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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62화 (162/266)

〈 162화 〉 천마는 수치를 알아야 한다

* * *

점심시간, 학생이라면 누구나 행복한 시간이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었다.

오전 수업 내내 천마에게 시달린 탓에, 일행의 모두가 멘탈이 나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괜찮아, 샤오메이?”

하지만 가장 상태가 안 좋은 건 샤오메이였다.

샤오메이는 증조모가 수업에 참관하는 것도 모자라 교수들에게 시비를 거는 모습에 수업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오라버니, 저 이제 아카데미 어떻게 다녀요..? 역시 자퇴해야 할까요? 자퇴 하면 오라버니도 따라와 주실 거죠..?”

“정신 차려 샤오메이! 그게 네 증조모가 원하는 거라고! 휘둘리면 안 돼!”

내가 열심히 격려해봤지만, 초점이 나간 샤오메이의 눈에 빛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 모습에 모두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내 연인은 무지성으로 질투하는 카이엔 조차 이번만큼은 샤오메이를 동정하고 있었다.

“...미안 아르틴, 나는..천마님이 계실 때는 너랑은 수업 듣기 힘들 것 같아.”

“응...나도 좀 많이 부담스럽더라..”

심지어 언제나 나의 든든한 우군이었던 조르바와 바이올렛은 천마의 트롤링에 질려서 한동안 수업을 따로 듣겠다고 선언했다.

“저, 저는..! 미안 카이엔! 조르바님과 수업을 들어야 할 것 같아...!”

“어..어? 알았어 클레어..?”

게다가 클레어는 카이엔과 조르바를 번갈아 가며 보더니 조르바를 따라 떠났다.

‘...재 얼굴 보고 남자 고르는 스타일이었구나?’

나는 봤다. 카이엔과 조르바의 얼굴을 훑어보며, 마치 자신이 공략할 히로인을 고민하는 클레어의 표정을.

정작 두 사람 다 클레어랑 이성적인 관계로 발전은 생각도 안하고 있는데..

아무튼 그리 되어서, 점심시간에 모인 멤버는 나와 샤오메이, 그리고 카이엔이었다.

“어떻게 하죠? 저도 한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자습해야 할까요? 출석 점수가 아깝긴 한데 이대로 가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요!”

“진정해 샤오메이! 너도 중간고사는 통과해야지!”

“..어떻게 진정해요! 지금도 저기서 떡하니 앉아서 저희 대화를 엿듣고 아닌 척 하고 있는데!”

샤오메이가 카페테리아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가리킨 곳에는, 다섯 테이블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 밥을 먹는 천마가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우연히 식당에 왔다는 듯 고고한 표정으로 카페테리아의 학생 전용 스페셜 정식을 입에 우겨넣고 있었지만, 천마 정도의 고수라면 수백m가 떨어진 곳의 대화도 집중하면 들을 수 있을 터.

“지금도 뻔히 귀를 쫑긋 거리면서 눈은 절대 안 마주 치잖아요! 스토커인가요?! 아니면 이번 빌런이 저희 증조모인가요?! 그렇다면 당장 퇴치하죠!”

“..힘, 힘내. 샤오메이.”

샤오메이가 멘탈이 털린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자 나는 어깨를 두드려 줬다.

“기운 내, 오후에는 내가 저 할망구를 붙잡고 있을 테니까. 샤오메이는 가서 좀 쉬자. 알겠지?”

“히잉, 오라버니...”

샤오메이가 와락 내 품에 안겼다. 카페테리아에는 많은 학생이 있고, 바로 앞에는 카이엔이 있어서 평소라면 눈치가 보였겠지만..

“쟤가 샤오메이지?”

“그..천마님의 증손녀?”

“세상에..불쌍해서 어떡해요..저라면 얼굴도 못 들고 다녔을 텐데..”

이미 교내에 소문이 다 퍼졌는지, 아그네스의 약혼자 아르틴의 불륜 현장이 아니라 동정 어린 시선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이 상황이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왜 남의 동정 어린 시선을 받아야 하는 거지?

샤오메이는 이런 취급을 받아선 안 되는 여자라고!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마의 맞은 편 자리로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천마님, 그렇게 계속 모르는 척 할 겁니까?”

“...오! 내 직계제자가 될 아르틴 아니냐? 여기서 만나니 정말 우연의 일치인걸!”

방금 전까지 우리 이야기를 잔뜩 엿 들어 놓고도, 천마는 주변 사람이 부끄러울 정도로 뻔뻔하게 연기를 하는 게 가증스럽기 그지 없었다.

“이제 그만 하시죠, 왜 그러는지 알고 있으니까.”

“..뭘 말이냐?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시치미 떼지 마세요. 지금 자신이 내기에서 가장 불리한 걸 깨닫고 이러는 거 아닙니까?”

“하! 무슨 말을 하는 지! 태산도장의 구결을 다시 세운 내가 가르치는 것에 불가능한 게 있겠느냐?”

천마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차를 들이키며 나를 향해 웃었으나, 나는 그 순간 보았다. 천마가 들고 있는 찻잔의 찻잎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역시나, 이 망할 할망구가!’

며칠 전 세니아 선생님이 제시한, 세 사람이 각각 나를 가르친 후 중간고사 성적으로 결과를 가리자는 내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공평해 보인다.

허나, 이 내기의 실상은 천마가 아주 불리한 형세를 지닌다.

리처드 황태자는 1학년 당시, 중간고사의 합격선을 넘어 총 16가지의 시험을 진행했고, 그 모든 분야에서 역대 1학년이 낸 기록의 최고 점수에 근접하거나, 그 기록을 깨고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그 말은, 나도 16가지 정도 되는 과목에서 그만한 점수를 내야한다는 소리고...거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과목의 분배.

“천마님은 무술과 전투실습 같은 점수를 크게 내기 힘든 고급과목에 한정된 반해, 마리안느 누님은 기초 검술과 왕국 전투술, 왕실 예법 같은 점수를 내기 쉬운 과목을 골라냈죠.”

“...그게 무슨 소리인지 나는 잘 모르겠..”

“거기에, 세니아 선생님은 16과목 중 8과목에 해당하는 행정, 마법, 제국의 역사 같은 비전투 과목 전반을 맡으셨죠. 두 사람이 몸으로 보는 시험을 전부 맡으셨으니까요. 안 그런가요?”

“...크흠!”

연금술의 교수이자, 이론에 있어서는 당대 수재 중 하나라 불리던 세니아 선생님이 8과목을 맡은 시점에서, 천마는 아주 불리한 포지션을 취하게 된 것이다. 같은 성적을 내도, 4과목이나 더 높은 성적을 낸 세니아 선생님이 누가 봐도 승자일 테니까.

“..나는 천마다! 그런 불합리 정도는 깨부수고 하늘의 위에 서는 것이 천마인데, 설마 그런 속 좁은 걸로 트집을 잡겠느냐?”

“트집을 못 잡으니까 지금 이렇게 무언의 시위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더 잘 가르칠 수 있다. 내가 맡은 날에는 내 수업에만 집중해라. 천마가 오늘 하루 내내 한 짓은 그런 메시지를 담은 무언의 시위와 같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천마의 생각을 잘 아냐고?

그야, 2회차의 유니코르랑 천마는 소름 돋을 정도로 닮은 구석이 많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떼쟁이를 상대하는 것도 경험이니까.

그런 내 이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건 지금 천마의 반응, 여전히 여유로운 척을 하고 있지만, 가느다란 속눈썹의 끝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리고 있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앞에 앉았다는 것은 내 가르침을 열심히 배울 의지는 충분히 생겼다고 봐도 되겠지?”

봐라 이 추함을, 자신의 얕은 계략을 다 간파 당하고도, 천마는 고고한 경지에 이른 고수의 모습으로 내게 은근슬쩍 권유하고 있다.

허나 나는 그냥 백기를 드는 성격은 절대 못 된다.

“그 전에, 샤오메이와 제 친구들에게 사과하세요. 아니, 같이 수업을 들은 모든 사람과 교수님들에게 사과하세요.”

“...뭐라고?”

내 말에 천마의 눈썹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잘 쓰고 있던 절대지존의 고수 천마라는 가면이 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천마님의 행동은 필요 이상으로 무례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샤오메이에게도, 교수님들에게도 말이죠. 게다가 같이 수업을 듣는 아이들까지 방해하셨으니, 제대로 사과하세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지 알고 있느냐? 감히 절대 지존인 나, 천마에게 타인에게 머리를 숙이라고?”

──파르르르!

천마가 들고 있던 물잔에 파문이 일렁인다. 곧 이어, 천마의 몸에서 피어오른 나약한 기만으로도 주변의 건물이 진동하며 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불세출의 지존 천마다! 하늘 아래 그 무엇에도 머리를 숙이지 않으며, 하늘 위의 모든 것에 대항하는 자! 그런 내게 지금 타인을 보고 고개를 숙이라고 하는 것이냐..!!”

“네, 사과해야할 일에는 사과하는 것이 도리 아닙니까?”

나는 단호하게 대답을 하면서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손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목이 타들어간다.

이는 신체가 공포를 느낀다는 증거다. 이제 막 각성의 입문에 들어선 내가, 초월의 경지에 다다른 천마의 분노를 대면하자 육체가 제 멋대로 겁을 먹고 있는 것이다.

“...오만하구나, 손가락만으로 짓눌러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약한 주제에, 분수에 모를 정도로 오만해, 내가 증손녀 때문에 너를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뭐가 옳고 그른지도 모르는 백치를 제자로 들이실 거라는 생각은 안 하고 있습니다.”

“하, 그런 것 치고 네 모습은 볼품 없구나! 공포에 벌벌 떠는 것이 호랑이 앞의 쥐새끼가 아니더냐!”

떨리는 내 손과 수축한 동공을 보며 천마가 광오하게 비웃는다. 허나 상관없었다. 이 정도의 위압감? 오히려 익숙했다.

각성의 다음 단계인 초인도 되지 못했는데 4대 권속인 블랙 드래곤을 마주했을 때는 지금보다 더욱 최악이었다.

단신으로 마왕성을 찾아 헤맬 때는 수백 번의 사선을 넘었고, 단독으로 마왕과 대면했을 때는, 잠든 마왕을 대면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썩어문드러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존나게 가뿐하단 소리다.

“아무래도, 천마님은 쓴 것을 싫어하시나 보네요. 아니면 오랫동안 올바른 말을 해줄 사람이 없었꺼나.”

“..뭐라고?”

“그러니까, 가르침을 받는 제자 된 도리로써 스승이 엇나가는 것을 막도록 하겠습니다.”

“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설마 나를 때려눕히기라도 해볼 셈이냐?”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내가 주먹이 닿는 것도 무리고, 만약 닿는다고 해도 천마가 두른 호신강기에 의해 내 팔이 오도독 부러질 테니까.

..허나 늘 그렇듯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 같은 유형을 상대해본 적이 있다면 더더욱.

나는 천마를 향해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팔을 뻗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천마는 내 양팔을 막아냈다. 손도 아닌 자신이 먹던 데 쓰던 젓가락만을 사용해서.

“하! 이 정도로 나를 가르치려고 한 것이냐! 만 년은 이르구나 제자여!”

천마가 비릿하게 나를 보며 웃었지만, 이 순간, 나는 승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와 동시에, 나는 힐끔 식판을 바라보았다. 거의 다 먹은 스페셜 런치 세트에는, 어울리지 않는 하나의 디저트가 있다.

샤오메이에게 듣기를, 천마가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 디저트인 양갱이다. 유니코르로 치면 당근 케이크와도처럼 절대로 포기 못하는 간식이라고 들었지.

손자인 무신의 어린 시절에도 양갱만큼은 절대로 양보한 적 없다고 하던가?

“천마님 3달간 양갱 압수.”

나는 붙잡힌 양손에 암기해둔 마법인 마법의 손을 이용해 식판 위의 양갱을 낚아챘다.

“..어?”

그 모습을 예상 못한 천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야, 백년 넘게 자신의 디저트를 탐한 사람은 없었을 터. 양갱을 뺏긴다는 상황이 뇌에서 지워졌을 시간이다.

나는 그런 천마가 반응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양갱을 전부 입안에 우겨넣고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우움, 맛있네 이거,”

음, 이 양갱 정말 맛있다! 최고급 양갱인지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과 쫀득한 식감이 일품이다.

“...아아아아앗!!! 내, 내 양갱!!!!!!!!!”

그리고 내 모습을 본 천마가 위엄 있는 표정을 무너트리고, 마치 어린 소녀마냥 울먹이며 비명을 질렀다.

“뱉어라! 뱉어내라! 내 양갱! 나도 하루에 1번 밖에 못 먹는 소중한 양갱인데!”

천마는 당장 내 입을 벌려 양갱을 뺏어갈 듯이 달려들었지만, 나는 음미하는 것이 아닌 압수가 목적이었기에 대충 씹고 적당히 꿀꺽 삼키며 말끔해진 입안을 보여줬다.

“다 먹었는데 어떻게 빼내실? 냄새라도 맡아보쉴?”

“...이 망할 자식이이이이이이!!!!”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후 하고 양갱의 단 향기를 뿜어주자, 천마는 눈이 돌아가 내 멱살을 쥐고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봤다. 흔들리는 와중에도, 자신의 복수를 해준 나를 향해 감동을 받은 샤오메이의 표정을.

‘훗, 이게 복수의 단 맛인가..’

하지만 압수라는 것은 한 번으로 끝나선 안 되는 것. 나는 허공에서 마구 휘둘러지면서도 앞으로 천마의 양갱을 어떻게 압수할지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천마의 분노가 무섭지 않냐고? 해봐야 죽기밖에 더하겠어? 상태창의 제안도 거부했던 내게 빡꾸는 없다.

“내 양개애애앵!!!!”

그 날, 천마의 공허한 비명이, 듣기 좋은 오케스트라처럼 카페테리아를 가득 채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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