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 마리안느 누님과 비밀 훈련
* * *
“흐음...마리안느 왕녀님이 말인가요?”
“그래, 내 추측일 뿐이긴 하지만, 아마 99%는 맞다고 생각해.”
다음 날 아침, 나는 식탁에서 빵을 뜯어먹으며 어제 있던 일을 상세히 설명했다.
마침 오늘의 아침식사 멤버가 유니코르와 아그네스였기에, 아그네스를 따로 찾아가는 수고는 필요 없었다,
“그런가요, 왕녀님이...결국 그렇게 됐나요.”
“결국 그 무시무시한 여자도 아르틴에게는 버티지 못하고 함락되고 말았구나..”
“...두 사람은 이걸 예상했다고? 정말?”
유니코르와 아그네스의 말에 내가 되묻자, 두 사람은 어이없다는 듯 식기구를 내려놓고 나를 바라봤다.
“지금 1달만 같이 있어도 여자를 홀리면서, 몇 년이나 함께 했던 마리안느 왕녀님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요?”
“아르틴, 이건 본좌도 아그네스가 맞다고 생각하는 구나...벌써 하렘의 멤버가 10명 쯤 되어가고 있지 않느냐?”
“...아니, 나는 정말 마리안느 누님하고는 별 관계가 없었단 말야.”
“왕국을 구해주고 3년간 수제자로 열심히 같이 지냈는데, 아르틴은 몰라도 마리안느 왕녀님은 호감도가 오를 수밖에 없는 거겠죠.”
...그런가? 생각해보니 맞는 것도 같다. 3회차는 인류의 내분으로 각 나라마다 반란이니 비밀결사니 좆같은 이벤트가 많았으니까.
“그래서, 아르틴은 어떻게 하고 싶으냐? 마리안느 그 무시무시한 여자도 하렘에 받을 셈이더냐?”
“...글쎄, 잘 모르겠어. 일단 진지하게 대화는 해보고 싶은데..왜 유니코르는 자꾸 누님을 무시무시한 여자라고 불러?”
“지난번에 그렇게 두들겨 맞았는데 기억에 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냐!”
유니코르의 말에, 나는 지난 훈련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그 때 일부러 유니코르가 좀 얻어 맞도록 했었지...
“그...나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또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마리안느 누님의 호감은 반한 것 까지는 아닐 수도 있잖아? 게다가 내가 마리안느 누님을 하렘으로 들이면 아그네스도 난처해 질 지도 모르고.”
“흐음~아르틴이 그렇게 절 생각해주는 줄 몰랐는데 말이죠?”
윽, 아그네스의 짓궂은 웃음에 나는 할 말이 없다.
아니, 그보다 요즘 내 연인들하고 이쪽으로 이야기 하면 할 말이 매번 막히는 기분인데...
“뭐,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는 괜찮아요. 차라리 마리안느 왕녀님이 하렘에 들어온다면 저로써는 더욱 편해질지도 모르고요.”
“...정말?”
“네, 세니아 선생님하고는 아직 제대로 대화도 못해봤지만, 마리안느 왕녀님이 언니가 된다면 하렘이나 아르틴의 서포트에 대해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아그네스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스테이크를 썰며 내게 다정하게 말했다. 그 다정한 미소가 오히려 더 무섭기는 했지만.
“본좌도 별 상관은 없다. 어차피 아르틴과 영혼으로 연결된 진정한 여인은 본좌 뿐이니, 누가 온들 무슨 상관이겠느냐?
“아직 들어온다고 확정된 것도 아니니까, 아르틴이 잘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적어도 원한은 아니잖아요?”
내가 없는 사이 회의라도 한 건지, 두 사람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다. 아그네스야 저번에 대화를 했으니 이해하지만 유니코르도 저렇게 어른스럽게 변할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유니코르.”
“응? 왜 그러느냐? 그대도 당근 스테이크를 먹고 싶은 게냐?”
“아니, 그건 아니고...머리카락이 좀 더 어둡게 물든 것 같은데 착각이야?”
나는 바빠서 못 본 사이 하얀색 머리카락 부분에도 검은색이 침투하기 시작한 유니코르의 머리카락을 포크로 가리켰다.
아니,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에만 해도 유니콘 상태일 때는 하얀 머리였는데..?
“아, 이거 말이냐? 요즘 매일 시르카와 알‘미라즈를 불러서 마기를 다루는 연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또 교단에 다녀와야겠구나.”
“...유니코르 정말 열심히 사는 구나, 내가 알던 유니코르가 아닌 것 같아.”
내가 아는 유니코르는 이렇게 노력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2회차 때도 훈련하기 싫다고 매번 땡깡이나 부리다가 나한테 꿀밤을 맞는 게 일상이었는데...?
“흥! 본좌가 언제까지 어린애일줄 알았느냐? 그대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훈련하는 지 그대는 모를 것이다!”
“...이제 유니코르도 정말 다 컸구나.”
나는 그런 유니코르가 너무 장하게 느껴져,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줬다. 천마님도 언젠가는 유니코르처럼 어엿한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니코르, 어른이 됐다면 매번 침대에 올라가서 과자를 먹는 건 그만두시겠어요? 매번 메이드가 치우느라 고생이라고 말이 많아요.”
“...그, 그걸 꼭 지금 말해야겠느냐!? 본좌가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타이밍이지 않느냐!”
“게다가 요즘에는 카페에서 만난 처녀 여자를 보고 사제가 될 생각 없냐고 꼬시고 있다면서요? 학생회실로 자꾸 불만이 접수되고 있거든요.”
“꼬, 꼬시다니! 그저 장래가 유망한 아이를 우리 교단으로 영입하려는 것이다!”
“적어도 사제복을 입거나 목에 십자가 걸고 있는 아이에게는 그러지 않아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
조금 감동을 받았던 나의 눈이 천천히 식어갔다. 유니코르는 아직 유니코르였나...?
“왜, 왜 쓰다듬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냐 아르틴...? 나, 나는 정말 요즘 열심히 했노라...!”
“잘 먹었어, 아침 훈련하러 가볼게. 두 사람도 조금 있다가 저녁에 보자.”
“네, 오늘도 열심히 공부 하세요! 아르틴 파이팅!”
“왜 나를 무시하고 훈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냐!!!”
유니코르는 아직 유니코르인 것 같다. 그 사실을 알자 왠지 모르게 안도하는 내 자신이 느껴졌다.
*
오늘은 다행히도 천마님이 따라붙지 않아, 우리는 아주 쾌적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다행이에요 정말..! 오늘도 그랬으면 저 정말 울었을 지도 몰라요 오라버니...!”
“걱정 마, 내가 어제 이야기 잘 해봤으니까. 오라버니만 믿으면 된다고?”
“오라버니..!”
감동한 나머지 울먹거리는 샤오메이를 다독여준 후, 나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와 훈련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 보니...오늘은 카이엔을 통 못 봤네. 무슨 일 있나?’
혹시 오늘도 훈련에 따라오겠다고 말하면 누님과 대화도 해야 하는 만큼 거절하려고 했는데, 아침 조회 이후로 헤어진 녀석은 단 한 번도 마주치질 못했다.
...카이엔이 안 보이면 뭔가 꼭 괴상한 일이 터지는 데, 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겠지?
“모르겠다. 내가 그 녀석 보모도 아니고 계속 신경 쓸 수도 없고. 알아서 잘 살겠지.”
개인 단련실이 가까워지자, 나는 머릿속에서 카이엔을 최대한 지워냈다. 나 강해지기도 바쁜데 녀석까지 매번 신경 쓸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내 여자들 챙기기도 바쁜 몸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뭘 가르쳐주시려고 누님이 여기로 불렀지? 또 레슬링인가?”
지난 번 개인 훈련 당시 했던 일이 슬금슬금 다시 떠오른다. 내가 미쳤다고 가르쳐주는 사람의 가슴과 엉덩이를 그렇게 주물렀는지..다시 생각해도 병신 짓이다.
‘...오늘은 최대한 야한 짓 없이, 진지하게 배우자!‘
세니아 선생님과 같은 일은 한번으로 족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단련실의 문을 열었다.
“오! 생각보다 일찍 왔는데! 마음에 들어! 상점 1점 줄게!”
“...마, 마리안느 누님? 차림이 왜 그래요?”
단련실에서 나를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마리안느 누님을 보자 나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응? 내 차림이 이상한가? 오늘 가르쳐줄 과목에 대비해서 챙겨온 옷인데. 아르틴 네 것도 있어.”
“...아니, 그 옷은 누가 봐도 격투기용 옷은 아닌데요?”
나는 스스로도 모르게 침을 크게 삼켰다.
그도 그럴 게...누님이 입고 있는 옷은, 다름 아닌 현실에서 요가 선생님들이 입던 요가복에 아주 흡사한 타이트한 옷이었으니까.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생도복이나, 격투술을 배울 때 입는 몸을 꽉 잡아주는 레슬링복과는 다르게, 요가복은 마리안느 누님의 몸매를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 커다란 가슴을 강조하듯 앞으로 모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탱크탑에, 잘록한 허리와 탄탄한 허벅지, 빵빵한 엉덩이의 모양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타이즈 바지까지.
솔직히 아직 발기하지 않은 것이 기적일 정도로, 야하고 적나라한 복장이었다.
그런 내 반응을 슬쩍 살피던 누님은, 뭔가 야한 미소와 함께 내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해왔다.
“무슨 소리야, 오늘은 격투기 한다고 한 적 없는데?”
“네? 그럼 오늘은 어떤 걸 하는 거죠...?”
내 목소리가 나 자신도 모르게 떨렸다. 어깨동무를 한 탓에 누님의 커다란 가슴이 내 팔에 강하게 짓눌리고 있으니까.
그리고 누님은 그걸 명백히 알고 있다는 듯, 약간 홍조가 띈 얼굴로 먹잇감을 발견한 육식 동물처럼 히죽거리며 웃고 있다.
“오늘은 요가라는 걸 할 거야. 이게 유연성하고 신체가동능력을 키우는 데 최고거든.”
“...가, 갑자기 요가는 왜? 오늘은 검술이나 격투술을 할 줄 알았는데.”
“응? 그냥 어제 너네 수련하는 걸 보니 생각났거든...왜, 누님이랑 요가하기 싫어?”
“..누님이랑 요가요?”
“그래, 서로 잡아줘야 하는 자세들이 있거든...별로 생각이 없나봐?”
누님이랑 요가. 그것도 설명을 들어서는 커플 요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리안느 누님하고 커플 요가를? 정신 차려 아르틴, 오늘은 대화를 하려고 온 거잖아!‘
갑작스러운 전개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나는 눈을 꽉 감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은 누님과 진지하게 기억에 대해서 의논하려고 온 거였으니까!
“누, 누님. 그래도 오늘은 진지하게 이야기를...으읍!?”
내가 거부의사를 표하려는 찰나, 누님이 내 머리를 와락 끌어안은 탓에 자연스럽게 내 얼굴이 누님의 풍만한 가슴골에 묻히게 되었다.
이 부드럽고 탄력 있는 촉감은 분명...속옷을 입지 않았다.
‘..그, 그러고 보니 아까 팬티끈도 보이지 않던데...?’
내 머리가 번뇌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커플요가. 누님과 몸을 밀착. 그리고 벌어질 일들,
“진짜 나랑 요가하기 싫어 아르틴?”
“....읍읍.”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젓고 말았다. 누님의 육체미와 뻔뻔할 정도로 공격적인 어필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그으래에~? 그럼, 누님의 지도에 따라 요가를 시작해 볼까? 단 둘이?”
분명히 느껴진다. 입맛을 다시는 최상위 포식자의 미소가.
하지만 나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몸. 이런 유혹이라면...사자의 아가리라도 두 발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저는 누님하고 요가라는 것을 해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오늘부터 내 소원은 내 연인들과 커플요가 플레이다. 기억해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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