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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48화 (148/266)

〈 148화 〉 천마??란 무엇인가?

* * *

어느덧 중간고사까지 남은 시간은 2주가 되었다.

그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권능도둑, 마왕군 간부의 습격, 용사 임명식.

슬슬 1년이 다 되어가는 기분이다. 실제로 그렇다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기분만 그렇다.

‘이제 겨우 2달이 되어간다고...?’

그렇다. 지금 나는 5회차를 시작한 지 아직 2달도 지나지 않았다. 소름이 돋는 사실이었다.

아니 뭐, 이해는 간다. 매일이 깜짝 놀랄 일들로 가득하니, 시간이 더럽게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 테지.

이전의 회차들은 본 궤도에 오르기 전 까지는 묘사를 하자면 거진 수련의 반복이다 보니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갑자기 왜 이런 독백을 하냐면.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자세가 부족하다. 기합 넣고 스쿼트 500회 추가! 전투의 기본은 하체에서 나온다!”

“악!!!”

“대답 봐라? 용사랑 용사의 동반자가 기합이 이것 밖에 안 나오냐!!”

마리안느 누님의 지옥 훈련을 다시 맛보니까, 조금이라도 현실의 쓴맛을 잊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샤오메이랑 적당히 하는 수련이 좋았는데...’

*

사정은 이러했다.

샤오메이가 나를 위해 본가에 보낸 편지를 읽고 샤오메이의 아버지는 노발대발 했다고 한다.

“뭐? 이 망할 놈팽이가 어릴 때부터 붙어 다니더니, 이제는 내 딸을 처, 처로 두겠다고?! 정실은 아그네스 황녀어어어?!!”

..샤오메이가 조금 편지에 너무 솔직하게 쓴 건 사실이다. 그런데 어차피 하렘이 들키는 건 시간 문제였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허나, 오신장은 공화연방에서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중요한 직책, 하물며 오신장의 필두라 불리는 린 샤오팽은 움직이는 전략병기와도 같아 직접 오지 못했다.

그런 그를 대신해 온 게 바로..전대 오신장의 필두, ‘천마’ 린 샹페이였다.

원작 소설에는 언급도 안 된 인물이지만, 이 세계에서 21년을 산 나로서는 그 이름에 까무러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본래 마왕의 간부인 일곱권속과 군단장 중, 셋이나 되는 간부를 영웅들과 함께 처리했던 이제는 은퇴한 ‘레전드’같은 이름이었으니까.

아니 뭐, 중요한 건 린 샹페이가 누구냐가 아니라, 왜 내가 갑자기 마리안느 누님에게 지옥훈련을 받고 있냐는 거겠지만, 그 이야기는 조금 시간을 앞으로 돌려야 한다.

*

“샤오메이가 인정한 남자라고 해서 좀 시험해 봤더니, 이 정도 밖에 안 되다니, 실망이 크구나!”

남색 댕기머리를 바람에 흩날리며 천마가 소리치자, 옆에 서있던 올가가 천마를 노려봤다.

“천마님, 죄송하지만 이곳은 환자를 돌보는 곳이니 조용히 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기로 바람을 일으키는 건 자제해주시길 바랍니다.”

“...으음, 미안하구나. 그래도 내가 위엄이라는 것이 있어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나랑 카이엔은 교회에서 나온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교회의 병실에 누워서 토마스와 올가의 치유를 받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왜 천마가 떨어지고 지랄인지 모르겠네..’

나는 존나 억울했다. 얻어맞은 것?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나라도 내 자식을 어떤 놈이 아내 중 하나로 들이겠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면 얼굴을 깨부수고 싶을 테니까.

내가 억울한 건 바로 이 천마라는 양반이 이전 회차들에서는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던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현재 무신 린 샤오팽이 이끄는 태산도장의 무술의 기틀을 세워, 공화연방의 무술의 발전을 몇 배로 성장시켰다고 전해지는 살아있는 무의 화신.

미사어구로만 치면 대마법사들도 한 수 접어줘야 한다는 대단한 인물인 만큼 나도 가르침을 받고 싶어 몇 번 찾아갔다.

­“본 도장의 원로들께서는 세상에서 은거하셨기에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허나 매번 요청할 때 마다 입구컷을 당했다. 용사인 카이엔을 데려와도, 샤오메이에게 부탁해도 매번 거절당했는데..이렇게 직접 찾아와?

허나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까놓고 샤오메이와 결혼하면 집안의 큰 어른이 될 분 중 하나랑 척을 져서 좋을 게 없었을 뿐더러, 이건 내가 얻고 싶어도 못 얻은 기연을 얻을 기회였으니까.

“저, 샤오메이의 증조할머니..?”

“그렇게 말하니 나이 들어 보이는 구나, 천마님, 혹은 샹페이 누님이라고 불러라.”

“네, 천마님.”

“누님은 좀 주책이라고 해도, 고민도 없이 천마님은 좀 기분이 나쁘구나.”

“..아니 그래도, 샤오메이의 증조모 되시는 분을 어떻게 누님이라고 부르겠습니까.”

몇 가지 천마를 지켜보며 알 수 있는 사실들이 있었다.

첫 번째, 이 할머니는 주책이 심하다. 기를 일으켜 굳이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것도 그렇고, 나랑 나이차이가 130년 노처녀인 시르카보다 많을 텐데 누님이라 부르는 것좀 봐라.

필살의 포커페이스 기술이 없었다면 당장 비웃음이 튀어나왔다가 강제 회귀 당했을 지도 모른다.

두 번째, 샤오메이의..그, 훌륭한 몸매나 복식이 누가 시초인 지 알 것 같다. 확실히,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손녀인 샤오메이랑 사촌 자매정도로 보일 테니까.

물론 가슴이나 엉덩이의 크기는 수인인 샤오메이 쪽이 훌륭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커다란 가슴과 잘록한 허리, 주름 하나 없는 피부는 감탄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

나이만 몰랐다면 말이지.

‘저게 그 무협에서 나오는 반로환동의 경지라는 건가..?’

하지만 역시 복장도 주책이라고 생각된다. 저렇게 노출많은 차이나 드레스를 당당하게 입고 다니다니, 창피함을 모르는 건가?

“왜 내 옷을 그리 빤히 쳐다보느냐?”

“아니, 샤오메이가 입던 옷이랑 비슷하게 느껴져서 말이죠..?”

“아아! 그건 내가 사랑스러운 증손녀를 위해 직접 골라준 옷이다! 내 센스도 괜찮지 않느냐?”

“네, 훌륭한 센스인 것 같습니다.”

“아르틴...”

옆에 누워있던 올가와 카이엔이 혀를 찼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아니 솔직히 가슴이 그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차이나 드레스를 보고 어찌 남자가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건 마왕군 간부들도 인정할 것이 틀림없다.

“몸은 영 비실 하지만, 보는 눈은 있구나! 조금 마음에 들었다! 반 정도 죽일 생각으로만 힘 조절을 했는데 어디 조금 부러진 걸로 끝난 것도 그렇고 말야!”

“아, 네 뭐..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샤오메이가 도와준 덕이죠.”

세 번째, 칭찬과 빈 말에 무지 약하다. 저번에는 대뜸 나타나서 실망이라고 혀를 차더니 칭찬 좀 보태서 샤바거리니 웃음을 참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까.

“뭐, 걱정마라! 그 비실거리는 육체는 내가 단단히 수련 시켜 주겠다! 태산도장에서 3년만 구르면 마왕군하고 싸워도 꿇리지 않을 것이니라!”

“저, 가르침은 감사한데, 태산 도장에 강제로 3년간 숙식하는 건 조금..”

만약 내가 기억 회귀 없이 이번 회차를 시작해, 무술가 공부 하다가 천마를 만났다면 이게 왠 떡인가 싶어서 태산도장에 따라갔을지도 모른다.

‘폭풍 레벨업 정도가 아니라, 만렙이 만렙까지 버스 태워준다는 데 무조건 OK지.’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사랑하는 내 여인들을 내버려두고 3년이나 잠수 타라고?

3년이면 마왕군이 무슨 짓을 벌여도 단단히 벌일 시간이고, 어쩌면 내 여인들이 나보다 먼저 죽을 지도 모른다. 내 여인은 아니지만 아마 세니아 선생님은 10번은 죽음의 위기를 겪지 않을까?

‘절대 안 돼, 태산도장에는 절대 못 끌려간다.’

결국 나는 이 기연을 적당히 빼먹을 수 있을 정도만 빼먹고, 만약 무리라면 과감히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호오, 지금 내 가르침을 거절하겠다는 말이더냐? 속에도 없는 말로 거절하여 멋있게 보이려는 거라면 내게는 통하지 않느니라!”

“아뇨. 정말입니다. 전 이미 제 스승도 있고, 제가 샤오메이에게 요청한 건 아카데미에서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범을 원한 거지, 폐관 수련이 아닙니다.”

“..정말? 정말 내 가르침을 거절한단 말이냐? 정말로? 나 천마인데?”

“네. 폐관은 무리입니다.”

어째 점점 천마의 모양새가 빠지긴 했으나, 나는 역시 단호한 표정으로 거절했다.

“..용사는 단순히 강한 존재가 아닙니다. 카이엔은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용사의 동반자로써 그 옆을 지켜야 하고요.”

“아르틴..”

“...기분 나쁩니다. 카이엔.”

내 말에 옆에 누워서 지켜보던 카이엔이 뭔가 감동을 받은 표정을 지었으나, 올가가 내 마음을 대신 말해줘서 나는 조용히 입 다물고 천마 샹페이를 바라봤다.

“...돼.”

“..네?뭐라고요?”

“안 돼. 그럴 수는 없다!”

“..? 안 된다니, 그게 무슨...”

그 순간,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려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천마는 마치 바람처럼 빠른 움직임으로 내 침대위에 올라오더니, 물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내 위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불처럼 강하게 내 어깨를 부여잡았는데, 그 움직임은 조금의 낭비도 없는 완벽한 하나의 초식이었다.

“처, 천마 ㄴ...”

내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올가와 카이엔이 천마의 돌발 행동에 놀라 움직이려는 그 순간, 천마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절대 안 돼! 나는 널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다짐했단 말이다! 천마는! 이루고자 하는 바를! 반드시 이루는 존재 이니라!”

“...?? 아니, 진정하시고 이것부터 놓으시는..윽, 무거워?!”

나는 어깨를 붙잡은 천마의 손을 쳐내려고 했지만, 가녀린 것만 같던 그 손아귀의 힘은 내가 아무리 힘을 줘도 풀어낼 수 없는 단단함이 있었다.

“안 놔줄 거다..! 네가 같이 가겠다고 대답할 때 까지 이 자리에서 버티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서 말해라! 태산도장으로 같이 가겠다고!!”

“천마님! 잠깐 진정하시고 이것 좀 놔주세요! 올가! 카이엔! 나 좀 도와줘!”

“아, 알겠어 아르틴!”

“정말, 이게 무슨 오신장이란 말인가요..! 완전 어린애잖아요!”

카이엔과 올가가 천마의 어깨를 붙잡으며 내게 가세했지만, 천마는 마치 내 몸 위에 자리잡은 태산처럼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몸은 이렇게 가벼운 데, 움직임은 이토록 무겁다니? 나는 당혹감과 순수한 감탄이 섞인 어이없는 미소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싫어!! 증손녀사위 데리고 태산도장 간다고 약속까지 했단 말이다!! 이대로 가면 내가 우리 손주 얼굴을 어떻게 봐!!”

“이게 떼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요 천마님!!”

“...너무 무거워..! 마치 거인을 잡아 끄는 것 같아!”

“절대! 절대 안 된다! 네가 선택한 샤오메이! 네가 선택한 태산도장이다! 무조건 수련을 받아야 한단 말이다!”

*

“오라버니는 괜찮으실까...?”

골드 기숙사에 구속구로 꽁꽁 묶인 샤오메이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증조모에게 시달릴 아르틴을 걱정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자살은 안하셨겠지? 하지만, 아무리 오라버니라도 증조모님한테는 방법이 없을 텐데..”

자신보고 머리 좀 식히라며 구속구를 가득 채운 증조할머니를 떠올리며, 샤오메이는 어이없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신이 아는 사람 중 가장 머리를 식히는 법을 모르는 것은 바로 증조모였으니까.

“증조모님이 한 번 억지를 부리면 어떻게든 이루어 질 때 까지 억지를 부리시는데..”

먼 옛날, 태산도장에는 여성에게 무술을 전수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다.

수천년 전에 정해진 그 낡은 규칙으로 인해, 역대 최고의 재능을 지녔다고 전해지던 증조할머니는 무술을 배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증조 할머니는 전혀 포기하지 않으셨다.

­“나는 무술을 배울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무술을 배울 거란 말이다!!!!”­

...역사서에는, 천마의 맹세가 하늘을 떨게 만들고 땅을 요동치게 만들어 결국 원로들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기록되어있다.

허나, 직접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들은 샤오메이는 그 이야기의 진실을 알고 있다.

딱히, 무술을 배울 생각도 없던 10살의 증조할머니는, 남동생이 무술을 배우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졸랐다고 한다.

물론, 당대 가주였던 증조모의 아버지..그러니까 고조부께서는 어린 샹페이에게 안 된다고 하며, 대신 수많은 다른 길을 보여줬다고 하지만...

그 후로 자신의 증조모인 린 샹페이는 무려 20년에 걸쳐서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역사서에 기록된 대로 증조할머니는 역대 최고라고 할 정도의 무재였다.

도장의 수련 기구를 정권으로 박살내고, 철심이 박힌 검을 우그러트리며, 올라가는 것만으로 수련이 된다고 하는 태산의 1만 계단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리 힘으로 박살냈다.

보다 못한 원로들이 도장을 망칠까봐 폐관수련을 하는 동굴에 가두자, 동굴 입구를 힘으로 부수고 나온 증조할머니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결국, 죽이거나 무술을 가르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 남지 않자 원로와 당대 고조부는 결국 무술을 허락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셨지..만약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면 자신도 팔 하나를 잃을 각오를 해야 했을 거라고..”­

할아버지의 아련한 회상을 떠올리며, 샤오메이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이후로도 천마는 매번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나 쟁취했다. 떼를 쓰던가, 무력을 쓰던가, 더 강한 무력을 써서라도 말이다.

어느 날 처음 만남 증조부에게 첫눈에 반해 10년간 쫓아다니며 연애를 방해한 끝에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샤오메이도 그것이 거짓말인줄 알았다.

허나..그걸 설명하는 할아버지의 표정은 장난기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기억해 두거라, 네 증조할머니는...엄청난 고집쟁이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말하고는 한다.

하늘 아래에 적수가 없으니 그 여인이야 말로 천마라고.

..하지만 태산도장에서 천마는 조금 다른 의미로 불리기도 한다.

그 고집이 하늘조차 꺽지 못하여, 하늘 아래에 이루고자 하는 바를 뭐든지 이루니...

...이 세상 최강의 고집쟁이. 그것을 천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라버니..괜찮겠지?”

그 고집쟁이 천마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샤오메이는 걱정이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걱정은 기가 막히게도 사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하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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