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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73화 (173/266)

〈 173화 〉 마리안느 누님과 비밀 훈련 #04

* * *

언제나 사자의 심장을 품어라, 레크투르 왕가에 전해지는 오랜 격언이었다.

어느 무리에서도 으뜸이 되어라.

어떤 상황에 닥쳐도 겁먹지 마라.

누구에게도 눈물을 보이지 마라.

죽는 그 순간까지 긍지를 잃지 마라.

어린 시절 마리안느가 질리도록 들었던 말은 어느 순간부터 마리안느 자신의 품행을 결정하는 삶의 규칙이 되었다.

타고난 강자였던 그녀는, 왕국의 왕세녀라는 직위에 걸맞게 어느 무리에 가서도 리더가 되었다.

수십 년간 전장에서 마족의 목을 벤 베테랑 전사조차, 그녀와 같이 전장에 서는 것으로 늠름한 등을 따라 최전선을 향해 진격하게 되는 것이다.

마리안느는 그런 자기 자신에게 긍지를 품고 있었다. 자신의 영혼은 선조들에 비하여도 빛나는 찬란함을 지녔다고, 자신의 정신은 강인한 육체와 빛나는 영혼에 걸맞게 불굴의 정신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이다.

그 생각은 이 시대에 젊은 천재들이 전부 모인다는 아카데미에 도착해서도 변하지 않았다.

타인들이 보기에는 제국의 황태자 리처드라는 걸출한 라이벌이 있었지만, 리처드와 마리안느는 서로가 근본적으로 방향성이 다른 리더임을 깨닫고 있었기에 서로를 신경쓰지 않았다.

합리성에 기반한 천재적인 재능으로 타인을 설득하는 황태자와, 타고난 카리스마로 모두를 이끄는 마리안느는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경지가 달랐기 때문이다.

성적을 겨뤄도 일부 과목은 마리안느가 리처드의 기록을 보란 듯이 깨트렸지만, 어느 과목은 리처드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난다.

옆에서 보기에는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겠지만...당사자인 마리안느는 사정이 달랐다.

‘지루해. 이런 곳에서 시간을 버리는 것 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들이 많을 텐데, 공을 들여서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잖아.’

아카데미에 그녀의 경쟁심을 이끌어낼 만한 강자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관심을 가질 만한 인재도 딱히 눈에 차지 않았다. 그나마 학생회의 임원들이 격에 맞을 뿐.

하지만 그나마도 귀족파의 리가르도 위센 같은 버러지들이 옥석 사이에 섞여있어, 그녀를 귀찮게 하는 것은 여전했다.

비실거리는 녀석들, 근성이 없는 녀석들, 혹은 재미가 없는 녀석들 뿐. 자신의 동생의 절반도 따라오지 못하는 버러지들이 눈앞에 어슬렁거리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마리안느, 귀족파의 거두인 나, 리가르도와 혼인을 맺는다면 참으로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니겠어?”

“요즘 왕국의 재정상태가 많이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펠카스 가문과 제일을 다투는 저희 가문의 재력이 있다면 왕국의 재정이 풍족해지지 않겠습니까? 저를 데릴사위로 들이는 건 어떠신지요?”

“마리안느 왕녀! 너 내 아내가 되어라!!!!”

하지만, 그런 버러지 같은 녀석들이 자신을 ‘여성’으로 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수치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마지막 녀석은 재밌는 편이었다. 결투로 박살낸 직후 승복하고 자신을 포기했으니 말이다.

‘하, 이래서야 내 남편감은 도대체 언제 찾을 수 있을지...’

그녀가 이제 와서 아카데미에서 바라는 것은 딱 하나였다. 자신과 백년가약을 맺을 남편감을 찾는 것.

이대로 나이를 먹고 왕국으로 돌아가, 자신보다 10살 많거나 10살 어린 귀족과 정략결혼 따위를 할 바에는 그나마 눈에 차는 녀석과 혼인을 맺는 것이 가장 좋을 테니까 말이다.

그녀가 배우자에게 바라는 것도 많은 것이 아니었다.

‘외모나 배경 따위는 바라지도 않아, 내가 힘들 때 의지할 수 있고 나보다 강한 남자면 충분하지.’

다만 많지는 않아도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것이 그녀의 문제였을 뿐이다.

*

처음 기억을 떠올린 것은 대기실에서의 첫 만남이었다.

리가르도 그 재수 없는 새끼와 와이즈 가문의 건방진 애새끼가 아르틴이라는 학생을 손봐주려고 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 운 없는 후배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기 위해 찾아갔었다.

뭔가 큰 사명감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다. 아르틴이라는 후배는 아주 작은 가문의 삼남이었지만 어쨌든 왕국의 귀족이었고, 동시에 자신의 백성이기도 했기 때문에 돕고자 했었다.

“그걸 왜 저한테 말해주는 건가요?”

그런데 이상했다. 오늘 처음 만났을, 이런 자리가 아니라면 평생 자신과 독대할 기회조차 없을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키도 작고, 몸도 가늘며, 무려 왕녀이자 거인살해자인 자신을 무례하게 끌어안기 까지 했다!

그런데, 마리안느는 그런 아르틴이 어째서인지 너무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니, 사실 그때 이미 자신은 알아차렸을 지도 모른다.

아르틴 루드비히가 자신을 끌어안는 그 순간, 한 손으로 때려 죽일 수 있을 아르틴을 떨쳐내지 못했던 것은, 그저 당황하거나 친근함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쿵. 쿵. 쿵. 쿵.

그 날부터였다. 자신의 심장이 이상하게 되어버린 것은.

아르틴 루드비히라는 이름이 들릴 때마다, 녀석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거나 소문을 들을 때 마다, 심장의 두근거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게 절정을 찍었던 것은, 아르틴 루드비히가 아주 맹랑하게도 자신을 희롱했던 대련 훈련 때였다.

‘왜, 왜지? 당장 이 녀석을 때려 눕혀야 하는데...!’

아르틴 본인은 나름 잘 막았다고 착각하는 것 같지만, 마리안느에게는 수많은 기회가 있었다. 아르틴의 허리를 접어버릴 기회, 어깨를 박살 낼 기회, 박차기로 뇌진탕을 먹여줄 기회.

자신을 힘으로 찍어 누르려고 했던 무례한 놈들에게 늘 그랬듯이, 한 방 먹여줄 기회가 말이다.

­“만약 아그네스가 아니었다면, 전 누님한테 고백했을 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 기회마다 이상한 기억이 자신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자신은 분명 겪어본 적 없는 그 기억들, 허나 선명하게 느껴지는 생각과 감정들.

­“후욱...! 후욱...! 한, 한 번만 더 해보겠습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요...!”­

자신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일부러 무리한 훈련을 시켰는데도 군말 없이 따라오던 아르틴의 모습이.

­“걱정 말아요. 왕국의 모두가 누님에게 등을 돌려도 제가 같이 싸워줄 테니까요.”­

왕국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부모님이 죽고 왕국이 무너져 절망하던 자신을 다정하게 달래주던 아르틴의 모습이.

­[다녀오겠습니다, 누님. 마왕을 죽이고 올 테니 기다려 주세요.]­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자신들을 대신해 마왕을 쓰러트리기 위해 장벽 너머의 땅으로 향한 아르틴이 떠오른다.

자신이 힘들 때 곁에 있어주고, 끝없는 노력으로 자신보다도 강해졌으며, 타고난 암사자인 자신을 제치고 무리의 리더로 우뚝 선 남자.

아그네스라는 친한 동생과 사랑에 빠졌기에, 그 때는 마음 속 깊이 묻어두고 좋은 누님으로만 남아야 했던, 자신의 유일한 첫사랑.

...이 기억이 진짜일까? 아니면 아르틴 루드비히가 자신에게 정신계 환각이나 조작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리안느에게는 확신이 필요했다. 자신이 행동할 수 있는 명백한 확신이.

*

그리고 면회 당일, 자신은 가르쳐 준 적 없는 검술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아르틴을 보며 마리안느는 그 ‘기억’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기억이 떠오른 이유는 모른다. 허나 기억 속에서 땀을 흘리며 자신에게 검을 배우던 아르틴과 자신의 눈앞에 있는 아르틴은 분명 동일인물이다!

아그네스와의 갑작스러운 약혼 선언, 다른 여인들의 미묘한 기류, 어느 쪽이든 이 기억이 진짜라고 가정한다면 설명이 됐다. 자신의 직감 또한 이것이 답이라고 긍정하고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 이건 기회야. 그 멍청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결국 마왕을 쓰러트리러 갔던 아르틴은 돌아오지 않았다. 단신으로 군단장의 목을 베어넘기던 압도적인 강함을 손에 넣었음에도, 마왕에게는 닿지 못한 것이겠지.

──괜찮다! 이번에는 자신이 제대로 도우면 그만이다. 아르틴 루드비히는 다시 약해졌지만, 분명 시간만 충분하다면 사자의 심장을 되찾을 것이니까.

‘...그 늠름하고 멋진 근육도, 자, 잘생긴 얼굴도 다시 돌아오겠지?’

처음이었다. 자신이 남성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힌 것은,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전투할 때처럼 미친 듯이 뛰는 것은.

아무리 사랑을 해보지 못한 마리안느라도 이게 사랑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제 결정해야 했다. 아르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누님! 큰일 났어! 그 아르틴이란 놈 아주 되먹은 놈이야!”

그렇게 고민하던 마리안느의 행동력에 박차를 가한 것은, 갑자기 들이닥친 동생 오지에의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내가 그 녀석을 며칠 따라다녔는데, 그 놈팽이 자식, 주변에 여자들이 아주 심상치 않아! 아그네스 황녀 말고도 온갖 여자들이 아양을 떠는 데...!”

마리안느는 면회 당일 봤던 그 묘한 기류가 단순히 알파메일에게 이끌리는 여인들의 단순한 캣파이트라고 생각했으나, 오지에의 말에 따르면 그런 여자가 5명은 족히 넘는 듯 했다.

“심지어 세니아 선생님하고도 심상치 않아 보이던데..! 내가 매번 이상하게 잠만 안 들었어도 현장을 잡을 수 있었거든? 자꾸 눈앞이 번쩍 하더니 이상하게 잠 드는 거 있지...! 그 녀석 분명 뭔가 이상한 사술을 쓰는 게 분명해!”

아르틴이 악마와 계약한 힘이나, 마왕의 아티팩트를 이용해 여인들을 정신조종하고 있을 거라는 동생의 헛소리는 무시하더라도,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됐다.

‘그, 그 숙맥인 아르틴이 여인들의 공세를 받는 다면, 사자의 심장을 다시 되찾기도 전에 물렁해지고 말게 분명해!’

기억 속에서 아그네스와 제대로 연애다운 연애도 못하던 아르틴이 아른거렸다. 만약 대마녀의 손녀가 아르틴을 꼬신다면? 만약 성녀가 아르틴에게 계승식에서 입맞춤을 했던 게 진심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안 돼!! 절대로 아르틴이 그 여자들에게 놀아나게 둘 수는 없어!!’

아그네스와의 순애보를 깰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 불나방들이 꼬인다면, 스승인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 아니, 무조건 해야 한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복장을 입고, 숙맥에 동정인 아르틴을 확실하게 붙잡을 방법들도 준비했다.

자신은 있었다. 자신의 외모는 틀림없이 최상위권에 속하는 외모였고, 평상시에도 유연성을 위해 요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남자를 유혹하는 연인 요가』라는 책도 정독을 끝냈다!

안전장치도 분명히 있었다. 아르틴이 유니콘과 계약한 이상, 순결성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 아닌가?

‘계획은 완벽해. 아르틴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만 꼬신 후, 다른 불나방들에게 정신 팔리지 않고 열심히 훈련을 받아 멋진 근육들을 되찾게 하는 거지..!’

마리안느는 단단히 기합을 넣으며, 방금 전까지 자신의 몸매에 정신을 못 차리던 아르틴이 들어간 탈의실의 문을 바라봤다.

‘기다려 아르틴! 이 누님이 어떻게든 너를 올바르게 인도해주마...!’

*

쯔걱! 쯔걱! 쯔걱! 쯔걱!

살과 살이 부딪히며, 체액이 튀기는 음란한 소리가 단련실을 가득 채웠다.

“흐극♡ 히끅♡ 흐악♡”

이상했다. 모든 게 이상했다. 처음 느끼는 고통과는 다른, 이 참을 수 없는 느낌도,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계집애 같은 비명도.

“누님, 제대로 배에 힘 주셔야죠. 자세가 자꾸 무너지잖아요?”

“흐그윽...♡ 이게 모야아...♡ 히익♡ 이,이상해에♡ 이건 요가가 아니야앗♡”

“어허,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네. 자세에 집중하지 않으니 벌을 줘야겠네요.”

짜악─! 아르틴의 손바닥이 마리안느의 엉덩이를 내려치자, 질근육이 자지를 꽈악 물며 가볍게 경련하는 것이 느껴진다.

“흐앙?!”

“자, 제대로 보지에 집중해야죠? 이건 자궁과 질근육을 단련시켜주는 요가라고요.”

뭔가 이상했다. 분명 계획대로면 아르틴이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리드에 따라 야릇한 자세를 따라하며 자신을 이성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끝나야 했을 텐데.

이건 요가가 아니다. 이건 마치, 섹스가 아닌──

짜악─!

‘흐그윽♡ 기분 좋아♡ 이, 이게 뭐야?! 이런 격렬한 건 처음이야...!’

다시 한 번 아르틴의 손길이 엉덩이를 내려치자. 마리안느는 가벼운 절정과 함께 애액을 요가매트에 흩뿌렸다.

──이곳에 암사자는 없었다. 오직 수컷에게 아양을 떨고 있는 한 마리의 암컷만 남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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