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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35화 (135/266)

〈 135화 〉 천국의 사정

* * *

──쾅!!

모니터를 향해 중지 손가락을 치켜세운 아르틴을 보며, 아크라엘은 두 주먹을 신경질적으로 내려쳤다.

“감히, 이 몸의 지휘를 무시하고 오히려 욕을 해...?”

감히 필멸자 주제에? 창조될 때부터 6급 천사인 능품천사로 창조되어 지금은 5급 천사인 역품천사가 된 자신을?

“진정 하세요 아크라엘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여신님의 명령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매뉴얼에는 이런 일이..!”

“닥쳐! 최하위 천사인 9급 천사주제에 내게 명령할 셈 이냐!”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제타엘이 황급히 아크라엘을 만류했으나, 미친 듯이 치솟는 분노로 주먹까지 파르르 떨리는 아크라엘에게는 오히려 신경에 거슬리는 말일 뿐이었다.

“좋아..! 아르틴 루드비히! 나는 네게 기회를 줬어! 네가 선택한 회귀, 악으로 깡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봐라!”

─위잉! 위잉!

아크라엘이 화면을 클릭하자, 세계의 회귀를 알리는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다.

회귀의 발동까지 앞으로 5분, 5분만 지나면 저 필멸자는 자신의 선택을 영원히 후회하리라!

“하하하하! 그런 멍청한 선택을 하니까 너희 같은 필멸자들을 우둔하다고 말하는 거라! 자신의 선택을 끝없이 곱씹어라 아르틴 루드비히!”

“...멈추십시오! 더 이상은 저도 말로만 권고하지 않겠습니다!”

완전히 맛이 간 듯한 아크라엘의 상태를 본 제타엘은, 결국 자신의 무기인 채찍을 들어올리며 2장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고작 2장의 날개, 게다가 길이도 자신의 팔보다도 짧은 얄팍한 날개를 보며 아크라엘은 웃음을 터트리며 지휘봉을 들었다.

“하하하! 감히 9급 천사 따위가 나를 막을 셈이냐? 너는 그럴 권한도 힘도 없다는 걸 모르는 거냐! 우둔한 실패자!”

“물론 제가 힘도 권한도 없을지는 모르지만, 당신 같은 천사를 보고도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각오하십시오!”

제타엘은 단호하게 외치며 채찍을 휘둘렀다.

자신이 날개가 4장인 역품천사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없었지만, 빈틈을 노려 회귀를 중단 시킨 후 시간을 벌수는 있으리라─!

허나, 그런 각오가 담긴 제타엘의 채찍은 신성력을 두르고 휘둘러진 아크라엘의 지휘봉의 충격파에 막히고 말았다.

─콰앙!

“크윽...!! 쿨럭!”

심지어 그 충격파에 의해 뒤로 밀려난 직후, 제타엘의 육신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기침과 함께 피를 바닥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고작 9급 천사가, 악마와의 대전쟁을 위해 창조된 능품천사 출신인 저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만하게 말한 아크라엘의 등 뒤로 4장의 날개가 펼쳐졌다. 크고 커다란 4장의 날개는 제타엘과 아크라엘의 힘의 차이를 눈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감히 상관이자 상위계급인 저를 공격한 죄,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어차피 아크라엘은 사사건건 자신의 판단을 방해하는 제타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제타엘이 자신을 공격한 것은 건방진 그녀를 처벌하기 가장 좋은 명분이 됐다.

지휘봉을 책상에 내려놓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진짜 무기인 검을 뽑으며, 아크라엘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상위계급의 천사는 하위계급의 천사에게 타락의 징조가 보일 경우, 그 자리에서 최대 처형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멍청한 당신이라도 알고 있을 테지요?”

그 말에 제타엘은 이를 악물었다. 아크라엘의 의도는 이 자리에서 자신을 처분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직속처분은 대전쟁 당시에나 행해지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 여신님께서 직접 명하신 일을 방해하는 당신이야 말로, 대전쟁을 일으킨 타락천사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이건 정의 집행입니다.”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아크라엘에게 채찍을 휘둘렀지만, 아크라엘은 채찍을 단번에 베어내며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서걱!

“크윽...! 채찍이!”

“여신님의 자비를 본받아, 마지막으로 권하겠습니다. 제게 반항하지 않고 제 방식을 따라 용사와 필멸자를 인도하세요. 그렇다면 처형은 하지 않도록 하죠.”

이내 제타엘의 채찍을 완전히 베어낸 아크라엘이 분한 표정을 짓는 제타엘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거절하겠습니다.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과 타협하는 법은 모르기에..!”

저 검에 베이면 자신은 정말 소멸할지도 몰랐지만, 제타엘은 각오를 다졌다.

설령 자신이 이 자리에서 소멸하더라도, 선배님이 회귀자를 도와주시리라..!

“마지막까지 멍청하기는, 그럼 안녕히!”

아크라엘이 검을 휘두르자, 제타엘은 눈을 질끈 감았다.

비록 자신은 이 자리에서 소멸하지만, 정의와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 마음은 꺾이지 않았음에 자부심을 느끼리라..!!

─우직끈!

그 직후, 각오를 다진 제타엘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자신을 베는 검의 차가운 감촉이 아니라, 무언가가 부러지는 둔탁한 감촉이었다.

“으아아악!!! 감히! 누구냐!!”

아크라엘은 어디선가 날아온 철퇴에 검을 놓친 후, 박살난 손을 황급히 재생하며 철퇴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 바알제불의 똥파리 같은 새끼가... 감히 내가 아끼는 후배 천사를 다치게 만들어?”

“─사르디엘님!”

파란 안광을 번뜩이며, 사르디엘은 자신의 철퇴를 다시 한 번 아크라엘을 향해 휘둘렀다.

‘도대체 뭐냐! 이 위력은?!’

아크라엘은 황급히 서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철퇴를 피했지만, 아크라엘 대신 벽을 박살낸 철퇴의 위력은 경악할 수준이었다. 저것이 같은 역품천사에게서 나올 수 있는 힘이란 말인가?

“감히, 고작해야 상태창이나 관리하던 천사가..!!”

아크라엘은 참을 수 없었다. 징계를 받아 집에서 근신하고 있어야 할 천사가 나타나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을 겁먹게 하다니.

그래서는 안 됐다. 자신은 악마와도 싸워본 전사였으며, 여신님께 인정받아 1계위를 승급한 엘리트였다!

당연히 상태창의 관리 임무도 자신이 지나칠 발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임무조차도 실패한 패배자들이, 자신에게 대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였다.

“나는 아크라엘! 악마를 베는 여신님의 검이자 여신님의 말씀을 따르는 역품천사! 감히 임무를 방해한 네년을 친히 벌하겠노라!”

아무리 힘이 무식하게 강해봤자 실전을 경험해보지 못한 천사에게 자신이 당할 리는 없으리라!

아크라엘은 자신이 모아온 힘의 전부를 해방하며 사르디엘을 향해 덤벼들었다!

“조잘조잘 시끄러워 이 똥파리 새끼야!!”

─콰앙!!!

아크라엘의 검이 휘둘러지기도 전에, 사르디엘의 철퇴가 번개와 같은 속도로 아크라엘의 등짝을 내려찍었다.

“크아아아악!!”

단 일격, 일격에 아크라엘은 자신의 전신이 소멸할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실제로 사르디엘은 이 한방으로 아크라엘을 친히 소멸시킬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제타엘! 움직일 수 있겠어? 있으면 당장 회귀 정지시켜!”

“아, 알겠습니다 사르디엘님!”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회귀를 멈추는 일이었다. 반쯤 박살난 사무실 안에서도 멀쩡한 컴퓨터를 제타엘이 달려가서 조작하자 회귀 작동을 알리던 알람 소리가 멈췄다.

“어..어떻게..역품천사가 이정도로 강할 수 있지..?”

사르디엘의 발밑에서 꿈틀거리던 아크라엘은 중얼거렸다. 감히 여신의 뜻을 대행하는 자신에게 대적한 패배자가 어떻게 이만큼 강할 수 있단 말인가?

“능품천사라고 했나? 요즘 6급 출신들은 상관도 못 알아보게 되어있나?”

사르디엘은 그 말에 조소하며 보란 듯이 자신의 날개를 다시 한 번 펼쳤다.

“...말도 안 돼..날개가?”

새하얀 정장 뒤로 펼쳐진 날개를 보고 반응한 것은 제타엘이었다.

평상시 사르디엘이 꼬장 부릴 때 뽐내던 적당한 크기의 날개만을 봐온 제타엘에게, 진심을 낸 사르디엘의 모습은 너무나도 낯선 모습이었다.

한 쌍의 날개를 펼친 것만으로도 마치 용의 날개처럼 커다란 크기를 뽐내는 사르디엘의 날개는 마치 대천사들의 날개처럼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

“..나, 날개가 6장이라니? 너..너는..역품천사 일...텐데..?”

거기에 날개는 4장이 아닌 6장이었다.

천국에서 6장의 날개를 지닌 존재들은 1%도 되지 않는, 상급 천사뿐이었기에 아크라엘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사고를 많이 쳐서 강등을 많이 당해서 그렇지, 본래는 2급 천사인 지품천사였다~ 이 말이야. 대전쟁 당시에 내가 부순 악마들의 뚝배기 수가 네 깃털 수 보다 많을 거다!”

아크라엘은 그 말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천사들을 지휘해 신의 적을 토벌하고, 천국을 수호한다는 지품천사가 저런 폐품이라니? 게다가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쳐야 2급 천사에서 5급 천사까지 강등을 당한단 말인가?

“원래는 날개를 꺼내기만 해도 징계라서 4장만 까고 다니는데.. 너 때문에 엄청 혼나겠다. 그치 아크라엘?”

“..다, 다가오지 마!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별거 아니야~아까 네가 자신 있게 말했잖아? 상급 천사는 자신에게 개긴 하급 천사를 친히 벌할 수 있다고 말야.”

아크라엘은 겁에 질려 뒤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전신이 박살난 듯한 충격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아크라엘이 사르디엘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뭐 하고 있어 제타엘?”

“네, 네?! 왜 그러십니까. 지품천사님?!”

“빨리 상태창 마무리 해야지, 우리 아르틴이 얼마나 가슴을 졸이고 있겠어?”

눈치가 빠른 제타엘은, 저 말이 고개 돌리고 못 본 척 하라는 뜻임을 깨달았다.

힐끔 아래를 바라보자, 바닥을 기는 아크라엘이 살려달라는 눈으로 자신을 애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관리자가 자리를 비웠으니, 제가 대신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제타엘! 뭐라는 거냐! 관리자는 여기에...아악?!”

제타엘이 고개를 돌리고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하자, 아크라엘은 악을 쓰며 소리쳤지만 이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르디엘이 아크라엘의 등에 발을 올린 채 한 쌍의 날개를 양손으로 꽉 움켜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자비로워서 말야. 막 누구를 소멸시키고 그런 야만적인 짓은 못하겠거든?”

“가..가..감사합니다..근데 날개는 왜..?”

“그런데, 처벌에는 처형만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계급의 강등도 지휘관의 권한 아니겠니?”

오싹. 충격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아크라엘은 저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분명 다음 순간 나쁜 일이 벌어질 거라는 직감이 들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사르디엘님! 한번만! 한번만 봐주신다면 사르디엘님의 명에 복종하겠습니다!!”

“그래? 이를 어쩌나, 나는 너같은 남자는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야!”

우드득!!

“끄아아아악!!!!!”

사르디엘이 날개를 부욱 잡아당기자, 아크라엘의 날개가 빛을 뿜으며 뜯겨져 나갔다. 아크라엘이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사르디엘은 오히려 그 반응이 즐거운 듯 웃으며 날개를 완전히 뜯어버렸다.

“히익!...상태창의..오류로...벌어진 일에...사과를 표하며...흐윽!...보상을...지급...”

제타엘은 뒤에서 벌어지는 강등(물리)를 애써 무시하며 퀘스트의 취소 및 아크라엘의 독선에 대한 보상을 전달하고 있었다.

‘..사르디엘님, 자신이 창조된 지 100년도 안 됐다고 하지 않으셨나?’

순간 예전에 사르디엘이 한 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으나, 제타엘은 궁금증을 해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으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자, 앞으로 내 눈앞에서 깝치고 다니면 그때는 남은 날개 한 쌍도 뽑아버릴 거야?”

바닥을 구르는 천사를 만족스럽게 내려다보며, 피투성이의 손을 방금 뽑아낸 날개로 닦아내는 사르디엘에게 그것을 묻는 것은 소멸을 각오하는 일보다도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 잘 처리했지 제타엘?”

“ㄴ..네 사르디엘님! 오류에 의한 일이라고 공지하고 보상을 지급했습니다! 이후에 집중 케어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에이~긴장 풀어! 나는 제타엘의 새침한 면이 좋은 걸!”

너스레를 떨며 당신이라면 긴장을 풀 수 있겠냐고 묻고 싶었지만, 여전히 고통에 신음하는 아크라엘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 또한 속으로 묻어두기로 제타엘은 결심했다.

“...어라? 제타엘? 잘 처리한 거 맞아?”

“네, 최대한 온건히 처리했는데, 왜 그러십니까. 사르디엘님?”

“...그런데 아르틴은 왜 쓰러져 있어?”

사르디엘이 가리킨 모니터에는, 아르틴이 올가의 품에 안겨 쓰러진 상태였다.

“어라? 강제 회귀는 작동하지 않았고, 오류도 아닙니다. 이건..”

“잠깐 비켜봐, 상태 확인 버튼 누르고 상세내역 확인으로 들어가 보면 돼.”

제타엘을 밀친 사르디엘이 컴퓨터를 조작하자, 이내 아르틴 루드비히의 상태를 완전히 나타내는 상태창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수면향? 저기 28번째 줄에 수면독에 중독된 상태라고 되어있습니다.”

“뭐? 갑자기 수면독을 누가 쓰는데?”

저 공간에 있는 것은 올가와 아르틴 단 둘뿐이다.

아르틴과 계약한 상급몽마 시르카가 뒤통수를 친 게 아닌 이상 외부에서 간섭할 수도 없을 터, 사르디엘은 로그의 상세내역을 확인했다.

“...올가 비르투스가 아르틴을 수면독에 중독시켜? 이게 무슨 소리야?”

사르디엘이 신경질적으로 묻자 제타엘은 놀라 움찔거렸지만, 그 말에 대답할 수는 없었다.

방금 전까지 신파극을 찍어놓고 모니터 속에서 잠든 아르틴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고 있는 올가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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