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그 날의 기억
* * *
나는 머리가 몽롱한 상태였지만, 지금 이 순간은 꿈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은 2회차 당시의 내 기억이기 때문이다.
2회차에 회귀한 직후 나는 카이엔을 피해 다녔다. 허나 녀석에게서 멀리 떨어지지는 않았다.
이 세계의 결말은 그대로 두면 마왕에 의해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카이엔의 곁에 있어야 했지만, 괜히 옆에 있다가 빌런 이벤트에 휘말리기는 싫었으니까.
대신, 옆에서 녀석을 지켜보면서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애는 취미도 없나? 맨날 단련 아니면 공부만 하고... 원작에서는 좀 더 놀러 다니지 않나?’
원작 소설에서 카이엔은 히로인과 즐거운 이벤트로 활력을 얻는다. 그런데 내가 봐온 카이엔의 삶은.. 무척이나 무미건조했다.
‘어라? 원래 지금은 클레어하고 데이트하지 않나?’
‘지금은 분명 바이올렛이랑 시내에 나가서 마주칠 시기인데..?’
녀석의 삶은 소설과는 달랐다. 중간 중간 쉬어가는 일상 이벤트도 없었고, 나쁜 귀족을 혼내 준 후 받는 보상도 없었다.
“재지? 입학식 당일에 귀족을 때린 평민이?”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얼굴로 귀족들한테 꼬리치면서 잘 나가려고 한다던데.”
이 세계는 묘하게 카이엔에게 더욱 차가웠다. 아니, 이게 현실일지도 모른다. 현실에는 고구마를 중화시키기 위한 사이다 전개는 없으니까.
‘...그게 뭐야, 좀 좆같잖아.’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녀석은 이 세계를 구할 용사인데, 왜 저딴 대우를 받는 거지?
물론 카이엔이 도와준 사람들이 점점 주변에 몰렸지만, 대외적으로 카이엔의 평판은 점점 나빠졌다, 그럼에도 녀석은 보답 받지 못할 선행을 끝없이 하고 있었다.
“야, 카이엔 앞에서 힘든 척 하면 알아서 과제도 도와주더라? 그래놓고 보답도 요구 안 해!”
“저도 저번에 준비물을 잃어버린 척 하니까, 자기 물건을 대신 주더라고요? 얼마나 유용한지 몰라요.”
어느새 녀석이 같은 반의 대부분에게 호구로 인식됐을 때, 나는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니들이 그러면 안 되잖아? 왜? 사람이 노력하는 데 그걸 병신 취급해?’
카이엔은 인간 양희민과는 다르다. 저 녀석은 이 세계에서 가장 잘생겼고, 좋아해주는 여자애들도 있고, 능력도 개쩐다. 이 세계의 주인공이니까.
..하지만 나는 녀석이 나랑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다.
녀석은 그저 주인공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왕을 토벌한다는 불가능한 임무에 영원히 도전해야 했으니까.
“카이엔, 나와 같이 마왕을 해치우자. 너도, 나도, 이 좆같은 세계에서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카이엔을 붙잡고 한 말이었다. 갑자기 마왕을 해치우자니, 그 때 녀석은 용사도 아니었는데. 존나 수상해 보이지 않았을까?
녀석도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녀석에게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녀석을 따라가기 위해 검술도 배우고, 마법도 배우고, 강해질 수 있는 것은 죽어라 익히며 노력했다. 샤오메이는 드디어 형님이 정신을 차렸다면서 기뻐했지.
...그 후로, 유니코르와 계약하고, 카이엔이 용사로 인정받고, 마왕의 간부 중 하나를 죽이고,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어느 순간 녀석은 내 말을 의심하지 않고 따르기 시작했다.
내가 부탁을 하면 같이 목숨을 걸고 나서고, 나를 위해 중요한 기연을 양보하기도 했지.
그때도 가끔씩 소름 돋는 눈빛을 보내기는 했지만..나는 그 당시 녀석과의 여행이 썩 싫지는 않았다.
현실세계의 양희민에게는 없었던, 하루하루가 충실하고 친구도 있는, 그런 삶이 나는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러니까... 음, 그런 생각을 한다.
녀석이 나를 좋아하는 동성애자만 아니라면, 그래도 썩 나쁘지는 않은 친구라고.
그러니, 친구니까 짐 정도는 같이 짊어져도 되겠지.
그래서 나는 올가가 내게 권유를 했을 때, 용사의 동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녀석도, 나도, 이 세계에서 행복해질 권리는 있는 거니까.
*
“...으음.”
자고 일어났더니 여전히 두통이 느껴졌다. 어제 뭔가 꿈을 여러번 꾼 것 같은데..지금은 머리가 아파 잘 기억이 안 난다,
‘..이건 누구지? 올가인가?’
흐릿한 시야에 검은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래, 올가랑 바이올렛이랑 첫경험을 했었지. 그 직후 잠들었나?
“...후후, 헤헤.”
나는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내가 두 사람과 섹스를 하다니! 5회차는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의 연속이다.
올가의 머릿결을 스윽스윽 손으로 어루만지자, 비단결 같이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느껴진다. 그대로 나는 천천히 손을 내려 올가의 커다란 가슴을 향했다.
‘아침에 잠결에 주무르는 가슴은 최고니까...’
그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주는 감각은, 술이나 마약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최고의 힐링! 머리도 아픈 김에 가슴골에 얼굴을 파묻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주물럭! 주물럭!
“...어라? 올가..그..운동 했어?”
그런데 시발 뭔가 이상했다. 분명히 자애로운 성녀 왕찌찌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이유모를 단단함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으음...아르틴...?”
게다가, 잠결에 나를 부르는 올가의 목소리가 묘하게 굵었다. 여전히 미성이지만, 이건 익숙하면서도 다른 목소리인데...?“
“...오, 올가?”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내 눈앞에 있던 미인이, 올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빠르게 눈치 챘다.
“...어? 아르틴? 잘 잤어..?”
내 품안에 안겨있는 것은 올가가 아니라 카이엔이었다. 그것도 여자 옷을 입은 채
“으아아아악!!! 씨발!!!!”
“어? 어어?! 잠깐, 깜빡 잠들었..”
나는 반사적으로 녀석을 밀친 후, 녀석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우득!
녀석의 코를 갈긴 내 주먹에 뜨거운 액체가 묻는 것이 느껴졌다.
*
그 후로, 별일은 없었다. 나랑 카이엔이 각자 다른 숙소를 쓰기 시작했고, 카이엔은 부러진 코를 토마스에게 치료받은 것 외에는 말이다.
우습게도, 내가 이 회차를 시작하면서 한 맹세인 카이엔의 피로 내 주먹을 물들이겠다는 맹세는 어이없게 이뤄지고 만 셈이다.
“아, 아르틴. 그게 아니라...”
“너는 한동안 내 주변 15m내로 접근 금지야. 말도 걸지 마.”
카이엔은 뭔가 오해라면서 내게 매번 말을 걸었지만, 나는 단호하게 벽을 쳤다.
어떻게 오해가 있어야 여자 잠옷 차림으로 내 침대에 기어 들어와서 내 품안에서 안긴채 잠들 수가 있단 말인가?
‘...시발, 어쩌다 그랬는지 기억도 잘 안나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려고 해도, 숙소에 돌아온 직후 기억이 희미하다. 혹시 녀석이 선을 확 넘은 게 아닐까 의심도 했지만, 유니코르의 권능을 대신해 썼더니 녀석은 아직 동정이긴 했다.
“후후, 서방님도 참, 아직도 기분이 나쁜 거예요?”
“몰라, 내가 얼마나 깜짝 놀랐는 줄 알아? 그 게이자식, 언젠가 사고를 칠 줄은 알았는데.”
“그래도 내일이면 용사 임명식이잖아요? 그때까지만 참으면 되니까.. 대신 제가 이렇게 서비스도 해주잖아요?”
─찔꺽찔걱
본래라면 어떠한 배덕적인 짓도 허용되지 않을 성녀의 방에서, 나는 성녀의 침대에 앉아 거대한 자지를 드러낸 상태였다.
올가는 그런 내 자지를 커다란 가슴으로 감싸, 위아래로 천천히 흔들며 파이즈리를 해주고 있었다.
“으읏..이거 기분 이상하다. 정말 성녀복 입고 이런 짓 해도 괜찮은 거야 올가?”
“괜찮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제가 여신의 대리인인데. 이제 북부교단은 전부 제 것이랍니다.”
올가는 나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가슴에 구멍이 뚫린 성녀복까지 입은 상태였다.
타이트한 옷 덕분인지 가슴의 유압이 강력해서 마치 질에 박는 것처럼 자지를 꽉꽉 조여 왔기에, 나는 직접 섹스를 하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서방님의 자지를 직접 받아들이고 싶지만... 퍼플크로우 그 망할 년이 건 저주 때문에 해제한 지금도 몸이 민감하거든요.”
“..바이올렛을 보고, 그래도 망할 년은 좀..”
“서방님은 몰라요, 그 년이 얼마나..! 아무튼, 저는 그 여자랑 사이좋게 지낼 생각은 전혀 없어요!”
올가는 볼을 부풀리며 단호하게 말하더니, 내 귀두의 끝을 입에 물고는 천천히 빨면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아직 잘 모르지만, 올가와 바이올렛 간의 어둠이 꽤나 깊은 것처럼 보였다. 올가가 정신을 차리자 가장 먼저 한 말도, 하렘에 순순히 들어갈 생각은 없다는 거였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신을 주축으로 새로운 하렘 세력을 차린다니..’
이미 내 모든 여인들은 아그네스의 하렘에 들어 가있고, 더 이상 여자도 없는데 어떻게 자신의 하렘 세력을 차린다는 걸까?
“츄웁..츄우웁..♡ 딴 생각 하지 말아요, 서방님?”
“아, 알았어. 미안해 올가. 이는 세우지 말아줘..”
올가는 열심히 내 자지를 위해 봉사하다가도, 내가 다른 생각을 한 것을 알아차릴 때 마다 살짝 이를 세우며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내 기존 하렘 애들에게만 신경 쓰면, 나중에 확 깨물어 버린다나 뭐라나.
“한 동안은 서방님의 곁에서 머물러야겠어요. 제가 또 북부 교단으로 자리를 비우면 그 간악한 암캐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으읏, 올가. 슬슬 쌀 것 같은데..!”
남들에게는 강압적이면서도 나에게 순종적인 성녀의 봉사, 나는 참을 수 없는 사정감이 몰려오고 말았다.
올가는 그 말에 고혹적인 미소를 짓더니, 내 남근을 입안에 천천히 받아들이며 사정을 조르기 시작했다.
“츄웁..츄우웁..우움...♡”
울컥! 울컥! 내가 정액을 사정하자, 올가는 남김없이 전부 삼키고는 혹여나 남아있는 정액까지 쪼옥 빨아들이며 내 자지를 혀로 열심히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일이면 여길 나가야 해, 알고 있지?”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은 밤새 저랑 보내야 해요. 서방님?”
내 자지에서 입을 빼낸 올가는 가슴골에서 자지를 빼내더니, 천천히 성녀복을 벗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제가 서방님의 애무를 받고 싶어요. 그러니..”
“잠깐.”
나는 성녀복을 벗는 올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 옷 입고하자, 그게 더 꼴려.”
“...서방님은 변태♡”
올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성녀복을 벗지 않고, 내 손길에 천천히 몸을 맡겼다.
“아...사랑해요, 서방님..♡”
그렇게 올가와 늦은 시간까지 함께 보냈다. 아침에 토마스 사제가 찾아올 테니 잠은 각자의 방에서 자야 했지만 말이다.
*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다.
성녀가 주최하는, 용사 임명식의 날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