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63화 (163/266)

〈 163화 〉 파란 머리의 그녀

* * *

천마의 울부짖음을 뒤로하고, 나와 카이엔은 식당을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천마의 매서운 드잡이에 붙잡혀 그대로 수련으로 끌려갈 뻔 했지만..

“덕분에 빠져나왔네, 고마워 카이엔.”

용사의 대행자로써 같이 신탁을 받으러 가야 한다는 카이엔의 말에, 아무리 천마라도 여신님과 관련된 일을 방해하는 것은 힘든 일인지 나를 풀어줬다.

물론 조금 있다 훈련에서 두고 보자고 이를 갈긴 했지만..별 일이야 있겠어?

“....파트너.”

“응?”

“카이엔이 아니라 파트너.”

“..그래, 고마워 파트너.”

내가 파트너라고 부르자, 카이엔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만약 내가 여자라면 저 미소를 보고 꺄악 거리지 않았을까?

좆같은 점은, 전 같았으면 저 미소만 봐도 화났을 텐데 요즘 계속 이상하게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시 이게 용사의 동반자 칭호의 숨겨진 효과 같은 그런 건가?’

가능성은 있다. 내가 카이엔에 대한 혐오감이 줄어든 것이 용사 임명식을 위해 교단에서 훈련 받기 시작할 때부터라는 것을 생각하면 연결고리도 맞아 떨어진다.

씨발, 그렇게 생각하니 좆같네, 혹시 여신이 BL충이라서 나랑 카이엔을 엮으려는 건 아니겠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는 거야, 파트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올가가 왜 불렀나 생각하고 있어. 너는 왜 불렀는 지 알아?”

카이엔의 말에 대충 둘러대며 묻자, 카이엔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무척 중요한 일이 아닐까? 마왕군의 계략을 막는 일이라거나, 마왕군과 거래하는 타락한 인물을 해치워 달라 거나.”

“..확실히 가능성은 있어,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에 던전 실습을 생각하면.”

세니아 선생님의 가장 최초의 사망 플래그, 던전 실습.

각 반의 학생들은 아카데미에서 준비한 반쯤 청소된 던전으로가, 마족들과 싸우는 법을 정식으로 익히고 던전을 탐험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아카데미에서 실행하는 일종의 ‘소풍’이다. 거기에 마족 사냥을 곁들인.

원래 세계에서도 역사 속의 귀족들에는 사냥 문화가 있듯이, 이 세계의 귀족들은 고블린이나 하급 마수 같은 것을 사냥하는 것을 즐긴다.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 던전 실습이 준비된 것은, 스트레스가 쌓였을 학생들의 기분을 전환시켜줄 소풍의 배치와 같지만, 문제는 마족들의 습격으로 분위기는 전환된다.

‘원작에서는 가벼운 아카데미물 분위기에서 드리프트 했다고 뒤지게 욕 많이 먹었지..’

저 습격으로 세르게이 담임 대신 아이들을 이끌던 세니아 선생님은 죽고, 40명이 넘던 반 아이들의 수가 20명 이하로 줄어든다. 나머지는 전부 마족의 먹이가 되어버린 탓이다.

카이엔은 마족들에게서 같은 반 학생들을 지키다가 결국 패배하고, 간신히 시간에 맞춰 도착한 샤오메이 덕에 목숨을 챙긴다.

내가 추천했던 애들도, 전부 저 부분에서 좆같다고 하차하고 내 추천 소설들을 거르기 시작했었다. 나는 그 맛이 좋아서 먹었던 건데..

아무튼 내 기억 상으로, 마물을 이끄는 배후는 늘 비슷했다. 마족 장군 가르투카. 무려 상급 마족에 해당하는 인물로, 카이엔에게 첫 패배를 안겨준 인물.

‘장군 정도면 올가도 경계할만 하니까.. 이번에도 확실히 죽여둘까.’

친위대도 없이 별동대만을 이끌고 등장한 녀석에게 죽는 학생의 수는 모든 반을 합쳐서 약 50명 이상, 교수도 2명이나 사망하게 된다. 이 세계의 부조리함을 알려주는 장치같은 빌런이지만..

내 손에는 벌써 2번 죽었다. 세니아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 몸을 비틀던 시절의 나한테 3번 패배해서 1번만 목숨을 건져서 도망쳤었지.

‘그렇게 생각하면 별로 어려운 퀘스트는 아닐지도 모르겠네.’

*

“네? 뭘 찾아달라고요?”

내 예상은 화끈하게 빗나갔다. 아니, 그 보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판단이 힘들 정도로 어이없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이런, 제 설명이 부족했나 보군요. 다시 한 번 제대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카이엔님?”

“아니, 대뜸 저희를 부른 다음 천사를 찾아오라고 하시면 뭐라고 알아들어야 합니까..?”

천사박사 토마스의 말에, 내가 어이없다는 듯 따져 묻자 토마스 사제는 그 찬란한 금발을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런. 용사인 카이엔님과 용사의 동반자인 아르틴님이라면 미리 어느 정도 알고 계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아니었나요?”

그 말에 내가 카이엔을 바라보자, 카이엔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혹시나 해서 상태창의 퀘스트 창을 살펴봤지만 역시 그런 퀘스트는 올라온 적도 없었고.

“두 분 다 모르시는 것 같으니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자면...인간의 땅에서 천사를 찾아주시면 됩니다.”

“아뇨, 그걸로는 도저히 자세한 설명이 안 되는데요?? 인간계 어디서 사람을 찾아달라고요?”

천사 찾기에서 위치­>인간의 세상 어딘가로 변했을 뿐이 아닌가?

“..그, 어디서부터 설명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군요. 보통은 이리 말씀드리면 바로 찾으러 나가셔서..”

“일단 왜 대뜸 천사를 찾아달라고 하는 지부터 설명을 해주는 게 도리가 아닐까요?”

아하, 하고 토마스는 그제서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님과 그 대리인인..”

“또 육하원칙 빼먹고 설명하면 생니를 여신님의 은총을 담아 뽑아버릴 겁니다.”

“..아, 네.”

역시 토마스 사제는 또 자신의 핀트가 엇나간 광신을 담아 장황한 설명을 하려 했던 게 분명하다.

흥분한 상태의 토마스 사제가 종종 저지르는 실수이기도 한데, 도대체 뭐 때문에 저렇게 흥분한 건지 이유를 알수가 없었다.

“제가 어제 아침 기도를 드리던 중,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바로 여신님의 계시를 듣는 기적이죠!”

젠장, 기적을 체험했다고 들뜬 상태였구만.

“기적이라니? 계시라면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아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날개를 펼친 천사님께서 제게 내려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제 귓가에 여신님의 뜻을 속삭였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이 뭐였나요?”

내가 딴지 거는 것을 포기하자, 토마스는 흥분에 찬 눈으로 콧김을 벌렁이며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바로, 용사와 용사의 동반자에게 지상에 떨어진 천사를 찾게 하라는 계시였습니다! 그 분이야 말로 용사님들의 도움이 되기 위해 지상행을 결정한, 고결하고도 거룩한 희생을 택하신 고귀한 천사님이라고 말입니다!”

“....처, 천사가 지상에 떨어져요? 사람을 돕기 위해?”

“네 그렇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내가 4회차를 살면서 천사가 지상에 강림했다가 돌아간 것은 봤어도, 지상에 자리를 잡는 것은 단 한 번도 못 봤는데.

하지만 상대는 무려 천사박사 토마스, 성가대나 사제단의 보조 없이 단독으로 천사를 지상에 강림시킬 수 있는 사제인 만큼, 천사에 관련해서는 믿을 만한 인물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중대사긴 하네요..위치나 생김새, 특징 같은 것도 들으셨나요?”

“아니요! 그 말만을 남기고 천사님은 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난이도가 좆박은 퀘스트였군.

“그럼 그 천사를 어떻게 찾죠? 하늘에서 떨어졌으니 피부가 까맣기라도 할 까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천사님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피부가 까말 리가 없지않습니까? 원래 까만 피부라면 몰라도 말입니다.”

“역시 그렇겠죠?”

안타깝게도 내가 현실에서 봤던 어떤 악마 사냥 게임의 설정은 이 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듯 했다.

“그렇다고 전세계를 돌아다닐 수도 없고..어떻게 하지 카이엔?”

“...글쎄, 일단 정령들을 풀어서 신성력이 느껴지는 사람을 찾아볼까?”

“어떤 방법이든 좋습니다. 최대한 빨리 찾아주시면 감사하겠군요. 진짜 천사가 인간계에 필멸자로 내려오셨다면 교단에서 꼭 모시고 싶으니까요!”

천사박사의 저 번쩍이는 눈, 기적의 체험과 천사의 지상강림이라는 신앙 체험에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 신앙심이 더 깊어진 것 같다.

“그래도 중간고사 기간은 바쁜데, 중간고사는 끝나고 찾아도 될까요?”

“..여, 여신님의 계시인데,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런가? 확실히 천사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한데.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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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지상에 강림한 천사

위대한 천사, 사르디엘이 인간들을 위해 지상행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은 계시를 받은 천사박사 토마스의 부탁을 받아 사르디엘을 찾아야합니다!

특히 용사의 대리인은 사르디엘을 꼭 잘 챙겨줘야 합니다!

퀘스트 보상 : 천사 사르디엘의 동료화.

현재까지 발견한 흔적 : 0개. 3개를 찾을 때 마다 단서를 획득합니다.

남은 퀘스트 완료 시간 :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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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의 퀘스트 알림. 정말로 천사가 떨어지긴 했구나.

“조금 느긋하게 찾아도 될 것 같은데요? 방금 계시를 받았는데 30일이나 남았다고 합니다.”

“오오!? 아르틴님도 계시를 받았습니까?! 역시 용사의 동반자 되시는 분..! 성녀님의 입맞춤을 받을 자격이 있으신 신성한 존재! 저와 같이 계시에 대해서 의논하실 생각은?”

“없습니다. 천마님에게 수업 받기로 되어 있어서 오늘은 이만! 가자 파트너!”

“아, 아앗..! 잠시만요 아르틴님! 어떤 내용인지라도!!”

토마스 사제에게 붙잡히기 전에 카이엔을 데리고 나는 사제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저 인간에게 붙잡히면 오늘 천마에게 수업 듣는 것은 무리겠지.

물론 천마의 상태를 보면 그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미치광이랑 떼쟁이 중에는 그래도 떼쟁이가 낫지 않나 싶다.

“계시를 받았다는 건..상태창에서 퀘스트가 떠올랐다는 거야, 파트너?”

“아, 맞아. 너는 상태창이 없으니까 이런 건 못 받겠구나?”

“..그렇지, 무슨 내용인지 알려줄 수 있어?”

카이엔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태창의 내용을 공유했다.

“...무척 구체적이네? 게다가 잘 챙겨줘야 한다니?”

“모르겠네, 나도 이런 퀘스트는 처음이라..”

천사 사르디엘이 숭고한 결정을 내린 것은 알겠는데, 용사도 아니고 나 보고 천사를 챙겨 달라니?

“뭔가 연계 퀘스트가 있는 건가?”

“연계 퀘스트..?”

“한 가지 퀘스트를 깨면, 그 뒤로 퀘스트가 여러 개가 준비되어 있는 걸 말하는 거야.”

역시 나를 콕 집어서 말한 것을 보면, 뭔가 보상이 잔뜩 준비된 퀘스트일지도 모른다.

‘어쩐지, 아르틴의 신체스펙이 말도 안 되게 약한 것은 이걸 위해서였나?’

연계퀘스트로 보상을 받아 동료와 힘을 얻는다. 이거라면 미친 듯한 성장을 반복하는 카이엔을 따라잡을 수도 있을 터.

꼭 보상이 신체스펙이 아니더라도, 유니코르를 생각한다면 천사가 동료가 되는 것은 어마어마한 메리트가 될 것은 틀림없다.

3회차 당시 한번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마족들을 도륙하던 지상에 강림한 천사들을 생각하면, 어지간한 동료들 보다 강하겠지?

“..그런데, 이 천사 사르디엘을 어떻게 찾지?”

내가 아는 천사가 있을리도 없고, 천사박사인 토마스도 전혀 모르던 눈치인데. 그냥 신성력으로 찾아봐야 하나?

‘그래도 예쁘긴 하겠지? 저번에 임명식때 봤던 천사도 참 예쁘던데.’

임명식 당시를 떠올리자. 내게 윙크를 하던 파란머리 천사가 생각났다. 그런 천사라면 얼마나 찾아도 환영인데 말야.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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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사르디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천사 사르디엘의 단서를 획득합니다!

단서1 : 천사 사르디엘은 파란머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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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게 갑자기 왜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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