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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45화 (145/266)

〈 145화 〉 용사 임명식

* * *

“..이게 전부야? 전에 보던 임명식하고는 차이가 너무 큰데?”

나는 임명식을 준비하는 올가에게 속닥거리듯이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 기억 속의 용사 임명식은, 좀 더 크고 화려한 여신이 축복한 전사를 알리는 대관식에 가까운 행사였다.

수많은 학생들과 교직원, 그리고 제국과 왕국과 교단의 중요 인사들이 모여서 용사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장관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간소화’됐다고 표현하면 좋을까?

“아르틴~! 파이팅!”

“어이 아르틴! 쫄지 마라! 내 의동생답게 당당히 행동해!”

제국의 사절단이나 왕국의 전사들 대신, 아그네스와 마리안느 스승님이 황녀와 왕녀의 대표로 참석해서 내게 손을 흔드는 게 보인다.

그 뿐만 아니다. 학장과 부학장 같은 중요인사는 왔지만 대부분의 교수들은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세, 세르게이 선생님! 제, 제가 이 자리에 있어도 괜찮은 걸까요?”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세니아 선생님, 카이엔 실버소드님과 아르틴 루드비히님의 지도를 맡으신 만큼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은 충분하니까요.”

아, 긴장한 듯 귀를 파르르 떠는 세니아 선생님이 옆에 앉은 세르게이 선생님과 대화하는 것도 보인다.

하지만 역시, 전에 내가 기억하던 개관식에 비하면 규모가 십분의 일로 줄었다고 봐도 좋을 상황인데..

“어머, 불만이신가요 서방님? 일부러 간소하게 준비했는데...”

“일부러 간소하게 준비했다고?”

“네, 이미 간부 중 하나를 무찌르셨는데, 이 이상으로 관심을 끌면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이건 너무 조촐하지 않나? 마왕을 해치울 용사를 임명하는 자리인데..”

나는 힐끔 저 멀리서 내 눈치를 열심히 살피는 카이엔을 바라봤다.

여전히 접근금지를 해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녀석이 용사로써 인정받는 몇 없는 중요한 사건인데..괜히 서운해 할까봐 또 신경 쓰이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그네스 저 여자랑 말은 맞춰놨으니까. 간소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오히려 예전보다 용사의 권한은 더욱 강해질 거예요.”

“...권한이 강해진다고? 어떻게?”

“후후, 서방님도 참. 서방님의 여자 중에 이 세계의 실세가 몇 명인지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세요?”

아...그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마리안느 왕녀님은 나랑 친하고 아그네스는 내 약혼자에..

“북부교단에는 제가 말을 해뒀고, 공화연방에는 조르바 펠카스에게 언질을 걸어놨어요, 남부교단에서는 초원의 왕이 다른 신수들을 설득시켰다고 하더군요.”

“조르바랑 누구? 초원의 왕? 그 도움 안 되는 양반이?”

“네, 지난번의 빚은 갚겠다고 전해달라고 하던데...”

유니코르를 강제로 떠넘겼을 때를 말하는 건가, 확실히 그 때 당시에는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지.

‘후회 하냐면 그건 또 아니지만..’

사실 별로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그쪽에서 신경 써서 도와준다고 하니 오히려 좋다.

본래 용사는 북부교단에서 제멋대로 정하는 것이라, 남부교단에서는 카이엔을 인정하지 않아 매번 인정받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으니 전보다 훨씬 나아진 셈이고.

“저도 알고 있어요, 저 게이 새...아니, 카이엔이 얼마나 중요한 사명을 받고 있는지는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손도 닿기 싫지만, 공적으로는 최대한 지원을 해줄 생각이랍니다.”

올가의 말에 나는 납득했다. 마케팅 비용을 혜택으로 돌린 멤버쉽 카드 같은 건가.

“그리고, 용사의 동반자인 서방님에게도 권한이 갈 테니 기대하세요.”

“어라? 그거 그냥 이름뿐인 칭호 아니었어?”

문뜩 나는 내가 가장 중요한 것을 여태까지 물어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용사의 동반자가 정확하게 뭐지?’

나는 그냥 올가가 적당히 나랑 카이엔이 활동하기 편하게 붙여준 줄 알았는데, 올가의 표정을 보니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곧 행사가 시작될 예정이니, 귀빈 여러분은 정숙해주시길 바랍니다.“

“어머, 마침 시간이 다 됐네요, 나머지는 임명식 때 알려드릴게요?”

올가는 마치 깜짝 선물이라도 준비한 것처럼 말을 뜸들이다가 사라졌다.

뭐, 나중에 알게 되겠지.

‘그럼, 나는 자리로 돌아가야 겠는..데..’

나는 마른 침을 삼킨 후, 천천히 카이엔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제는 하루 종일 녀석과 마주치질 않았으니 존나게 껄끄러웠다.

“..아, 안녕 아르틴? 오늘 사람들이 많이 왔네 그렇지?”

내 뒤집힌 속도 모르는지, 아니면 모르는 체 하려는 건지 카이엔은 내 썩은 표정을 보고도 열심히 말을 걸어왔지만.

더욱 좆같은 점은, 그런 카이엔을 보면서도 이전까지 느끼던 혐오감이나 짜증이 생기지 않는 내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진짜 뇌에 무슨 짓 한 거 아니야?’

나는 임명식 끝나면 올가나 바이올렛에게 검사를 받아보겠다고 다짐하며, 나를 바라보며 식은 땀을 흘리는 카이엔을 흘겨봤다.

“..너는 기분 좋아 보인다? 기분 안 나쁘냐?”

“으응? 뭐, 뭐가 기분이 나빠?”

“너, 이 때 말고는 제대로 용사 대접도 못 받잖아. 좀 더 거창하게 하고 싶지 않아?”

내 말에 카이엔은 눈이 휘동그레졌다. 마치 상상도 못한 질문을 받은 사람처럼 말이다.

“음...나는 별로 상관없는데.”

“상관없다고? 용사 그거 뭐 제대로 해주는 것도 아니고, 개고생 전문 담당이라고 목줄 거는 거잖아?”

“괜찮아, 아르틴이 동반자로 같이 있을 거잖아? 그거면 충분하거든.”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뭔가 익숙한 미소였다. 서양계 미남인 카이엔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카르엔이 짓던 미소가 이거랑 닮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또 좆같네.

“너 좀 떨어져 앉아.”

“으, 으응?! 갑자기 왜?”

“방금 네가 한 말 엄청 기분 나빴거든.”

내가 의자를 옆으로 살짝 끌어 앉고, 카이엔은 그걸 보며 시무룩해 한 표정을 지었을 때.

─“지금부터, 새로운 용사의 임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임명식이 시작됐다.

*

“용사 카이엔, 당신은 용사로써 자신의 사명에 최선을 다할 것을, 거룩한 여신의 대리인인 성녀의 앞에서 맹세하시겠습니까?”

“맹세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성녀인 올가랑 용사인 카이엔의 모습이라니.

‘저렇게 보니까 정말 이 세계를 구할 용사랑, 내가 알던 신성하고 자애로운 성녀 같은데..’

관중석에서는 이 거룩한 용사 임명의 현장에, 눈물을 흘리거나 성호경을 긋는 사람들마저 보였다. 저 사람들은 저 두 사람의 본질을 전혀 모르니 이입할 수 있겠지?

“이제부터, 당신은 여신께서 선택한 용사임을 만천하에 인정하겠습니다. 당신의 권위는 제국의 위대한 초월자 천제와, 그를 대리하여 제국의 모든 영토를 통치하는 황제와 왕국의 고귀한 혈통, 레쿠트르 가문의 가주이자 왕국의 통치자 샤를마뉴 국왕, 공화연방의 의장들과 남부 교단의 초월자들이 보장할 것입니다.”

올가의 말에, 누군가 박수를 치자 수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가 떠나가도록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저, 저길 봐! 신성한 빛이다! 여신님께서 직접 빛을 내려 축복하신다!”

“천사님이..직접 강림하셨어! 새로운 용사님을 축복하기 위해서!”

‘...뭐, 뭐야 이건?’

동시에, 단 한 번도 본적 없던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성당의 천장에서 너무나도 밝지만 동시에 따뜻한 빛이 카이엔을 향해 쏟아지더니, 그 빛을 향해 허공에서 천사님들이 나타나 내려오기 시작했다.

‘처..천사라고..? 그것도 날개가 4장..?’

파란 머리의 검을 든 천사와 녹색 머리의 천사는, 이 세상에 비견될 존재가 없는 신성한 기운을 내뿜으며 천천히 내려와 용사인 카이엔에게 다가왔다.

“받으십시오, 용사 카이엔. 천국에서 벼려진 교단의 성물, 성검 엘렌타르 입니다.”

천사가 직접 천국에서 강림하여 성검을 하사하다니, 전에 없던 기적적인 광경을 직접 보게 된 북부교단의 신도들은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모아 여신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카이엔도 이런 이벤트는 생각도 못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성검을 받았다.

물론 나도 존나 놀란 상태였다. 천사라니? 가장 최악의 순간에 나타나 기적을 행사한다는 그 천사가 이런 곳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날개가 4장이면 중급 천사라는 말이다. 아마 전력 상태의 시르카도 제대로 된 상대가 안 되지 않을까?

‘올가가 제대로 준비했구나..’

이런 광경을 본 사람들은 앞으로 용사의 권위를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 남부교단의 신앙이 강한 왕국 사람들을 상대로도 좋은 포교가 되겠지. 두 마리 토끼를 다 노린 건가.

‘..어라?’

그때, 나는 천사들과 잠깐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방금 내가 잘 못 본건가?

‘파란 머리 천사가 나한테 윙크한 것 같은데..?’

내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천사들은 날개를 펼쳐 다시 하늘로 승천하듯 날아가며 사라졌다.

“여신님의 거룩한 기적...! 이번 용사는 정말로 마왕을 토벌할 지도 모르겠군!”

“오오! 드디어 이 지독한 전쟁을 끝낼 때가 온 것이야! 카이엔! 용사 카이엔의 탄생이다!”

모두가 천사강림의 기적을 보고 감탄하고 있을 때, 나는 방금 윙크하고 사라진 천사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잘못 본 거겠지? 천사가 나를 보고 윙크를 하다니, 말도 안 되지.

“다음으로, 용사의 동반자로 선택된 아르틴 루드비히, 앞으로 나와 주시길 바랍니다.”

그때 올가가 내 이름을 부르자, 교회 안에 웅성거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로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뭐, 나는 시선을 받는 게 익숙해 떨지 않고 곧장 앞으로 나갔다.

“아르틴 루드비히, 당신은 용사의 동반자로 여신께 선택을 받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말은 곧 용사의 말이 될 것이며, 당신이 하는 모든 선한 일과 거룩하고도 영웅적인 위업들은 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주리라 믿습니다. 아르틴 루드비히, 이 사명을 받아들이겠습니까?”

확실히 눈앞에서 마주한 올가는 내 품에 안겨서 앙앙거리던 여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며칠간에 벌어졌던 사고들이 마치 나를 속이려는 악마의 환시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거룩하고도 신성한 여인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도 모자라 야하게 울었을까?

“...아르틴 루드비히? 왜 그러시나요?”

“아, 아닙니다. 네, 사명을 받아 용사의 동반자가 되기로 맹세하겠습니다.”

올가가 무슨 일이냐는 듯 감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자, 나는 다급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좀 더 멋진 맹세의 말을 생각해왔는데, 악을 멸하고 질서를 바로잡고 이런 거창한 말들로 폼을 잡으려던 내 계획은, 올가의 고귀한 모습에 그만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 까먹고 말았다.

“좋습니다. 아르틴 루드비히, 이제부터 당신은 여신의 대리인인 성녀, 올가 비르투스가 인정한 용사의 동반자이자 유일한 대리인입니다.”

올가의 말이 끝나자, 아까처럼 사람들에게서 박수와 환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이엔을 임명할 때처럼, 빛의 기둥이 내리쬔다거나 천사가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기에 나는 김이 조금 새고 말았다.

‘뭐, 올가가 지어낸 직위니까 어쩔 수 없나.’

그래도 왕국의 남작 가문의 세 번째 아들에 비하면 훨씬 낫지, 라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자, 고개를 들어, 동반자로서의 세례를 받도록 하세요.”

“...네? 그게 무슨.”

세례라니? 라는 의문에 내가 고개를 들자...

“..츄웁♡”

“.......우웁? 우우웁?!”

나는 내 입술을 포갠 부드러운 감촉에,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어?”

“지금 내가 뭘 보는 거지? 성녀님이 남자와 입맞춤을..?”

경악은 천천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언제나 여신이 바로 세운 미덕들을 모두의 귀감이 되도록 지켜야 할 성녀에게 있어서, 순결 또한 매우 중요한 도덕이니까.

점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지만, 그와 다르게 내 머리는 완전히 새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어떻게 뒷감당을 하려고..?’

모르겠다. 올가가 무슨 생각인지. 설마 하렘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이런 건가?

그렇게 생각할 무렵...내 눈앞에, 그 대답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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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최초로 용사의 동반자의 사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여신께서 당신을 축복하시며, 계승칭호 『용사의 동반자』를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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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내 전신을 강렬한 빛의 무리가 감싸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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