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47화 (147/266)

〈 147화 〉 세번째 후일담

* * *

텅 빈 상태창 사무실, 그 중앙에 전에 없던 인간계로 향하는 포탈이 생겨난 상태였다.

본래라면 인간계로 향하는 포탈을 함부로 만드는 것은 즉시 처분의 대죄일터, 누군가 본다면 사르디엘이 드디어 미쳤나 싶었겠지만, 포탈에서 나온 사르디엘의 표정은 더없이 당당하고 상쾌했다.

“후아! 인간계 최고다! 잠깐 놀러 갔다 왔는데도 엄청 신나!”

“사르디엘님. 놀러 간 게 아니라 용사에게 성검을 전달하기 위해 강림한 거잖아요? 원래는 저 혼자 가야하는 건데..”

“제타엘도 참! 그렇게 빡빡하게 굴면 아크라엘처럼 된다니까? 천사도 유도리가 있어야 하는 법이야!”

용사에게 성검을 하사하는 공식 업무, 그것도 여신님께서 직접 내린 공문으로 진행된 일이기에 제타엘은 오늘 아침부터 쭉 긴장한 상태였다.

9급 천사인 자신이 여신님께 공문을 직접 받다니? 게다가 그 일을 혼자 해야 한다니? 경험 없는 사회 초년생 천사에겐 너무 벅찬 일의 연속이었다.

아크라엘이 강등 된 이후, 아직 새 직원이 발령 되지도 않은 상태라 제타엘은 이런 일을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패닉에 빠진 제타엘은, 어쩌면 최악이 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하아..그때 사르디엘님에게 연락을 한 게 정말 잘한 일이었을까?’

제타엘의 연락에, 심심해 죽어가던 사르디엘은 곧 바로 사무실에 도착했다.

양 손에 온갖 치렁치렁한 의상과 화장품을 준비한 채로.

“우리 예쁜이! 아니, 복덩이! 아주 예뻐 죽겠어! 당장 인간계 강림할 준비하자!”

“네? 그게 무슨, 준비라니..?”

미리 말해두지만, 빛의 기둥이나 천사의 하늘거리는 옷, 거기에 고귀한 역광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정장을 입고 강림해? 인간들은 좀 더 고풍스러운 천사를 좋아해! 반짝임하고 신성한 가루도 좀 더 팍팍 치고! 그냥 하늘에서 내려와? 임팩트가 없잖아!”

이는 지루한 상태창 업무 내내 하루에도 수십번씩 인간계에 내려가서 카이엔과 아르틴의 동료되는 상상을 하던 사르디엘의 상상의 결과물이었다.

제타엘은 점점 규모가 커지는 강림에, 이대로 가도 괜찮나 고민이 많았지만..결과적으로, 사르디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이상하네요, 여신님의 기적은 이미 세상에 만연한데, 여신님의 종인 천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앙을 간증하고 눈물까지 흘리다니.”

“그게 다 연출의 힘이지! 제타엘은 아직 인간의 마음을 잘 모르는 구나?”

“...사르디엘님도 인간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잖아요?”

행사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여신의 성검을 건내 준 후 퇴장하면서 인간들이 감탄하는 모습도 지켜봤으니 두 천사는 만족하며 천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후후, 아르틴하고 눈 마주쳤다! 게다가 윙크까지 했다!’

특히 사르디엘은 아직 흥분이 다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아르틴의 실물이라니! 그것도 바로 옆에서 눈을 마주치다니! 이는 성공한 덕후의 상징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쉽다. 직접 만지거나 손이라도 닿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가는 시말서로 끝나지 않을 거에요 선배님! 진정하세요!”

“애도 참, 농담이잖아 농담. 이미 다 끝났는데 뭐 어때?”

제타엘도 사르디엘을 나무라기는 했지만, 이런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았다.

아크라엘의 사건 이후 제타엘과 사르디엘은 급격히 좋아져, 전에는 사고뭉치에 불편하기만 하던 상관이었지만 지금은 퇴근 후에 만나 카페에도 갈 정도로 친해진 것이다.

“헛소리 말고 빨리 복귀나 하세요. 저 혼자 상태창 업무를 하느라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그 느낌표! 말끝 마다 붙이는 느낌표 따라하느라 정신없다고요!”

“내가 말했지만. 진정한 상태창은 성장을 같이 축하해 줘야 한다니까? 아르틴이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봐. 그럼 편하게 될 거야!”

“아뇨, 매뉴얼 상으로는 저처럼 하는 게 맞거든요..?”

그때, 훈훈한 사무실의 문을 박차고 누군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후후...역시! 역시 그랬어! 그런 중요한 일을 하급 천사 따위가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아, 아크라엘? 당신이 여긴 왜..?”

갑작스러운 아크라엘의 등장은 당황스러웠다. 사르디엘에게 강제로 강등당한 후, 아크라엘은 단 한 번도 직장에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 발령받은 게 아니었나?’

제타엘이 그런 의문을 품을 때, 사르디엘은 정신이라도 나간 듯이 웃는 아크라엘을 보며, 허공에서 자신의 철퇴를 뽑아들었다.

“이 새끼는 저번에 쳐맞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

“히, 히익! 이 폭력천사! 또 나를 두들겨 팰 셈이냐!?”

사르디엘의 말에 아크라엘이 뒤로 주춤 물러서자, 파란머리의 천사는 전에 없던 상큼한 표정으로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응! 존나 팰 거야! 이번에는 사지를 박살내줄게!”

“히이익...!”

그 말에는 제타엘도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딱히 말릴 생각은 없었다.

사르디엘이 복귀하길 바라고 있는 지금, 아크라엘이 업무에 복귀하는 건 제타엘에게도 매우, 매우매우 꺼려지는 일이었으니까.

“오, 오늘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찾아온 줄 알아? 너는 이제 끝났어! 타락할 준비나 하시지! 이 폭력천사야!”

“...하? 진짜 정신이 나갔나? 그게 뭔 헛소리..”

철퇴로 당장 골통부터 깨부술까 고민하던 사르디엘은, 아크라엘의 등 뒤에서 나타난 존재를 보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사르디엘, 당신은 아직도 천방지축이군요. 설마 여신님께서 직접 만드신 포탈로 인간계에 내려가다니 말입니다.”

고풍스러운 정장에 여섯 장의 날개, 불타오르는 검과 짙은 눈동자는 마치 조각처럼 빚어낸 것 같았다.

제타엘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몰랐으나, 그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카, 카이엔...?”

그 얼굴은, 카이엔하고 너무도 닮다 못해 똑같은 얼굴이었으니까.

“카, 카이엔이 아니야. 저 천사는...!”

“저, 저 여자입니다! 저 여자가 근신 중에 이곳에 찾아와, 제 날개를 뽑고 폭력을 행사하여 여신님께서 주신 사명을 방해했습니다! 대천사 미카엘님!!”

사르디엘의 당황하는 모습을 본 아크라엘은 환희에 찬 얼굴로 삿대질을 하며 자신이 데려온 대천사를 바라보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대천사의 얼굴에, 감정이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그래..그렇다고 하는데. CCTV를 확인해도 되겠나. 담당관 제타엘?”

대신 차분한 표정으로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자료를 요구하며 제타엘을 바라봤다.

‘좆됐다...’

그 모습을 보고 사르디엘은 속으로 자신이 좆됐음을 실감하며 절망에 빠졌다.

*

“과연, 이렇게 된 거군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천계의 CCTV는 단순히 그 현장을 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난 시간 자체를 다시 재구성하여 볼 수 있는 기적의 구현이었으니까.

“아크라엘이 말한 대로, 규정을 어기고 사무실에 찾아와, 허가 받지 않은 6장의 날개까지 발현하여 폭력을 행사한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사르디엘?”

“...아니, 그..그게 말이죠..저 새끼가 먼저 잘못했어요 미카엘 오빠!”

“오빠가 아닙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저와 당신은 남매가 아닙니다. 사르디엘.”

“그럴...수가..”

먼 옛날, 날개가 6장이던 시절 사르디엘은 미카엘을 오빠라고 부르며, 온갖 사고나 장난을 적당히 넘어가곤 했다. 허나 이렇게 단호하게 선을 긋는 미카엘은 봐주지 않겠다는 신호였기에 식은땀을 흘렸다.

“저 여자는 그것도 모자라, 하계에 몰래 강림하고 여신의 대리인인 척 했습니다! 근신을 받고 있는데 말이죠! 부디 제 날개를 복구하고, 저 여자와 저 여자의 하수인에게 심판을 내려주십시오!”

사르디엘의 표정과는 다르게, 아크라엘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역시 계급이 최고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맞아 떨어질 줄이야!’

얼마 후 천사 강림의 행사가 있다는 것은 깐깐한 아크라엘도 이미 숙지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저 하급 천사인 제타엘이 혼자 남는다면? 분명 저 폭력 천사를 불러 도움을 청할거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설마, 하계 강림까지 직접 하다니! 이건 중죄 중에서도 아주 무거운 죄가 틀림없다!

“흠...확실히, 이 사건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처벌로 끝나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여, 역시! 대천사님! 공명정대한 심판을 부탁드립니다!”

“예, 그럴겁니다. 여신님의 의지를 왜곡한 것도 모자라, 큰 죄를 저지른 자는..”

─서걱!

“...에?”

“벌을 받아 마땅하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아크라엘님?”

한 순간이었다. 대천사가 가볍게 휘두른 불타오르는 검은, 그대로 아크라엘의 남은 두 날개를 베어버리며 마지막 남은 신성력마저 불태워버리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끄아아아악!!!”

“감히 여신님의 대리인을 운운하며, 카이엔 실버소드와 아르틴 루드비히를 억압하려고 하다니, 이는 최초의 타락을 지은 루시퍼도 감탄할 중죄에 해당됩니다.”

“그게 무슨!!! 저, 저는 그저 효율적인 구원으으을..!!!”

“여신님께서는 일찍이 자신의 창조물들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당신이 그렇게 오만하게 구는지 모르겠군요.”

대천사 미카엘은, 아주 머나먼 세월만에 처음으로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며 아크라엘을 바라봤다. 이 자는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폭력적이고, 위선적이다. 하마터면 이 세계 자체를 망가트릴 뻔 했으니, 그에 합당한 처벌은...

“...그렇군요. 이제 당신은 아크라엘이 아닙니다.”

“그게..그게에..무슨 소리입니까아아아..!! 끄아아악!!!!!”

미카엘은, 고통에 헐떡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아크라엘의 이마에 검 끝으로 낙인을 지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이제, 타락한 천사 보르펠입니다. 그대에게는 악마가 천사보다 어울리겠군요.”

“────!!!!”

타락??이라는 낙인이 전부 새겨지자, 아크라엘의 몸에서 사라진 신성력 대신 아주 미약한 마력이 그 안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타락천사는 본디 그 신성력에 걸맞는 마력을 지니나, 이미 미카엘이 신성력을 불태워버린 탓에 하급 악마 중에서도 최하위의 악마나 가질 법한 마력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특별히, 당신을 아주 좋아할 지옥으로 떨어트리겠습니다. 지옥에서도 잘 지내면 좋겠군요. 보르펠.”

“이게 무슨..!!! 나는.,.!! 나는 그저 여신님의 말씀에 따라..!! 아아아악!!!!”

보르펠이 무어라 더 말하기도 전에, 미카엘이 바닥을 두드리자 보르펠의 발밑으로 구멍이 생겨났다.

그 구멍은 지옥으로 향하는 무저갱의 구멍이었다. 신성력을 전부 잃은 악마가 이 구멍을 기어올 힘은 없으니, 결국 의미 없는 몸부림 끝에 지옥에 떨어지리라.

“...”

“...”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르디엘은 땀으로 온몸이 젖고 말았으며, 제타엘조차도 마른 침을 삼켰다.

지옥 즉석 타락이라니, 이 정도로 무거운 일이 될 줄은 두 사람도 몰랐기 때문이다.

“..사르디엘?”

“네! 미카엘 오빠! 아니, 미카엘님!”

아주 오랜만에 군기라는 것이 깃든 사르디엘의 모습을 보자, 미카엘은 속으로 쓴 웃음을 지으며 사르디엘을 향해 다가왔다.

“여신님이 금하신 여섯 날개를 펼친 죄, 여신님이 직접 만든 포탈을 타고 몰래 하계에 내려간 죄. 뭐..당신이라면 이것 외에도 수많은 죄를 지었을 것을 압니다.”

“미..미카엘님...?”

“하지만, 사르디엘 당신이 이 일에 얼마나 진지하고 열정적인지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도 당신은 그대로라서 보기 참 좋군요.”

눈물을 머금고 벌벌떨던 사르디엘은, 그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예, 옛날부터 저를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요? 미카엘...님..?”

“아뇨, 저도 여신님도 언제나 당신을 좋아했습니다. 이 지루한 천계가 시끄럽게 만들어주지 않았습니까?”

미카엘은 과거를 회상했다. 언제나 모범생만 가득한 이 천계에, 사르디엘은 변종 천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쾌할하고, 밝았으며, 장난기가 많았고, 집중력이 약했다.

인간이라면 ADHD라고 불릴지도 모르지만, 진지할 때는 또 한없이 진지한 사르디엘의 모습에 상급 천사들은 그녀를 꺼려하면서도 내심 그녀의 기행을 즐기곤 했었다.

“뭐, 당신이 절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고요. 사르디엘.”

“미, 미카엘 오빠...”

사르디엘이 감동어린 표정을 짓자, 미카엘은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그 훈훈한 광경에 제타엘은 자신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지으며 기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저도 어쩔 수 없이 벌을 줘야겠네요. 이해하죠, 사르디엘?”

“네! 미카엘 오빠! 무슨 벌이든 감내할게요!”

“좋네요. 타락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을까 했는데, 그리 각오하는 모습을 보니 보기가 좋습니다.”

“네! 그야 뭐든..네? 타락이요?”

사르디엘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기도 전에, 미카엘이 바닥을 두드렸다.

“꺄아아아악?!?”

“사, 사르디엘님!!??”

제타엘이 황급히 사르디엘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구멍은 금세 닫히고 말았다.

“후후, 사르디엘이 하던 장난이란 것도, 꽤 재밌긴 하군요.”

정작 미카엘은 자신이 창조된 이후로 최초로 사르디엘에게 장난을 성공시켰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이, 이게 무슨 일인가요 미카엘님?! 사, 사르디엘님이 물론 매번 매뉴얼을 어기긴 했지만, 그, 그래도 악마로 타락이라니요!”

“네? 악마로 타락이라니? 무슨 소리입니까 제타엘?”

“바, 방금 사르디엘님을 지옥으로 보내셨잖아요!”

아하, 그렇게 보였나, 미카엘은 사르디엘 뿐만 아니라 제타엘에게도 장난이 성공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방금 연 구멍은 지옥으로 향하는 구멍이 아닙니다. 애초에 타락천사의 낙인을 안 찍었고요.”

“네? 그럼 방금 그 구멍은 어디로..?”

제타엘의 물음에, 미카엘은 사무실의 어느 곳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제타엘이 그 손가락을 향해 서서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인간계를 비추는 모니터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잠시 근신을 내렸을 뿐입니다. 그녀도 가장 바랬던 일이니 딱 맞는 처벌이 아닙니까?”

“...이, 인간계요? 지, 진짜로? 또 장난이시죠? 미카엘님?”

제타엘은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미카엘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번 회차가 끝날 때 까지, 사르디엘은 인간계에 남게 될 것 같군요. 이것저것 제약을 걸어놨으니 문제가 되진 않을 겁니다.”

“그..그럴 수가...”

제타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막 친해진 상관이 인간계로 근신을 받다니?

“그동안, 상태창 업무는 제타엘 혼자 맡아주셔야 겠지만요.”

게다가, 그 동안 일거리가 2배라는 사실에, 제타엘은 울먹이는 눈으로 미카엘을 올려다봤다.

“이게 제타엘에 대한 벌이니, 참고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사르디엘을 데리고 인간계에 간 건 원래는 이 정도로 끝나는 일이 아니니까요.”

“네에...”

그 대답에는, 엄청난 허망함과 절망감이 담겨있었다.

*

“크아아악!?!?!”

──쾅!!

보르펠은 영원토록 지속될 것 같던 낙하가 끝난 직후, 지옥의 어딘가에 쳐박히고 말았다.

“이 망할 대천사 자식...! 감히 나같은 엘리트를 타락시키다니, 두고봐...!”

다행히도, 미카엘의 자비 어린 가호 덕에 죽지 않은 보르펠은 고개를 들어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

“뭐하는 녀석이냐! 감히 대군주님의 궁궐에 침투하다니!”

그러자 보르펠은 대전쟁 당시에도 눈도 못 마주치던 상급악마들이 자신을 둘러싼 채 당장이라도 도끼를 내려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히, 히익!? 저, 저는 악마 보르펠입니다! 바, 방금 타락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뭐? 타락해? 보르펠? 너 아스모데우스가 보낸 첩자로구나!”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저는 무고한 타락천사라고요!”

보르펠은 무릎 꿇고 주변을 향해 빌빌 기며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 그 망할 대천사에게 복수할 수 있을테니..!!

“멈추거라. 재밌어 보이는 게 왔구나.”

“대, 대군주님! 모두들 물러나라! 대군주님의 명이시다!”

그때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에, 상급악마들이 벌벌 떨며 물러서자 보르펠은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힐끔 들었다.

“대..대군주 메피스토펠레스...!?”

“호오, 감히 하급악마보다 못한 것이 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진짜 죽고 싶나 보구나.”

자료로만 보던 대군주의 얼굴을 보고 놀라서 외친 보르펠은, 자신이 보고 있는 메피스토가 진짜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무고합니다! 대천사 미카엘이 저를 이곳으로 보내서..!”

“흐음...미카엘이?”

메피스토가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그녀의 눈앞에서 난데없이 편지가 한 통 떠오르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흥미진진한 전개에, 메피스토가 나태한 표정을 풀고 편지봉투를 뜯자 그 안에는 미카엘이 손수 적은 상황 설명이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그렇구나, 그대가 아크라엘이라고?”

“그, 그렇습니다! 본디 5품위까지 갔던 천사! 분명 쓸모가 있을 겁니다!”

“게다가, 아르틴을 괴롭힌 것도 모자라 조종하고 죽이려고 했다는 말이 사실이더냐?”

“...네?”

나태하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지자 보르펠은 온몸이 얼어붙는 감각을 느꼈다.

포식자의 앞에 얼어붙은 작은 초식동물처럼, 고개조차 까닥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르펠은 없는 마기를 쥐어 짜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메피스토를 바라봤다.

“과연...미카엘이, 아주 재밌는 선물을...보내왔어?”

메피스토펠레스는 웃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진심 어린 악의가 담긴 웃음을 짓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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