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학창생활 #02
* * *
교실에 들어온 사람을 보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샤오메이도 나와 같은 심정인지 눈이 휘둥그레진 상태였다.
“학생 여러분 안녕하신가요? 여신님에게 기도는 열심히 올리고 있나요?”
이 활기찬 목소리, 저 자로 잰 듯 반듯한 사제복! 저 금발머리! 저 파란 눈깔!
‘저...사람이 도대체 지금 여기 왜 있는 거지?’
그때, 나는 활기차게 인사하던 녀석과 눈이 마주치자, 녀석은 내 마음도 모르는 지 힘차게 손을 흔들더니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교단의 명을 받아, 선배님인 세르게이 경의 부재시 여러분을 맡아드릴~그리고 신앙과 마법에 대한 이론을 가르쳐 줄, 토마스라고합니다!”
이 금발벽안의 미청년이 활기차게 칠판에 이름을 적어나가자, 주변의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작게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저기 봤어? 눈웃음 지을 때 귀여운 거?”
“정말..카이엔이나 조르바님을 보면서 익숙해 졌다고 생각했는데..활기찬 타입의 미청년이라니!”
“사제여도 저렇게 잘생겼으면 분명 애인이 있겠죠? 역시 차라도 한잔 하자고 하면 불경죄로 끌려 가버릴까요?”
저 꿈꾸는 발언들에,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저런 말은 절대 못할 텐데.
“표정이 왜 그래 아르틴? 아는 사람이야?”
“...알다마다, 3회차 때 아주 징할 정도로 같이 다녔으니까.”
토마스라는 이름의 사제는 많다. 하지만 저 녀석은 사제들 중 특별하다 못해 아주 중요하다.
천사박사 토마스, 현재 북부 교단에서 성녀인 올가 다음으로 신성력이 많은 사제이자, 교단의 누구보다 신성력을 잘 쓰는 저 젊은 천재 사제는 천사까지 지상에 강림시킬 정도로 뛰어나다.
“뭐야, 그러면 좋은 거 아니야?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왜 아직도 이름이 안 알려진 거야?”
“..그야, 교단에서도 진짜배기 미친놈 취급이니까.”
저 젊은 천재는 설정 상 20살인 7년 전만 해도 성녀와 더불어 여신이 내린 축복으로 여겨졌다. 그 미친 발언을 하기 전까지는.
“앞으로 세니아 선생님을 도와 여러분과 친하게 잘 지내며 즐거운 학창생활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혹시 학생들 중 질문 있으신 분 계신가요?”
“선생님! 애인이나 약혼자가 있으신가요?”
‘앗, 시발’
그때, 어느 용기 있는 여학생이 큰소리로 질문하자, 나는 좆됐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이 세계의 사제들은 기본적으로 결혼이 허가되어 있다. 저런 질문이야 할 수 있다, 하지만 저 녀석은...
“어머 애들아, 토마스 사제님께서 불편하실 질문은 삼가는 게..”
“...과연! 여러분의 나잇대는 분명 연애에 관심이 많을 시기입니다. 먼저 질문에 답하자면 저는 연인이 없습니다! 아직 첫사랑도 해보지 못했죠!”
그 말에, 몇몇 학생들은 풋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저 나이에 아직도 사랑 한 번 안 해봤냐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중에 저 푸른 눈동자에 광기가 번뜩이기 시작한 것을 본 건 아마 나랑 카이엔, 샤오메이 뿐이겠지.
“하지만 여러분, 사랑이란 고귀한 감정을 함부로 품는 것은 어떤가요? 여신님께서 인류에게 베푼 그런 숭고한 감정을, 섣불리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저 발정난 원숭이처럼 서로를 탐하는 것에 쓰면 되는 걸까요?”
“...네? 지금 무슨 원숭이라고..?”
청량하고 맑은 목소리,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말의 내용 때문일까, 세니아 선생님만 더듬더듬 되 물을 뿐 학생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경악하고 있었다.
“여러분의 음란한 두뇌에 새겨두자면, 한 번 순결을 잃는 것은 신의 전지전능함으로도 고칠 수 없습니다! 이미 부러진 검을 수리한다 한들, 아무리 새로 만든 검이 깨끗하고 단단해도 그것은 부러졌던 검이라는 오명이 계속해서 붙어있습니다! 처녀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쾅!! 녀석은 칠판을 주먹으로 강렬하게 두들기더니, 자신의 광기어린 열정을 숨기지도 않은 채 분필로 자신의 주장을 적어 가득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신께서 시간을 되돌려서, 아니면 육체를 새로이 만들어 줬다고 한들 여러분의 영혼에는 이미 한 번 더럽혀졌다는 사실 만큼은 변하지 않습니다! 육체가 아무리 깨끗한 들, 타인에게 애정을 품었던 마음이! 더럽혀진 영혼이 그대로라면 그건 비처녀! 걸레! 발정기의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 사제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학생들 앞이라고요!”
“학생들이기에 들어야 합니다! 처녀성이라는 것은 신께서 주신 유일무이한 절대적인 가치! 그런 것을 그저 알량한 암컷의 심장으로 더럽히는 것은 자신을 파는 창녀와 같은 행위! 신을 모독하는 어리석은 행위 그 자체 입니다!”
타닥 타닥! 녀석은 세니아 선생님의 만류조차 뿌리치고 열성적인 발언을 이어나가며 세 가지의 중요한 단어에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심! 오로지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순수한 사랑이라는 것에 있어서 타인을 한 번이라도 좋아한다면 탈락!!”
“기! 더럽혀지지 않은 지식과 정신! 음란한 것을 접하는 것으로 자신의 순수한 영혼을 더럽힌 적이 있다면 그것은 순백이 아니기에 탈락!!”
“체!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허락하는 아름다운 행위! 만약 조금이라도 부덕한 의도로 타인의 접촉을 허락했다면 탈락!!!”
“이 세 가지가 전부 만족되어야 비로소 심기체의 합일에 의한 완전한 처녀!! 여신님께서는 이러한 순수성이야 말로 세상의 미덕임을 알고 계시는 겁니다!!!”
‘시발 진짜 개 또라이 사제님...’
머리가 어질거렸다. 평상시에도 수많은 관점에서 신앙을 대해 과격한 주장을 하는 양반이었지만, 저 심기체 처녀론을 열성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한 탓에 토마스 사제는 주류에서 묻히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런 걸 주장하는 사제가 교단의 얼굴이 된다면, 교단을 후원하는 귀족들을 전부 음란하고 발정난 동물새끼들로 매도할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저 사제 제정신인 거냐 아르틴? 아카데미에서 저런 발언을?”
“네 눈엔 저게 정상으로 보여? 저런 주제에 천재라서 신학논쟁을 할 때 마다 말로 찍어 누르고, 천사를 강림 시킬 정도로 신앙심도 깊고 신성력도 많으니 못 건드리는 거지.”
참고로 나는 저 사제와 같이 다니면서 저 이론을 일주일에 5번 이상은 들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광기를 참고 같이 다닌 탓에 이런저런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 저 미친 소리를 견뎠냐고?
“...오오!!! 진리가 바로 여기에 있었는가! 본좌가 인정하니, 그대야 말로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현인이로다!”
왜긴 시발 2회차 내내 질리도록 들은 소리랑 똑같았으니까 그렇지.
내 옆에서 번쩍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하는 유니코르의 모습에, 두통이 밀려온 나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유니코르..너는 저 심기체처녀론에 의거하면 처녀가 아닌 것 아니야..?”
“걱정 말거라. 본좌는 그대에게만 몸을 허락하였기에 순애를 이룬 순결한 처녀이니라.”
아니 좀 조용히 하라는 소리였는데, 유니코르는 뭐가 잘난 건지 작게 중얼거리며 내게 윙크까지 해왔다.
그보다, 이 어질거리는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나? 내가 나서서 말려야 하나?
“학생들에게 이상한 사상을 주입하는 것은 거기까지 해두게, 토마스 사제.”
뚜벅. 뚜벅.
절도 있는 걸음소리가 교실문을 따라 들려오자, 현기증 날 것 같은 토마스의 연설을 듣던 학생들의 시선이 전부 방금 들어온 인물로 향했다.
“세르게이 첼레프스키 선생님! 언제 오셨나요?! 교단의 일이 바쁘시다고..?”
“오늘 막 배를 타고 이 토마스 사제와 돌아왔습니다. 제 후배가 좀 과격한 탓에 큰 실례를 끼쳤군요.”
“세르게이 경!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심기체 처녀론은 모든 학생들이 알아야 할...”
“조용.”
툭 하고 기품 있는 절제된 목소리에, 방금 까지 교실을 가득 채웠던 광기어린 열기는 사라지고 엄숙한 분위기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
“학생 여러분. 첫날 이후로 오랜만이니 만큼 다시 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북부교단의 성기사이자 여러분 1학년 B반의 담임을 맡은 세르게이 첼레프스키입니다.”
쿵! 하고 세르게이 선생이 칠판을 두들기자, 토마스가 적힌 글로 가득 차있던 칠판이 한순간에 말끔해졌다.
“하지만 제가 불충한 탓에 교단의 일과 담임의 일을 동시에 맡는 것이 여의치 않아, 학장님과 논의한 끝에 세니아 선생님을 보좌할 제 후배를 부담임으로 임명하기로 했습니다.”
“..으음, 본래라면 선생님이 담임을 맡는 게 맞겠지만, 선생님은 올해가 초임이다 보니 역시 경험이 있고 연륜이 있으신 세르게이 선생님이 담임을 계속 맡되, 토마스 사제님이 도와주시기로 하셨단다.”
조금 전 광기어린 연설을 듣기 전만 해도 싱글거리는 웃음을 짓던 세니아 선생님은, 토마스 사제를 힐끔거리며 조금 질린 표정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그럼, 첫 날부터 실례를 한 직후이지만...담임으로써, 일부 학생들과 상담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머 면담인가요? 저는 처음 듣는데..?”
“아~맞아요! 몇몇 학생 분들이 면담이 필요할 것 오늘 학장님에게 들어서 말이죠! 하하!”
갑자기 웬 면담이지? 설마 장미관 사건으로 그러나?
“...저 미치광이에 담임선생님까지..설마 오늘...?”
“..? 왜 그래 샤오메이?”
“잠깐만요 오라버니. 집중해야 할 것 같거든요?”
그 때 갑자기 옆에 조용히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던 샤오메이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하더니, 아주 미미하게 기를 퍼트리며 주변의 기척을 살피기 시작했다.
“분명 그 여자의 기척이...이 건물 내에는 없는...”
“오늘 면담은 카이엔 실버소드 학생과 아르틴 루드비히 학생을 진행할 테니, 두 학생은 앞으로 나와 저와 토마스 사제를 따라오도록.”
샤오메이가 뭐라 중얼거리는 사이, 세르게이 선생님은 나와 카이엔을 지목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복도를 향해 걸어 나갔다.
“어..나랑 카이엔이면, 역시 장미관 관련으로 부르는 거겠지?”
“그런 거 같은데, 1교시는 빠져야겠어?”
“너희가 다 증언해줬으니 그리 길지는 않겠지, 금방 다녀올게. 클레어만 좀 챙겨줘. 가자 카이엔!”
나랑 카이엔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직 교실을 나가지 않던 토마스 사제를 향해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본좌는 아르틴의 계약자인데, 같이 따라가도 되겠느냐!”
“아~유니콘님은...죄송합니다. 역시 프라이버시 관련에 있어서 상담은 1:1이 원칙이라!”
“저번에 세니아 선생님하고 상담할 때도 나 혼자 갔잖아? 유니코르는 샤오메이랑 조르바랑 같이 있어, 알겠지?”
“으음...아르틴이 없으면 심심하고 외로운 데..알겠노라.”
토마스 사제의 곤란하다는 표정에, 내가 유니코르를 잘 달래자 유니코르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도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이었으면 당근 케이크를 요구했을 텐데!
“...클레어, 다녀올게.”
“자, 잘 다녀와 카이엔! 나는 이분들..아니..그..교우 분들하고 같이 잘 있을게!”
클레어를 챙기는 카이엔을 데리고 교실을 나오자, 토마스 사제님이 문을 닫고 우리를 기다리던 세르게이 선생님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상담은 어떻게 하나요? 1:1 상당인데?”
“아, 안 그래도 카이엔 군은 세르게이 경께서! 아르틴님은 저와 상담하기로 정해놨답니다!”
흠, 벌써 누구랑 상담할지도 정해진 건가, 그래도 이 미친 사제랑은...
..그런데 방금 뭔가 이상했는데? 님?
“저기 방금 저를 아르틴 님이라고 부르지..”
“수다는 떨지 말도록, 복도에서 정숙하는 것이 규칙이다.”
내가 토마스 사제에게 질문하려고 하자, 세르게이 선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엄격한 목소리로 우리를 꾸짖어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음, 상담할 때 물어보면 되겠지.’
*
“카이엔 실버소드 군은 이쪽으로, 1번 상담실에서 상담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네, 그럼 다녀올게 파트너.”
교실동 5층에 도착하자, 세르게이 선생은 카이엔을 데리고 1번 상담실을 향해 걸어갔다.
“자~저희는 저기 5번 상담실이거든요! 따라오시겠어요?”
“네? 5번 상담실이요? 굳이? 2번부터 4번까지 전부 비어있는 것 같은데..”
“예약이 이미 되어있더라고요! 뭐 몇 걸음 더 걸으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복도 끝에 위치한 1번 상담실이랑 5번 상담실이라니, 뭔가 좀 수상하긴 했지만 나는 얌전히 토마스 사제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설마, 이 사제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하겠어? 이단 새끼들도 아니고.’
이 광신도인 천사박사 토마스가 이단에 심취해서 나를 공격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하늘에서 염소비가 떨어지는 게 더 빠르겠지.
나쁜 의미로도 좋은 의미로도 믿을 수 있는 사제니까, 설마 빌런화 할 리는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아니...악마랑 마족이랑 유니콘이랑 난교파티 벌인 걸 알면 죽이려고 들지도..?’
입조심 잘해야지. 그렇게 생각할 때 5번 상담실의 문을 열쇠로 열던 토마스는 갑자기 자신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앗!? 상담용 서류를 안 가져왔네요! 아르틴 학생! 미리 들어가서 기다려 주겠어요? 바로 교무실에서 가져올 테니까요!”
토마스 사제는 내가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그렇게 말하더니, 계단을 헐레벌떡 뛰어 내려가며 교무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시발 진짜 뭐 함정 이런 거 아니겠지?’
그 모습이 존나 수상했던 나는 뭔가 크게 미심쩍음을 느꼈지만, 역시 토마스 사제가 뒤통수를 칠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 뭘 숨기고 있는 거지?
드르륵.
“..뭔가 있나?”
5번 상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상담실 안을 살폈지만, 상담실의 안은 놀랍게도 수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테이블과 소파 2개, 필기구랑 창문...그 외 잡다한 것들이 있긴 했지만 역시 수상하진 않다.
“아무것도 없네, 괜히 긴장했나?”
나는 소파에 다가가면서도 주변을 열심히 살폈지만, 역시 뭔가 함정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아 조금 안심하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이러고 독연기가!”
라고 하는 척 나는 황급히 문을 돌아봤지만, 문틈에서 가스가 새어나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나?
“..뭐 좀 덤벙거리는 구석이 있기는 했으니, 진짜 실수인가?”
...
...
그러고 5분 정도 지나자, 나는 지루함에 소파에 늘어져서 앉아있었다.
“왜 이렇게 안와? 서류를 잃어버려서 혼나기라도 하나?”
교무실에서 뭘 가져오면 아무리 오래 걸려도 5분이 안 걸릴 텐데, 오다가 계단에서 굴렀나 생각하며 나는 천장 타일의 줄무늬 개수나 세고 있었다.
드륵! 탁! 딸칵!
그 때,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다소곳이 닫혔다.
‘...음? 딸칵?’
딸칵은 문 잠그는 소리인데? 뭐지?..정말 함정인가?
“토마스 사제님? 왜 이렇게 늦으신...”
나는 의심 안하는 척 마나 소드를 뽑아낼 마나를 손에 모으며, 천천히 등 뒤를 돌아보자, 누군가 내 목을 팔로 휘감기 시작했다.
“사제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설마 함정이 BL드리프트 함정이었나? 지적인 스타일로 꾸민 탓에 토마스 사제가 내게 연심이라도 품은 것인가?
그런 내 다급한 말에도,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은 사람은 달콤한 향유 냄새를 뿌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햐, 향유는 사제들이 향수 대신 쓰는 건데..설마 5분이 나를 꼬시기 위해서 치장하려고?!’
시발, 그 천사박사가 BL드리프트라니? 아니 좀 여성형 로맨스 판타지 웹툰의 서브 남주처럼 생기긴 했지만, 여성에 까다로웠던게...!?
나는 너무 소름이 돋아, 등골이 오싹해질 수밖에 없었다. 카이엔도 모자라 2번째 BL이라니.
“이거 안 놓으시면, 얼굴에 주먹 나갑니다. 진짜로 안면함몰 시킬지도 몰라요.”
“..쿠흐흐.”
웃어? 안면을 함몰시켜 주겠다는데 웃어? 설마 마조히스트까지 더해진 건가?
“진짜입니다! 셋 세고 주먹 나가요? 하나! 둘!”
사제를 죽이면 범죄자가 되겠지만,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사제를 때려눕히는 것은 정당방위일터, 나는 다급하게 숫자를 외치며 주먹에 마나와 내공을 동시에 모았다!
“정말, 서방님은 여전하군요. 장난을 치면 진지하게 놀라는 게 매력인거 알아요?”
그때, 내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천사박사 토마스 사제의 얇은 미청년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남자를 글러먹게 만들 것 같은 고혹적인 목소리...
‘그리고..나를 서방님으로 부르는 사람은..?’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장난을 좀 쳐봤는데..설마 삐진 건 아니죠, 서방님?”
“...오, 올가? 올가 비르투스 너 맞아?”
나는 차마 나를 향해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을 토마스 사제를 초근접거리에 마주칠 자신이 없어 돌리지 못했던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내 목을 끌어안은 주인을 확인했다.
“어머...바로 맞추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거예요? 조금 섭섭한데..그래도 만난 지 오래 지났으니까 한번만 봐줄게요, 서.방.님”
달콤한 향유냄새, 나긋거리면서도 고혹적인 목소리, 거기에 여신이 직접 빚어냈다고 전해지는 이 아름다운 용모. 비단결처럼 고운 찰랑이는 검은 생머리까지.
“...올가! 너도 날 기억하는 구나!”
내 기억 속의 순수하고 고결한 올가 비르투스 그대로의 모습에, 나는 감격하여 올가를 꼭 끌어안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