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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60화 (160/266)

〈 160화 〉 하렘을 관리하는 법

* * *

“그러니까, 제가 여태까지 들은 말을 정리하자면, 세니아 선생님을 살리기 위해 저와 상담하려고 했는데 시르카가 그 이상한..빔을 아르틴에게 쏜 탓에 세니아 선생님을 덮쳐서 뒤늦게 허락을 구하신다는 거죠?”

“정말,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야..”

나는 무릎을 꿇고 아그네스를 올려다보며 최대한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하렝을 더 이상 무지성으로 늘리지 않겠다고 선언한지 1달도 안 돼서 올가와 세니아 선생님을 하렘에 추가한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화 안났어. 아그네스?

그런데 고개를 들었더니 아그네스의 표정은 놀랄 만큼 평온해 보였다. 저번의 일도 있어서 분명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운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예상하고 있었어요.”

“..예상을 했다고?”

“아르틴이 여자랑 단 둘이 있는데 아무런 일도 안 생기는 게 이상한 거 아니겠어요?”

“내, 내 이미지가 그 정도야?”

누구를 색마로 아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가!

하지만 실제로 정분이 나는 것에는 6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서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마리안느 왕녀님까지는 각오했는데, 만약 천마님이었다면...할머니는 좀 그렇잖아요. 아르틴?”

“그, 그렇지! 나도 천마님하고 이상한 짓 할 생각 없어!”

“하지만 세니아 선생님하고도 이상한 짓 할 생각 없었는데 이렇게 되셨잖아요? 아르틴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

팩트로 두들겨 맞으니 뼈가 사무치게 아팠다. 내 연인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 한다는 사실은 더더욱 가슴이 아팠고.

“..더, 더는 늘리지 않을 게. 정말로!”

“아르틴, 지키지 못 할 약속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내 바닥난 신뢰도 탓일까, 아그네스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너무 마음이 아플 때 쯤, 아그네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만 궁상떨고 일어나요. 멋진 모습만 보여줘도 모자란데 이렇게 무릎 꿇고 시무룩해 있으면 어떻게 해요 아르틴?”

“하, 하지만..”

“착각하지 말아요, 아르틴을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니라, 다른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다른 쪽?”

아그네스는 내 손을 잡고 소파에 나란히 앉더니, 내 가슴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자세를 잡고는, 내 가슴을 베개처럼 베고 기댔다.

“..아그네스?”

“얌전히 있어 봐요. 이 자세가 딱 좋으니까.”

아그네스의 단호한 말에 내가 입을 다물자, 아그네스는 편안한 자세로 내 품에 자리 잡은 후 기지개까지 켜기 시작했다.

”하나 물어봐도 되요 아르틴?“

“...어, 어떤 거?”

“왜 매번 새로운 삶을 살 때 마다 다른 것을 시도하는 거예요?”

“...”

갑작스러운 날카로운 질문에, 내가 말을 잃자, 아그네스는 예상했다는 듯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잘 하던 검술 관두고 마법과 연금술 배우고, 마법과 연금술 그만두고 왕국식 전투법 배우고, 이번에는 공화연방의 무술까지.”

“...”

“1회차 때는 사냥꾼의 전투법까지 배웠다면서요? 한 가지에 20년을 투자해도 부족할 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새로운 걸 해 온 거예요?”

“그건...”

“그건?”

아그네스가 되물었지만, 나는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이 말은, 폐부를 깊게 찌르는 칼날처럼 아픈 질문이었으니까.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잖아?그래서 그렇지. 다양한 것을 해보면 좋잖아?”

“흐응..그런가요? 아르틴?”

적당히 둘러댄 대답을 했지만, 아그네스의 눈을 바라보자 나는 내 마음이 전부 읽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누군가에게 들었지, 나는 갑작스러운 일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잘 못한다고.

그럼 지금 내 표정은 어떤 표정일까? 알 수 없었다.

“..좋아요. 그런 걸로 해둘까요?”

그런 내 표정에서 무슨 감정을 읽은 건지, 아그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품안에서 일어나 내 볼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부드러운 아그네스의 입술의 감촉과, 아그네스의 온기가 가슴에 남아 느껴지자, 순간 떨리던 심장이 조금 진정되는 기분이 든다.

“바이올렛하고는 이야기가 끝났어요. 이제 아르틴을 독점하는 것은 포기하기로 말이죠.”

“..그게 무슨?”

“애초에, 5번이나 새로운 삶을 살아온 아르틴이 얼마나 많은 여자를 꼬셨겠어요? 그 여자들이 나타날 때 마다 매번 이렇게 아르틴이 무릎 꿇게 할 수는 없잖아요?”

..끄윽, 방금 전 말과는 다르지만 역시 급소를 찌르는 한 방이다.

만약 전생에 만났던 여자가 올가처럼 다가온다면, 나는 완강히 거부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힘드니까.

“그 대신, 아르틴은 언제나 멋지고 늠름한 저희의 연인으로 남아주셔야 해요. 아시겠죠?”

“아그네스..”

“그러니까, 이번 리처드 오라버니의 시험도, 멋지게 통과해주셔야 해요. 그래야 제가 아르틴을 제일 먼저 약혼자로 선언할 수 있잖아요?”

...나는 외로움에 미친 듯이 약하다. 게다가 나를 좋아하며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차마 밀어내지 못한다. 아마 전생의 기억들 탓이겠지.

양희민의 삶에서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배려와 친밀함을 사람에게 느낄 때 마다,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내 옆에 꽉 붙잡아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떨까, 그게 진짜 사랑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마워 아그네스.”

“흥, 가장 처음으로 사귄 연인이라는 타이틀은 괜히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고요?”

“..하하, 그렇네. 나 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아.”

하지만 이건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아그네스에게 느끼는 감정은 누가 뭐라 해도 분명 사랑이었다.

그 사랑을 주체할 수 없어서, 나는 내 품을 벗어난 아그네스를 다시 한 번 꼭 끌어안았다.

“..세니아 선생님하고 야한 짓만 하면 안 돼요? 제대로 공부도 하실 거죠?”

“나만 믿어, 내가 누군데? 혼자서 마왕성까지 뚫고 도착한 남자라고? 리처드 황태자라고 해도 내 라이벌은 아니야.”

“믿을게요. 아르틴이 한 말이니까.”

그 후로 나와 아그네스는 2번 정도 더 입술을 맞추며 서로의 온기를 확실히 새기고 나서야 멀어질 수 있었다.

“아, 내일 올가가 아르틴을 보고 싶다고 연락을 했어요. 중요한 일이니까 카이엔하고 같이 와달라고 전해달라고 했고요.”

“..올가가 나를? 카이엔까지 부른 걸 보면 용사에 관한 일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내일 교습이 끝나고 교회에 들러주세요. 아셨죠?”

올가는 저번에 공식적인 행사를 주관하기도 하였으나, 대외적으로 올가는 비밀리에 용사를 임명하기 위해 잠깐 아카데미에 들렀을 뿐, 다시 북부 교단으로 돌아간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실제로는 올가와 비슷하게 생긴 카게무샤를 돌려보낸 거였고 올가 본인은 이곳에 남았지만.

“알았어, 그 보다 좀 더 아그네스랑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안 돼요. 오늘은 유니코르랑 바이올렛 차례잖아요? 하렘의 질서를 지켜주셔야죠.”

힝. 분위기가 좋아 조금 이어나가려고 하자, 아그네스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주 주말에는 제 차례니까. 대신 그때는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요. 아셨죠?”

“알았어, 고마워 아그네스.”

하지만 남들에게 하듯이 단호하게 굴면서도, 간간히 보여주는 저 수줍은 모습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귀여웠다.

“아, 아르틴? 오늘은 차례가 아니라니..우웁..츄웁..”

그래서 나는 기어코 한 번 더 진한 입맞춤을 하고 나서야 아그네스를 놓아줬다.

아그네스는 입으로는 싫다고 말하긴 했지만..그리 격렬히 거부하진 않았다.

*

다음 날 오전, 평화로운 공부의 일상이 시작되어야 했을 터였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아하하! 다들 안녕! 오늘 정말 날씨가 좋지 않니? 모두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야!”

“..선생님 지금 밖에 비오는 데요?”

“어머, 그런가? 하지만 비도 좋잖니! 비가 와야 나무들도 무럭무럭 자라기 마련인 걸!”

유난히 하이 텐션으로 조회를 시작한 세니아 선생님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간간히 조회 중에 나와 눈을 마주칠 때 마다 얼굴을 살짝 붉혔지만, 어디 아프냐는 학생의 질문에도 재치있게 잘 대답하며 조회를 진행하셨으니까.

“아르틴? 조금 있다가 나랑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 무슨 일이야 조르바? 네가 나를 다 찾고?”

첫 번째 문제는, 다름아닌 조르바에게서 시작됐다.

아침조회가 끝난 직후, 조르바가 내게 다가와 작게 내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문제인데? 누가 지랄해? 아니면 상급생이 갑질해? 그것도 아니면 사람 하나 담가달라는 거야?”

“...아르틴 너 너무 과격한 상상만 하는 거 아니냐? 그런 폭력적인 문제가 아니야.”

“그럼 무슨 문제인데 이렇게 속닥속닥 거려? 샤오메이와 카이엔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잖아.”

샤오메이는 자신 모르게 속닥거리는 우리 둘을 보면서 의아한 눈으로, 그리고 카이엔 저 새끼는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조르바를 질투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남자랑 이렇게 가까이 붙어서 귓속말 하는 걸 질투하는 건가? 그럼 진짜 한 대 쎄게 때려주고 싶을 것 같은데.

“...여..야.”

“...뭐라고?”

그런 카이엔의 눈빛을 무시하고 조르바에게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댄 나는, 조르바가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못들은 거지? 천하의 조르바 펠카스가 여자가 문제라고..?”

조르바 펠카스가 누구인가. 언제나 자신의 주변에 여자가 끊이질 않고, 몇 번 실수를 해서 배에 칼을 맞긴 해도 자신의 하렘을 철저히 관리하는 프로중의 프로가 아닌가?

그런데 그 조르바가 여자 문제로 골치를 앓다니? 오히려 내가 상담해야 할 판인데?

“...조용히 해,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아르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조르바는 말없이 눈동자를 우측을 향해 흘기자, 나는 그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조르바님! 오늘은 무슨 수업을 들으실 건가요? 저번에 추천해 주신 다도의 역사는 너무 좋았던 거 있죠!”

그곳에는, 조르바를 이상할 정도로 과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클레어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너 때문에 클레어가 나한테 반했잖아!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고!”

“천하의 조르바가? 클레어 혹시 가슴에 단검 챙기고 다니니?”

“..? 단검은 왜?”

아 실수, 스포일러를 할 뻔했다.

‘그야 네가 몇 년 후에 칼빵 맞는 사람 중 하나가 품에 칼 집어넣고 다니는 얀데레니까 그렇지.’

나는 그런 말을 조심스럽게 삼켰다. 괜히 남녀 관계에 끼어 들어서 일어날 일을 바꾸기 싫었고...솔직히 조르바는 배에 칼좀 꽂혀봐야 정신을 차리기도 하니까.

“아냐, 별거 아니니까 그냥 무슨 일인지 설명해줄래?”

“...정말 별거 아니냐? 진짜로?”

조르바가 의심스럽게 물었지만, 나는 모르는 척 어깨를 으쓱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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