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세니아 리브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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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분 좋은 숨 막힘은 몇 번을 당해도 행복하다. 아마 이대로 죽으면 호상이겠지.
하지만 나는 선생님 가슴에 코를 박고 죽으러 온 게 아니니, 과감하게 가슴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으응~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정말로 대학원생 할 생각 없어?”
“아뇨..대학원생 보다 할 일이 많아서, 그건 무리일 것 같네요.”
“아쉬워라.. 아르틴이 오면 즐거울 텐데. 요즘 장미관 이후로 분위기가 안 좋단 말야..”
거절하자 시무룩 하는 세니아 선생님은 마치 산책을 거부당한 대형견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단호히 거절해야만 했다.
당장 마왕을 잡으려고 빌드업 쌓아도 모자랄 판에 연금술 대학원생? 5년간 세니아 선생님 찌찌나 주무르다 죽겠지.
“그럼 대신 연금술 동아리 활동이라도 열심히 해주면 안 돼? 응? 매일 나랑 찰스랑 클레어만 나와서 청소한단 말야!”
“..알았어요, 앞으로 선생님 보러 최대한 찾아갈 게요. 그러면 괜찮죠?”
“응! 아르틴은 역시 착하구나! 내 부탁도 잘 들어 주고!”
누가 보면 조울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 말 한마디에 희비가 명백히 엇갈리는 선생님의 모습.
이상한 것은 아니다. 무의식 속의 선생님의 자아가 나타난 만큼, 저건 여태까지 내게 말하고 싶었던 속마음일 것이다.
‘..여태 나를 대학원생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그건 좀 소름 돋는데.’
하지만 다른 교수들과는 다르게 내게 단 한 번도 대학원생을 직접 권하신 적은 없으니, 아마 권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참고 계셨던 거겠지.
왜 직접 권유하지 않았는가. 그 이유를 추리하는 것은 너무 쉽다.
‘..선생님은 엄청 상냥한 성격이니까 그렇지.’
세니아 선생님이 상냥한 성격이라는 것은 소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친절한 미인 엘프 선생님과 실제로 교류하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1회차에 내가 학교를 퇴학하겠다고 상담을 했을 때는 선생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사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게임 npc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내 오만이 담긴 착각이었다. 무척이나 작위적인 성격이지만, 세니아 선생님은 내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인간상 중 하나였다.
“선생님, 혹시 저에 대해 알 수 없는 기억이나, 이유 모를 아련한 감정 같은 게 있으신가요?”
“응? 뭐야 그게? 아련한 감정이라니? 혹시 아르틴은 나랑 어릴적 헤어진 소꿉친구 같은 거니?!”
당연한 일이다. 2회차에도 3회차에도 4회차에도, 나는 선생님과 교류를 최대한 멀리 해왔으니 기억이 새겨질 리가 없지.
“그럼 혹시 제 재능이 탐나서 저를 잘 대해주시는 건가요?”
“으음..선생님은 아르틴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재능이 탐나서 잘해준다니?”
“..저를 대학원생으로 만들고 싶어서 잘해주시나요?”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대가를 바라고 잘해주는 건 나쁜 일이라고!”
밝게 대답하는 선생님의 표정에는 조금의 어둠도 보이지 않는다. 거짓을 말하는 머뭇거림이나 이중적인 속내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주인님, 저건..”
“네가 말 안 해도 알아. 저건 틀림없는 진심이지.”
시르카로 무의식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세니아 선생님의 무의식이 말하는 것은 진실이라고.
아니, 애초에 모든 무의식이 이렇게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럼, 선생님은 절 좋아하시나요?”
“..어머?! 티 났어!? 부끄러워라..! 언제부터 알았어?”
자신의 중요한 감정, 숨기고 싶은 기억이나 약점 따위에 관련된 기억을 사람은 남에게 내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 실제로 몽마들이 사람의 정신을 망가트리기 위해서는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야 하니까.
그런데 세니아 선생님의 무의식은 맑고 깨끗하다. 타인에 대해서 의심하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타인에게 선의를 베푸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여태까지의 나는 그런 선생님이 가까이 다가가는 게 부담스러워 4회차 까지 친해지지 않았고 말이다.
“자~ 선생님의 대답을 들었으니 잘 됐네요! 순애 섹스 확정!”
“...”
“..주인님? 왜 그렇게 표정이 진지하세요?”
시르카는 모를 것이다. 아니, 이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 이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차오르는 이유를 말이다.
“괜찮아 아르틴? 표정이 많이 나빠보여..선생님이 안아줄까?”
“...네, 안아주세요. 포근하게 안아주세요.”
세니아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권유하자, 나는 양팔을 벌려 선생님을 끌어안았다.
평상시라면 포옹했을 때 느끼는 가슴의 부드러움에 즐거워했을 테지만..
‘..선생님은 그런 선생님들과는 달라.’
나는 몸을 감싸는 세니아 선생님의 따뜻한 온기로 PTSD를 뛰어 넘고자 하고 있었다.
**
세상에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자신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부채의식이 떠오르고, 자존감과 자신감이라는 감정이 꺾인 정신적인 낙오자.
인간 양희민은 바로 그런 사람에 가까웠다.
슬픈 점은, 그게 선천적으로 부정적인 성격에서 온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시작은 별거 아니었다. 기억도 희미한 어린 시절, 보육원의 아이들과 하찮은 것으로 말다툼을 벌였었다.
문제는 상대방이 희민과 말싸움에서 이기지 못하자, 짱돌을 들고 덤벼들었다는 점일까.
“으아아앙! 으아아아앙!”
“어, 어머 희민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니?!”
보육원의 선생님이 왔을 때, 짱돌을 들고 덤빈 남자애는 코피를 흘리며 바닥에서 울고 있었다.
그리고 희민의 손에는 남자애가 휘두르는 것을 뺏은 돌멩이가 손에 쥐어져 있었고, 그 사건으로 희민은 보육원의 문제아로 낙인 찍혔다.
억울했다. 먼저 때린 것은 남자아이라고 설명도 했고, 돌멩이도 녀석이 들었던 거라고 설명도 했다.
허나 동기들과 사이가 좋았던 남자애는 동기들과 말을 맞춰 희민이 먼저 돌을 들고 덤벼들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모든 아이들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니, 선생님도 보았는데 언제까지 거짓말을 할 거니? 원장 선생님에게 만큼은 진실을 말하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말은 조용히 자신의 탓으로 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얌전히 넘어가자는 어른의 강요였을지도 몰랐다. 허나 희민은 그때나 지금이나 반골의 기질이 있었다.
“..아뇨, 전 안했어요.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
자신이 납득하지 않은 것에 순응할 수 없었다. 그래서 희민은 끝내 자신의 혐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거 봐요, 저 재수 없는 애가 또 싸웠다는 거 있죠? 민수의 코피를 터트렸데요!”
“다른 애들은 애들끼리 잘 지내는 데..원장 선생님도 포기했으니 어쩌겠어요?”
결국 그 사건으로 시작해, 아이들과 사이가 나빠졌고, 희민은 결국 보육원을 퇴소할 때 까지 문제아로 남게되었다.
──아무도 희민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아이들의 계급사회에 있어서 부모님도 없고 돈도 없는 가난한 보육원 아이는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희민은 학창 시절 내내 아이들의 멸시 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다.
“선생님! 재 냄새나요!”
“선생님! 희민이가 저희보고 씨발이라고 욕해요!”
“맞아요! 아까 운동장에서 놀 때도 저 보고 병신이라고 욕했어요!”
희민은 그런 적이 없었다. 보육원에서의 생활에서 희민은 얌전히 지내지 않으면 남들에게 욕을 먹는 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저 즐거운 놀이로써, 희민은 어느새 아이들을 때리고 괴롭히며, 물건을 훔치고 욕을 뱉는 보육원의 아이로 자리 잡았다.
학년이 지나도 평가는 바뀌지 않는다. 선생들은 문제가 생기면 희민을 의심했고, 보육원에 전화해 사실을 알렸으며, 보육원의 선생님들은 그런 희민을 혼내며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보내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뭐? 꿈이 경찰관이라고? 애들하고 싸우지 않는 법부터 배우는 게 어떻겠니?”
희민의 초등학생 때의 꿈은 경찰관이었다.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그것을 비웃으며 희민의 행실을 탓했다.
“야, 네 성적에 무슨 교사야 교사! 맨날 싸움이나 무슨 교사를 하겠어? 됐고! 가서 오늘 지각한 벌로 화장실 청소나 해, 알겠어?”
중학생 때의 꿈은 교사였다. 자신이 겪은 부조리를 바로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 꿈을 들은 중학교 2학년 당시 담임선생님은 희민의 생기부에 반사회적인 행실을 보이며 학습태도가 불량하고 난폭한 성격이라고 적었다. 이유는 희민에게 단 한 번도 촌지를 못 받았기 때문이다.
“뭐?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야, 네가 무슨 대학이야. 대학합격하면 갈 돈은 있고? 그냥 고졸 후 취업 한다고 적어.”
고등학교 때의 꿈은 대학에 가는 것이었다. 허나 잘 사는 집의 아이들만을 챙기기 바빴던 담임선생님은 희민의 진로희망란에 공무원을 적고 1분 만에 개인 상담을 끝내버렸다.
약 20년간 가해진 억압된 생활과 폭력에 노출된 학교생활,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어른들 사이에서 희민의 정신에는 자연스럽게 불신과 무기력이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자신은 무엇을 해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무기력함.
사회의 어른들은 자신에게 관심이 없을 거라는 불신감.
그 두 가지 부정적인 감정은 사회에 나가서도 이어졌고, 유일하게 친구라고 믿은 사람에게 배신당한 후에는 자신이 쌓아온 저 두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확신했다.
당연히, 우연한 계기로 소설에 아르틴으로 살게 된 후에도 이러한 감정은 당연히 이어졌다.
믿을 것은 자신뿐이며, 조용하고 죽은 듯이 사는 것이 자신의 본질이다.
..마침 빙의된 것도 아르틴이라는 것은, 작가조차 자신을 잘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니까.
그런 1회차 당시의 아르틴에게 가장 중요했던 두 사람이 있었다.
첫 번째는 1회차 내내 자신을 따라다니며 인간 자체의 불신과 마음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무력감을 지워준 샤오메이였으며,
“아르틴, 오늘도 표정이 어두운 데 혹시 무슨 일 있니? 선생님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뭔가 없을까?”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의 선생님에 대한 불신을 지워 준 세니아 선생님이었다.
상냥하고 밝으며 언제나 학생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
인간 양희민이 그렇게 꿈꿔왔고, 결국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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