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천마는 수치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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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얼마 전, 내가 카이엔과 용사 수련 한다고 3일 구르는 동안 클레어를 조르바와 연인들에게 맡긴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제, 제가 여러분과 감히 같이 다녀도 될까요..? 카이엔도 없는데..”
“괜찮슴다. 카이엔의 친구는 저희의 친구이기도 하니까요. 그렇지 않슴까?”
“후후, 맞아. 귀여운 아가씨랑 같이 다니게 되어서 오히려 좋은 걸?”
처음 일행들이 직접 권유했을 때 클레어는 전에 본 적 없는 화사한 얼굴로 좋아했다고 한다.
당연하겠지, 클레어는 기본적으로 카이엔을 제외하고는 친구가 없는 편이니까.
원작 메인히로인답게 클레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수식어가 어울리는 미인에, 성격도 유들거리고 적이 없지만 학기 초창기부터 평민이라고 무시하는 귀족들에게 찍힌 탓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원작에서도 클레어는 카이엔의 하렘이 늘어날수록 그들과 친해지며, 3학년 쯤 가서는 가장 친구가 많은 동료가 되어 카이엔을 인맥으로 도와주기도 한다.
아무튼, 그런 클레어가 학기 초반에 카이엔이 없으면 혼자 외롭게 있었을 테지만, 내 부탁을 받은 애들은 클레어를 열심히 데리고 다니며 도와줬다고 한다.
“클레어, 찻잔에 입을 가져다 대는 게 아니라, 입에 찻잔을 가져다 대는 겁니다.”
“그, 그렇군요..! 저는 처음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조르바님!”
“클레어, 거기 숫자 하나를 계산하는 걸 틀렸잖아? 이 부분을 다시 적용하면..”
“..우와! 정말 정답이 나왔어요! 조르바님은 무척 똑똑하시네요..!”
문제는 조르바 녀석이 평소에게 여자들에게 대하듯이 클레어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풀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몇 번 말했지만, 조르바 녀석은 양아치처럼 입고 다녀서 그렇지 카이엔이나 리처드 황태자처럼 로판에 나와도 어울릴 법한 미남이다.
“저 조르바님. 오늘 5교시 수업은 같이 들어도 될까요..?”
“조르바님, 연금술의 실습에서 실험을 같이할 사람이 필요한데..”
“조르바님! 제가 오늘은 직접 도시락을 싸왔는데요!”
“조르바님!”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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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일 아니야? 그냥 늘 하던 대로 네 하렘에 클레어 추가하면 되는 거잖아?”
“젠장, 카이엔 좋다고 따라다니는 걸 알 애들은 다 아는데 사귀면 내가 무슨 평가를 받겠어!”
“이제는 남의 여자도 뺏기 시작하는 양아치로 알겠지.”
“아르틴, 정말 안 도와줄 거야?”
내가 담담하게 말하자, 조르바 녀석은 어떻게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생긴 걸로 봐서는 유부녀도 후리고 다니게 생긴 놈이 그렇게 말하니 조금 웃겼다.
“그렇게 말해도 나보고 어떻게 도와달라고? 그냥 네가 깔끔하게 거절하면 되잖아?”
“아직 제대로 고백을 받은 적도 없는데, 철벽을 쳐서 여자를 울리라고? 그건 내 신조랑 어긋나 아르틴. 난 여자를 함부로 울리지 않아. 페미니스트라고!”
“..지랄은,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그럼 뭐 하자는 건데?”
이 빎어먹을 자신의 헛소리를 끊자, 조르바는 숨을 푹 내쉬더니 우리를 수상하다는 눈으로 지켜보는 샤오메이를 힐끔 바라보며 속삭였다.
“아르틴 네가 요즘 여인들과 문란하게 지내잖아? 그 실력으로 클레어도..”
“기각. 지랄 마시오.”
“그러지 말고! 진짜로 하렘에 들이라는 게 아니라, 내게 관심이 멀어지게 만..”
“싫어. 클레어는 내 취향이 아니야.”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당장 전날 아그네스랑 하렘을 늘려도 허락을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지성으로 늘릴 생각은 없다.
게다가, 클레어는 너무...어리게 생겼다.
나이는 우리 또래인데, 몸이 마치 2차 성징이 이제 막 온 듯한 모습이고, 그 모습이 5년 후 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거유와 폭유를 수호하는 유니콘의 계약자로써, 그런 여인을 내 하렘에 들일 수 없어 거부했다.
“아..이런, 곤란한데. 카이엔에게 반한 아이만 아니였다면 받아들일지 고민했을 텐데..”
“..정작 카이엔은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 같은데?”
사실 이 모든 문제는, 카이엔이 원작처럼 자신의 하렘을 만들고 여인들과 깊은 교감을 나누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래, 저 녀석이 게이인 것이 문제라는 점이다. 카이엔이 남자만 아니었다면, 혹은 동성애자만 아니었다면 이 모든 문제는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원작 하렘의 여인들하고 깊게 교류도 안 하고, 바이올렛하고 아그네스는 메인 히로인인데 오히려 질투까지 하고, 저 새끼는 뭐 하는 걸까?’
내가 조금 빡친 마음에 카이엔을 노려보자, 나를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던 카이엔과 눈이 마주쳤다.
“...”
발그레. 카이엔과 5초 이상 눈을 마주치자, 카이엔 십새끼가 얼굴을 붉혀서 나는 황급히 눈을 돌렸다.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더 기분이 더러워졌다.
‘저 새끼가 만악의 근원이야. 지난번에 코피만 터트리는 게 아니라 광대뼈까지 함몰 시켰어야 하는데..!’
카이엔의 일방적인 사랑에 주먹이 울던 나는, 그 순간 아주 좋은 비책이 떠올랐다.
“..잠깐, 조르바. 좋은 생각이 났어. 문제는 클레어가 너에게 반했다는 거잖아?”
“그렇지?”
“그럼, 클레어가 다시 카이엔에게 반하게 하면 되는 것 아니야?”
카이엔은 하렘 소설의 주인공. 지금은 엇나갔을 뿐 본래는 클레어와 분위기 좋은 남녀사이가 되는 것이 운명이었다.
운명, 세니아 선생님이 매번 죽음의 위기를 반복하던 것도 운명이라면, 상황만 주어지면 카이엔과 클레어가 다시 썸타는 관계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도 카이엔에게 스토킹 당하는 나날은 드디어 안녕인 것이다!
“방법은 있는 거야 아르틴? 저 녀석, 너를 보는 눈빛이 아까부터 심상치 않던데.”
“...닥쳐, 중간고사 끝나고 카이엔하고 클레어를 연애하게 만들자. 그 동안 너는 클레어랑 지금 거리를 유지해.”
“아르틴, 너는?”
“나는...카이엔을 맡아야지. 저 녀석은 날 좋아하니까.”
이를 악 물었다. 이 모든 것은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되돌리기 위한 거대한 대업을 위한 작은 희생이다.
“..고맙다, 아르틴!”
“야, 어깨 끌어안지 마! 카이엔이랑 클레어랑 샤오메이가 동시에 존나 복잡한 눈으로 쳐다보잖아!”
조르바가 감동을 받아 나를 끌어안은 탓에 작은 소란이 벌어지는 것이, 오늘 아침에 일어난 첫 번째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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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벌어진 두 번째 사건은 무엇인가?
사건에 대해서 설명하기 앞서, 우선 시마다 류스케라는 교수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공화연방에서 가장 이름난 무술 도장은 공화연방의 다섯 기둥이라고 불리는 오신장을 연거푸 배출해낸 태산도장이다.
허나, 수백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공화연방에는 수백 가지의 무술이 존재하고, 시마다 류스케 교수는 그 중에서도 시마다 공수도를 기반으로 하는 시마다 도장의 가주였다.
그는 원래 가문의 도장을 이끄는 절정의 고수였지만, 아카데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수직을 제안하자 받아들였다.
‘이건 공화연방에 태산도장 말고도 뛰어난 무술 가문이 있다는 것을 알릴 기회다!’
늘 태산도장의 이름에 억눌려 이류 도장 취급 당해왔던 가문을 일으킬 좋은 기회였고, 시마다는 시마다 공수도를 널리 알리겠다는 큰 포부를 지니고 아카데미에 왔다.
그렇게 아카데미에 오게 된지 10년, 그는 직계제자(대학원생) 몇 명을 이름난 고수로 키워내면서, 성공적으로 아카데미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런 시마다 교수가 올해 1학년을 상대로 한 무술 강의를 연 것은, 다름 아닌 올해 입학한 린 샤오메이 때문이었다.
‘태산도장의 후계자? 무신의 딸? 내 손으로 직접 어느 수준인지 평가해주마!’
태산도장에 악의는 없으나, 어느 정도 라이벌 의식이 있던 시마다 교수는 샤오메이가 점수를 위해 무술 강의를 신청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강의에서 샤오메이를 잔뜩 테스트하며, 만약 기회가 된다면 자신의 시마다 공수도를 직접 가르칠 생각까지 있었다!
‘...후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시마다 공수도가 태산도장의 무술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지!’
이는 하늘의 주신 기회가 틀림없다! 커다란 야망을 이룰 기회가 오자, 시마다 교수는 기쁜 마음으로 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실제로 시마다 교수의 계획은 아주 제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심지어, 많은 교수들이 침을 흘리는 손이 닿지 않은 천재, 아르틴 루드비히까지 자신의 수업에 참가하기 시작하자 시마다 교수는 속으로 승리의 환호성을 울렸다!
‘제국의 여기사와 대련할 때, 자세는 제법 좋았지만 무술의 기본기가 부족했지! 지금이라면 시마다 공수도를 아르틴 루드비히에게 전수할 기회다!’
시마다 교수는 새로운 미래의 직계제자(대학원생)을 상상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2교시 수업, 무술의 기초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술에 있어서, 보법은 아주 중요하다. 어떻게 서고 움직이냐에 따라 힘의 전달이 달라지고 자세의 안정도가 바뀌기 때문인데..”
“그런 것 치고, 시마다 공수도는 꽤 보법이 형편없던데...”
“...이런 식으로, 하체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내지르는 주먹은, 평소랑은 다른 위력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보법은 유파마다 형태가 달라 함부로 익혀서는..”
“저런..태산도장의 천마군림보는 어떤 보법을 익혔어도 조화롭게 익힐 수 있는데..”
“...”
시마다 교수에게서 조용히 억누른 살기가 느껴지자, 학생들은 부들부들 몸을 떨며 분위기를 살펴야만 했다.
“.....주먹을 쥘 때도 파지법은 각 유파마다 다르지만, 우리 시마다 유파는 파괴적인 위력을 위해 이런 식으로 말아서..”
“와, 저렇게 쥐면 뼈 부러지기 쉬울 텐데. 진짜 무식하다...”
빠득!
언제나 올바른 품행과 너그러우면서도 엄격한 스승의 면모로 제자들을 대해, 무술가의 모범이라 불리우던 시마다 교수가 이를 갈며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기 시작했다.
“천마님, 계속 다 들리게 혼잣말하면서 수업 방해할 거면 나가세요.”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아르틴이 짜증나는 얼굴로, 자신의 뒤에 서있는 천마를 향해 꾸짖자 천마는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으음? 나는 그냥 아르틴 네가 어떤 대단한 수업을 위해 내 수업을 미루나 구경하고 있다만? 계속하거라. 그...마다마다 교수?”
우드득!
“시, 시마다 교수입니다! 천마님! 일부러 이름 틀리게 부르셨죠?”
“아앙~?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나는 그냥 특출난 무술가가 아니면 이름을 기억 못 할 뿐이ㄷ...”
“저, 저희 증조모가 버릇이 없어서 죄송함다!!!”
천마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태도에, 결국 샤오메이가 번쩍 일어나 몸을 90도로 꺾으며 사과해야 했다.
이 망할 할망구는, 그런 증손녀를 보고도 뭐가 문제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말이다.
‘와 시발...명치 존나 쎄게 한 방 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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