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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75화 (175/266)

〈 175화 〉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 * *

누님과의 첫 관계 이후로 며칠이 지났고,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오라버니? 이번에 오라버님이 좋아하시는 식당에서 신메뉴가 나왔다고 해요! 이번 주말에 한 번...”

“그래? 잘됐다. 시험 끝나고 같이 가볼까?”

“스승님! 이번에 제가 발견한 무척 예쁜 꽃들이 들판에 만개한 곳이 있는데, 숨이라도 돌릴겸 피크닉이라도...!”

“미안, 전부 중간고사 끝나고 나서 해줄 테니까!”

우선 첫 번째는 내가 공부에 진지하게 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무려 3일을 섹스나 천마님 달래기 따위로 허비하고 나니 공부 계획이 잔뜩 흐트러졌으니까.

‘벼락치기의 형태로 간다. 잠을 조금 더 줄여서라도 이 악물고 기간 내에 스스로 정한 진도는 끝내놔야지.’

기본기가 없는 새끼가 다짜고짜 벼락치기를 했다면 이미 글러먹은 상태겠지만, 수많은 회귀로 기본기를 익혀 왔던지라 꽤나 할 만한 계획이 되었다.

‘이거, 실기나 실전 쪽은 1학년의 리처드 황태자를 찍어 누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일정한 경지에 도달해 본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법.

지난 회차들에서 익혔던 기술을 몸에 다시 적응 시키는 형태로만 수련을 했음에도, 나날이 일취월장하는 자신이 느껴진다.

오히려 훈련을 거듭할수록 신체능력에서 아쉬움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미 내용물은 풍족한데 내용물을 담아낼 그릇이 여전히 빈약하다보니까 담을 수 있는 양이 한정 되는 것이 뼈저리게 체감이 된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신체능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이벤트들도 주워 먹어야겠는데...’

다행히도 기연들은 넘쳐난다. 당장 남부 교단의 신들이나 드래곤 로드를 찾아가 힘을 계약하기만 해도 충분히 각성의 다음 단계인 초인의 영역으로 향하는 좋은 발판이 될 수 있을 거다.

지난 회차 당시에 마왕성을 돌파하기 위해 단련했던 신체가 초인의 끝자락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혹시 모를 마왕군의 습격이나 빌런의 출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초인의 영역에 도달하는 게 제일의 목표가 될 것 같다.

...물론 내가 약속을 뒤로 미룰 때 마다 내 연인들이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다.

여자들에게 신경이 쏠릴 때 마다 내 지능이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번 인생은 정말 조질 것 같았으니까.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혹시 무슨 일 있어? 누가 공부를 방해하거나 건방지게 굴어?”

내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자, 내 앞에 앉아있던 마리안느 누님이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아뇨, 별 일은 없고 그냥 살짝 피곤해서...”

“피곤하면 안 돼지! 응? 내가 어깨라도 주물러 줄까? 아니면 마사지? 피로 회복에 좋은 요가도 알고 있는 데?”

그 날 이후로 바뀐 점 중 두 번째는, 바로 마리안느 누님과 세니아 선생님의 태도였다.

지금도 회계를 공부하는 나를 즐겁게 웃으면서 바라보는 마리안느 누님을 봐라. 내가 한숨만 쉬어도 저렇게 극성으로 도우려고 한다.

게다가 마사지는 몰라도 요가라니, 저 눈에 뻔히 보이는 흑심에 나는 한탄을 금치 못했다.

‘내가, 내가 건드린 거니까 정말 변명의 여지도 없이 내 책임 이지만...!’

누님과의 관계를 맺은 다음부터, 누님은 명백히 나를 ‘이성’으로 인식하는 것이 보일 정도로 나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천마님과는 다르게 수업시간 까지 따라오진 않았지만, 지금처럼 수업이 없는 시간에 자습이라도 하려고 치면, 귀신 같이 나타나서는 나를 내조하는 것이다.

그런 행동이 싫지는 않았지만, 묘한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묘한 위화감보다 문제는, 주변의 학생들도 이 사실을 조금씩 눈치 채기 시작했다는 거지.

“저기 있는 두 사람, 꼭 연인처럼 보이지 않아?”

“어제도 하루 종일 같이 공부하고 수련했다고 들었는데... 루드비히 저 남자에게 무슨 매력이 있길래 황녀님에 이어서 왕녀님까지?”

“아르틴 저 건방진 새끼...세상이 전부 자기 건줄 아는 거냐고...!”

그야 카페 같은 데서 앉아서 공부하고 있어도 누님이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아 있으니, 눈치 좋은 귀족 학생들이 그 위화감을 알아차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덕분에 나는 안 그래도 주목받던 녀석에서 여성들에게는 여태껏 발견하지 못했던 매물을 살피는 상품 같은 시선을, 남자들에게는 찢어 죽일 놈이라는 평가를 잔뜩 받게 되었다.

아카데미의 최고 미녀 중 두 사람이 내게 호감을 보이니, 남자들의 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포기했지만 말이다.

“도대체 왜 루드비히의 주변에는 여자들이 끊이질 않는 걸까?”

“샤오메이랑 바이올렛도 아르틴이 1달 만에 꼬셔서 함락 시켰다는 소문이 있어.”

“아냐, 내가 듣기로는 천마와 세니아 선생님, 아르웬 영애까지도 함락시켜서 이미 하렘의 숫자가 30명이 넘어간다고 하던데?”

“아카데미에 오기 전에 악마와 계약해서 여성들을 매료시키는 힘을 얻었다는 소문이 정말 사실일까요?”

“제발, 꼬추는 작겠지? 꼬추는 3cm겠지? 풀발기해도 6cm겠지?”

“...”

점점 이상한 소문이 묻어서 부풀려지는 것도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게다가 아르웬 영애는 도대체 누구야? 내가 천마까지 건드렸다는 건 도대체 무슨 소리고?

슬슬 왕국이나 제국의 정보요원이 내게 붙어서 감시할 지도 모르겠다. 내게 이 정도로 관심을 보이는 건 교수님들의 총애만으로도 충분하다.

“...저놈들이 시끄럽게 굴어서 한숨을 내쉰 거구나? 내가 모조리 다 쫓아내 줄까?”

“아뇨, 누님 제발 그러지 말아주세요. 안 그래도 요즘 아카데미를 지배하는 흑막이라는 소문까지 붙었단 말입니다.”

내 뒷담을 같이 듣고 말았는지, 남자들을 향해 투기를 뿜어내려는 누님을 다급히 말려야 했다.

마리안느 누님이 정말로 투기나 살기를 내뿜으면 카페에 있는 손님과 종업원들이 전부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단 말야.

‘아침 조회 때도 세니아 선생님 때문에 그 난리를 피웠는데, 오늘은 조용히 좀 넘어가자...!’

오늘 아침, 주말 간 못 만났던 세니아 선생님은 나를 만나자마자 내게 아주 살갑고 다정하게 인사를 했다. 학생들 앞에서 아주 격렬하게 포옹을 했다는 소리다.

내가 살면서 풍만한 가슴에 짓눌리면서 기뻐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당황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니, 저번에 올가에게 임신 공격 당했을 때가 가장 아찔하긴 했지.’

아무튼 덕분에, 오전이 지나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아르틴 아카데미 흑막설, 대악마의 계약자설, 심지어는 마왕과 계약해 왕국과 제국을 혼란에 빠트리려는 호색가라는 설마저 돌고 있다.

“하지만 아르틴, 저런 헛소문을 내버려 둘 거야?”

“어쩔 수 없죠. 누님이나 아그네스와의 관계는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잖아요? 그렇다고 전생의 기억이 있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고 말하고 다닐 수도 없고.”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네가 여자가 20명 30명이 넘는 다니! 정말 악의적이잖아! 안 그래?”

“...”

“그렇게 순애보에 로맨티스트였던 아르틴이, 여자를 마구 후리고 다닌 다니, 정말 아르틴 너를 전혀 모르는 놈이나 퍼트릴 악의적인 소문 아니야?”

“그, 그렇죠! 정말 악의적인 소문이 아닐 수가 없네요. 전부 다 제가 잘나서 질투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가장 좆된 점은, 두 사람에게 아직 내 하렘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렘 멤버들에게는 허락을 받긴 했지만, 세니아 선생님과 마리안느 누님에게 여러분 말고도 여자가 5명은 넘게 있어요. 라고 말할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세니아 선생님은 어떻게 잘 설명하고 타이르면 이해해 줄 것 같은데, 마리안느 누님은...’

어떻게 반응 하실까? 내가 생각하던 누님은 털털하고 멋진 인격자였는데,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나를 따라다니며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니 조금 긴장감이 드는 것이다.

물론 마리안느 누님도 정작 내가 아그네스와 약혼 중인 것을 알면서도 나를 유혹했기 때문에 당당하게 연애를 선언하지는 못했지만...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논리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오늘은 할망구와 수련이었지? 수련이 끝나면 말해! 왕국의 역사 같은 과목은 내가 충분히 봐줄 수 있거든! 맞다, 왕국에다가 좋은 영약들을 보내달라고 말 해놨으니까 혹시라도 힘딸리거나 피곤하면 바로 말해야 해?”

“...”

우두머리인 누님만을 볼 때는 몰랐는데, 여왕이 아니라 여자인 누님은 남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안 그래도 요즘 올가도 힘든 일은 없냐고, 몸이 허하면 언제든지 찾아 올테니 말하라고 편지로 극성이던데...’

올가와 마리안느 누님은 묘하게 남자를 응석받이로 만드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만약 둘이 만나면 남자 하나를 못써먹게 만드는 것도 일은 아니겠지?

나는 절대로 둘이 못 만나게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천마님에게 찾아가기 전 까지 마리안느 누님의 애정을 과시하는 듯한 행동들을 전부 받아줘야 했다.

**

“요즘 들었어? 1학년의 아르틴이 마리안느 왕녀랑 아그네스 황녀를 둘 다 꼬셔서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

“게다가 그걸 과시하듯이 학생들 앞에서 선언했다는 데, 소문에 따르면 저번 장미관 사건에서 몽마의 힘을 얻었다고 하더라니까요...?”

아카데미에서는 한창 아르틴 루드비히라는 남자의 이야기가 퍼지고 있었다. 그건 상급생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3학년의 어느 교실, 모여 앉은 여학생 5명이 아르틴에 대해 돌고 있는 소문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진짜 소문과 거짓 소문이 무엇일지 재잘재잘 입방아를 찣고 있었다.

“제가 들은 소문에 따르면, 이미 펠카스 가문과 태산 도장은 아르틴이라는 남자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다고 하네요...! 조르바 펠카스와 린 샤오메이가 왜 그런 남자랑 따라다니겠어요?”

“어릴 적부터 접근해서 두 사람을 자신의 수족으로 세뇌시켰다는 소문 말이죠? 그게 정말 사실인가요, 뮤리스?”

대화를 주도하며 떠들던 상위 귀족들의 영애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뮤리스라 불린 땋은 머리의 여학생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에서 같은 계급의 사람들이 모이는 게 아닌 이상, 같은 모임에도 서열이 정해지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루한 남작가의 둘째딸 이라는 별거 아닌 출신의 뮤리스는 백작의 딸이나 제국 기사단장의 장녀 같은 좋은 출신의 여인들 사이에서 사실상 서열의 최하위, 본래라면 이렇게 주목을 받을 일조차 없는 들러리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그, 글쎄요? 어린 시절부터 그 두 사람하고 엄청 붙어 다니기는 했는데...”

“렉스턴 와이즈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도 사실인가요? 제가 듣기로는 3월에 벌어졌던 결투도 렉스턴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아, 저도 들었어요. 와이즈 가문의 장남을 건드린 탓에 루드비히 가문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있던데..?”

“하하하, 아버님이 설마요...아르틴 루드비히는 가문에서 사랑과 관심을 늘 잔뜩 받고 자란걸요? 렉스턴 도련님과의 불화도 그저 사소한 다툼이 커진 것뿐이에요.”

“그런가요...? 생각보다 시시한 일이지만... 누나인 당신의 말이 소문보다 정확하겠죠?”

기사단장의 딸의 말에, 루드비히 가문의 차녀 뮤리스 루드비히는 식은 땀을 흘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젠장, 젠장, 젠장! 그런 걸 물어보면 어쩌라는 거야! 렉스턴이 애를 병신을 만들어 놨다고 말할 수도 없잖아...! 뇌근인 기사 나부랭이의 딸답게 그런 간단한 것도 생각 못하는 거냐고!’

혹시라도 자신의 말실수로 주군인 와이즈 가문이나 본가인 루드비히 가문의 명성에 폐가 갈만한 발언을 꺼내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날 수 있기에, 뮤리스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겉으로는 온화하고 어리숙한 미소를 지으며 아주 최소한의 대답만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뮤리스에게는 잘 된 일 아닌가요? 만약 일이 잘 풀리면, 황제의 사위가문이나 왕가의 사위가문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어머! 그럼 저희 중 가장 고귀한 신분이 되실 수도 있겠는걸요? 잘 됐네요. 뮤리스!”

“그, 그럴리가요. 부족한 동생이 황제폐하나 국왕님에게 성이 찰 리가 없죠. 몇 달 안에 끝날 헤프닝 정도라고 생각해요...”

말에 깔린 악의, 네 까짓 게 감히 우리와 동급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가 담긴 말에, 뮤리스는 애써 모른 척 하며 넉살 좋게 웃음을 지을 뿐이다.

‘...이 멍청한 아르틴 새끼, 가문에 있을 때도 방해만 하더니,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는 거야? 그대로 쓰레기처럼 방에 쳐박히고 있을 것이지..!’

뮤리스는 최대한 가문에 도움이 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의 출세와 좋은 귀족 가문에 시집을 가기 위해 2년이라는 시간 내내 노력을 했다.

좋은 가문의 여인들에게 최대한 사람 좋은 모습만을 연기하고, 스스로 궃은 일을 자처해가며 겨우 상위 클래스의 여인들의 모임에 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좋은 남자와의 만남만 건지면 되는 일이었는데, 흘러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되었다.

“어디, 뮤리스의 동생이라면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 언제 한 번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을 까요?”

“나도 궁금하네, 제국의 기사를 이긴 실력이라면 한 번 대련도 해보고 싶고 말야!”

“아하하, 한 번 동생에게 말은 꺼내 보겠지만...워낙 낯을 가리는 아이라. 노력은 해볼게요.”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조차 요즘 뮤리스에게 말을 거는 주제는 뮤리스 본인이 아닌 동생인 아르틴에 대해 묻는 것이 전부다. 뮤리스는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좋은 남자를 잡아 오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열심히 노력해온 자신의 인생이, 고작 동생 하나 때문에 부정당하는 것 같지 않은가?

‘안 되겠어, 내가 한 번 가서 경고를 줘야지...! 이 버러지 같이 도움 안 되는 동생 같으니...!’

홍차를 들이켜 부글부글 끓는 속마음을 식히며, 뮤리스는 아르틴에 대한 악의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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