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51화 (151/266)

〈 151화 〉 스승 쟁탈전 #03

* * *

‘요즘 누님의 상태가 이상하다.‘

거인살해자 마리안느의 동생, 오지에 드 레크투르는 요 며칠간 자신의 누나를 조용히 관찰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누님에게 자신이 모르는 큰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

“누님, 요즘 기분이 좋아 보여? 무슨 일 있어?”

“응? 아니 별거 아니고, 쓸 만한 후배를 하나 키우고 있거든.”

“쓸 만한 후배? 혹시 저번에 말한 그..?”

“맞아, 아그네스의 약혼자, 루드비히 남작가의 아르틴.”

쿵! 소파에 누워서 만화책을 들여다보던 오지에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소파에서 굴러 떨어지고도 벌떡 일어나 마리안느에게 눈을 부라렸다.

“누님, 아직도 걔를 신경써주고 있는 거야? 그 녀석은 내 라이벌이라고..!!!”

“라이벌이라니, 말은 바로 해야지. 아그네스는 네 고백을 거절했고 아르틴은 아그네스랑 꽁냥거리며 연애하고 있는데, 그걸 누가 라이벌 취급 해주냐?”

마리안느의 처참한 팩트폭격에, 오지에는 주먹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었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 나는 아직 달리지 않은 치타 같은 거야..내가 진심을 내면 아그네스도 나한테 반할 테니까..”

“아그네스는 그런 오만한 성격의 남자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

오지에는 칼로 가슴팍을 찔린 것 같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짝사랑의 슬픔이 폐부를 찌르는 것 같이 너무도 아팠다.

“...그런데 누님. 지금도 그 아르틴이란 녀석 가르치러 가는 거지?”

“응? 그야 그렇지. 이번에 천마 그 할망구 콧대를 눌러 줄 아주 끝내주는 기회라니까? 거인살해자 뒤에 천마파괴자라는 이명을 달 수 있는 기회라고!”

신난 표정을 하며 들뜬 것을 티내는 듯이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마리안느를 보며, 오지에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마리안느를 바라봤다.

“근데 왜 지금 거울을 들여다보고 평생 의장행사 외에는 하지도 않던 화장을 다 하고 있어?”

아까부터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만지거나, 얼굴에 분칠하는 마리안느의 행동을 보고, 오지에가 의아한 목소리로 묻자 마리안느의 어깨가 요동치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 어?! 무슨 말이야? 나도 가끔은 화장 하지? 별로 막 대단하게 하는 것도 아니잖아?”

자신과 대화하면서 처음으로 거울에서 시선을 뗀 누님이 말을 더듬자, 오지에는 더욱 수상하다는 눈으로 마리안느를 바라봤다.

“하지만 누님, 매번 가볍게 얼굴에 뭐 바르는 것도 귀찮다고 매일 아침 냉수로 세수하고 끝이잖아. 잠깐..입술에 바른 그거, 립밤이야?”

“아, 아냐! 그냥 아그네스가 요즘 날씨가 안 좋으니까, 입술 틀까봐 바르라고 해서 바르는 거지.!”

실제로 마리안느의 화장이 진한 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이 시대의 귀족여성들에게 기본적으로 권장되는 화장품의 양을 생각해본다면 무척이나 적은 양은 사실이었다.

허나 평생 누님과 함께 살아 온 오지에는 알고 있었다.

늘 전사의 삶을 살며 분칠 같은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하던 누님을,

가끔 피부에 좋다며 진흙탕 위에서 격투술을 훈련하는 것이 마리안느 인생 최고의 피부 관리였다는 사실을.

하도 화장을 거부하는 통에 부모님도 마리안느 누님에게 화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큰 행사가 있을 때만 누님이 눈치를 보고 직접 했던 것이다.

“글쎄, 내가 옆에서 봤을 때는 수업이 아니라 꼭..데이트 하러 가는 거 같은 ㄷ”

──뻐억! 갑자기 꽂힌 마리안느의 묵직한 바디블로에, 오지에는 그 자리에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애도 참! 뭐라는 거야! 자꾸 헛소리 할래!”

“자, 잠깐만 누님..나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ㅇ..”

“엄살 부리기는, 힘 빼고 살살 쳤거든! 나는 수업하러 간다!”

*

그 날 오지에는 방을 치우러 온 하인에게 기절한 상태로 발견됐다.

만약 오지에가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강자가 아니었다면 아마 기절한 상태가 아니라 시체로 발견 됐으리라.

고통스러운 기억을 회상하며, 오지에는 자신의 앞에 놓인 토마토 주스를 쪼옥 빨아 마셨다.

“...아르틴 루드비히, 저 녀석에게 뭔가 있는 게 분명해.”

그 어지간한 남성보다 남자다운 누님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명백히 이상하다. 아그네스에 이어서 누님도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녀석에게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는 게 확실했다.

오지에는 아르틴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밝히기 위해 아르틴을 미행하기로 결심했고, 지금 카페에 앉아 자신의 친구들과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아르틴을 감시하고 있었다.

“지금만 봐도 그렇지, 남작의 3번째 아들이 그 짧은 시간 내에 저 인맥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아르틴의 주변에 있는 인물은, 요즘 하나같이 화제의 중심이 된 적 있거나 아카데미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잘 나가는 인물들이었다.

‘이미 소꿉친구로 유명한 샤오메이와 조르바, 유니콘 유니코르와 대마녀의 손녀 바이올렛과 용사 카이엔..그리고 아그네스 에르멘가르트 황녀님..’

일행의 중심에 있는 아르틴..의 옆에 있는 아그네스를 보며, 오지에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처음 갔던 무도회에서 아그네스를 처음 만난 후로, 오지에는 쭉 아그네스를 짝사랑해오며 마음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그 황녀님이, 리처드 황태자의 명도 거부하고 갑자기 극적인 사랑에 빠져? 말도 안 돼지. 분명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

문제는 아르틴 루드비히가 무슨 힘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한때는 아르틴 루드비히가 장미관 사건을 이용해 ‘몽마’를 사역하거나, 혹은 ‘악마’와 거래해 힘을 얻었거나, 여인을 홀리는 것으로 유명한 ‘바이콘’의 힘을 이용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많은 난봉꾼들이 그런 식으로 힘을 얻어 세상을 어지럽게 만든 것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도 그건 너무 나갔지.’

그렇지만 아르틴은 이미 유명한 유니콘의 계약자였고, 이번에 용사의 동반자로도 임명받아 많은 VIP들이 보는 앞에서 여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앞서 3가지 추측은 전부 꽝인 것이다.

‘..아무래도 좋아, 너를 감시하다보면 분명 답이 나오겠지. 누님과 아그네스 황녀님을 너의 마수에서 꼭 구해내고 말겠다. 아르틴 루드비히!’

오지에는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하며 토마토주스를 쭉 들이켰다.

“...음, 저 녀석, 역시 심상치 않아.”

하나 분명한 것은, 아르틴의 단골 카페라는 이곳이 주스를 달고 맛있게 한다는 점이었다. 미각에 있어서는 인정할 수 있는 남자인 듯 싶었다.

“여기, 토마토 주스 세잔 더.”

*

“흐아암, 오늘도 오후 내내 밀착과외구나..”

나는 기지개를 쭉 켜며 피로를 떨쳐냈다. 요즘은 밤에도 통 잠을 못자는 탓에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것 같다.

뭐, 어쩔 수 없다. 매일 밤 내 여인들과 부족한 데이트를 하느라, 사실상 3시간을 자고 일어나며 생활하고 있으니까.

나는 아그네스가 챙겨준 자양강장제를 들이키며, 연금술 동아리 부실을 쭉 훑어보았다. 동아리 안은 일전에 내가 포인트로 사둔 최신식 연금술 설비에 눈에 들어왔다.

“..이 좋은 기구들을 안 쓰고 방치하는 것도 좀 그런데, 뭐라도 가볍게 만들까?”

방치하려고 방치해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훈련하고 수업하고 데이트하다보니 장비를 만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내버려뒀을 뿐.

“..근데 몇 주를 방치했는데 먼지가 하나도 없네? 누가 와서 치우나?”

이상한 일이었다. 연금술 동아리는 명목상이고 사실상 우리 친목 동아리에 가까워서 이런 수고를 해 줄 사람이 없을 텐데?

─드르륵!

“안녕~! 아르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해 볼까?”

“아! 안녕하세요, 세니아 선생님.”

세니아 선생님이 또 책을 한 가득 들고 오자, 나는 황급히 세니아 선생님에게 달려가 그 짐들을 받아 대신 들어드렸다.

“어머, 역시 아르틴은 센스가 있네! 오래 기다렸니? 좋은 책을 찾느라 조금 늦어버렸네!”

“괜찮아요, 저도 그냥 연금술 장비들 들여다보면서 쉬었거든요. 이럴 때 쉬어줘야죠.”

“그래!? 장비들을 들여다보고 있었구나~? 후후후.”

..뭐지? 내가 장비를 언급하며 적당히 둘러대자, 세니아 선생님이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귀를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왜, 왜 그러시나요?”

“아니, 그냥 뭐..장비에 이상한 점은 못 느꼈니?”

“이, 이상한 점이요?”

“그래! 이상한 점!”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세니아 선생님은 마치 오늘 뭐 바뀐 것 없냐는 여자들의 질문처럼 내게 장비의 변화를 알아봐달라는 듯 물어보기 시작했다.

‘뭐지? 겉으로 봐선 변한 건 없어 보이는데?’

이상한 점이라면, 그냥 먼지가 하나도 없다는 점뿐인데..

“..혹시, 세니아 선생님께서 장비를 관리해주셨나요? 먼지가 하나도 안 보이던데.”

“딩동댕! 역시 아르틴은 눈치도 빨라! 나랑 내 조수랑 클레어가 번갈아 가면서 매일 청소했거든! 이런 대단한 장비를 어디가서 만져보겠니?”

“아..그, 그렇군요..아니 그런데 클레어는 왜?”

“응? 몰랐니? 클레어도 저번에 우리 동아리에 들어왔잖아!”

아니 시발 이게 무슨 소리야. 클레어가 우리 동아리에 왜 들어와?

“정말 모르나 보구나? 조르바가 부회장의 권한으로 가입시켜줬는데? 너한테 말한다고 하더니 깜빡했나보다.”

“아...조르바 녀석이...그렇군요...”

언제부터 조르바가 이 동아리의 부회장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모르는 사이에 클레어를 우리 모임에 끼워 넣다니..

‘..아니, 챙겨달라고 한 건 나니까 별로 할말도 없나?’

저번에 클레어랑 카이엔 좀 챙겨달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헤헤헤.”

“..왜, 왜 그러세요 선생님?”

그런데, 세니아 선생님은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듯, 몸을 살짝 배배꼬며 나를 힐끗힐끗 바라 보고 있었다.

“저기 아르틴, 저런 대단한 설비를 그냥 썩히는 건 무척이나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니?”

“...어, 그야 그렇긴 한데 왜...”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장비라는 것은 써주지 않으면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노후화되기 마련이니까! 썩히는 것은 많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니?”

“저, 선생님? 가까워요, 많이, 많이 가까운데..!”

내가 작게 동의하자, 세니아 선생님은 내 코앞까지 다가와 내 얼굴을 바라보며 귀를 격렬히 쫑긋거렸다.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동시에 내 가슴을 압도적인 질량의 부드러운 살결이 짓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묘하게 달콤한 세니아 선생님 특유의 체취도 코를 살랑살랑 간지럽혀 나를 묘하게 흥분 시키고 있었고.

“그러니까아..저기 아르틴...♡”

“네, 네에?”

“저 장비들..내 실험에도 조금씩 써보면 안 될까? 응? 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실험실은 장비들을 공용으로 쓰기도 해야 하고, 순번도 막 밀리고, 닦아 주면서 무척 아깝기도 하고..응?”

어느새 나를 벽까지 몰아붙인 세니아 선생님은, 나를 벽쾅자세로 몰아 붙인 채로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맞다, 이 선생님도 교수였지..!’

이 연금술 장비는 나랑 조르바가 사비로 산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니 세니아 선생님께서도 함부로 쓰시긴 뭐했을 터. 설마 이 빌드업을 위해 나에게 그렇게 상냥하게 굴고 부축도 해줬던 건가..?

‘..아니, 세니아 선생님이 그렇게 이해타산 적으로 굴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지금도 그렇다, 로브로도 가리지 못한 폭유로 나를 압박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가슴이 닿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 듯 오로지 장비에 관한 열정 하나로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쓰, 쓰셔도 되요! 저한테 허락 안 받아도 되니까 마음껏 쓰세요!”

“정말? 정말이지 아르틴?! 꺄악! 너무 좋아! 저 장비 하나하나가 1년치 예산보다 비싼데! 우리 복덩이 제자! 선생님이 너무 사랑하는 거 알지♡”

“으앗?!”

세니아 선생님은 얼마나 기쁜지, 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내 머리에 볼을 비비기 시작했다.

‘수, 숨막혀 죽을 것 같은데, 이대로 죽으면 무척 행복할 것 같아..’

덕분에 선생님의 가슴골에 완전히 얼굴을 파묻은 나는, 퀘퀘한 로브로도 가릴 수 없는 세니아 선생님의 풍만한 매력에 흠뻑 취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땀으로 푹 젖은 로브의 가슴골에 코를 박고 체취를 만끽하며 이 폭유에 얼굴을 비비고 있다는 소리다.

‘..조금만 이러고 있어도 바람은 아니겠지?’

나는 애써 자기 스스로에게 합리화하며, 이 스킨쉽을 여유롭게 즐기기로 했다.

한 넉넉하게..삼십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꺄아! 꺄아! 우리 아르틴 최고!”

‘세니아 선생님 최고십니다..’

이곳에 불행한 사람은 없으니,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 완성된 셈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