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성녀 &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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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누구나 절대로 지고 싶지 않은 상대방이 있기 마련이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꼴 보기 싫고,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도 호감이 생기지 않는 사람 말이다.
올가 비르투스에게 있어서는 바이올렛 퍼플크로우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 의해 교단에 팔아 넘겨진 자신과는 다르게, 바이올렛 퍼플크로우는 할머니와 친척, 부모님의 축복 속에서 태어나 행복하게 자랐다.
거기에 본인은 스스로 위압감에 힘들다고 매번 아르틴에게 징징대는 척 꼬리를 치고는 했지만, 여신의 대리인이라는 중대한 사명을 언제나 강요받던 올가가 보기에는 복에 겨운 불만일 뿐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바이올렛은 올가 자신에게는 없는 것을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 위험할 때 자신을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가족, 타인의 슬픔과 기쁨에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과 친화력까지.
올가는 바이올렛이 미웠다.
그저 그 나이대의 소녀처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녀가.
아주 가끔 열심히 하기만 해도 모두에게 칭찬을 받는 그녀가.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모두에게 위로 받는 그녀가.
아르틴과 늘 곁에서 함께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그녀가 미치도록──
...그래, 그것뿐이라면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녀는 악마와 계약하는 사악한 마녀, 자신은 교단에서 칭송하는 위대한 성녀, 둘이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치부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르틴이 그녀의 세계가 되는 순간부터 올가의 바이올렛을 향한 질투심은 커져만 갔다.
나는 겨우 용기를 내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는데, 그녀는 언제나 아르틴의 곁에서 대화하고 웃으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은 죽을 만큼 힘든 때라도 누구에게도 내색해서는 안 되는데, 그녀는 힘들 때면 아르틴의 품에 안겨 울면서 슬픔을 달랜다는 사실이.
...아르틴이 불타 죽은 후, 무기력하게 절망해하던 자신과는 다르게, 타락한 성직자들을 악마의 힘으로 전부 불태우며 아르틴의 복수를 해내던 그 당당한 모습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왜, 그녀는 그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도 욕심을 내는 걸까?
그녀가 사랑할 수 있는 남자는 세상에 널렸을 텐데, 자신의 세계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르틴 뿐인데.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전부 가지고도, 마지막 남은 아르틴 마저 탐내는 바이올렛은 보며, 올가는 너무나도 부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
“아르틴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그녀의 마법에 철저히 대비해 결계를 준비했음에도, 바이올렛 퍼플크로우는 자신의 준비가 부질없다는 듯 이렇게 공간을 비집고 들어와 방해를 했다.
게다가, 그 눈은 자신을 노려보고 있지 않았다.
나와 아르틴의 행복한 시간을 망쳐 놓고도 이 꼴 보기 싫은 퍼플크로우는, 자신의 유일한 안식인 아르틴을 탐욕스러운 애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걱정할 뿐이었다.
“아, 아냐! 나는 괜찮아. 그보다 이것 좀 풀어줄 수 있어..?”
“다행이다..! 걱정 마, 지금 당장 풀어줄게!”
바이올렛은 아직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아르틴을 풀어주고자 했다.
허나, 아르틴에게 다가가는 그녀의 앞을 올가가 막아서자, 다시 한 번 바이올렛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졌다.
“..비켜주지 않을래? 네 그 변태 같은 계획은 여기서 끝이거든.”
두루두루 친한 바이올렛에게도 늘 신경 쓰이고 짜증을 유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올가였다.
하지만 바이올렛은 지금 당장 자신을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는 올가와는 다르게 조금의 마력도 꺼내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 같은 하렘인데, 언제까지 서로 미워하면서 지낼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올가 성녀님?”
“..같은 하렘? 지금 같은 하렘이라고 했나요?”
애초에 바이올렛은 올가를 쓰러트리거나 제압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알‘미라즈가 아그네스의 계획대로 아무도 모르게 걸어둔 감시 마법을 토대로 아르틴에게 별일은 없는지 살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올가가 아르틴을 마취시킨 후 임신공격을 시도하자 아르틴을 구하기 위해 영혼으로 계약한 유니코르와 시르카의 결속을 이용해 난입했을 뿐이다.
“아르틴이 너를 받아들인 이상, 너도 우리 하렘의 일원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오늘 하려고 한 짓은 단단히 패널티가 있을 거야.”
바이올렛도 올가를 하렘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부정적이었지만, 성녀인 그녀가 아르틴을 좋아하는 마음이 진심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르틴이 그 마음을 받아들인 만큼, 그녀도 하렘에 들어올 자격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하렘의 일원이라...후후..”
그 말을 들은 올가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계획을 하고 노력한 결과가, 그저 하렘의 일원 중 하나라니.
“...당신들이 뭔데! 저는 하렘의 일원 따위가 아니에요!”
“까악!”
바이올렛은 갑자기 자신을 밀친 올가의 행동에 당황하며 바닥에 꽈당 넘어졌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있는 공간도 아닌데 사람을 밀치다니?
“끄아아악! 잠깐! 잠깐 올가 진정해!”
“저는 아르틴의 특별한 존재가 될 거예요! 그저 평범한 암캐들 중 한명이 될 수는 없다고요!”
허나 바이올렛이 고개를 들고 본 광경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올가는 다시 침대 위에 올라타 앉았다. 다만 그녀는 가장 소중한 아르틴을 인질삼아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렇지 못한 다면..! 아르틴과 함께 같이 죽겠어요!”
“흐악, 흐가악! 아파! 지, 진짜 죽어..!”
다만 인질극의 방식이 너무나도 괴상했다.
이불 밖으로 튀어나온 아르틴의 남근을 쥐어 짜낼 듯이 꽉 움켜쥔 올가는, 자신의 요구가 이뤄지지 않는 다면 아르틴의 리틀 아르틴을 터트리고 자신도 죽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 진정해! 그렇게 해서는 너는 아르틴의 연인이 아니라 테러리스트가 될 뿐이야!”
“닥쳐! 더 이상 다가오면 정말로 쥐어 짜낼 테니까!”
“...어어억...!”
아르틴의 얼굴이 고통으로 새하얗게 질리자, 바이올렛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지, 진정해 올가 비르투스. 너도 최악의 상황은 원치 않잖아?”
“닥쳐요! 당신은 거기 서서 제가 아르틴의 정액으로 임신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나 하세요!”
“사, 삽입은 안 돼! 기다려!”
바이올렛은 섣불리 다가갈 수도, 그렇다고 멀리 떨어질 수도 없었다.
자신이 거리를 벌리면 지금 당장이라도 저 성녀는 아르틴의 위에 올라타 임신을 시도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가까이 다가가면 아르틴은 남성기가 파열되는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원하는 게 뭐야? 당신은 그렇게 계획도 없이 무모하게 구는 여자가 아니잖아?”
일단은 올가를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바이올렛은 일단 요구사항이 뭔지 물으며 그녀를 설득할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것? 단 하나에요. 아르틴의 씨를 받아, 맨 처음으로 임신하는 여인이 되는 것!”
허나 올가의 의지는 단호해보였다. 란제리 차림의 풍만함 몸으로 아르틴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발기를 유지시키면서도, 언제든지 삽입 할 수 있도록 자세를 취하는 것은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애초에 당신들은 다들 아르틴과 야한 짓 좋은 짓 다 해놓고 뭐가 문제죠? 정말 저를 하렘의 일원으로 여긴다면, 당장 숙소로 돌아가서 기다리도록 하세요!”
“나, 나는..! 아직 아르틴하고 그런 짓을 한 적이 없는 걸!”
그 말에 질투심과 분노로 폭주하던 올가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리고 말았다. 확실히 바이올렛은 처녀의 시험을 통과해, 아르틴에게 면회를 올 수 있던 유일한 연인이었다.
“..당신은 바보인가요? 왜 아직도 아르틴하고 정을 나누지 않은 거죠? 뭐, 마녀 주제에 혼전순결주의자라도 되는 건가요?”
“그, 그런 건 아니야! 나는 그저..!”
다급하게 소리치던 바이올렛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은 아르틴과 가장 로맨틱한 첫날밤을 보내고 싶어서 아직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사실을 올가와 아르틴 앞에서 말하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제, 제게도 다 계획이 있는 걸요! 올가 당신이라면 이해할 수 있잖아요!”
“...계획이라, 그야 있었지. 그걸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알아??”
“잠깐, 뭐? 뭘 죽여?”
난생처음 보는 올가의 폭주하는 모습에 아무 말도 못하고 상황을 살피던 아르틴의 얼굴에 경악감이 물들었다.
마족의 혼혈들조차도 아끼고 감싸며 평화를 주장하던 성녀가, 사람을 죽였다고?
“어머, 들켰네요. 괜찮아요, 어차피 곧 들킬 거였으니까.”
그런 아르틴의 표정을 본 올가는 쓴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교단 내에 존재하던 모든 이단들을 싹 다 죽인 만큼, 아무리 입단속을 잘 시켜도 길어야 반년이 최대였으니까.
“아르틴을 고문하고 불타죽게 만든 이단 놈들, 그런 이단 놈들에게 부와 명예를 약속받아 프락치 노릇을 하던 타락한 사제들, 전부 죽였어요. 아르틴을 괴롭게 한 쓰레기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렇게 외치는 올가의 목소리는 어느새, 악에 받친 상태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회귀하기 전 까지는 사람을 단 한명도 죽여본 적이 없는, 순수한 21살의 여인이었다. 그저 정치에 능하고 모략에 능할 뿐, 정말로 사람을 죽이고 피를 보는 일에는 전혀 익숙치 않던 사람이다.
그런 올가가 권능도둑에 대한 보고를 들으며 아르틴과의 기억이 떠오르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전 회차에서는 자신이 하지 못했던 일이다.
피로 지은 죄는, 피로써 갚게 하는 것.
“이해? 그래, 당신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죠. 퍼플크로우? 그 이단 놈들을 지옥의 대악마의 힘으로 산채로 불태우며 지옥으로 추방시키던 당신이라면, 제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일을 했는지 알 수 있겠죠!”
“...그건..”
“당신들이 아카데미에서 같잖게 소꿉놀이나 즐길 때, 저는 아르틴을 위해서 쓰레기 녀석들을 청소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늦었으니 4번째 5번째 여인으로 만족하라고요? 정말로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올가의 외침에 바이올렛은 뭐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실제로 자신도 다른 연인들을 보며 자격지심을 느끼거나 부러워한 적이 몇 번이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하렘에서 아르틴과 관계를 나누지 않은 것은 자신뿐이었다. 심지어 유니콘인 유니코르도 아르틴과 관계를 맺지 않았던가.
“바이올렛, 제가 제안을 하나 하죠. 당신도 분명 마음에 들 테죠.”
“...제안? 갑자기 무슨 제안?”
바이올렛의 물음에, 올가는 아르틴의 자지를 톡톡 두들겼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와 당신이 동시에 아르틴의 정액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뭐라고?”
“먼저 새치기를 한 년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 아닌가요? 당신도 알잖아요? 아르틴이 얼마나 어린 아이들을 좋아하는지.”
중간에 뭐라고? 물은 것은 바이올렛이 아니라 아르틴이었다.
사랑을 약속한 올가에게 갑자기 납치당해 임신 섹스를 강요당하는 것으로 모자라, 자신을 구하러 온 바이올렛에게 임신섹스를 권하다니?
“그, 그런 제안을 바이올렛이 받아들일 리가 없잖아? 그렇지 바이올렛?”
“...”
“...바이올렛?”
아르틴은 희망을 담아 간절한 목소리로 바이올렛의 이름을 불렀지만, 바이올렛은 대답하지 않았따.
“....임신? 내가? 아르틴의 아이를?”
그저,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 작게 중얼거리며, 아르틴의 리틀 아르틴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르틴이 생각하기에 그건 긍정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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