 있고. 이번에는 정말 마왕 죽이는 거 아니야?’

김칫국부터 들이키는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정말 마왕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나를 몇 번이나 엿 먹였는지 모를 마왕새끼. 기회가 된다면 생존에 특화된 21세기형 가슴 큰 누님계 마왕이라고 해도 죽일 것 이다.

*

“밖이 묘하게 시끄럽네? 무슨 일이지?”

침실에 붙어있는 욕실에서 가볍게 씻고 나온 나는, 거실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져 머리도 다 말리지 못한 채 가운 차림으로 거실로 향했다.

“정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나요?”

“네, 당연히 정답은 제 의견이 아닌가요 황녀님?”

“아무리 두 사람이라고 해도, 이 부분은 양보하기 힘들어. 정답은 명확하잖아?”

‘..이게 무슨 일이야?’

놀랍게도, 아그네스와 샤오메이와 바이올렛이 나뉘어져 싸우고 있는 상황. 여태껏 세 사람이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본적이 없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본좌는 샤오메이의 지지를 철회한다! 오늘부터 지지관계를 벗어나 샤오메이와 본좌는 한 몸으로 일체한다! 해당 안건의 샤오메이에 대한 공격은 본좌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겠노라!”

“바이올렛 양, 아무리 계약자라고 해도 이번 의견은 동조하기 힘들군요! 황녀인 아그네스 양의 의견이야 말로 답인 것을!”

“하, 다들 눈이 삐었나요? 도련님에 대해 이토록 잘 아는 분이 바이올렛 양 한분이라니!”

게다가 시온과 유니코르, 알‘미라즈까지 각자 세 명의 편을 들며 옹호하는 모습에 나는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옆에서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시르카에게 다가갔다.

“어머, 주인님! 잘 주무셨나요? 안색이 좋지 않은데...역시 어제 일로 수면 부족인가요?”

“그..그런게 아니라..이게 무슨 일이야 시르카? 갑자기 아침부터 왜 싸우고 있어..?”

“아, 여섯 분이 싸우는 이유요? 주인님의 스타일링에 대해서 논의 하다가 30분 전부터 이렇게 싸우는 것 있죠?”

“...뭐?”

싸우는 이유가 내 스타일링 문제라고? 그것도 30분 동안 싸우고 있어?

“그게 도대체 무슨 정신 나간 소리야..?”

“그러니까..세분이 모여서 오늘의 일정에 대해 논의하다가..”

이야기는 조금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셋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어떤 스타일이 어울릴지에 대해서 말이 나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떤 옷을 입혀도 좋겠다고 떠들던 세 사람은, 역시 뭐니뭐니해도 귀여운 오라버니가 최고라는 샤오메이의 주장을 시작으로 점점 과열됐다고 한다.

“아그네스 황녀님은 와일드하고 남성미 넘치는 주인님이 최고라고 주장하셨고, 바이올렛님께서 아무리 그래도 지성미 넘치는 주인님이 가장 멋지다고 주장하면서 이야기가 점점 과열되었고..”

“그게 30분이나 진행 되면서, 다른 애들도 1명씩 추가로 참전하기 시작하면서 지금 이 상태라고?”

“네! 시온 경은 바이올렛 양을, 유니코르는 샤오메이 양을, 알‘미라즈는 아그네스 황녀님을 지지하고 있어요!”

아..조금 두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무지성 4P 섹스로도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던 평화로운 내 하렘의 첫 갈등이, 내 스타일에 관한 논의라니.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너라도 안 싸워줘서 다행이다.”

“저는 전부 괜찮거든요! 어느 쪽이든 주인님의 자지는 그대로 잖아요?”

이런 시발. 이 녀석이 가장 나쁜 케이스였잖아. 믿을 사람이 한 명이 없다니.

이런 상황에서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현실에,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앞으로 나서서 여섯 사람을 만류했다.

“애들아? 아침부터 그런 이상한 걸로 싸우지 말자...그런 것 보다 다 같이 아침 먹으러 갈까?”

“어멋, 아르틴..?”

“오라버니..”

한창 열이 올라 토론하던 여섯은, 내가 앞으로 나서서 말리자 하던 말을 멈추고 전원이 냉정을 되찾았는지 조용해졌다.

‘휴..다행이다. 내가 나서니 별 말 없이..’

“자 보세요! 이 아르틴 오라버니의 귀여운 얼굴! 안경 쓴 모습이나 듬직한 모습도 좋지만 이 풋풋한 귀여움이 최고라고요!”

순간 방심했던 나는 다짜고짜 샤오메이에게 끌어 안겨져, 녀석의 손길에 머리카락이 푹 내려지고 가운을 꽁꽁 싸맨 모습이 되었다.

“화, 확실히 귀엽기는 하지만..”

“끄응..저런 스승님 모습도 좋은 것 같긴 해요..”

애들아 뭘 수긍하는 거야, 그보다 그만 싸우라니까?

“정말, 샤오메이도 아직 부족하다니까? 잘 봐!”

그때, 샤오메이의 품에 안겨있던 나를 잡아당긴 바이올렛은, 시온에게 안경을 받아 끼우더니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정성껏 넘기며 마법사 특유의 단정한 외모로 만들었다.

“이 갸름한 가르마, 그리고 지금은 아직 풋풋한 데도 살짝 보이는 어른스러움과 지성미의 조합! 그리고 안경이 풍기는 차분한 섹시함까지! 아르틴은 지성미 스타일이 최고라니까?”

“으음...!! 확실히 안경이 오라버니에게 어울리기는 해요..”

“본좌도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긴 했다만...”

“저기, 애들아 이런 거 그만...”

“하지만, 아직 여러분이 야성미 넘치는 아르틴의 매력을 모르시니 그런 말을 하는 거에요.”

내가 애들을 다시 한 번 만류하려는 순간, 아그네스가 내 손을 꼬옥 잡아 끌더니 알‘미라즈가 손가락을 튕기자 생겨난 왁스와 빗으로 내 머리를 스타일링 하기 시작했다.

“자, 보세요. 이 아르틴의 와일드한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스타일, 여기에 머리카락을 적당히 길러서 컬을 주고 수염을 살짝 기르면 얼마나 믿음직한 인상일지!”

“도, 도련님이 저런 나쁜 남자 스타일도 되는 건가요..? 또 사랑에 빠질 것 같아..”

“읏..! 확실히 4회차 때 봤던 거친 스타일도 다시 보고 싶긴 한데..!!”

이 녀석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말을 들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럼 이 스타일은 어떨까요? 부드럽게 펌을 해서 상냥한 인상을..!”

“그것도 좋지만, 약간 위험한 느낌이 나는 흑막 같은 느낌도 괜찮을 텐데..”

오히려 나라는 교보재가 눈앞에 있으니, 의견을 주장하며 싸우는 것을 멈추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나에게 번갈아가며 입혀보며 좀 더 성숙한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싸우지 않는 게 어디인가. 나는 얌전히 그녀들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이 날은 아침 훈련도 땡땡이 치고 내 여인들을 위한 마네킹이 되었다.

“후후, 어느 쪽이든 참 좋은 것 같아요. 기사와 여악마나 사악한 마법사와 여제자 같은 것도...”

나는 그 난장판 속에서 어느새 어디서 난 건지 모르겠는 팝콘을 들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구경하던 시르카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

결국, 오늘의 스타일에 있어서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것은 바이올렛&시온의 안경 낀 아르틴이였다.

무슨 말이냐면, 나는 밤에 공부할 때 외에는 쓰지도 않던 안경을 강제로 쓰고 등교해야 했다는 소리다.

“다음에는 좀 더 오라버니에게 어울릴 것 같은 귀여운 포인트를 찾아야..!”

“본좌도 내일을 위해 아르틴에게 딱 맞는 패션을 찾아보도록 하마..!!”

“두 사람 제발 그만해. 아침부터 쓰러질 것 같아.”

“하하하! 아르틴 너도 참 고생이 많구나.”

바이올렛이나 아그네스와 헤어지고, 시온과 알‘미라즈, 시르카는 각자 자기 일을 하러 흩어진 지금, 교실을 향해 걷는 멤버는 나와 조르바, 그리고 샤오메이와 유니코르였다.

“조르바 너도 여자가 엄청 많지 않아? 이런 일을 자주 겪는 편 아니야?”

“나는 늘 같은 패션이잖아? 내 여인들은 이 호쾌한 조르바의 스타일을 좋아해준다고.”

조르바는 무척 재수없는 말투로 말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녀석의 말은 틀릴 것이 없었다.

같은 아카데미 생도복을 입어도, 늘 가슴근육이 드러나게 단추를 몇 개 푼다거나, 선글라스 쓰고 붉은 머리만 금발로 염색하면 금태양이 어울리는 이 시원시원한 미형 외모에 홀린 여자가 한 둘 이던가.

‘...솔직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 여자 뺏을 것 같이 생겼지.’

저래놓고 취향이 하렘일 뿐, 남의 여자에게는 수작 부리지 않는 게 철칙이라는 게 안 믿겨 진다. 최면어플 쓸 것 같이 생겼는데.

“뭔가 기분 나쁜 눈으로 보는 것 같은데 아르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조르바 형님, 하렘의 선배로써 주시는 꿀팁 하나하나가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가 조르바에게 굽신거리며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금 전까지 시끌벅쩍하던 교실이 잠시 고요해졌다.

“..안녕 아르틴! 오늘은 시간 딱 맞춰서 왔네?”

“오늘은 무슨 수업을 들을 거야 아르틴?”

하지만 그저 나를 경외시 하던 몇 주 전과는 달리, 같은 반의 학생들은 내게 인사하며 친한 목소리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글쎄, 일단 검술 수업이랑 원소학 개론은 들으러 갈 것 같은데..”

“행정의 기초는? 아니면 천문원리라도 좋으니까!”

“그건 나중에 들으려고, 미안 레이번.”

나는 그런 녀석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받아주며, 우리의 전용석인 제일 맨 뒷자리로가 자리에 앉았다.

“이제 오라버니도 인기가 많네요? 저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당연한 일이다! 유니콘의 계약자인 만큼 인기가 많은 것은 기정 사실 아니겠느냐?”

사실, 유니콘의 계약자가 문제가 아니라, 수업에 열심히 참가하기 시작하면서 조별과제나 합동 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더니 몇 명이 친하게 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녀석들이 친하게 다가오자 아카데미의 붉은 광인 칭호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조금 걱정하기는 했지만, 내 평판이 괜찮아 진건 우리반 한정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칭호는 그대로.

“안녕 파트너, 오늘은 아슬아슬했네?”

“아, 안녕하세요! 아르틴씨! 샤오메이씨! 조르바씨! 유니코르님!”

그때, 미리 와있던 카이엔이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하자, 녀석의 옆에 앉아있던 클레어가 엄청 공손하게 인사를 해왔다.

“클레어, 그러지 말고 말 편히 하라니까? 조르바가 물론 너 보다 2살이나 많기는 하지만, 카이엔의 친구니까 말 편히 해도 괜찮다고.”

“무슨 소리야 아르틴, 나는 모든 예쁜 아가씨가 말을 편히 해도 괜찮다고.”

“그..그럴까? 아르틴? 헤헤.”

내가 말을 편히 하라는 것 하나로 엄청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는 클레어를 보자, 조금 짠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같은 학년인데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우리를 어렵게 대해서? 아니면 나라는 존재를 뭔가 대단한 것처럼 바라봐서?

‘아니, 이 못난 녀석 때문이지.’

“...자, 내 옆에 앉아 파트너.”

은근슬쩍 내게 옆자리를 권하며, 힐끔힐끔 기대하는 눈으로 보는 카이엔을 보자 나는 조금 짜게 식을 수밖에 없었다.

저 귀엽고 상냥한 아이, 원작에서도 비중이 무척 높은 히로인이었는데, 클레어는 이 세계의 카이엔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늘 겉 돌고 있는 신세였다.

‘주인공이 처음으로 구해준 여자애, 짝사랑 하는 평민 여자아이, 거기에 성장하는 히로인, 무엇하나 빠질 것 없는 캐릭터성인데..’

“아, 자리 맡아 줘서 고마워요!”

“..아, 거기는 파트너 자리..”

“어라? 뭐라고요 카이엔?”

“..아니, 아무것도.”

녀석의 시선을 알아차린 샤오메이가 옆자리에 냉큼 앉아 나를 보호하자, 카이엔은 엄청 실망해서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바이올렛이랑 조르바보고 클레어 좀 챙겨달라고 언질 좀 줘야지.’

카이엔 녀석도 나름 클레어를 챙기는 것 같지만...솔직히 지난 4회차 동안 클레어가 원작에서 보여줬던 활약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하긴, 그렇게 나를 따라다니면서 방해했는데, 자기 히로인들을 챙겼을 리가 없지. 다른 카이엔 히로인들도 챙겨줘야 하나.

“본좌도 아르틴의 옆에 앉겠노라!”

“..그럼 내 옆에 앉겠다고 유니코르씨?”

“...조르바는 좀 그런데, 샤오메이여, 자리를 바꿔 주거라.”

한바탕 자리를 옮기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각자의 자리를 확정할 수 있었다.

드르륵!

“자자, 조용! 아침조회 시간이에요!”

세니아 선생님이 교실 안으로 걸어 들어오자, 시끄럽던 교실 내부의 분위기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아, 세니아 선생님은 장미관 사건 당시 납치당한 당사자로써 이런 저런 조사를 받았지만, 납치당한 직후 제물로 보관 당한게 전부라고 밝혀지자 얼마 안 지나서 바로 담임으로 복귀하셨다.

“확실히 아슬아슬했구나, 곧 바로 조회 시간이라니!”

“너희가 옷 스타일에 신경 쓴다고 시간 잡아먹어서 그렇잖아.”

“...나는 파트너의 귀여운 스타일이 좋은데.”

“네에~? 뭐라고 하셨슴까 카이엔~?”

“...아무것도.”

카이엔이 뭐라고 말하려다가 담당일진이 되어버린 샤오메이의 눈칫밥에 쭈글거리고 있을 때, 평소처럼 아침인사를 이어가던 세니아 선생님이 탁자를 탁, 내려쳤다.

“자, 그리고 오늘은 새로운 분을 소개드려야 할 것 같네! 다들 들어오는 사람에게 환영의 박수를 쳐주렴?”

“응? 지금 올 사람이 있나?”

뭐지? 이 시기에 여기 오는 사람?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데?

“또 빌런 아닐까요?”

“확실히 가능성은 있는데..인육형제 잡은 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벌써 빌런이 올 리...가..”

샤오메이랑 수군거리던 나는, 저벅 거리며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사람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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